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2017년 2월1일 새벽6시, 인천공항에 집합했다.
설 연휴를 바로 뒤에 둔 날이라 그런지 새벽6시에 이렇게 혼잡할거라 예상을 못하고 왔다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지금 여기, 나는 누구?’ 머리를 흔들면서 한참을 그렇게 사람들 구경에 넋을 놓았다. 지나고 보니 역대 연휴 중 인천공항 이용이 최대치를 갱신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2014년 「케이 댄스 뉴 웨이브 인 뉴욕(K-dance new waves in new york)」 으로 세컨드네이처댄스컴퍼니에서의 뉴욕행을 마지막으로 2년 만에 인천공항에 다시 왔다. 그래서인지 너무나 낯선 풍경이었다.
「2017 인도 아따깔라리 페스티벌(ATTAKKALARI INDIA BIENNIAL)」 오프닝 공연에 한국팀(Korea Team)으로 함께 무대에 오르게 되는 우리 세컨드네이처댄스컴퍼니와 무대위사람들(겜블러와 애니메이션)은 스태프까지 총22명의 멤버. 오전9시에 서울을 출발해 싱가포르에서 4시간가량 체류하고 인도 뱅갈로르에 21시 55분에 도착하는 긴 여정이었다. 거의 하루를 보내면서 조금은 힘들게 인도의 IT 산업 도시라는 뱅갈로르에 도착했다. 뱅갈로르에서 호텔까지는 한 시간가량 소요된다고 했다.
도착하자마자 뿌연 먼지와 뭔지 모를 기운으로 눈도 따갑고 목과 코가 맵고 건조해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호텔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교통 혼잡으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신호등도 없고, 차선도 없고(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경적소리로 신호라도 보내듯이 여기저기 빵빵거리며 아찔한 순간을 몇 번을 맞이하고서야 불안하고 불편하게 겨우 호텔에 도착하였다. 무서운 놀이기구를 탄 기분이랄까? 공항에서 호텔까지 오면서 인도의 반은 본 듯, 어리둥절하고 지쳐서 그렇게 첫날밤을 맞았다. 앞으로 5일 밤을 지내게 될 호텔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좋은 모습이어서 안도의 한숨으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은 야외로 연결되어 화창한 날씨와 파란 하늘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어제 밤의 낯선 기억을 잊게 할 만큼 이국적인 분위기로 꽤 만족하며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기에 충분하였다.
오늘은 호텔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리허설이 있다.
번화가를 벗어난 작은 마을에 여러 가지 상점들이 모여 있고 순박한 사람들과 일상적이고 평범한 광경이 우리나라 시골풍경 같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리에 당나귀나 소, 개 등 동물들이 사람들과 섞여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데 어느 누구도 소를 끌어내거나 빵빵거리지 않고 피해서 잘 다니는 것이 인도사람들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했다. 또, 간간히 우리 일행에 다가 와서 돈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과 위험한 차도에서 창문을 두드리며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니 무언가 모를 애잔함과 감사함이 교차했다.
스튜디오에서 리허설과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가 향한 곳은 뱅갈로르의 번화가에 있는 독일수제 맥주집이었다. 고맙게도 한국대사관 총영사가 우리 일행 모두를 초대한 자리였다. 이곳은 인도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깔끔한 건물에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정말 맛있는 수제 크림맥주와 피자, 샐러드 등 마음 편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왔다.

드디어 공연 날이 되었다.
공연장은 아주 예쁘고 소박하며 한적한 곳에 있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그동안에 페스티벌에 참여한 많은 단체들과 프로그램 소개 베너 등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 안에서 한국 팀들을 찾아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과 무언의 에너지가 내 몸에 느껴졌다. 이제 우리나라 춤의 위상은 어디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강국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 사람들은 공연 몇 시간 전부터 공연장에 미리 와서 둘러보고 이야기하며 페스티벌을 충분히 느끼고 즐긴다고 한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동안 그 무리들이 사라지질 않았다. 바쁘게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공연장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극장의 환경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관계자들 모두가 호의적이고 세심한 배려에 전석 약 1,000석을 가득 채우며 그 열기를 피부로 느끼면서 공연은 아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다.
역시 한국에서는 받지 못하는(?) 많은 찬사와 적극적인 호응으로 벅찬 감동에 살짝 눈물이 흐를 뻔했다. 공연이 끝나고 이동해보니 이국적이고 고급스러운 특급호텔 야외 리셉션장에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각국의 페스티벌 관계자들, 한인회 사람들, 공연출연진들 등 페스티벌 오프닝 리셉션을 위해 특별히 한국대사관에서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역시 한국 사람들 특유의 민족성과 결속력을 느끼며 덕분에 맛있는 음식도 먹고 한인들의 적극적인 격려와 응원 세레모니로 몸 둘 바를 몰랐다. 마치 국위선양을 한 듯 뿌듯함과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통하여 한국 춤을 더 널리 알리고 발전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날 리셉션장에서 너무나 반가운 얼굴도 만났다. 우리보다 먼저 인도에 와서 40일 가량을 멘토로 활약하고 계신 박호빈 선생을 타국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운 마음에 호텔까지 함께 동행하여 여러 이야기로 밤을 보내기도 하였다.

공연의 여운을 미처 풀지 못한 채 다음날 아침 일찍 무용단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대다수가 공연을 관람한 사람들로 세컨드네이처만의 독특한 스타일에 모두들 어색해하고 어려워하였지만 금세 꽤나 열정적으로 집중하여 피곤함을 잠시 잊고 단원들 또한 함께 춤추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이곳 「아타칼라리 페스티벌」에 참가한 작품과 단체들은 생각보다 높은 퀄리티와 수준으로 페스티벌을 즐기지 못하고 돌아오는 것이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남아프리카팀인 부야니댄스시어터(Vuyani Dance Theatre)의 작품은 공연내내 끊임없는 감동과 울림으로 공연이 끝나자 오랫동안 기립박수를 치며 무용수들의 에너지와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외 CCN2(Centre Chor’egraphique National 프랑스국립안무센터),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네덜란드 등등 너무나 보고싶고 기대대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어 페스티벌의 높은 수준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중요한 일정을 어느 정도 마무리 하고 본격적인 인도를 체험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 직행한 곳은 안호키(Anhoki) 시장이다. 우리나라 재래시장 같으면서도 남대문같은 분위기가 꽤 길게 이어졌다. 호텔에서부터 약 3킬로 정도를 계속 걸어가면서 인도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일반 옷뿐만 아니라 긴 천 한 장을 몸에 감아 옷으로 입는 인도의 전통 여성의상 ‘사리’부터 각종 일상 용품들 까지 우리나라 시장풍경과 비슷했다. 전통의상 사리의 색감이 너무 화려하고 예뻐서 잠시 고민했지만 시장 중간쯤에 버거킹을 발견하여 너무 기쁜 마음에 콜라 한 잔으로 대신하였다.
뱅갈로르 거리에는 삼성, 소니, 푸마, 버거킹 등 다국적 기업의 매장들이 많이 보였다. 안호키 시장이 소소한 재미와 볼거리가 많았다면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간디 로드(Mahhatama Gandhi Road)와 센트럴 쇼핑몰은 뱅갈로르의 번화가에 위치하여 없는 게 없을 정도로 고급스럽고 현대적인 곳이었다. 여기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도 하고 아이쇼핑도 하면서 인도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첫 방문인 인도에서의 짧은 여정, 아쉬우면서도 강렬한 여행이었다. 비록 멋진 사원은 보지 못했지만 대도시다운 화려하면서 부유한 뱅갈로르와 그 안에 극과 극의 모습들까지 다양한 삶을 본 것 같은 드라마 같은 곳이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오고 싶다. 좋은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김성한 예술감독, 윤성수 매니저, 서형무 음악감독, 민선홍 조명감독, 박현 무대감독, 무대위사람들, 세컨드네이처댄스컴퍼니 단원들 모두 함께 해서 멋진 여행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