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의 서울유레카

일본의 베스트셀러
출판인들은 ‘단군 이래 불황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는 농담을 흔히 주고받는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시장 상황을 반영하는 말이려니 생각하지만, 지난 새해 벽두 대형 도매서점인 ‘송인서적’의 부도와 문학, 인문, 기초과학 분야의 시장 위축은 출판인들의 저 농담이 점점 현실이 돼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현실은 일본이라고 그렇게 다른 건 아니다.
전술한 출판인들의 위기감은 사실일까? 무엇보다 책이 정말 안 팔리는 걸까? 나의 단견으로 볼 땐, 출판계가 불황에 접어들었다고 아우성이지만 팔릴 책은 팔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지난 2월 출간되었다. 발간 즉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초판을 50만 부 찍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번역도 거의 동시에 진행된지라 한국에서도 곧 출간될 것으로 알고 있다.

되짚어보면 한국은 일본대중문화에 대해선 철저히 통제하며 개방을 최대한 미루어왔다. 반면 기술부분과 지식산업인 출판에 대해선 거부감이나 통제보단 적극적인 수용과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학 분야로 한정해서 본다면 하루키 이전에도 나쓰메 소세키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한국독자의 사랑을 받은 작가였으며, 원제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대망」이라는 타이틀로 번역된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 1980년대에는 미우라 아야코가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작가였는데 대표작 「빙점」은 소설뿐만 아니라 드라마로도 제작돼 한국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엔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으며, 2010년 이후엔 히가시노 게이고 열풍이 거세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후 그의 작품은 출간 족족 문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자리 잡는다. 이외에도 무라카미 류, 아사다 지로, 미야베 미유키 등 한국인의 사랑을 받은 작가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각설하고 그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던 목록들을 먼저 살펴보자.
아래의 표를 보면 일본의 베스트셀러는 한국과 그 규모부터 큰 차이가 있다. 400~ 500만 부는 돼야 베스트셀러가 된다. 물론 이것은 시장의 크기 때문에 나는 차이가 기본이겠지만 그 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 다음 기회가 있으면 설명하도록 하겠다.



작품 저자 발매연도 출판사 발행부수
가정에서의 실제적 간호의 비결 츠키다 다키치 1925년 연수관문곤 등 1000만부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1987년 고단샤 1000만부
어린왕자 생 텍쥐베리 1953년 이와나미서점 600만부
창가의 토토 쿠로야나기 테츠코 고단샤 580만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조앤 K 로링 세이잔사 506만부
오체불만족 오토타케 히로타다 고단샤 477만부
길을 열다 마츠시타 코노스케 1968년 PHP연구소 450만부
가정의학 코바야시 타치오 시사통신사 435만부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조앤 K 로링 2000년 세이잔샤 433만부
사람을 움직이다 데일 카네기 1958년 소우겐샤 430만부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
특이한 것은 1천만 부 이상을 기록한 타이틀이 두 건 있는데, 「가정에서의 실제적 간호의 비결」과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그것이다. 특히 「비결」의 경우 일제강점기 때 한국과 대만 시장을 포함한 수치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하루키의 기록은 경이적이다. 요즘 한국 출판시장에서 나오지 않은 수치가 되었지만 100만 부는 초베스트셀러였음을 기억한다면 더욱 그렇다.
「비결」이 초베스트셀러에 들었던 이유는 일본이 개화기 이후 국민들의 근대 의학에 대한 높은 관심에 비해 비싼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대부분 약을 먹고 치료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장염, 감기, 전염병 등에 대한 자세한 안내와 초기 대응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당시의 세대수를 감안하면 거의 모든 집에 비치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미있는 것은 하루키를 제외하고 한국에서 인기 있는 작가들의 책이 초베스트셀러 목록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아는 출판인들에게 물어보니 한국에서 밀리언셀러(100만 부)가 나온 것은 “고리짝 적 일”이라며 “요즘은 10만 부만 돼도 베스트셀러 제일 윗자리를 차지한다”고 했다. 사실 앞에 표에서 보이는 현상에 대해 일본의 출판인들은 한결같이 “꿈같은 일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요즘은 일본도 밀리언셀러는 꿈의 수치가 됐고, 10만 부만 넘어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간다고 한다.
에세이 작가 나카시마 사토시는 모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책들이 왜 팔리지 않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다.
출판사는 계속 신간을 내지 않으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다. 그것 때문에 ‘출판→적자’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출판사는 베스트셀러를 기획하고 시장을 만들어낼 여유가 없으며, 한 명의 편집자가 여러 책을 동시에 진행하며 질보다는 출간 종수를 의식한다. 또한 초판을 3천~5천부밖에 찍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홍보비 책정도 적을 수밖에 없으며, 적기에 충분한 홍보를 진행하지 못한다.

베스트셀러의 조건 6가지
출판 상황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일견 이해가 되는 말이다. 이에 대해 나카시마 사토시는 상기한 상황과 반대로 생각해서 자신의 타이틀이 베스트셀러가 되게 하려면 다음의 여섯 가지를 유념하라고 조언한다.

1. 우수한 편집자를 만나야 한다. 그것도 자신의 타이틀이 진행되는 동안은 이 일에만 집중하는 편집자 말이다.
2. 처음부터 1만 부 이상을 확정해서 홍보비를 책정한 출판사를 선택하라.
3. 책의 구성이나 제목, 장정을 편집자에게 맡겨라.
4.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로 써라.
5. 이것만은 ‘나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고르라.
6. ‘이 책의 내용이라면 팔리겠다’고 의기투합해주는 편집자/출판사와 함께 작업하라.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며 동시에 가장 어려운 것은 6항의 ‘의기투합해주는 편집자를 찾는 일’이다. 어떠한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지만 비전을 공유해주며 같은 목표를 향해 노력해주는 친구를 찾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 책이면 팔리겠다’고 믿어 주는 편집자와 출판사를 찾을 수 있으면 (아, 솔직히 달리 말하면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을만한 매력적인 책을 썼다면) 그 시점에서 성공을 위한 충분조건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엽기적인 그녀」나 ‘귀여니’로 대표되는 인터넷 소설이 출판되거나 영화화되어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단순히 소설이나 웹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나 웹상에 연재해 대중의 이목을 끌고 나면 그것이 출판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점은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선 일본의 웹사이트에서 연재됐던 것들이 출판된 경우를 소개하기로 하겠다.
오타쿠였던 한 남성이 전철에서 미녀 취객을 구해준 일을 계기로 그녀와 사귀게 되고, 그 과정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출판한 「전차남」, 학교 매점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한 글들이 재미있다고 화제가 되면서 출간된 「생협의 시라이시 씨(生協の白石さん)」 등이 대표적이며, 지금도 책과는 관계없이 인터넷 상에서 그 후일담을 접할 수도 있다.
또 인기를 끌었던 책 중에 「남편의 자지가 들어가지 않는다(夫のちんぽが入らない)」란 제목의 책이 있는데, 제목만 보면 야한 에로소설처럼 생각할 수 있으나 실상 그 내용은 일상과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대해 재미있고 사랑스럽게 표현한 에세이집이다. 결혼에 대한 선입견, 결혼을 하면 꼭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부부 사이의 섹스는 의무인가 등에 대해 이것들을 부정하기 보다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제시해 특히 여성독자들을 중심으로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자지’라는 단어가 가진 특성상 신문 등 매체 광고를 하지 못해 홍보에 큰 제약을 가지고 있어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했고,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책이라고. 지은이 코다마는 “이 제목 말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며 “결혼생활에서 남성성기가 상징하고 있는 의미가 여성을 나락으로 빠트리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깨고 싶었다.”고 밝혔다.

사족(蛇足)
나는 드라마 ‘겨울연가’를 번안한 소설 「겨울연가」를 일본에서 번역 출간해 꽤 많은 번역인세를 받았고, 이외에도 한류관련 여러 서적을 일본에서 출간한 바 있다. 난 일본에서 한류와 관련한 제법 이름난 번역자요 전문가다. 그래서 처음 이 글을 기획할 땐 ‘나는 할 수 있어’ 하고 용기를 내어 거창하게 한국과 일본의 출판을 비교하는 글을 써 보려 했다. 하지만 결국 일본 출판에 대한 에피소드들 정도만 나열한 것에 그치고 말았다. 죄송하다.
아! 또 하나. 일본 독자들은 책을 장서 즉, 소유해서 보관하는 용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짙다. 반면 한국의 독자들은 장서 개념보다는 실용적이거나 지적 호기심 충족 차원에서 텍스트를 읽는 것 같다. 일본의 출판시장이 그나마 한국보다 큰 것은 책을 대하는 독자들의 이런 태도도 한 몫 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