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살롱

전통예술에서 ‘경계’는 분명하다. 넘을 수도 없고, 넘으려하지 않는다. 전통예술에서 ‘성악’ 분야가 더 그렇다. 판소리를 하는 사람은 평생 판소리를 하고, 경기민요를 하는 사람은 평생 경기민요를 한다. 이렇게 한 분야에서 정진하는 것이 불문율이요, 한 분야의 한 스승 밑에서 연마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무형문화재 전수제도가 시행된 이후가 더 그렇다. 스승을 바꾼다는 것도 쉽지 않고, 더욱이 종목을 바꾸는 경우도 별반 없다.
김보라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다. 그녀는 또한 가곡(여창가곡)을 수학하고 있다. 국악의 성악전공자로서 독특한 행보다. 그가 이렇게 두 장르를 넘나들게 된 것은, 김보라의 능력과 열정에 기인한다. 하지만 스승이 반대한다면 불가했으리라. 경기민요의 스승 이춘희(경기민요 보유자)와 가곡의 스승 강권순(여창가곡 이수자)의 열린 입장에 박수를 보낸다.
김보라의 공연 제목은 「해방공간: 약속의 음악」(2월9~10일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이다. ‘전통음악이 세분화되면서 각 장르적 특성이 지나치게 경직되어가는 것을 해방시켜 한국음악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의도의 공연이었다. 김보라는 그 방식으로 ‘구음’을 택했다. 구음(口音)은 ‘입소리’ 혹은 ‘입타령’이라고 한다. 악기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특징적으로 잡아내서 입으로 노래하는 것을 구음이라고 한다. 음악학에서는 구음을 ‘난센스 실러블(nonsense syllable)’로 번역한다.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 모음(vowel)을 연결하는 부르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가사로 부르는 것이 아니기에, 드러낼 수 있는 정서의 폭이 보다 넓은 장점이 있다.
그동안 구음을 잘 활용한 분야는 판소리와 남도민요다. 「구음시나위」는 기악연주에다가 판소리식의 목소리가 합쳐진 연주형태다. 최근 산조와 구음이 만나는 형태의 공연도 선보이고 있다. 특히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보존회’의 공연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경기민요와 여창가곡에서 이런 시도는 전혀 없었다. 김보라에 의해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구음과 함께, 철가야금(라예송), 거문고(전우석), 아쟁(고준형)을 만나게 했다. 건드렁타령, 도화타령, 배치기소리, 한강수타령이 가사를 없애고, 구음만으로 부를 때 얼마나 ‘자유의 곡조’, ‘해방의 소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번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구음검무」는 지금까지 전혀 시도되지 않은 형태였다. 춤꾼 서정숙과 소리꾼 김보라가 오랫동안 서로를 잘 알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선율악기의 없이 오직 구음(김보라)과 타악(박범태)만으로 오히려 더욱 깊은 흥과 멋을 끌어냈다.
김보라는 이번 공연을 통해서, 경기민요와 여창가곡의 두 장르의 특성을 잘 살리면서, ‘김보라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전통음악의 관례대로 ‘김보라류(流) 구음’이 탄생될 수 있겠다싶다. 임신 7개월의 여성으로서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성숙해가는 한 아티스트의 진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음악의 장르적 경계를 허물고 화석화될 수 있는 국악장르를 해방시키는데 구음과 김보라가 이렇게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