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소비(향유) 부문 - 소비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예술?
공연예술생태계의 마지막 한 축인 소비(향유) 부분을 들여다보기 전에 독자 여러분께 한 가지 퀴즈를 드리고자 한다. 국민들의 공연예술 소비(향유)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다음 극장과 예술단체들의 연간 평균 유료객석점유율은 얼마나 될까?
중앙정부공연장, 지자체문예회관, 대학로공연장, 민간공연장 그리고 국립예술단체, 공립예술단체, 민간예술단체.
왜 ‘객석점유율’이 아니라 ‘유료객석점유율’인가 하면, 자발성이 강한 유료관객의 수치가 예술기관 운영의 진정한 성과이자 국민들의 소비(향유)의 질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퀴즈의 답은 이 글을 읽다 보면 발견된다.
공연예술과 관객은 속성상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관객은 공연예술이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기 위한 예술적, 경제적 지원자이자 공연 그 자체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은 공연예술을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리기 위한 필수 요건이라 할 수 있다. 관객기반이 어떠한가 하는 것은 공연의 질적 수준과 함께 공연예술경영의 완성도를 보여 주는 중요한 지표이자 국민들의 공연예술 소비(향유)의 정도를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관객기반의 정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유료객석 점유율이다.
공연예술의 역사와 관람문화가 오래된 유럽이나 미국에서 보통 한다하는 극장이나 예술단체들은 80% 이상의 유료객석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우리는 아직도 평균적으로 공연장의 반 이상을 비워 놓고 공연을 하거나 초대로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관객 기반이 아직도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통계를 몇 가지 들어 보자. 우선 극장의 경우를 보기로 하는데 2015년 말 시점에서 전국 공공 공연장 기획공연의 경우 중앙정부공연장 33개의 초대권 비율 35.5%, 지자체문예회관 370개 공연장의 초대권 비율은 39.9%로 나타난다(표1). 대관공연은 이보다도 훨씬 높은 51.7%(국립)와 74.5%(문예회관)이다. 복잡하지만 이를 공연장의 평균객석수와 평균공연횟수를 넣어서 계산해 보면(표1 참조) 중앙정부공연장의 기획공연 유료관객점유율은 평균 32.8%, 문예회관은 37.6%가 된다. 대관공연은 계산해보지 않아도 이보다 훨씬 낮을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니까 60%가 넘는 객석을 비워두거나 초대로 채운 채 공연을 했다는 말이 된다. 대학로의 소극장은 이보다도 낮은 29%, 대학로 외의 민간극장은 문예회관과 유사한 38.6%로 계산된다.
그런데 이런 수치도 과거보다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 중앙정부공연장인 예술의전당의 경우 1997∼2000년 상반기까지 오페라하우스에 있는 3개 극장의 무용 공연 평균 유료객석점유율이 최대 45%선이었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경우 1996∼2000년 상반기까지 객석점유율은 40%대 초반, 유료객석점유율은 20%대 초반을 기록했었다(성균관대학교 공연예술연구소, 2000). 현재의 전체 공연장과 과거의 개별 공연장을 비교한다는 것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20여 년 전보다 관객 기반이 그만큼 더 나아지지 않았다는 정황은 설명이 되고도 남는다.
예술단체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2015년 말 현재 전국 2293개 예술단체의 총 관객 중에서 초대권이 차지하는 비율이 63.1%로 나타난다(표 2). 모든 공연 좌석의 100%를 관객으로 채웠다 해도(그런 일은 단연코 없지만) 유료객석 점유율은 36.9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다. 기초자치단체나 민간 예술단체는 이보다 훨씬 더 낮다.
이런 낮은 수치나마 해가 거듭될수록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흐름 없이 들쭉날쭉하여 매우 불안정하다. 이런 불안정성은 극히 소수의 공연장이나 예술단체를 제외하고 대부분 전국적인 현상이라는 데서 심각성은 더해진다. 일전에 내로라하는 공연예술계 전문가들이 모인 공식적인 좌담회 자리에서 2010년 세종문화회관의 9개 전속 예술단체 유료 객석점유율이 50%라는 수치를 놓고“공연계의 일반적인 사정으로 볼 때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라는 누군가의 코멘트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그만큼 우리 관객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또 그것이 매우 일반적인 구조라는 점을 보여 주는 일화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공연예술 관객기반의 현실이다. 아마도 이런 현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이상 졸저 『관객을 만드는 예술경영 2013』 12~13쪽 내용을 최근의 통계로 수정 보완함).
예술시장의 급격한 팽창이 일어난 지 30년이 넘어가는데 왜 아직도 이럴까? 문제는 복잡하지만 몇 가지로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가 1980년대 말부터(일부 중앙정부 소속은 그보다도 훨씬 전에) 전국에 공연장과 예술단체들이 우후죽순 설립되기 시작했지만 공연장의 경우 하드웨어에만 집착을 했지 이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는 정밀하게 따져보지 않은 점이 우선 있다. 예술단체도 운영의 방향이 제대로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니 1년에 공연은 얼마나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예산이나 필요 인력의 규모는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도 제대로 몰랐다. 지금도 많은 기관이 그러하다. 예산 중에서도 공연기획에는 얼마 정도의 비율이 쓰여야 하는지, 인력 중에서도 전문적인 소양을 갖춘 기획 인력은 왜 필요한지는 더더욱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 예술경영이 일정한 시스템이 없이 아직도 대부분 주먹구구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가 그러하니 경영도 그러하다는 것을 이제 독자들은 이해했을 것이다.
실정이 이러하니 누군가 공연장이나 예술단체 운영을 제대로만 하면 성과는 금방 좋아지고 그는 일약 예술경영의 스타로 등극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처음 LG아트센터가 그러했으며 최근의 국립극장이나 세종문화회관 등이 그러하다. 지역에도 그런 사례가 없지 않다. 2003년 개관부터의 대전예술의전당이 대표적인 지역의 사례다. 국립발레단이나 서울시 교향악단 같은 예술단체도 스타가 되었다. 이런 사례들은 한편 일정한 시스템(가령 시즌 프로그래밍 방식 같은)이 있는 예술경영의 전범이어서 우리가 닮아도 될 만하다. 좋은 공연을 무대에 지속적으로 올리면서도 시스템이 뒷받침되면서 소비자(관객)의 마음을 얻었고, 곧 유료객석 점유율의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문화정책과 예술경영은 동반자다
예술경영이란 예술기관의 미션(즉 문화정책의 목표)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과 자원을 조달, 배분하고 조직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십의 총합이라고 정의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정책의 기본목표가 무엇인가. 문화와 예술의 진흥, 국민 문화향유(문화복지)의 극대화, 가치관과 태도 변화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이라고 필자는 배웠다. 현대엔 그 목표가 확장되어 국제교류니 산업화니 문화도시니 해도 모두가 기본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문화정책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방식 중 하나로 공연장과 예술단체를 설립했으며 그런 예술기관을 경영하는 것이 예술경영일진대, 예술경영의 목표도 문화정책의 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별 기관의 예술경영은 문화정책에서 표방하는 모든 목표를 다 가져올 수는 없고, 그 중에서 어떤 부분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에 따라 다른 성과를 보이는 것이 예술경영일 것이다. 그런데 한편 우리 예술경영은 그 방식이 모두 같거나 또는 부재하다. 일정한 선택과 경영의 시스템이 없는 점이 모두 같고, 그러니 방식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이유가 1차적으로는 예술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정책의 리더십 부족에 있다고 본다.
문화정책의 리더십은 무엇일까? 정책의 수립에서부터 예술경영 현장의 선택과 시스템, 성과까지 상호 약속된 의제가 있고 그것이 일관되게 관리되도록 돕는 것이 아닐까? 간섭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협의된 아젠다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며, 잘 되도록 지원을 적절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아젠다가 있어야 최적의 사람(경영자)을 쓰게 되고, 환경을 제대로 마련해 주고 권한을 배분하며, 단기간의‘빛나는’양적 성과가 아니라 장기간의 질적 성과를 관리하게 될 것이다. 성과가 좋건 나쁘건 상호 책임도 지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합의된 아젠다도 없었고, 최적의 사람을 써왔는지도 확신할 수 없으며, 환경도 좋지 않은데다가 권한도 한쪽으로 기울었고, 단기간의 양적 성과를 더 좋아하지는 않았는지, 성과가 좋으면 한쪽이 먼저 생색을 내고 그렇지 않을 경우 반대쪽만 책임을 져야 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우리 예술경영의 갈 길은 조금만 잘해도 스타가 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든 상황으로 진화되는 것일 게다. 그래야 국민들의 문화소비(향유)도 극대화될 것이고 공연예술의 생태계도 더 건강해질 것이다. 이것이 답이다.

4회에 걸친 긴 글을 맺으면서 사족(?)을 덧붙이겠다. 작년에 프로야구 한화의 김성근식 야구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한마디로 그의 야구는 장기전을 보는 게 아니라 눈앞의 승리를 위해 선수들을 혹사시킨다는 것인데, 달리 말한다면 숨이 길고도 일관된 시스템 중심이 아니라 감독 중심의 야구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야구가 초반에는 쉽게 지지 않고 역전드라마도 자주 연출해냈지만 결국 한화는‘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했다. 단기간에 승부를 가리는 가을야구가 아니라 길고 긴 시즌을 끌고 가려면 과거와는 다른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비판은 그래서 솔깃하게 들렸다.
우리 정부의 문화정책은 어떨까? 최근 문화부의 행정이‘블랙리스트’문제 때문에 전례 없는 비판을 받고 신뢰도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블랙리스트 문제 이전에 문화부 행정에 보다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비판의 핵심은 문화부가 직접, 그것도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정책의 판을 짜고 이를 성급하게 사업화하며, 단기간의 성과를 챙긴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책의 무게중심이 자주 이동하거나 현장의 예술인들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새로운 정책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김성근식 야구와 다를 것이 없다. 김성근식 야구가 선수들을 혹사시키고 역량을 떨어뜨리듯 이런 식의 문화정책은 필연코 예술가를 소모시키고 수준을 하향평준화로 이끈다. 이제는 문화부가 정책의 큰 틀만 합의하고 디테일은 현장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결과를 평가하면 된다. 평가결과 잘못 가고 있거나 정책의 사각지대가 발견되면 이를 보완하는 지원을 해주면 되지 않을까? 그것이 과거와는 다른 리더십일 것이다. 그것이 곧‘팔길이 원칙’의 실천이며 건강한 시장 생태계로 가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