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살롱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음주가무를 즐겨서인지 유독 해장국이 발달해서 전국적으로 속풀이 국이 많다. 선지해장국과 북엇국(서울), 뼈다귀해장국(양평), 콩나물 해장국(전주), 복국과 뽈데기탕(부산), 우럭젓국(서산), 올갱잇국(영동), 곰칫국(속초), 섭국(양양), 재첩국(하동), 연포탕(목포), 짱둥어탕(순천), 갈칫국(제주)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이 중에 전국적으로 가장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선지해장국을 얘기해 보려 한다.
선지에는 흡수되기 쉬운 철분이 많고, 단백질이 풍부하다. 또한 선짓국에는 비타민과 무기질, 식이성 섬유, 아미노산, 아스파라긴산 등이 풍부한 우거지와 콩나물 같은 야채가 곁들여져 있어서 영양의 균형을 이루며, 피곤한 몸에 활력을 주고, 주독을 잘 가셔준다. 그리고 선지의 탱탱하고 고소한 식감과 우거지의 다소 거칠면서도 구수한 맛이 꽤 잘 어울린다.
봄이 오면 가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아마 제주도일 터이다. 요즘은 주말만 이용해서 토요일 첫 비행기와 일요일 막 비행기로 제주를 다녀오는 사람들도 꽤 있다. 첫 비행기를 타면 8시 전에 제주 공항에 도착하는데, 아침 식사로 해장국 한 그릇이면 여행의 첫 끼니로 아주 든든하지 않을까. 제주도는 워낙 관광객도, 음식점도 많아서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어지럽다. 그런데 관광지에서 좋은 음식점을 찾는 팁 중에 제 일감은 안내 책자에 없어서 관광객들은 가지 않고,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집을 찾아가는 거다. 이도저도 모르겠으면 시장으로 가라는 게 여행 고수들의 훈수다.
제주국제공항에서 20분만 가면, 아라동의 많은 해장국집 중에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태진해장국이란 집이 있다. 제주도까지 와서 뜬금없이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웬 해장국이냐고 힐난할 수도 있겠지만, 제주도에 왔다고 해서 삼시 세끼 해물만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 집은 딱 선지해장국, 소고기해장국, 내장탕 이렇게 세 가지만 한다. 음식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차림표만 봐도 이 해장국집의 내공을 짐작할 터이다. 해장국에 들어가는 고기 재료 중에 손님의 취향에 따라 많이 들어간 걸 골라 먹으라는 주인장의 의도일 것이다.
선지해장국의 생명은 선지를 냄새 없이 탱글탱글하게 삶아서 고소한 맛을 내는 데 있다. 선지의 식감이야 말로 선지해장국의 맛을 좌우한다. 단단하지도 물렁하지도 않게 적당히 선지를 삶아야 제 맛인데, 이 집의 선지가 딱 그러하다. 아울러 선지해장국에 넉넉하게 들어있는 곱창, 천엽 등과 우거지, 콩나물이 맛을 더욱 돋우며, 여기에 날달걀을 풀고, 들깨, 다진 마늘로 조미를 하여 밑반찬으로 깔린 풋고추, 김치, 깍두기를 곁들여 먹으면 일미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분홍색 라벨이 붙은 생유산균 전통 제주 막걸리를 한 잔 걸치면, 밤늦도록 할 첫날 여행의 힘을 받고도 남는다.
술 권하는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그럴 듯한 해장국마저 없다면, 우리의 속은 얼마나 더 쓰리랴. 태진해장국 064-702-6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