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산책

오늘,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국민이 대통령을 해임한 것이다.
사필귀정, 당연히 바로잡아야 할 결과임에도 판결이 나올 때까지 안심할 수 없었던 것은 대한민국의 법과 정치에 신뢰를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있는 강남 테헤란로의 오늘은 평온하면서도 여느 때처럼 주말을 앞둔 분주함이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오늘을 기념하려는 듯 회사원들은 퇴근 후 탄핵주를 계획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여느 금요일 퇴근시간보다 더 많은 자동차들이 쏟아져 나와 오도 가도 못해 오늘 보러가기로 약속한 공연도 가던 길 중간도 못가보고 운전대를 돌려야 했다.
근대 대한민국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해방이 되자 38선이 그어지고 한국전쟁에 독재정권, 4·19 학생운동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누리려나 싶더니 바로 5·16 쿠데타를 시작해서 장기간의 군사 독재, 군사정부가 물러가나 했지만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다수 여당이 시스템이 없이 국민에게 강하고 권력자에게 약한 안락한 주먹구구식으로 갈수록 국민들이 살기 힘든 나라가 되어버렸다. 나라의 위기 때는 한 마음으로 잘 뭉치지만 이것을 일회성으로 끝내버리기 때문에 기회주의자들에게 길만 터준 불행의 연속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바로 실수를 줄이기 위한 것인데, 갈수록 역사공부의 비중은 줄어들고 실수와 착오의 비중은 늘어만 간다. 그러나 이번도 기존과 같이 되돌릴 수는 없다. 아직도 과거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한 과거의 수혜자들이 다방면에서 기득권자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국정농단의 중심으로 각종 정치적 부당한 간섭에 무력하게 협력했었어야 했다. 결국 잘못을 인정한 사과문을 돌리기까지 했다. 그러고는 오래지않아 이를 개선하는 새로운 지원금 관리 시스템을 도입을 소개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부당한 간섭에 동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말아야 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역으로 지원금을 신청하는 국민과 예술인들만 더욱 감시하고 번거롭게 만드는 시스템으로 전락해버렸다. 한마디로 국민이 낸 세금을 받고 일하는 고용인이 세금을 내고 있는 주인을 이번 기회에 더욱 철저히 감시하겠다는 적반하장인 격이다. 이것이 납세자인 국민들에게 폐해를 끼친 국가기관이 잘못을 뉘우치는 자세인가?

잘못을 반복하게 방조하는 것도 잘못된 행위다. 잘못을 지적하고 징계해야하는 것은 상벌을 위함이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을 탄핵했다고 벌써부터 자축하고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일들이 많다. 갈수록 일반 국민들이 기본적인 삶조차 유지하기 힘든 나라가 됐다면 이제부터는 섣불리 정치인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없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자유와 평등, 박애’의 이념으로 포장된 프랑스 혁명이 냉철하게 보면 프랑스 서민들의 순진함과 분노를 이용한 신진세력들이 선동한 결과이며 혁명 이후의 장기 정체 그리고 독재자 나폴레옹의 출연은 어딘지 모르게 대한민국과 같이 혁명을 겪은 대부분의 나라가 혁명의 성공에 마냥 도취되어 빠지기 쉬운 함정이었다. 혁명을 통해 성공한 나라들이 어떻게 해서 안정을 이루고 강대국이 되었는지를 배운다면 혼란을 틈탄 기회주의자들의 수에 넘어가는 실수를 또다시 되풀이하는 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가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은 역사를 배우되 활용하지 못하는 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탄핵 날 보여주었던 거리의 평온함은 더욱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해석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부흥되는 시절, 정점에 올라가기도 전에 일찍 샴페인을 터뜨려 지금과 같은 경제침체와 물질만능주의 사회가 된 것은 소위 지도자의 임기에 최대한 많이 챙기면서 무언가 생색을 내야 한다는 욕심과 자신의 이름만을 생각한 어리석음을 대다수가 비판 없이 동조하며 휘둘린 결과다. 지금은 누구를 벌하고 축제를 벌이는 식의 가벼움을 지양하고 누구랄 것도 없이 각계각층 모두가 근신을 하며 더 이상 우리 역사에 특정인이 불행한 사건을 양산해내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흔히 혼란시기에 나타날 수 있는 기회주의자들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엄중히 감시하는 시기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회로의 회복은 우리 스스로의 몫이지 아무도 대신해 주지 못한다. 정치인들에게 맡겼더니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통령이 될 자질조차 없는 무능한 인물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묵인하고 용인했으며, 그 기회를 얻어 나라의 경제는 어찌되건 말건 자신들의 이익만을 최대로 챙겼다.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니 이제는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며 발뺌하고 있는 기회주의자들이 있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쪽은 결국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이다. 그러기에 이번 대통령 탄핵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더욱 정치선진화로 나아갈 수 있는 시작에 불과하다. ‘천국은 침노해서 빼앗는 자의 것’ 이라는 말이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 중이다. 이제는 국민들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헬 조선’으로 돌아갈 수도, 다시금 ‘금수강산’으로 회복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 하나하나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두 눈 부릅뜨고 앞으로의 과정을 지켜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