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살롱

지금 연극계는 폭풍 속의 돛단배처럼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의 부실한 국정수행 실태가 밝혀지면서 연극계는 블랙리스트 파문에 휩싸이고 있다. 연극인들 중에는 각자의 분노를 표시하기 위해 광화문의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검열에 맞서는 연극인들’의 주관으로 천막텐트에서 항의적 연극을 하거나 릴레이 1인 시위를 감행하고 있다.
늦어도 3월 중순에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재판이 인용이나 기각으로 결판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인용이든 기각이든 연극계의 항의는 끝나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이 기각으로 끝난다고 해도 연극계의 블랙리스트는 그대로 큰 문제로 존재하며 이에 대한 시정요구는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연극계의 블랙리스트는 일만만파가 되어 연극계의 모든 문제를 척결하는 희망적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이를테면 먼저 정부의 연극 지원금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다음에는 국가와 지방자치제의 극장과 연극단체의 비공공성과 비효율성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이들 극장과 연극단체가 국민의 혈세를 과도하게 배분 받아서 비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바람에 부익부 빈익빈의 상태가 고착되어서 연극계가 상생과 중흥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히 시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처럼 덩치가 큰 국가극장의 비공공성과 비효율성은 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연극인과 직결되는 것은 연극전용 국가극장이나 연극단체이다. 얼마 전에 서울연극제가 아르코 대극장의 대관심사에 탈락하여 장기농성과 고소사태가 벌어졌는데 이것은 분명히 하나의 정치적 농단이다.
국가의 연극단체를 대표하는 것은 국립극단이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임기가 끝나가면서 그간의 부실상을 점검하는 내용이 지상과 인터넷에 오르고 있다. 김윤철 예술감독의 임명과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수긍보다 우려가 많았다. 예술적 실천경험이 없는 사람이 비평가적 입장에서 아무리 방향을 제시한다고 해도 연극이 세부적으로 완성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거의 적중된 것으로 보인다. 국립극단의 사명은 무엇보다 창작극을 육성하는 것인데 고선웅 연출의 「한국인의 초상」을 제외하고는 기억에 남는 공연이 없다. 기억에 남는 것은 모두 외국인 연출가의 공연이다. 세계 모든 지역의 연출가들이 국립극단의 무대에 등장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예술감독의 성향이 영어권에 머물러 있어서인지 영국 연출가를 선호하고 있으며 아시아어권에서는 중국국가화극원만 초청했다. 그것도 셰익스피어의 「리차드 3세」라고 하니 그가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렇게 한국연극의 창작적 힘을 과시해야 할 국립극단이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데 그동안 이사들은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이사진의 구성으로 보아도 안목과 균형을 논의할 수 없으며 무슨 이유로 그들 속에 연극과 상관 없는 사람과 공무원이 끼어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의 블랙리스트 사태는 연극인 모두에게 뿌리 깊은 부조리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