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김보라 안무의 『인공낙원』(3월 24~2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김보라의 안무작 『인공낙원』은 9명의 남녀무용수가 출연해 60분 동안 펼쳐졌다. 작품제목의 영어타이틀은 ‘artificial nature’인데, ‘인공적’과 ‘자연’이라는 대립적 단어에서 작품에 대한 접근이 좀 더 수월할 수 있다. ‘인공물’과 ‘자연물’이라는 두 갈래의 통로는 하나의 지점에 이르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인간의 몸’이다. 인간, 더 정확히 육체는 자연물이다. 그리고 인공물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 일체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육체가 만들어내는 인간의 움직임은 자연물인가 인공물인가? 안무자의 문제의식은 그 점에 이르러 있다.
무대 바닥은 코팅된 것처럼 광택이 나는 비닐 같은 것으로 구획되어 있고, 뒤쪽에는 바닥과 같은 재질의 대형패널이 약간 비스듬하게 설치되어 거울처럼 무대를 반영한다. 그렇게 생성된 공간은 메탈느낌이라서 인공성을 강하게 띠며, 하나의 새롭고 낯선 공간적 배경으로 인해 무대 위 무용수는 또한 새롭고 낯선 ‘물체’로 인식된다. 움직이는 그것이 만약 자연물이라면 생명체이겠지만, 인공물이라면 그저 움직이는 사물일 것이다. 움직임들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몸짓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부자연스럽고 기이한 형태를 생성해내기도 한다. 각각의 움직임은 의미와 맥락 없이 독립적인 무엇으로 존재하므로 무대 위 움직이는 물체는 일반적인 인간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단단히 고정되지 않은 후면 패널이 미세하게 흔들릴 때 무대 위 움직임들은 그 형태가 약간 비틀려지기 때문에 육체의 상은 번져 보이는 사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특별할 것 없이 무용수 개별의 다양한 움직임, 이른바 별종의 움직임들로만 단순하게 구성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문제의식도 비교적 명료하고 동시에 주제도 간단하다. 즉, 움직임은 끊임없이 육체를 다시 묻는다. 무엇이 육체인가 혹은 육체란 무엇인가? 육체는 마땅히 자연물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조건에서는 인공물로도 존재할 가능성을 묻는 것이다. 더욱이 모든 것이 철저하게 인공적인 환경에서는 말이다. 이에 대해 작품의 후반부는 안무자의 대답이자 주제로 이해될 수 있다. 반사판 대신, 천장에서 숲을 이룬 나무들이 거꾸로 매달린 형태로 내려오다 공중에서 멈춘다. 대표적인 자연물로 연상되는 나무들로 인해 이제 공간은 명백하게 자연 속이 된다. 원시림 같은 곳에서 움직임은 좀 더 원시적인 것으로 인지된다. 인간의 몸이 자연물인 한, 몸이 만들어낸 모든 것은 자연물이라는 가능성이 제시되는 것이다. 이에 관련해 프로그램 책자에는 “인간의 모든 것은 인공적인 동시에 자연적인 것이다”는 메를로-퐁티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미루어 짐작할 때 안무자는 현상학적 측면에서 육체에 대한 물음을 주제화하는 듯한데, 작품전개에서 그러한 의도나 의미를 유추하기는 쉽지 않다. 20세기 내내 서양의 현대무용은 두 개의 축, 즉 육체의 문제와 움직임의 문제를 기본으로 발전되어 그만의 역사를 형성했다. 그 후 춤예술에서 발견된 육체와 움직임의 이론적 연구는 다른 분야들, 가령 자연과학이나 공학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사회학의 육체 및 움직임 연구와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의 학문/과학으로서 무용학은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예술작품으로서 춤의 영역은 그것과 여전히 다르며, ‘예술에 관한’ 이론이 있지만 예술 그 자체는 과학과 다르다. 춤에서 육체를 문제시하는 것은 항상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인간의 몸에 대한 철학적 과학적 이론을 무대춤으로 구현하는 발상과 방식은 매우 어려운 과정을 수반하기 때문에 개념에 대한 물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에서 다루는 몸은 지각 혹은 심신의 맥락에서 파악되는 문제이므로, 춤이 그 맥락에서 어떻게 제시된 것인지 정확하지 않으면 『인공낙원』에서 주제화된 문제는 난해한 것으로 남게 된다. 프로그램 책자의 추상적인 글과 이미지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안무자의 주제의식이 다소 공허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황미숙 안무의 『Walk(워크)』(3월 9~10일 아트씨어터문)
황미숙의 안무작 『워크』는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세 명의 여성무용수가 출연해 약 30분 동안 펼쳐졌는데, 이 공연은 ‘퍼포먼스그룹153’의 기획공연 「소통XI」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이 단체는 안무자 황미숙이 이끌고 있으며, 음악, 영상, 연극, 무용 등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참여해 다양한 공연활동을 지향한다. 이번 ‘소통’ 시리즈는 그 타이틀에서 짐작하듯, 관객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성격의 기획물이다.
그러한 점에서, ‘걷기/보행’을 뜻하는 작품 『워크』는 춤의 기본이 되는 움직임에 관해 설명하듯 풀어낸 이야기로 이해된다. 그것은 무용수들이 복잡하지 않고 기교적이지 않은 간단한 동작과 반복해서 들리는 ‘move’, ‘step’, ‘go’와 같은 단어가 암시한다. 인간이 양손으로 땅을 짚고 움직이면, 그 모습은 짐승이 네 발로 걷는 것과 유사하다. 이런 맥락과 비슷하게 중간에 영상을 통해 교과서에서 익숙하게 봐온 인류의 진화, 즉 네 발에서 두 발로 걷는 직립보행이 보인다. 그런데 전체 구성이 내재적으로 짜임새 있는 연결구조가 아니어서 작품의 주제는 명확하지 않다. 짧은 공연시간 동안 몇 가지 움직임으로 ‘두 발로 걷는 동물’의 등장, 즉 인류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일까? 특별한 주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 작품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 중 하나인 걷기를 중심으로 인간의 발달에 관한 안무자의 시각을 드러내는 듯하다. 따라서 이 공연은 일종의 움직임 연구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 춤현장에는 움직임을 리서치하는 성격의 공연들이 있는데, 무용가 스스로는 주된 관심거리일 수 있지만 오히려 예술작품으로서 춤을 감상하려는 관객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그래서 움직임이 주제인 작품들은 왜 그것이 문제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은 한, 관객 입장에서는 연습실 혹은 실험실을 참관하는 정도의 기분이 들곤 한다. 결국 그런 경험은 종종 불평으로 이어지곤 하는데, 그만큼 일반적으로 춤에 대해 이야기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동안 작품의 형식을 통해 육체와 움직임이 간접적으로 논의되어 왔다면, 점점 더 작품의 틀을 해체하고 움직임이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물론 그 같은 시도가 반드시 춤의 이해를 더 쉽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안무실험의 등장으로 춤의 스펙트럼이 확장되고 있음은 실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