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산책

한국예술영재교육원 무용분야 정기공연 「모먼트 오브 드림(Moment of Dream)」은 매년 1월 경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열린다. 올해는 서초동이 아닌 석관동 예술극장에서 20일부터 3일 동안 총 4회의 공연이 펼쳐졌다. 언젠가부터 연초 이들의 공연을 보는 것이 나의 연중행사가 됐다. 연령별로 레벨을 7단계로 나누어 영재교육을 받는 재원들이 각각의 솔로 작품을 통해 각 연령대에서 나타낼 수 있는 매력과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것은 물론, 군무순서에는 선의의 경쟁에 있는 동기들과 서로의 조화를 이루었다.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무대매너로 시종 미소를 짓게 만든다.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경우, 발랄한 분위기의 소품으로 꾸몄는데 이들의 공연을 볼 때마다 내가 무대 위에 선 것처럼 손과 발이 들썩이다가도 여리디 여려 보이는 초등학생들의 공연에서는 혹시라도 실수하는 이가 있을까봐 가끔씩 손에 땀을 쥐며 보는 재미가 성인 발레공연과 또 다른 감흥과 더불어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자그마한 몸짓과 더불어 음악 선곡이 돋보였고 레벨이 올라 갈수록 『잠자는 숲속의 미녀』, 『나폴리』, 『백조의 호수』 등 고전 작품의 한 장면을 선보였다. 특히 그랜드 피날레인 『아이 갓 어 리듬(I Got A Rhythm)』은 설장구의 다스름을 반주로 관절의 움직임을 프레임별로 나누어 곡선적인 한국적 리듬 위에 직선적인 움직임이라는 대조대비를 이루어 나가다가 시나브로 다양한 리듬으로 변하면서 프레임의 조각들이 하나의 프레이즈로 이어나가는 독특한 안무와 구성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그리고 첫 공연을 본 20일 공연에는 2016년 「바가노바 콩쿠르」 남녀 시니어 부문에서 우승한 이상민이 박선미와 공연한 『돈키호테』의 파 드 데가 갈채를 받았다. 이상민은 영재교육원 무용분야 정기공연을 매해 관람하기 시작한 이래 눈에 띄었던 터라 앞으로도 재원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이 공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영재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학생에서부터 이제 곧 영재원을 졸업할 학생들까지 모두들 무대 위에서 흔들림 없는 몸짓은 물론, 음향사고에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다시 시작하는 여유로움까지 그들의 의식에서 이미 프로페셔널리즘이 배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들이 영재라 불릴 수 있는 것은 바로 무대에서 보여주는 전문성은 물론이거니와 선생들의 지도를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흡수력과 무대에서의 집중력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더 많은 재원들의 선전을 기대해보는 바이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배운 바를 일말의 의심 없이 즉시 행하는 놀랄만한 이 흡수력과 집중력은 어쩌면 자기 자신이 없는, 줏대가 없이 휘둘리기 쉬운 존재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흔히들 천재라면 머리 좋고 똑똑하기 때문에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그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에 불과하며 열을 알기까지의 과정을 우리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천재라는 결과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나를 비우고 온전한 정보의 입력이 무식할 정도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의 공연은 비록 성인 전문가들에 비하면 불완전하겠지만 이들 모두가 한국 발레의 미래들임을 감안해본다면 더 많은 춤 전문가들이 그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눈여겨보며 무용인으로서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이들이 영재원을 떠나 각자의 자리에서 목표를 달성해나가면서 풀어야 할 숙제는 배운 바를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느냐에 달렸다 할 수 있겠다.
이들 모두가 세계적 발레리노, 발레리나가 되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의 경험을 토대로 무대 위에 서는 사람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무대 뒤에서 묵묵히 뒷받침해주는 전문가들도 이들 중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바이다. 안무가, 교육가, 의상 디자이너, 연출가, 민간 발레단 단장, 무대 미술가는 물론, 영재 2세, 3세를 후원할 수 있는 훌륭한 엄마, 아빠들도 나오기를 바란다. 이렇게 해서 발레뿐만 아니라 발레에 연관된 모든 분야가 동반 상승 발전되어 한국이 진정한 발레강국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영화 「독수리 에디(Eddie the Eagle)」(2016)는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70m와 90m 점프 모두 꼴찌를 했지만 영국 스키점프의 신기록보유자인 마이클 에드워즈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을 영화에 맞게 재각색한 코미디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허구인지 몰라도1) 중요한 것은 그는 캘거리 올림픽에서 메달 없는 선수로서 금메달 선수 보다 더 큰 화제와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영화 속의 에디 에드워즈는 운동을 특별히 잘 하지도 않고, 특별히 좋아하는 종목도 없이 단지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막연함으로 이것저것 손을 대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운동선수 흉내를 내다가 부순 자신의 안경들과 아버지를 포함, 주위의 질시뿐 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그를 믿어준 사람은 오직 자신의 엄마밖에 없었다. 에디는 1% 지지자인 엄마의 100% 후원 아래 스키점프 선수가 되기 위한 길을 떠나며 거기에서 자신을 지도해줄 선생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영화 속의 에디는 여느 믿음직한 아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들보다 어릴 때부터 덜 떨어진 아이로 비춰진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불완전하고도 부족한 여건 속에서 자신의 꿈을 개척해나갈 수 있던 단 한 가지 장점을 가졌기에 가능 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그 무엇을 그려도 온전히 믿고 받아들일 만한 백지와 같은 자세와 그 백지 위에 훌륭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스승과의 신뢰관계이다. 영화 속 에디는 자신의 코치2)가 가르쳐준 것을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고 지적한 점을 바로 고쳐나간다. 그리하여 자신이 목표하던 70m 점프의 목적을 달성한 것은 물론, 90m 점프까지 날아오르게 된 것이다.3)

제 아무리 학습력과 집중력이 뛰어났다고 해도 영화 속이던 현실 속이던 스키점프 선수 에드워즈에게는 그를 믿어주고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여러 사람들의 헌신이 요구된다. 그처럼 무대 위에서 실력을 뽐낼 수 있는 34여 명의 영재들을 뒷받침해주시는 그들의 부모님 그리고 22여 명의 영재원 교사분들께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바다. 매회 새로운 영재들을 맞이함과 동시에 오랜 세월 함께 했던 학생들을 떠나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훌륭한 교사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온전히 제자들을 통해 드러낼 수밖에 없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뒤에서 묵묵히 믿고 기다려주는 제2의 부모와 같은 분들이다.

한국발레가 불모지였던 시절에는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까지 몸이 굳고 발레를 시작하기 늦었을 무렵에 다양한 계기로 발레를 시작했다. 하지만 발레에 대한 애정과 열정 하나만으로 시작하여 세계적 무대에도 서게 되었고 또 지도자들이 되어 한국발레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른 나이부터 마음껏 그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시설과 유수의 교사들이 차세대 유망주들을 길러내고 있다는 점을 젊은 세대들은 기억하며, 발레 영재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님을 또한 기억하기 바란다. 끝으로 명사의 명언을 인용하여 차세대 발레 유망주들이 앞으로 헤쳐나 갈 미래와 앞날에 대한 격려와 기대를 대신할까한다.

나는 낙담하지 않는다. 모든 잘못된 시도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이기 때문이다.
I am not discouraged, because every wrong attempt discarded is another step forward.
- 토마스 에디슨(1847~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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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속에는 에디 에드워즈로 바꿨듯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과장스러움과 미화가 곁들여져 있다.
2) 휴 잭맨이 연기한 브론슨 피어리는 영화속 허구의 인물이며, 실제로는 6~7명의 코치가 그를 도와줬다고 한다.
3) 영화에서처럼 90m 점프에 돌연 출전한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