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현재 우리 무용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세대는 신진 현대무용가들이다. 갖가지 기획 및 지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각양각색의 창작물들을 풍성하게 내놓고 있는 것이다. 다만 기획 및 지원 추세에 민감하게 따라가다 보니 자기만의 차별화된 예술성에서는 아쉬움을 보이기도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견 현대무용가들의 경우 일선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수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동안 확립해온 고유한 예술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우리 무용계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위해 어느 세대 이상으로 한 역할을 하고 있다.
2월 7~8일 포스트극장에서는 중견 현대무용가 이준모와 김남식의 솔로 작품이 선보여졌다. 50대 초중반의 중견 현대무용가의 감성과 감각으로 풀어나가는 컨템포러리댄스는 우리 무용창작의 풍미를 더해 주었다.
이준모의 『지전춤-꽃신』에서 ‘지전춤’이란 진도 씻김굿의 하나로 망자의 넋을 불러 부정을 가시게 하고 원한을 풀어 극락으로 이끌기 위해 추는 춤이다. 이준모는 이를 나름의 감성으로 재창조해 놓았다.
오른 쪽으로 치우친 핀 조명 아래서 꽃신을 들은 이준모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무가이자 무용수로서 작품을 이끌어간 이준모는 50대 중반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불필요한 지방이나 나잇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몸에는 잔 근육의 결마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는 꽃신을 손으로 받치고 머리에 이고 가지런히 내려놓음으로써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함을 표현한다.
현대적인 감각의 진동음이 울리는 가운데, 보다 넓은 반경으로 나아간 이준모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역동이라는 동작적 노련함을 실현한다. 이러한 특질은 바닥에 손을 짚으면서 다리를 공중으로 높이 들었다가 몸 전체로 착지하는 움직임에서 여실하다. 포물선을 그리면서 몸을 던지고 나선형 모양으로 몸을 회전하는 등의 움직임에서도 이는 유지되었다.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기술적인 동작임에도 차분하고 여유로운 흐름 속도를 잃지 않는다는 점은 오랫동안 꾸준한 트레이닝을 바탕으로 할 것이다.
마지막은 처음과 같이 오른쪽에 놓인 꽃신으로 되돌아와서 망자로 향한 그리움과 애절함을 표현하면서 맺어진다. 구체적이고 설명적인 묘사보다는 마음 깊은 곳의 한 구석을 열어 보이는 듯한 담담하지만 농축된 감성으로 그려나갔다는 점에서 컨템포러리댄스적인 접근을 읽을 수 있다.
김남식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그림 「검은 사각형」에서 영감 받은 『검은 사각형 1915 - 의미없음의 의미』를 초연하였다.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하나의 기하학적 형태에 하나의 색만을 사용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구상미술을 부정한 러시아 추상미술 사조인 ‘절대주의’의 창시자다. 김남식은 그의 절대주의 그림을 구도적인 춤 작품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장치는 ‘긴 줄에 매달린 종’과 ‘넓게 펼쳐진 사각 천’이다. 천장에 걸쳐진 긴 줄에 달린 종은 줄 반대쪽의 추로 인해 높이가 자유로이 조절된다. 바닥에 뭉쳐진 천은 사각으로 넓게 펼쳐져 각 모서리가 위로 들릴 정도로 잡아당겨진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머리 전체에 검은 두건을 뒤집어쓴 김남식은 종을 위아래로 올렸다내렸다 하면서 때때로 소리를 울린다. 거의 모든 행위는 바닥에 넓게 펼쳐진 사각의 천 위에서 이루어지는데 그 영역의 경계선에 다다를 때면 모서리가 높이 들려서 밖으로의 이탈을 막는다. 작은 무대에 효과적으로 배치된 미니멀한 장치와 그 장치를 활용하는 김남식의 소소하지만 구도적인 움직임이 돋보인다. 한 폭의 추상화 같은 춤 그림이 그려졌다고 할 수 있다.
김남식은 2014년 『고백-누군가 누군가들에게 전하는…』 이래로 보다 깊이있는 예술 사유를 담은 컨템포러리댄스를 실현하고 있다. 창작산실 재공연작으로 선정되어 올해 초 재연한 『시계태엽 오렌지』의 경우에도 2015년 초연에 비해 상당히 정돈되고 풍성한 예술 표현을 보여주었다. 꾸준한 노력의 가치를 근 몇 년 사이에 꽃피우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