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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살롱
서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문학이요 예술이다. 특히 서정시는 인간의 보편적인 희로애락을 표현한 언어 예술의 백미라 하겠다. 단 몇 구절의 짧은 말로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사랑과 고통, 그지없는 슬픔과 기쁨을 농축시켜 인간을 위로하고 성찰하게 하는 힘은 놀랍다. 인간이 처한 환경은 시대나 나라에 따라 달라도 그 감정의 결은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한 모습이다. 그래서 세계 각지의 어제와 오늘의 삶의 양상은 무척 다르지만 시공을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서정시들이 오래 전부터 창작되고 읽혀져 왔던 것이다.
세계 곳곳의 서정시를 주제에 따라 모아 엮은 시집이 최근 주목 받고 있다. 엮은이 겸 지은이는 국문학계의 거장인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다. ‘엮은이’는 여러 언어권의 시를 골라 모았기 때문이고, ‘지은이’는 한 편의 시마다 비평가이자 감상자로서의 해설을 붙였기 때문이다. 「서정시 동서고금 모두 하나」(전 6권)는 「한국문학통사」(전 6권)와 「세계문학사의 전개」 등의 역저를 펴냈던 조동일 교수의 역량과 노력이 낳은 야심작이다.
우리 시는 물론이고 한자, 중국어,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7개 언어를 모두 소화하는 편자이기에 주옥같은 서정시의 명편들을 직접 고르고, 원어와 함께 번역했으며, 시마다 해설을 붙였다. 거기에 그림까지 직접 그렸다. 대학자가 꼬박 3년을 투입한 결과물이자, “시 짓기를 즐거움으로 삼았던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해 지금껏 공부한 시를 한 자리에 모으는 데 60년이 걸린 셈”이라는 소회가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국내 시인 177명과 해외 시인 223명의 작품 650편이 실렸다. 김소월, 두보, 하이네, 릴케, 보들레르 등을 망라한 세계 서정시의 산맥이 출렁인다.
6권짜리 시집의 부제는 각각 「실향의 노래」, 「이별의 노래」, 「유랑의 노래」, 「위안의 노래」, 「자성의 노래」, 「항변의 노래」이다. 즉 6가지의 대주제로 나누고, 거기에서 다시 각권마다 세부 갈래로 나뉜다. 예를 들어 4권 「위안의 노래」에서는 시적 자아가 위안을 삼는 꽃과 초목, 사계절과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장마다 등장하는 이미지들이 시와 어우러진다. 봄의 노래를 모은 부분에는 맹호연의 ‘봄 새벽’, 빅토르 위고의 ‘봄’, 하인리히 하이네의 ‘놀랄 만큼 아름다운 오월에’, 신동엽의 ‘봄은’이 모여 있다.
2권 「이별의 노래」에는 미처 몰랐던 한국 시인 이무원의 ‘밥’이라는 시가 눈에 와 박힌다. “어머니 누워 계신 봉분 / 고봉밥 같다 / 꽁보리밥 / 풋나물죽 /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데 / 늘 남아도는 밥이 있었다 / 더 먹어라 / 많이 먹어라 / 나는 배 안 고프다 / 남아돌던 / 어머니의 밥 / 저승에 가셔도 배곯으셨나 / 옆구리가 약간 기울었다”
아마도 세계 출판 역사에서 이처럼 방대한 시를 모으고 원어까지 실으며 번역해 해설까지 붙인 시집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큰 기획을 실현시킨 거대한 시의 파도는 인류를 낳고 기른 바다 같다. 바다가 결국은 하나이듯 그 많은 서정시들이 모여 커다란 한 편의 시가 된다. 노학자의 지식과 혜안에 기대어, 지구생활에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서정시집 한 권 꺼내 읽는 봄밤은 얼마나 멋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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