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국립현대무용단 안성수 안무의 『혼합』(3월24~26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뒤섞임, 휩쓸림, 혼재된 관계 등을 나열해서 ‘혼합’이라고 이름 붙인 안성수의 춤은 간결하다. 전혀 다른 느낌의 음악 요소를 병렬로 늘어놓고 단순한 빛의 공간에서 만든 춤의 이미지 역시 간결했다. 때문에 전통춤과 현대춤이라는 하나 되기 껄끄러운 춤의 혼합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불협화음 난장이 아니다. 혼합이란 주제를 재단해서 춤이 가능한 만큼의 범위를 정해 놓은 듯했다. 이질적인 요소들의 추돌, 쟁투가 아닌 에센스를 골라내어 춤으로 융합 시켰다. 이 춤의 요소들을 나열 할 땐 전통 춤사위를 먼저 꺼낸 후에 강약이 다른 여러 춤의 호흡들을 섞었다. 사이에는 춤과 음악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도입과 정리를 맺으면서 춤을 이어간다. 친절한 안성수의 춤이다.
혼합이라는 주제를 춤으로 구성하면서 춘앵무와 전통춤, 전통음악, 현대춤의 요소들을 믹스 했다는 것은 자칫 일차원적 구성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간결한 춤이 에센스가 유려한 구성에 짜여져 작품 전체의 탄성을 만들어 냈다. 덜어낼 것이 없는 듯 보인다. 공간 또한 실질적인 춤의 에너지만을 남겨 놓고 조명에 기대어 어떤 정서적인 뉘앙스를 보태려는 시도는 아예 없었다. 춤과 음악만으로 혼합의 주제를 놓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안성수의 춤 공간에서는 눈앞의 공간에 더해 그 주변의 공간 또는 전, 후의 어떤 시간과의 인과 관계가 느껴진다. 춤의 공간이 풍부하단 말이다.
작품 ‘혼합’을 통해 일상 속에서 믹스되고 있는 여러 단어들이 머리에 맴돌았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전통춤과 현대춤의 뒤섞임 뿐만 아니라 공존하는 것과 숨겨진 것, 갈채와 매도,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 의미와 무의의 것, 미움과 고움 등의 혼합에 대해서다. 여기에 더해 로버트 벤츄리의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에서 소개된 글까지 연계되었다. ‘건축은 형태인 동시에 실질적인 것이며 추상적이면서 구체적이다. 그리고 내부의 은밀한 특징은 외부의 환경으로 표출된다.’ 안무자가 ‘혼합’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와 메시지의 선명함이 다양한 대화의 확장을 만들어 내었다고 본다.
한 가지 더 부연하면 현대춤으로 비추어 본 우리 전통춤의 본질이 곱씹어서 탐구 할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소스의 원천으로 무한함을 확인해주었다. 우아한 움직임의 김지연과 김민지, 인상적인 라인을 보인 김현, 활력을 더한 장경민 그리고 반짝이는 작품이 되게한 이주희의 춤이 기억에 남는다.

*댄스시어터창 김남진 안무의 『씻김』(3월25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사부곡을 춤에 담으면서 ‘씻김’이란 이름을 붙인다면 그리움, 회한, 어쩔 수 없었던 수많은 기억들, 나누지 못한 이야기, 이런 것들이 작품에 포함될 것이라 생각 하지 않을 수 없다. 김남진의 춤도 역시 그랬다. 아버지에 대한 몇 가지 인상들이 작품 속에 포함되고 작품 전반에 그리움, 미안함, 약간의 원망 등의 정서로 춤을 구성했다. 능숙한 김남진의 춤과 연기가 자연스럽게 주제의 몰입 정도를 높여 갔지만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은 음악이다. 김성민의 기타연주가 울려 나올 때 앞서 이야기 했던 정서적인 공간을 충분히 만들어 주었다. 여기에 징을 치며 구음 시나위를 보탠 양일동의 소리는 회한의 정서란 이런 것임을 설명해주듯 무척 수준 높은 울림으로 주제를 표현해냈다. 김남진의 춤과 움직임에 자연스러움이 더해졌다.
“오늘 우리 아버지, 얼굴 좋으시네요”로 시작하는 작품은 몇 개의 오브제에 기대거나 끌어안고 내리 흔들면서 아버지와 나누지 못했던 숫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바닥에 깔린 은박지 위에서 진행된 김남진의 움직임을 천장에 달린 카메라로 수직으로 촬영했다. 이를 무대 뒤편 스크린으로 중계한 장치가 작품의 정서를 증폭시켜 주었다.
작품은 “오늘 술이 참 맛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그리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느낌, 시원히 씻어 내고 나니 따듯하게 보듬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