음식살롱

날씨가 추운 겨울이니, 음식도 뜨끈한 국물이 그리워져서 탕이나 국을 많이 찾게 된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먹거리에는 유독 국과 탕이 많다. 국과 탕의 사전적인 의미로는 국의 높임말이 탕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생활에서는 국은 양념을 다해서 조리해 먹고, 탕은 조리 후 양념을 쳐서 먹는 차이가 있다(물론 육고기를 재료로 하는 음식에 한정한 얘기지만). 그래서 이번엔 샐러리맨들이 많이 모여 밥 한 끼를 즐기는 여의도의 설렁탕집 얘기를 해보려 한다.
설렁탕 유래에는 설왕설래가 많은데, 그중에 하나는 조선시대에 매년 경칩이 지난 첫 번째 해(亥)일, 축(丑)시에 동대문 밖에서 임금과 신하들이 백성들과 함께하는 신농제를 지낸 선농단에서 유래한 설농탕이 변이하여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귀한 소를 식재료로 한, 대중들의 대표적인 서울 음식인 설렁탕과 곰탕은 다 알다시피 사용하는 소 부위의 다름에 그 차이가 있다. 설렁탕은 주로 뼈와 잡육을 넣어 끓여서 국물이 뽀얗고, 곰탕은 양지나 사태와 내장을 넣고 끓여서 맑다.
여의도에 자리한 은주설렁탕은 맑은 국물 탓에 사람들이 곰탕과 헷갈리기도 한다. 흔히 우리가 맛보는 설렁탕은 뽀얀 국물을 지녔기에, 이 집의 설렁탕은 처음 오는 사람에게 왜 곰탕을 설렁탕이라고 하나 하는 의문까지 들게 한다. 허나 국물이 뽀얗든 맑든 그게 뭔 상관이랴? 감칠맛이 있으면 그만이지. 일단 이 집 설렁탕은 곰탕처럼 맑은 국물에 맛이 담백하다. 그리고 탕에 들어있는 고기에서 소 특유의 잡냄새가 없다. 한우 암소는 냄새가 없고, 거세소는 냄새가 난다는데, 설마 만 원짜리 설렁탕에 그 비싼 한우 암소를 쓰기야 했겠는가마는 아무튼 잡내가 전혀 없다.
고기는 날고기, 구운 고기, 삶은 고기 순으로 맛이 없다는데, 이 집 수육이 아주 뛰어난 만큼 설렁탕에 들어있는 삶아진 고기도 맛이 좋아서 웬만한 설렁탕집에서는 잘 안 먹는 탕 속의 고기도 싹 비우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은 탕국물에 주식인 밥을 말아 후후 불며 한 그릇 비워야 뭘 먹은 것 같다. 설렁탕에 잘게 썬 날 파를 가득 넣고 소금과 후추로 양념을 한 후, 밑반찬으로 딸려 나온 김치, 깍두기와 특히 사시사철 제공하는 부추김치를 곁들이면, 순식간에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는 배부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게 없듯이, 온갖 음식을 다하는 집에는 주전공이 없는 법이다. 은주설렁탕은 수육과 도가니탕도 손님들의 입맛을 강력히 유혹하니 설렁탕, 도가니탕, 수육의 단출한 차림이지만, 좋은 소고기를 삶아서 내는 공력으로는 감히 장안의 최고라고 하겠다. 사족으로 여의도에 자리하고 있는지라, 재수가 좋은 날이면 연예인을 만나지만, 재수가 없으면 국회의원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집에 가면 인생이 그러하듯이 재수 없는 날이 훨씬 많다. 살아가면서 억세게 운수 좋은 날이 평생에 몇 번이나 되겠는가? 그러려니 하고 사는 수밖에.
은주설렁탕은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오른쪽 횡단보도를 건너면 오른편으로 바로보이는 금산빌딩 지하 1층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