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금배섭 안무의 『섬』(2월 10~12일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현대무용가 금배섭의 안무작 『섬』은 70여분 길이의 솔로 공연이다. 안무자가 대표로 있는 단체 「춤판야무」가 “현재 한국사회에 비빌 언덕 없이 외롭게 홀로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기획한 시리즈(솔로 연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가 2015년에 있었고 올해 후반기에 세 번째 작품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아마 『섬』은 2016년 공연이 약간 늦춰진 게 아닌가 싶다. 앞선 작품은 『미친놈 널뛰기』(2015)인데, 서울역에서 우연히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타인과의 관계나 소통과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만든 것이라고 한다. 전작은 보지 못했지만, 이번 작품 『섬』을 볼 때 금배섭의 ‘솔로’ 연작은 무대에 선 무용수(여기서는 안무자 자신)가 이야기하고 객석의 관객들이 그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대 한쪽에는 음향시설이 갖춰진 작은 공간이 있는데, 공연의 시작과 거의 동시에 등장한 금배섭과 윤현종(음악감독)이 그곳 마이크 앞에 선다. 이어 “들리세요?”라는 짧은 말이 몇 차례 반복되는데, 이러한 연출은 처음부터 관객들이 ‘귀 기울이게’ 만들며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금배섭은 자갈밭을 걷듯 제자리에서 자갈을 밟으며 소리를 내고, 윤현종은 마이크에 입을 대고 바람소리를 낸다. 그들이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자연의 소리는 그 자리에서 녹음되어 그들이 그 자리를 떠난 후에도 당분간 계속된다.
이 같은 첫 장면에서 보듯, 이 공연에서 음악감독은 혼자서 여러 장비를 이용해 많은 소리를 만들어낸다. 전체적으로 작품에서 음악은 조금 독특하게 사용되는데, 움직임과 거의 동급 수준으로 기능한다. 움직임과 음악이 상호작용하듯 서로를 관통하고 있어 음악은 무대장치나 작품배경이 아니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소리처럼 각인된다. 움직임이 주는 질감은 음악적 효과로 인해 더 또렷해짐으로써 추상적인 춤의 모호함을 줄여준다. 그래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솔로 공연임에도, 장면들은 흥미롭고 다양하게 변화된다. 작품 중간에 윤현종은 한 번 더 금배섭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녹음하고 재생하느라 무대에 등장하는데, 그때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대는 기교나 인위와 거리가 멀고, 자연스러운 공간 연출은 사운드뿐만 아니라 무용수의 움직임과 연관이 있다.
거친 자갈밭을 걷고 걷고 또 걸은 무용수는 이번에 망망대해를 헤엄치듯 무대 바닥을 기어간다. 바람소리만이 동행하는 험난한 여정 끝에 마침내 도착하는 곳, 그곳에서의 삶이 바로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다. 작품 『섬』은 탈북자를 소재로 한다. 안무자는 북한을 ‘섬’처럼 고립된 사회로 간주하고, 그곳을 탈출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 섬을 탈출한 사람들이 정착한 곳은 어디일까? 혹시 그들이 도착한 곳이 또 다른 섬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더 이상 탈북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금배섭의 『섬』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고립되고 단절된 인간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무대 왼쪽 바닥에는 약 1m 길이의 나무막대기 수십 개가 굽이치는 물결 모양으로 놓여 있다. 이 소품은 이후 성냥개비를 쌓아 놓은 듯한 모습의 구조물로 변하는데, 그것은 금배섭을 가둔다. 정확히 말해, 사방이 막힌 채 한 사람이 웅크리고 있으면 꽉 차는 공간에 그는 ‘갇힌다’. 그 공간은 ‘섬’이 된다. 막대기들이 우르르 무너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공간에서 움직이는 무용수의 몸짓은 제약되어 있으며, 그렇게 움직일수록 더 옥죄어 오는 듯한 처절함과 갑갑함이 고립의 감정을 극대화한다. 그 안에서의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크게 울린다. 그 섬은 아주 조금씩 옆으로 이동한다. 섬의 위치만 바뀔 뿐 여전히 그는 섬 안에 존재한다.
여기서 무용수는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번 정교하게 움직인다. 하나의 육체임에도 금배섭의 움직임은 다수가 움직이는 것처럼 변형의 폭이 넓다. 그는 특히 두 팔과 두 다리를 거의 동일하게 사용하는데, 여기서 팔과 다리는 우리 신체의 ‘팔’이라는 것과 ‘다리’라는 것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순식간에 발에 신겨진 두 겹의 흰 양말을 양 손으로 벗겨내는데 자연스럽게 장갑처럼 양 손에 끼워지기 때문에 다리와 팔이 같은 형태를 띤다. 그는 줄곧 양 손에 양말을 끼운 채 움직인다. 그는 또한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데 상체와 머리를 사용한다. 후드티는 무용수의 상체에서 앞뒤가 부지불식간에 바뀌고 위아래도 마찬가지로 뒤집어지는데, 그는 누구도 그것을 쉽게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해낸다.
무용수 1인의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구성된 『섬』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진지하면서 성찰을 요구하고, 그래서 되묻게 된다. 그러면서 탈북민과 같은 이방인의 고립과 소외에 대해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형식적인 면에서, 금배섭의 솔로 연작은 춤이 이야기하는 방식의 하나로서 1인극의 형태를 제시한다. ‘춤이 말한다’는 것은 입으로, 즉 언어로 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일컫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떤 ‘상황’이라는 것이 깔려 있어야 한다. 춤은 그 같은 상황 속에서 비로소 이야기로 들려진다. 이것이 안무가 금배섭의 1인극이 보여주는 바다.
최근 미디어는 새삼스럽게 혼밥, 혼술, 혼공 등 홀로 즐기는 사람들의 등장이 대세가 된 풍조를 소개한다. 그러한 현상은 타인의 방해를 거부하고 불편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반영한 트렌드라고 긍정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의 본질은 ‘고립’이다. 타인과 관계맺음이 힘들고 불편해 결국 거부하게 되는 현상의 이면에는 개인주의의 발현이 아니라 ‘함께 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게 된 현실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즉,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표면적인 경향이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춰진 삶의 문제다. 그러므로 나 홀로 족의 확대에서 보게 되는 것은 점점 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고립된 삶’이다.
그런데 금배섭의 『섬』에서 그 고립은 공포나 외로움으로 남지 않는데, 이 작품은 은연중에 미소짓게 하는 유머스러움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이 결국 무거운 주제임에도 이 이야기가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게 하는 포인트인 것 같다. 소외된 삶을 온전히 홀로 견디어 내는 사람에 대한 안무자의 따뜻한 시각이 묻어나는데, 바로 ‘희망’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춤/공연과 같은 소통을 통해 개인의 삶이 변하고, 그렇게 변화된 삶이 결국 사회를 바꿀 것이라는 희망이 그를 춤추게 하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