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의 서울유레카

삼나무로 인한 꽃가루 증후군
봄이 왔다. 곧 서울에도 벚꽃이 만개할 것이고, 곳곳에 온통 봄의 정령이 가득할 것이다. 가수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또한 라디오에서 경쟁적으로 흘러나올 것이다.
하지만 날씨도 좋고 외출하기 좋은데 한 가지 안 좋은 게 있다. 바로 요맘때 기승을 부리는 황사다. 게다가 요즘은 미세먼지까지 포함되어 기관지염 등 만병의 원인으로 지목받기도 한다. 사정은 일본도 마찬가지인데 일본은 거기에 꽃가루가 더해진다. 꽃가루쯤이야 하는 독자들도 많겠으나 일본의 삼나무 꽃가루는 전국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다. 하여 황사와 미세먼지, 꽃가루 이 삼총사는 해마다 봄의 불청객으로 일본인의 건강을 위협한다.
삼나무로 인한 꽃가루 증후군, 이른바 화분증(花粉症)은 내가 어렸을 때는 흔치 않았다. 물론 꽃가루가 알러지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예로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일본만이 그 환자수가 2,500만 명이 넘어 국민병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악화되었을까? 그것은 일본의 삼림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1961년 미군이 가져온 식물로 인한 화분증 환자가 처음 발견되었는데, 1964년에는 사이토 요조(薺藤洋三)가 “토치기현 닛쿄 지방에서의 삼나무 화분증(Japanese Cedar Pollinosis)의 발견”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화분증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태평양 전쟁 패전 후 초토화된 전후 일본은 도심을 중심으로 목재 수요가 급속히 늘어났다. 당시 농림수산성은 안정된 목재 공급을 위해 비교적 성장이 빠른 삼나무 식수계획을 세웠고, 결국 실행에 옮겼다. 삼나무가 성장하면서 화분증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1960년대에 심은 삼나무로 인해 그 나무들이 성장한 1980년대부터 화분증이 심각해진 셈이다. 게다가 고도성장기가 지나면서 외국에서 싸고 질 좋은 목재가 수입되면서 일본 국내에 심은 삼나무 수요가 감소하여 이미 심어놓은 삼나무들은 벌채되지 않거나 관리되지 않아 꽃가루가 대량으로 비산되는 원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도로가 포장이 되면서 꽃가루가 흙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공중에 떠다니게 된 것도 화분증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일본 기상청은 사이토 요조의 논문 발표 이후 1965년부터 전국적으로 꽃가루의 비산 상황을 관측하기 시작하였는데, 1982년에는 1965년의 4배가 넘는 꽃가루가 비산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화분증의 증상과 치료법과 대책(4,5월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독자를 위해)
화분증은 알러지 반응으로 인한 것이라 증상이 나타나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다. 4대 화분증 증상이라고 불리는 재채기, 콧물, 코막힘, 눈의 가려움이 있다. 게다가 피부염, 기침 등의 증상도 수반하여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화분증의 원인은 면역력 약화로 인한 알러지 증상이기 때문에 일단 꽃가루에 노출되지 않거나 자주 씻는 일이 중요하다.

*외출할 때 꽃가루가 붙지 않도록 안경과 마스크를 착용한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가능한 빨리 샤워와 세안을 한다
*수분을 충분히 섭취 한다
*실내에서의 꽃가루 비산을 막기 위해 가습기를 설치한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 옷을 턴다

이런 것들을 실천해도 상당한 예방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일본에선 화분증 대책으로 여러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는데, 한국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제품들이 많다.

① 꽃가루 대책 스프레이: 얼굴과 머리에 스프레이하면 미세한 수분으로 코팅돼 미세먼지와 꽃가루가 붙는 일을 방지해준다.
② 코마개: 강력한 필터로 코 입구에서 꽃가루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 준다. 또한 콧물이 나올 때 스펀지가 흡입해준다. 마스크를 사용할 수 없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좋다.
③ 화분증 대책 안경: 전에는 물안경처럼 생겨 착용에 불편함을 많이 느꼈으나, 요즘은 세련된 디자인에 착용감을 높이고 자외선 차단 기능까지 겸비한 타입이 등장했다.
④ 꽃가루 캐치용 코 그림: 코 입구에 그림을 붙여두면 꽃가루를 부박해 점막에 붙는 일을 막아 준다. 100% 막을 수 없으나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다.
⑤ 목걸이형 마스크: 목걸이형 마스크는 목에 걸기만 해도 이산화염소가 주변의 바이러스, 곰팡이, 꽃가루 등을 제거해준다. 약 2개월 정도 사용할 수 있다.
⑥ 꽃가루 대책용 후드: 머리 위를 완전히 씌우기 때문에 공기에 노출될 걱정이 없다. 게다가 환풍기가 달려 있어서 김이 서리지 않는다.

그래도 화분증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증상에 따라 대처하는 대증요법 등이 치료의 거의 전부다. 대부분은 주사와 경구약 등으로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인데 레이저로 점막을 태우는 치료도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화분증 치료를 위해 식이요법도 병행한다. 한국에서 황사에 돼지고기가 효과가 있다며 삼겹살을 즐겨먹는 민간요법이 있는 것처럼 일본도 비슷한 민간요법들이 있다.

화분증에 효과가 있는 식품
*연근: 연근의 표면에 있는 검은 반점은 폴리페놀의 일종인 카테킨이다. 9주 동안 쉬지 않고 연근을 먹으면 알러지를 일으키는 항체의 혈중농도가 떨어진다는 사이타마 의과대학교의 데이터가 있다.
*고추냉이: 고추냉이의 성분이 꽃가루의 알레르겐 단백질을 다른 물질로 변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바나나: 2013년의 츠쿠바 대학교 연구데이터에 의하면 바나나를 8주 동안 매일 먹은 사람에게 재채기가 완화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차조기: 차조기에 포함되어 있는 알파리놀렌산에는 화분증 예방효과가 있다.
*양파: 폴리페놀의 일종인 케르세틴이 포함되어 있음으로 화분증 개선에 효과가 있다.
*머위: 머위에는 폴리페놀의 일종인 아비클라린이 포함되어 있다. 아비클라린에는 세포에서 히스타민, 류코트리엔이 유출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다.
*요구르트: 요구르트에는 화분증의 원인 항체의 활동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
*점차(텐차) : 화분증 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마시는 것이 효과가 있다.
*목이버섯: 화분증에 효과가 있는 비타민D를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다.
*등 푸른 생선: 등 푸른 생선에 포함되어 있는 EPA와 DHA는 코막힘을 일으키는 류코트리엔 발생을 억지한다.

화분증을 악화시키는 음식
*생 토마토: 생 토마토는 유독물질인 히스타민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멜론: 가을에 많이 발생하는 돼지풀 화분증 증상이 있는 사람은 멜론, 수박, 오이, 참외 등 오이과의 채소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우유와 치즈: 우유와 치즈는 화분증의 방아쇠가 된다고 한다.
*패스트푸드: 패스트푸드는 면역력을 저하시키는 트랜스지방이 많으며 화분증 뿐만 아니라 몸 건강에 좋지 않다.
*알코올: 맥주, 정종에 포함된 아세트알데히드는 재채기, 콧물, 코막힘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햄, 소시지: 햄, 소시지에 포함된 아질산염은 과민성을 높이는 자극 물질임으로 화분증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설탕: 설탕에는 점막의 분비를 촉진시키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알러지 증상을 악화시킨다.
*밀가루: 밀가루에 포함되어 있는 글루텐은 호르몬 균형을 잃게 하거나 면역력을 약화시킬 경우가 있다.
*마아가린: 마아가린에 포함되어 있는 트랜스지방을 많이 섭취하면 세포막과 점막을 약화시키며 결과적으로 재채기와 콧물이 나기 쉽다.
*매운 음식: 향신료 등 자극적인 재료는 코의 점막에 있는 모세혈관을 넓히고 콧물이 나는 양을 증가시키며 코막힘을 악화시킨다.

이런 민간요법은 확실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신빙성을 의문시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렇지만 매사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궁금한 점 하나,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화분증 때문에 어떤 불편을 겪고 있을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화분증 없는 한국 땅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호소가 대부분이었다. 화분증은 민족과 체질에 관계없이 우리를 무너트린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놀라운 점은 화분증은 일본의 전국적인 현상인데, 화분증 환자가 없는 지역이 두 군데 있다는 점이다. 그곳은 북해도와 오키나와. 북해도는 삼나무보다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는 소나무가 삼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오키나와는 삼림개발 자체가 잘 되어있지 않아서다. 게다가 중국 대륙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황사와 미세먼지의 영향을 일본 본토보다 덜 받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해도의 어느 마을은 “화분증 걱정 없는 마을”을 어필하며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고도 들었다.

한국관광, 일본관광
서울에 온 일본인 관광객들은 안내하다보면 “여기서는 꽃가루 걱정이 없어서 부럽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럴 때면 나는 “꽃가루 대신 미세먼지가 많아요” 말해주기도 한다. 그래도 일본인들에게 미세먼지보다 꽃가루가 더 심각한 문제라며 여전히 꽃가루 걱정 없는 한국을 부러워한다.
화분증을 앓고 있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요새는 애완동물들의 화분증이 문제가 되고 있다. 개의 화분증은 1988년에, 고양이 화분증은 2000년 초에 처음으로 보고되었다.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고되기 전부터 있었다고 추측된다. 특히 개의 경우 털이 심하게 빠지는 경우도 보고되어 있으며, 중상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문제는 적당한 치료법을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분증에 대해서 1960년대에 처음 발견되었는데도 일본정부의 대응은 상당히 늦었다. 농림수산부에 화분증에 관한 대책회의가 설치된 시기는 1990년, 과학기술청에 의해 화분증 극복을 위한 연구가 시작된 것이 1994년, 기초연구가 본격화된 것이 2004년부터라 역사가 얼마 안 되었다. 결국 행정이 하는 화분증 대책이란 기초연구와 치료법의 개발, 꽃가루 비산의 예보 기술의 향상 등이 주된 일이며, 정작 화분증의 주요 원인이 되는 삼나무 숲에 대해 어떤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일본 국내에는 현재 인공적으로 심은 삼나무 숲이 453만 헥타르나 되는데 현실적으로 모두 벌채하여 다른 품종의 나무를 바꿔 심는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여하튼 꽃가루는 황사와 미세먼지와 함께 일본에 사는 사람과 동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3대 요소다. 꽃가루로 인한 화분증의 발생률이 5월까지 높다고 하니 미리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노파심이지만 오는 4월, 5월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 여러분은 충분한 대책을 세워서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