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좌담

김수잔(金수잔) / 부산시립무용단 단원
김용철(金龍喆) /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박미나(朴美拏) / 부산시립무용단 단원
장래훈(蔣來勳) / 부산시립무용단 수석단원
장영진(張榮珍) / 부산시립무용단 단원
심정민(沈廷玟) / 춤평론 [사회]




1973년 발족된 한국 최초의 시·도립 무용단
심정민 _ 오늘 멀리서 오신 손님이 네 분이나 됩니다. ‘한국창작춤의 컨템포러리화를 추구하는 부산시립무용단의 성과와 과제’라는 주제를 가지고 좌담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보통 좌담이라고 하면 사회자를 포함하여 셋 많아야 넷인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총 여섯이네요, 주제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부산시립무용단 김용철 예술감독부터 차례로 자기소개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용철 _ 저는 대학졸업 후 1990년 배정혜 예술감독 시절 서울시립무용단에 3년여 간 직업무용수로, 1992년에 ‘섶무용단’을 창단해서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시행하는 「신진예술가 지원육성 사업」을 통해 젊은 작가 지원 프로그램 1기로 뽑혔습니다. 거기서 1만 불을 지원받았죠. 그래서 한국춤을 추는 사람이지만 어학공부와 무대 메커니즘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뉴욕에 갔습니다. 연수과정을 하면서 춤이라는 것이 몸짓만이 전부가 아니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리고 구미시립무용단에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9년간 안무자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후 독립단체를 운영하던 중 2016년 3월 16일에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저는 부산시립무용단을 맡으면서 우리 무용단이 무용계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 결국 월급쟁이 무용가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더 생명력 있는 무용단을 만들기 위해서 작품이든 무용수든 중앙지역과 아시아 지역을 비롯한 글로벌 네트워킹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장래훈 _ 저는 1979년도 비상임 때부터 부산시립무용단에 있었어요. 그리고 1980년도에 상임단원이 됐어요. 그 당시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인데, 무용단에 남자가 없다 보니까 제가 다니던 학원 원장이신 故 이척 선생께서 추천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일단은 먼저 시립무용단에 인턴생활을 시작한 거죠.
그러다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대학에 가야겠다 싶어서 1982년에 대학에 갔습니다. 당시 부산에 무용과가 있는 학교가 부산여대와 경성대였는데, 경성대에 무용과가 생긴 지 2년 째였어요. 제가 2회 입학생으로 들어간 거죠.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부산시립무용단에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심정민 _ 총 몇 년 동안 부산시립무용단에 몸담고 계신 건가요? 제일 오래 계신 분이 아닐까 합니다만.
장래훈 _ 현재 32년째 근무하고 있어요. 당시 부산무용지부 중심으로 활동하신 선생님들이 뜻을 모아 창단 되었어요. 황무봉 선생이 비상임 체제 단장을 약 7년간 하신 이후 초대단장 김현자 선생부터 현재 김용철 예술감독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김용철 _ 장 선생은 비상임 체재부터 지금 10대 예술감독인 저까지 함께 하신 건가요, 살아있는 역사네요.
장영진 _ 저는 경성대 무용학과를 2007년도 졸업했고요. 2009년도에 부산시립무용단의 비상임으로 들어와서 1년 정도 생활하다가 2010년도에 정단원이 됐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용단 생활을 하고 있어요.
박미나 _ 저는 부산 브니엘 예중과 예고를 거쳐 2008년도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동대학원 과정을 수료한 상태이구요. 부산시립무용단의 비상임 오디션을 통해 2011년도에 1년간 인턴 활동 후, 2012년도에 정단원이 되었습니다. 아직 서열상으로 신단원인데 6년차가 되어가는군요.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현재 경성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과정 중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두 군데 대학원과정에 걸쳐있으면서 졸업을 못한 상황입니다.
장래훈 _ 오늘은 입단 2년차, 6년차, 8년차 단원들이 함께 좌담하고 있는데요. 이들이 현재 무용단 신단원들 입니다.(웃음)
김수잔 _ 맞아요, 저는 단원 2년차 입니다. 부산 예중, 예고를 거쳐 2009년도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어요. 서울에서 독립적인 활동을 하면서 홍은주 단장 시절에 워커힐무용단에서 2년 4개월 정도 활동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 중심으로 한국의 미와 정신을 춤으로 알리는 의미 있는 무용단에서 활동하다가 갑자기 예산 등 경영의 문제로 문을 닫게 되면서 계속 춤을 추고 싶은 욕망에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제 고향인 부산의 시립무용단 오디션이 있어서 응시를 했었어요. 그래서 2년 인턴을 거치면서 정단원이 된 케이스입니다.
장래훈 _ 저도 4년 정도 비상임으로 활동한 후 정단원으로 입단했습니다. 이제 보니 인턴들이 상임단원으로 입단하는 경우가 많군요.

창단 44년을 맞이한 부산시립무용단에 대하여
심정민 _ 이제 보니 다들 부산을 비롯한 경남에서 출생해서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오신 것 같습니다. 그런 점만 보더라도 한 지역의 시립무용단이나 도립무용단이 상당히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무용단이 없었더라면 무용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서울과 같은 다른 지역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이럴 경우 지역에서 아무리 좋은 무용가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무용가가 그 지역을 빛낼 수 있는 활동을 할 수가 없는 거죠. 따라서 시립무용단이나 도립무용단이 지역 무용 활성화에 제일선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하도록 하고요, 우선 1973년 창단되어 44년째를 맞이하는 부산시립무용단에 대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그 역사나 활동상황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재단 법인화가 되어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만 이에 대해 언급해주시죠.
김용철 _ 1962년 국립무용단이 한국무용과 발레단체를 공동운영했다고 들었어요. 1973년 부산시립무용단이 비상임 체제로 발족이 되었죠. 시립, 도립의 명칭을 달고 생긴 최초의 무용단이라서 역사적 의의가 있어요. 전국의 모든 한국무용단체들이 그렇듯이 한국 전통춤을 계승하는 한편 그 정신을 바탕으로 이 시대에 맞게 재해석 하는 창작 작업을 통해 우리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깊이 있는 예술세계를 선보이는 무용예술단체입니다.
창단 당시 황무봉 선생이 비상임 체재의 단장으로 계시다가 1980년에 초대단장 김현자 선생이 부임하셨습니다. 이후 최은희, 故 손세란, 홍민애, 이노연,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한량춤 예능보유자이신 김진홍 선생 그리고 최근 홍기태, 홍경희 예술감독들이 활동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기운은 이웃도시인 대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전국 최초로 현대무용단이 창단되었는데 그때가 1981년이었죠. 김기전 선생이 초대단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7년 1월에 부산문화회관이 재단으로 출범이 되었어요. 부산시립예술단은 위탁경영으로 바뀌어 새로운 시대, 새로운 도전을 시도 중입니다.
장래훈 _ 창단 당시는 직업적인 단체라기보다는 무용학원을 중심으로 활동하신 여러 선생님들이 창단의지를 갖고 의기투합하면서 시작했던 거예요. 故 황무봉선생, 故 손세란 선생, 故 송준영 선생들이 주축 하에 시립무용단을 창단하게 된 거죠. 부산시립무용단 초창기에는 타 여러 무용단과 마찬가지로 창작활동 보다는 민속무용 중심으로 시민들을 위한 공연이 주류를 이루었고, 김현자 선생께서 단장으로 재직하면서 본격적인 창작 작품 활동이 시작되었죠.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하늘에 핀 꽃』, 『여자 새 되어 울다』, 『보리피리』입니다. 1980년 작 『여자 새 되어 울다』는 안일웅 작곡가에게 의뢰된 곡을 부산시립교향악단의 라이브 연주로 초연되었는데요. 통념적인 한국무용작품으로는 관현악 현장 연주에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찼던 기억으로 남습니다. 시대에 앞서간 단장이라 생각되었고, 서양적인 드레스 개념의 의상과 움직임에서 발레적인 움직임을 혼용하는 등 당시로서는 나의 짧은 견해인지는 모르지만 『백조의 호수』와 견줄만한 대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대한민국무용제」 초청작품으로 선정되어 국립극장에 故 최현 선생과 함께 한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김용철 _ 저도 1985년 창단된 럭키무용단 때 김현자 선생의 『황금가지』 작품이 생각이 납니다. 당시 “국적초월의 ‘세계성’과 ‘한국무용의 영역확대’로 표현할 수 있는 참신한 무대였다”라는 기사가 생각나는군요.
심정민 _ 한국 전통춤에 근거한 동시대적인 감각의 새로운 창작이 큰 목표와 비전이었죠? 이후 그것을 쭉 이어간 것인가요?
장래훈 _ 맞습니다. 이후 최은희 선생이 이화여대 졸업 후 「대한민국무용대상」 수상 후 부산시립무용단에 오시게 된 거예요. 최은희 선생의 지도법 중 하나는 박자 개념인데요. 특이하게 지도하시더라고요. 정박에서 갑자기 엇박으로 리듬을 바꾼다든지, 정지호흡에서 재빠르게 구르거나 맴체동작을 한다는 등 매력적인 무대호흡법을 경험한 기회였어요. 창무회 등의 오랜 활동을 거친 후라 그런지 그러한 동작들을 맨발로 해야 했어요. 그게 좀 의외였고, 신기했죠. 좀 획기적이었죠.
심정민 _ 예술감독 및 안무가 계보를 보니까 한국 무용계에서 예술적 색깔이 선명하고 개성을 갖추신 분들이 부산시립무용단을 여럿 거쳐 가셨네요. 이분들이 부산시립무용단이 창작 스타일을 확립하는 데 한 역할을 했을 겁니다.
장래훈 _ 그런데 초기에는 창작 작품을 많이 했는데, 나중에는 또 전통 민속작품 위주로 바뀌었죠.
심정민 _ 그러다가 2016년 3월에 김용철 예술감독이 들어가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한 것이죠.

부산시립무용단의 창작 컨템포러리화(化), 그 진통과 성과
장래훈 _ 정말 혁신적이었어요. 그런 도발적인 게 또 없었어요. 2000년대 이후 이노연, 홍기태, 홍경희 예술감독 시절에 창작과 민속작품을 번갈아 가면서 작품을 하셨고, 전통중심에 베이스를 깔고 창작활동을 하였고 모더니즘이라 할까요. 나름 매력있었던 작품들이 생산되었어요. 김용철 감독이 오시니까 사실은 머리가 휙휙 돌 정도였어요. 막 뒹굴고, 어깨를 비틀고 하니까 사실은 조금 황당했었어요.(웃음) 모더니즘은 물론이고, 포스터 모더니즘과 컨템포러리를 지향한 다국적 움직임들을 수용하시고 한국성만이 아닌 아시아 그리고 세계성을 염두한 작품에 임하자고 했어요. 하지만 고된 훈련이 힘든 건 사실이죠. 물론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 아닌가 자문도 해보구요.
심정민 _ 세계적으로 주도적인 무용경향은 컨템포러리댄스라 할 수 있습니다. 1970~80년대 서유럽을 중심으로 확립된 컨템포러리댄스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전 세계로 확산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끝 무렵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한국창작춤의 경우 지금 창작의 컨템포러러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가장 적극적인 국공립단체라고 한다면 2010년대 국립무용단을 꼽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 늘 그러했듯이 ‘너무 파격적이다’, ‘저게 한국춤이냐’ 등의 논란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 이전을 살펴보면 신무용의 잔재가 남아있는 한국창작무용극을 언제까지 답보할 것인지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있어 왔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더 이상 동시대적인 창작경향을 등한시할 수 없는 문제의식과 함께 국제 경쟁력 측면에서도 더 이상 창작의 컨템포러리화를 늦출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죠. 그리하여 국립무용단에서 2010년대 들어 한국춤 창작의 컨템포러리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지역 시립 및 도립 한국무용단으로서는 부산시립무용단이 이에 발맞춰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김용철 예술감독을 맞이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파격적으로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아직 채 1년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반응이 공존하리라 봅니다. 옛 스타일에 젖어있는 경우 거부감이 들 수도 있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원하는 바로 그것일 수도 있고요. 현지 반응이 어떤지 말씀해주시죠.
김수잔 _ 저 같은 경우에는 초등학교 시절 제 의지와는 상관없는 학원 커리큘럼 시스템에 맞추다보니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등 순수무용계열의 춤들도 시작했어요, 졸업 후 워커힐무용단에서나 무용학원에서 비보잉이나 재즈, 뮤지컬 댄스 같은 것도 경험을 해봤거든요. 그래서 움직임에 대해서 나름 열려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부산시립무용단은 한국무용 단체이니까 당연히 ‘그래, 나도 한국무용 전공자이니까 한국 무용해야지’ 이런 생각을 자연스레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예술감독이 부임 하신 후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하면서 무용수들이 지녀야 할 몇 가지에 대해 말씀하신 게 기억납니다. 사고의 확장, 춤 사회 들여다보기, 그리고 기존의 한국춤 범주를 벗어나기, 공간성, 시간성에 대한 개념들에 대한 이론들 등 기존의 패턴만 생각했었던 것을 버려야 했어요. 움직임을 비롯한 지식, 사상, 현대적인 시사성 등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이든 저 자신이든 좋은 기회가 됐죠.
장래훈 _ 김수잔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 같이 1980년대에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정말 생소하고 황당했어요. 우리가 과연 저걸 어떻게 해낼까 싶었는데, 얼토당토않게 자연스럽게 하게끔 만드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제가 몸 쓰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면서 이게 바로 내가 할 일이구나 하고 느꼈었어요. 하지만 내적호흡을 중시하는 40~50대 한국무용가들은 그런 동작을 하기 정말 힘들어요. 마음으로는 발을 확 들어 올리는데, 발은 땅에 있거든요.(웃음) 하지만 또 안 할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하다 보니까 터득이 되고, 자기 것으로 만들다 보니까 너무 좋았어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기운을 함께 하면서 말이죠.
장영진 _ 그 이전 예술감독들과 작품을 해봤는데, 확연히 스타일이 다르시더라고요. 처음 예술감독이 오셨을 때 우리에게 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고가 많이 열려있고, 신체를 사용함에 있어서도 자유롭고 즉흥적 움직임을 좋아한다고 하셨어요.
2009년 국립부산국악원이 창단되면서 전통과 정통성으로 짧은 기간에 시민들과 소통이 잘되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단체가 부산이나 경남지역에서 경쟁력을 갖고 살아남으려면 전통보다는 창작성이 두드러지거나 혹은 매우 대중적이고 창의성과 주제성이 극명한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그래서 예술감독의 작품 성향이 매우 개성이 강하고 리드미컬하므로 개방된 항구도시이자 역동적인 부산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박미나 _ 저도 감독님의 스타일이나 성향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규격화된 춤이나 정형화된 몸보다도 도발적이고 혁신적인 움직임이나 작품들을 선호하는 편인데, 감독님도 기존의 한국춤 양식을 고집하지 않으시고 또한 틀에 박히지 않고 풍부하게 사고와 신체를 확장시키신다는 걸 느꼈어요. 몸풀이에서 컴비네이션, 다양한 무브먼트, 그리고 작품까지 무용수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춤을 출 수 있도록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아요.
김용철 _ 항상 유연한 사고를 먼저 길러야 몸이 유연해진다고 생각해요. 몸만 유연해지고 사상이 닫히면 정치적인 춤밖에 되지 않아요.
심정민 _ 원로 선생들은 컨템포러리댄스 개념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한국춤이 변질된다고 생각하시기도 하는데 한국창작춤의 표현 폭이 넓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전통을 잃는 게 아니라 베이스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대적인 감각의 춤을 만든다는 점에서 기존의 정형화된 표현에서부터 그 영역을 확장해가는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다양한 작품 스타일이 나올 수 있음을 작년 부산시립무용단의 두 차례 공연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통 특히 민속의 핵심을 가지고 거기서 확장된 춤사위로 바탕으로 하여 작품을 동시대적인 감각과 폭넓게 열린 관념으로 포장하였기에 고무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런 식으로 부산시립무용단이 앞으로 예술적 색깔이나 방향을 차별화시켜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미 국립, 시립, 도립 등 많은 무용단체가 있으므로 나름의 확고한 고유성이나 정체성을 갖추어야지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김용철 _ 국립국악원무용단과 국립무용단, 서울시무용단, 서울예술단까지 4개 단체를 한국무용의 중심으로 보거든요. 다 서울에 있죠. 각 단체별 고유영역과 특징에 따른 활발한 활동 그리고 레퍼토리 구축으로 예술적, 대중적으로 단체별 특징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현재 부산에는 국립부산국악원의 제작 여건은 우리보다 3배 정도 높게 책정된 예산, 단원의 연령도 30대가 주를 이룹니다. 단원들의 열정과 정열 그리고 행정적인 시스템까지 더해져 부러울 따름입니다. 아울러 비상근 단체이지만 『왕비의 잔치』 공연단까지 포진하고 있어 양적으로도 풍부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무용단은 저예산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요, 한국무용은 기본적으로 단원들의 의상이나 오브제가 받쳐줘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무용계에서 부산시립무용단이 살아남으려면 컨템퍼러리성이 강한 작품으로 가야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또 2021년에 부산 북항에 오페라하우스 조감도까지 확정했다고 합니다. 세계 유명 오페라 하우스 가운데 친수공간을 배경으로 한 것은 시드니와 오슬로뿐이라고 들었습니다. 창단이 되면 부산시립발레단이 생길수도 있고, 그러면 더더욱 우리는 전통과 신무용 쪽으로만 국한돼 새로운 환경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듭니다. 우리 단원들에게 제가 부산시립무용단은 이미 컨템퍼러리 단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까 장래훈 선생이 얘기하셨듯이 선배단원들은 전통춤 무대를 선호하죠. 처음에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와서 단원들과 대담을 하는데, 창작무용을 하는 사람이 좀 오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왔는데 너무 넘치는 창작을 해서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현대무용을 전공했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냥 ‘현대’적인 오늘날의 춤을 전공했다고 말했어요.
또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옷이 한복이어야만 내 옷이냐는 거죠. 장래훈의 옷, 장영진의 옷이지 한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에게는 시대와 어울리는 옷과 현대적인 한국적 춤사위가 필요한 시대에요.
그리고 저는 단원들에게 항상 연습실 문을 닫지 말고 제발 열라고 해요. 단원들이 연습할 때 항상 문을 닫더라고요. 현실의 문이 닫혀있으면 마음의 문도 닫히는 거거든요. 우리 안의 공기, 다른 공간의 공기도 숨 쉬고 맡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시대의 소통이고 예술의 흐름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심정민 _ 그것이 김용철 예술감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갓 서른이 된 현대무용가에게서 자기 클래스에 김용철 선생이 들어와서 현대무용 수업을 듣고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바 있습니다. 김용철 예술감독이 지금 50대이신 데도 새로운 것을 배우겠다는 열정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갇혀있거나 안주하지 않으며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정신이 바로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겁니다. 실제로 60~70대 선생님들 중에서 여전히 창작이 가능하신 분들을 보면 공통되게 열린 마음가짐을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김용철 _ 2000년도 뉴욕 생활을 1년간 했어요. 그때 댄스페이스 등 아카데미를 다녔어요. 각 학원마다 무용실이 한 5~7개 있으면서 선택해서 클래스를 들어가는데, 한국사회는 출석과 상관없이 매달 교육비를 줘야 되잖아요? 처음으로 티켓제 라는 걸 알았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섞여서 춤을 배우고, 너무 잘 추는 발레리나 앞에 할아버지가 춤을 따라하시길래 손자 케어 하러 오셨나 했더니 끝나고 따로 가는 거예요. 뭐지 싶었어요. 그 할아버지도 마음만은 프로였어요. 그때 그러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갓 서른 된 현대무용가의 수업에 못 다녔을 거예요.

부산시립무용단만의 예술적 색깔과 방향을 확립해야
심정민 _ 그것이 김용철 선생만의 한국창작춤 컨템포러리댄스화의 근간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존에 있던 걸 재탕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신선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게 컨템포러리댄스인데, 많이 보고 많이 배워야만 끊임없이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그게 바로 창작의 원동력, 고갈되지 않는 창조의 샘 같은 것입니다. 그런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작년 7월에 공연한 『업경대』 대작 버전은 춤 그 자체뿐 아니라 음악, 조명, 의상, 소품이 어우러져 세련되고 총체적으로 불교의식적인 표현을 실현하였습니다.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감각의 한국창작춤을 탐구해온 안무가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작입니다.
작년 11월에 공연한 『늙은 여자』는 민속연희 중 탈춤에 모티프를 둔 작품으로, 미얄할멈과 영감과 기생의 삼각관계를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놀이적 춤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부산시립무용단 더 나아가 부산지역의 무용수들이 민속연희적인 춤과 놀이에 강점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부산시립무용단의 창작 컨템포러리화에 있어서 민속과 해학이 버물린 맛깔스런 춤사위가 차별성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장래훈 _ 부산에 「동래야류」 5과장 중 4과정에 미얄함멈과정이 연희되고 있어요. 그동안 제가 할미 역을 많이 맡았어요.
정기공연에 『늙은 여자』라는 작품을 할 때 제가 늙은 여자 역할을 하겠구나 싶었어요. 나는 할멈 역할을 많이 해봤으니까 이 동작은 이렇게 표현해야지 하고 있는데, 얼토당토않게 기생 역을 주는 거예요. 저는 속으로 할미 역을 더 잘할 텐데 왜 기생 역을 주나 했어요. 작품에 임하면서 기생스럽게 넘치게 막 표현하고 있는데 감정을 다운하라는 거예요. 넘치면 안 된다고 더 죽이라고, 다운하라고 하니까, 속이 많이 상했죠. 나는 확 끓어오르는데 선생님이 자꾸 누르니까요. 솔직한 심정으로 ‘제가 할멈 역할을 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극화된 이 작품은 주역들의 마음이 안 맞으면 절대 안 되거든요. 감독님과 무용수들이 많은 대화를 가졌지요. 배우와 관객사이의 환영의 세계를 감지해야한다. 그것은 무용수들이 감흥과 감정의 처리에 따라 관객들이 감동을 받고 안 받고 등등 말입니다.
심정민 _ 보통 모던댄스는 무언가를 충분하고 농후하게 표현하여 보여주려는 것이고 컨템포러리댄스는 주제에 관련된 여러 요소를 제시함으로써 관객의 사유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 타자화되어 절제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장래훈 _ 우리는 그런 걸 김용철 예술감독께 처음 배웠어요. 그 전에는 전부 모더니즘 쪽으로 하다가 처음 이걸 한 거죠. 그러니까 그게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참 힘들었죠.
장영진 _ 저도 작품 『늙은 여자』 출연진에서 영감 배역에 캐스팅 될지 몰랐는데, 뜬금없이 ‘영감’ 역에 호명됐을 때 기쁨보다는 걱정이 많이 앞섰어요. 왜냐하면 항상 내 나이와 이미지에 맞는 일반적인 그런 역할만 해온 터라 노인 역할을 한 번도 해본 적도 없었고, 과연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도 많았었거든요. 두려움이 많았어요. 감독님과 연출가 선생님과 역할에 대해 고민을 많이 나누었고, 춤이 가진 한계를 벗어나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극적 표현력 구사와 이미지 전달을 위해 나름 최선을 다 한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용철 _ 저는 대구 출신이고,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9호 살풀이춤 보유자 권명화 선생께 전통춤을 사사하고,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장유경 교수께 창의적인 작업을 공유하고 있어요. 경상도를 춤의 고장이라고 하는지 대구에 있을 때는 잘 몰랐어요. 어떻게 보면 대구는 미술, 음악, 그리고 춤 분야에 있어서는 故 김상규 선생, 故 정막 선생 등의 현대춤 선구자들에 의해 현대춤이 발전이 컸죠. 그런데 부산에 살아 보니까, 공연에 10번 초대되어 가면 8~9번이 민속춤 공연이더라고요. 그만큼 춤의 역사도시이며 살아있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5월 정기공연에는 『춤, 인상(印象)』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전통과 창작이 공존하는 무대를 만들고 싶어요. 당나라 말기 시인인 사공도(司空圖)의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미(詩美)의 범주 24종 중 6품을 무대화 시키고, 공존과 탈아의 미적 충돌을 ‘합(合)’으로 응축시켜 한국무용 최초로 부산시립무용단에서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심정민 _ 올해 5월 신작 공연을 기대하겠습니다. 사실 이번 신작이야말로 김용철 예술감독과 부산시립무용단의 온전한 첫 신작이므로 양자 간 상호작용과 역량이 십분 드러나는 겁니다. 작년의 두 공연을 통해 기대치가 많이 올라간 상태인데 이번 신작으로 통해 예술적인 시너지효과를 확실히 증명할 수 있다면 이후 날개를 단 듯 부양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렇게 된다면 부산시립무용단이 무용계에서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지역 무용계 활성화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시립무용단
심정민 _ 전국적으로 여러 지역에 시립무용단이나 도립무용단이 있는데 이러한 직업무용단은 그 지역 무용계 활성화에 직·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역 직업무용단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역에 시립무용단이 있으면 그 지역 출신 무용가들이 그곳에 적을 두고 활발하게 활동함으로써 무용계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 지역 대학 무용과 취업률과 입학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테고요, 더 나아가 어린 무용 지망생들이라든가 그들을 키워내는 학원 문화도 유지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민에게 무용 향수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 지역의 문화예술적 위상을 높이는 등 다각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볼 때 한 지역의 시립이나 도립 무용단체는 그 지역 무용계 활성화를 위해 상당히 큰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시립이나 도립 무용단체에 대해 보다 전폭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적으로는 예산적인 면이 될 수 있겠죠.
김수잔 _ 2000년도 전만해도 예술적 기질이 있는 친구들은 춤을 시켜보자, 이렇게 얘기를 하곤 했는데 요즘은 연기나 노래를 시켜보자고 말해요. 또 대학의 무용과도 폐과되는 분위기고, 순수무용으로 졸업해도 취업이 어렵고 생계유지도 힘든 상황이다 보니 재능 있는 친구들이 대중성 있는 뮤지컬전공, 실용음악이나 무용, 또는 다른 분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이 있어요. 서울도 그러한데, 부산은 무용을 전공하거나 활동하는 무용가들이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어 부산의 인재들이 고갈되지 않나 싶어요. 제가 느낀 바로는 부산 쪽은 서울보다는 확실히 심각하고요.
이 같은 한국의 2대도시 부산에서의 작품제작지원금도 전혀 무관하다고는 볼 수가 없는 거죠. 주로 상업적인 영화제 등에 많은 지원금이 몰리면서 순수예술 분야가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는 거죠.
김용철 _ 사실 정기공연 예산안을 보고 놀랐어요. 그래서 제가 1년 동안 두 번, 레퍼토리화 된 제 작품을 공연한 거예요. 이유는 분명 예산의 문제도 있었고, 무용수들과 교류도 없었으니까 일단 삶아져 있는 걸 맛보게 하고, 다음에 같이 밀가루를 반죽해서 요리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섶무용단 레퍼토리로 했지요. 그래서 지금부터 서로 갖고 있는 역량, 에너지가 같이 만나는 중요한 시기라고 봐요.
심정민 _ 예산이 좀 더 확충될 가능성은 없을까요?
김용철 _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웃음) 내년을 다시 기대해 봅니다.
심정민 _ 부산시립무용단에도 노조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예전에 무용단 단원들에게 불합리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기 때문에 권리 신장을 위해서 노조가 필요한 건 사실이입니다. 하지만 만약 권리만 주장하고 예술적인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무용단체 운영과 존립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술감독과 단원, 운영진 등이 함께 힘을 모와 부산시립무용단이 예술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겁니다.
박미나 _ 노조라는 게 개인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운영되면 안 되는 건데, 그런 부분도 없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은 최대한 배제하고, 부산시립무용단의 발전을 위한 노조로서의 역할이 많이 중요해요.
장영진 _ 예술과 인간이라는 명제가 사실상 과거에는 배고파도 예술이라는 자긍심으로 예술가들이 연명해왔다면 지금 이 시대는 예술가도 자신의 권리와 주장을 갖자는 거죠. 노조와 부산시의 조화로운 운영체제를 통해서 시민들이 공유하고 향유할 수 예술단체가 되도록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관계가 되면 좋겠다는 의견입니다.
심정민 _ 생산적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과 동시에, 함께 힘을 모아서 권익 신장을 도모해야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모든 이에게 이득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변화의 시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합일된 목소리와 힘을 필요로 합니다.
김용철 _ 단원들 스스로 무용단 활동도 중요하지만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그것은 바로 지역을 벗어난 중앙무대에서도 활동을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 2월, 포스트극장에서 「내일을 여는 춤」전에 장래훈 단원이 작품을 올렸어요. 또 4월에는 「드림 앤 비전 댄스 페스티발」에 단원 두 팀으로 구성되어 안주희 안무 『덧정없다』 와 장영진&박미나 공동안무 『섬농』 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작품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이 얼마나 넓고 다양하고 복잡한지 치열하게 느껴야 된다고 봐요.

한국 창작춤의 전망과 세계화 가능성
심정민 _ 마지막으로, 좀 포괄적이긴 한데 한국 창작춤의 전망과 세계화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한국 창작춤에서 무용가들의 의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동시대의 창작경향을 그냥 겉핥기식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제대로 실현해야 하는 겁니다. 『업경대』 대작 버전을 높이 사는 이유는 한국 창작춤이 동시대의 창작 스타일을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한 거거든요. 그것이 한 무용가와 무용단의 고유성이나 독창성인데, 이는 바로 우리 창작춤의 세계화를 위한 전제조건이 됩니다.
사실 세계화 가능성을 따져볼 때 한국무용 분야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현대무용이나 발레는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해외에 나가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이 녹녹치 않거든요. 해외 무용 관계자들이 ‘국내 무용가들의 창작을 보고 열심히는 하는데 이미 10년 전에 했던 것들’이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국내의 창작이 아무래도 해외의 창작 스타일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일정 부분 있는 것이죠.
반면, 한국무용은 낮은 무게중심이나 순환적인 호흡, 맺고 끊기, 어름과 굴림, 한과 정, 멋과 흥 등 우리 민족만의 고유성을 함양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경쟁력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김용철 _ 2014년과 2016년 섶무용단이 미국KMP 기획사를 통해서 미국 10개 도시를 순회공연하면서 많은 경험과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관객들이 불교적인 주제에 관심을 갖고. 아니 다른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호기심, 기대감 등 관점에 대해 열려 있었죠. 성공적인 공연이었고 한국적 컨템포퍼러리화 작업에 큰 용기를 가지고, 나 자신의 가치관을 가지게 된 큰 의미 있는 공연이었죠. 창작 춤에 대한 가능성을 본 거예요.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민속 작품은 세계성은 될 수가 없다고 봐요. 물론 국제성은 가질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전통춤은 해외에서 박수는 받지만 그들이 배우고 싶어 하지는 않는 거예요. 너무 역사성이 두드러지고 짙은 향이 난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런 좋은 양분을 작품으로 체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심정민 선생이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춤을 컨템포리리화하는데 역점을 두면 유리한 점이 많을 거라고 하셨듯이 한국춤이 가진 복호흡, 한(恨)을 배경으로 그 위에 신명과 흥을 복돋우는 독특한 감성이 있잖아요. 복잡한 리듬성도 한 몫 하는거구요, 구구절절한 판소리 등도 말입니다. 한 예로 중국 사람이 ‘김 단장, 음악이 나오는데 왜 안 움직이고 있어요?’하는 거예요. ‘오장육부가 움직이고 있어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러니까 ‘옳지, 그거요. 그걸 우리 단원들한테 가르쳐주세요’ 해서 그 계기로 2006년도에 아시아 지역에 공연과 워크숍을 다니면서 그 지역의 문화와 춤들을 습득한 기억이 납니다. 물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구요.
그러한 해외에서의 경험들을 다독이기 위해 탈춤을 배우기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힙합을 배웠어요. 중국은 움직임이 형상화 되는 것을, 일본이나 프랑스는 형상화보다는 이미지화와 감성적인 면이 부각되는 걸 선호하는 듯해요.
그리고 춤에 대해서 우리가 잘 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컨템퍼러리, 현대무용과 접목을 해야 할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해야 돼요. 민속무용이 갖고 있는 3대 장점이자 단점인 ‘분장을 지워야 된다, 의상을 버려야 된다, 리듬을 빼야 된다’는 세 가지의 철칙이 나만의 컨템포러리화 됐어요. 종족 춤의 특징인 분장의 예술, 의상의 예술, 리듬의 예술이 굉장히 장점이지만 이걸 그대로 무대에 갖고 오면 서양 클래식 하는 사람들이 감상하는데 시끄럽고 거칠고 미치겠다고 하는 거예요.
절제, 응축, 축소지향적인 일본의 음성적인 미학과 중국의 과감성, 확장성의 양성적인 미학, 유럽의 무대 메커니즘의 연구 등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업경대』가 나왔다고 봐요. 제가 여행하면서 느낀 것, 중국, 일본,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춤들, 그들과 교류하면서 작품을 만들었어요. 컨템포러리화를 추구하려면 ‘집 안에서 할 수 없다, 날품을 팔아야 된다’는 거예요.
심정민 _ 이제 좌담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산시립무용단에서 각각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혹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장래훈 _ 사실 저는 긴 시간 무용단에서는 이 배역, 저 배역 다 해봤어요. 열심히 근무했어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말해서 후배님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요즘은 옛날과는 조금 달라진 환경이더라구요. 과거에는 선생이 퇴근 후 자체연습하자고 하면 끝까지 계속 남아 있었잖아요? 그런데 요즘 젊은 단원들은 ‘선생님 몇 시까지 해요?’ 라고 직접 물어요. 그러면 안무자는 시간에 쫓기고 위축되는 기분이죠. 선배들 무용가나 적어도 저는 시간개념 보다는 적당한 복종과 따름에 대한 미학을 가지고 대했다고 본다면 요즘 단원들은 너무 당돌하지 않나, 약삭빠른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래서 후배들한테 부탁할 것은 조금 더 성실한 마음으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단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수잔 _ 저는 비상임 기간까지 포함하면 현재 5년차 입니다. 신입 단원일 때는 선배님들의 열정적인 모습과 무용단 레퍼토리를 따라가기에 급급했고 또 어떻게 하면 단원들과의 조화로움에 흡수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각 예술감독의 흐름과 분위기를 알고 춤을 배울 수 있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5년차가 들어서면서 저만의 개성과 저만 할 수 있는 독특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물론 예술감독께서 작품경향, 사고의 유연성, 상대와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면을 지향하시고, 연습실에서는 다양한 음악과 개성적인 움직임들을 추구하시니 저로서는 행운인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의 활동 후, 부산에서의 무용단 생활은 단순히 고향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서 경상도 나름의 특성과 매력이 합해져서 매혹적인 저만의 춤을 꾸려나가고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장영진 _ 30대 중반에 들어서다 보니 생각도 많습니다. 그래서 무용단 활동과 더불어 기회가 생기면 좀 더 다양한 장르의 활동도 해보고 싶습니다. 올 4월에 박미나 씨와 공동안무로 작품을 올리고, 아울러 7월과 9월 북경과 싱가폴 국제무용축제에 작품을 올릴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에너지와 기회는 예술감독의 적극적이고 열려있는 마인드에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성과들은 저 자신과 무용단의 발전에 밑거름과 원동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김용철 _ 정기공연 준비 중입니다. 사공도(司空圖)의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 중 전아(典雅), 충담(沖澹), 섬농(), 웅혼(雄渾), 소야(疎野), 광달(曠達)을 주제로 말입니다. 전통의 원형성을 견지하되 현대의 무용이 추구하는 동시대성을 미학적으로 수용하고자 힙합, 탱고, 태권도 등과의 만남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새로운 춤 패러다임을 위한 동인(動因)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에 매진할 것입니다.
박미나 _ 저는 지금까지 춤이라면 음악에 맞춰 성실히 움직이고,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움직임에 있어서도 자부심도 있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저한테 중요한 코멘트를 하나 주시는 거예요. 작품에 임하거나 움직임을 시행할 때 ‘인식’과 ‘사고’를 좀 더 하라고, ‘원인과 결과에 대해’, ‘공간성에 대한 기운, 시간성에 대한 흐름’ 이런 걸 인식해야 한다는 거죠.
그동안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었어요. 앞으로 그런 부분을 많이 키워나가면 제 개인적인 발전도 있겠지만 무용단에 좀 더 기여할 수 있는 단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참 많이 느끼고 배우는 요즘입니다. 개인적인 광고하나 하고 싶어요. 4월에 창무예술원에서 주관하는 ‘드림 앤 비젼 댄스 페스티발’에 『섬농』이라는 작품으로 여기 계신 장영진 씨랑 듀엣으로 작품을 올립니다. 비단의 섬세한 아름다움 그리고 꽃이 만개하는 과정을 신체언어로 체화할 과정입니다. 예술감독께서 말씀해주신 사고와 인식 등의 개념과 음악, 오브제, 움직임 등의 조화로움을 통해 작품이 탄생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새로운 제 자신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요.
심정민 _ 이번 좌담을 통해 예술감독과 단원들이 부산시립무용단의 예술적 발전을 위해 면밀하게 교류하고 교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부산시립무용단의 창작 컨템퍼러리화의 적극적인 추진 가능성도 높다고 여겨집니다. 국·시·도립과 같은 주요 직업무용단의 역량을 나타내는 지표가 여럿 있습니다. 지명도 있는 스타무용수들도 필요할 테고, 대표 레퍼토리도 다수 확보해야 하고, 안정적인 행정 시스템도 구축해야 하고, 세계무대로의 진출 전략도 짜야하고, 지역 사회와 주민들과의 관계도 조성해야 할 겁니다. 이 모든 것을 다각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예술감독을 필두로 단원, 운영진, 재단 등이 총체적으로 힘을 모아야 합니다. 많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바 앞으로 부산시립무용단이 무용계에게 보다 주요한 역할을 하면서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장시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