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공연예술 시장에서 이처럼 장르 간, 지역 간, 기초예술과 상업예술 간 격차가 심한 것은 물론 시장생태계나 소비자의 선택에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차이는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공연예술의 유통과 소비 부문으로 나누어 들여다보겠다.

예술장르 간 또는 순수예술과 상업예술 간 격차는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진지하거나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연극과 몸의 움직임으로 소통하려는 무용은 보통 관객의 선택을 주저하게 만든다. 클래식 음악은 장기간 들어서 익숙해야 가까이 하게 된다. 소비자가 선택을 주저하면 이를 매개하는 기획자나 공연장은 자연히 관객들이 많이 찾는 상업예술에 더 눈이 가기 마련이다. 돈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림 1>의 연극·뮤지컬 시장의 판도를 봐도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것들은 진지한 연극이 아닌 뮤지컬 일색이다. 연극이 뮤지컬보다 공연 건수나 횟수에서 훨씬 더 많은데도 말이다. 이런 현상은 물론 무용이나 음악장르도 다르지 않다.

본질이 이러하니 순수예술 장르는 시장에서 상업예술과 경쟁이 될 리가 없다. 특히 순수예술을 더 장려해야 할 공공극장의 기획자들도 선택의 문제에서 마찬가지 속성을 가지므로 심각성이 크다. 필자가 자주 써먹는 일화 하나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
몇 년 전에 어느 도(道)의 문예회관 기획자들(대개 순환보직의 현직 공무원들이거나 장기근무가 가능한 별정직 공무원들이다) 20여 명을 대상으로 운영에 관한 컨설팅을 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필자는 틀에 박힌 이론보다 새로운 방법이라고 준비한 것이 우선 그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이를 바탕으로 대화를 해나가는 방식이었다. 질문 내용은‘당신네 공연장의 유료객석 점유율이 얼마인가’였다. 당연히 매우 낮을 것이므로(지금도 전국 문예회관 평균이 40% 안팎으로 매우 저조하다) 그 원인과 처방을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게 준비한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웬걸! 시나리오가 처음부터 깨져 버렸다. 유료객석 점유율이 대부분 80~90%가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매우 당황하면서도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아무도 금방 대답을 안했다. 재차 물어보자 그중에 입담이 좋은 한 공무원 기획자가 “솔직하게 말하겠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우리 군수님은 공연장에서 마이크 잡기를 좋아 하시는데, 관객이 없어서 썰렁하면 우리 기획자가 무참히 깨진다. 그래서 우리는 관객이 잘 찾지 않는 클래식음악, 연극, 무용을 골고루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고, 그 예산으로 관객이 많은 뮤지컬이나 대중음악 한두 개씩만 하고 만다.” 그래서 유료객석 점유율이 그렇게 높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예산을 주는 공무원들이 요구하는 수입률도 맞출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것이었다. 그날 필자는 그들과는 달리 여러 순수예술 장르를 고르게 편성하여 성과를 내고 있는 문예회관들(대부분 대도시!)의 사례를 들어가며 그들을 설득하려 애썼지만 게임은 이미 끝나 있었다. 대도시와는 다른 환경에 놓여 있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컨설팅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이다.

유통(매개) 부문: 모세혈관을 뚫어야
관객들의 선택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 외에도 장르 간, 지역 간, 순수예술과 상업예술 간 격차를 방치하거나 오히려 돕는 주체들은 많다. 대학로에서 공연을 올리는 대부분의 극단들이 재정운영을 어렵게 하는 순수연극을 알아서 포기하기도 하고, 지역의 극단들은 자기네 공연을 제작하기 보다는 대학로 뒷골목의 2류 로맨스들을 초청하는 데 더 관심이 많기도 하다. 순수예술장르에 대한 정부지원이라도 넉넉하면 이런 현상이 덜하겠지만 최근 이 부분에 대한 정부지원은 오히려 대폭 줄어들었다<그림 2>. 시장은 큰 규모로 성장했는데도 말이다.
눈치 챘겠지만 순수예술을 지역으로까지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야 할 지역의 공공공연장(문예회관) 또한 격차를 돕는 주체임이 분명하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대도시 밖의 공연장들이 더 그러하다. 그런데 이들을 마냥 탓하고만 있기에는 사정이 매우 열악하다. 단적으로 이들 공연장엔 기획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인력이 부족하고 대부분 예산도 턱없이 적다. <표 1>에서 보듯이 공연사업 즉, 기획인력이 중앙정부(4개 공연장)는 평균 12.5명, 광역시도(30개 공연장)는 3.5명인데 공연장 숫자가 가장 많은 기초자치단체(215개)는 평균 1명도 안 된다. 그나마 이들 중 70% 이상은 평균 근무연수가 2년 내외로 극히 짧은 공무원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순수예술장르를 선택하는 안목이나 기획력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기획인력도 적고 예산도 부족하거나 거의 없는 형편이니 기획사업보다는 대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예회관의 가동률도 매우 낮다. <그림 3>에서 나타나듯 중앙정부 공연장이나 대학로 극장들, 대학로 밖의 민간극장들은 가동률이 높지만 문예회관의 순수 공연가동률은 40% 초반에 불과하다.

그나마 전국의 연극과 무용, 음악 전문축제들이 순수예술장르를 수용해주는 역할을 대신하고는 있지만 조족지혈이다. 그리고 축제 또한 지역 간 편차가 크다.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영남지역은 이렇다 할 축제들이 꽤 있지만 충청과 호남지역은 약하다. 농어촌 지역은 더 그렇다. 그래서 극장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극장이 왜 중요한가? 극장은 공연예술의 다양한 생태계를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예술가(배우, 무용수, 연주자, 안무가, 연출가, 디자이너 등), 제작자, 기획자, 무대기술인 등이 모여드는 곳이 극장이기 때문이다. 극장이 제작 기능까지 갖는다면 생태계는 더 풍성해질 수 있다.
대도시 중심으로 분포된 민간극장과는 달리 제작기능은 강하지 않지만 전국에 농어촌 지역까지 고르게 분포하고 있는 문예회관이 잘 되어야 생태계도 고르게 형성될 것이다. 그래야 장르 간, 지역 간, 순수예술과 상업예술 간 격차도 줄고 시장생태계도 건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문예회관이 현재로선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결국 무언가 해야 할 여지가 가장 많은 곳이 문예회관이기도 하다. 이제라도 문예회관의 기초체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생태계의 사각지대를 그대로 방치하는 셈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정책의 책임은 없을까? 문화정책도 팔을 걷고 나서서 이런 문제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손을 잡고 문예회관의 막힌 곳을 뚫어 피가 제대로 통하게 해야 한다.

이번호에는 이렇게 격차의 근본 원인과 처방을 말했다. 다음호에서는 마지막으로 공연생태계의 최종단계인 소비(향유)부분을 이야기하기로 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