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살롱

서양의 출판 선진국에서는 오디오북이 정착된 지 오래다. 눈으로 글을 읽는 것이 불편한 이들에게는 문장을 낭독하여 녹음한 오디오북이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의 출판산업에서는 오디오북의 시장 규모가 크고, 도서관 서비스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독자 입장에서도 운전이나 운동을 하면서 오디오북을 들으면 책 읽는 시간을 별도로 확보하지 않고도 효과적인 독서 생활이 가능하다.
최근 출판사 커뮤니케이션북스가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라는 제목으로 한국 근현대 문학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오디오북을 완간했다. 친근한 배우들의 목소리로 중단편소설 100편을 낭독한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는 한국연극인복지재단과 EBS, 출판사가 참여했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낭독 배우 섭외를 맡고, EBS는 녹음과 방송을, 출판사는 작품 선정과 오디오북 제작을 맡았다.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것은 2014년 11월이었다. 녹음된 내용은 EBS FM 「책읽어주는 라디오」로 방송되는 한편 인터넷서점과 카카오페이지, 오디언(오디오북 업체) 등을 통해 유통되었다. 2015년 5월에 1차로 11편이 처음 선보인 뒤 2017년 3월 20일에 10차로 11편이 출시되면서 2년여에 걸친 작업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정확히는 103명의 배우가 낭독에 참여하여 총 104시간 20분 분량이 녹음되었다. 매일 3시간 30분씩 꼬박 한 달간 들어야 완독, 완청할 수 있는 방대한 분량이다.
낭독 작품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발표된 작품이 50편이고, 후반기는 한국전쟁(1950년)부터 1987년까지가 50편이다. 낭독 작품의 선정 기준은 근현대 단편소설 중에서 문학사적 가치와 작품성, 여기에 낭독성을 고려해서 작가별로 1편씩 100편을 선정했다고 한다. 김유정의 「동백꽂」, 김동리의 「무녀도」, 김승옥의 「무진기행」, 최인호의 「타인의 방」, 임철우의 「사평역」 등이 작품으로 선정됐고, 낭독에 참여한 배우들로는 박정자, 강부자, 손숙, 유인촌, 김명곤, 문성근, 조재현, 최민식, 문소리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들이 포함되었다.
나혜석의 「경희」(1918)를 윤석화가 읽고, 문순태의 「징 소리」(1978)는 전무송이 낭독했다. 발표 연대순으로 들으면 한국의 근현대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유명 배우들의 낭독으로 활자로 된 인물이 마치 살아나는 느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은 CD를 구입하거나 음원을 다운로드하여 스마트폰으로 들을 수 있다. 특히 음원은 한 편당 990원으로 매우 저렴하다. 여기에 낭독자 인세에 해당하는 오디오북 판매 수익금은 참여 배우들의 이름으로 연극인복지재단에 전액 기부되어 어려운 연극인의 복지를 위해 사용된다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작품을 연기하듯 읽었다는 점은 생각해볼 문제다. 이렇게 되면 청취자가 상상할 여지가 줄어들 수 있다. 작품을 원작 그대로 담백하게 읽어야 수용자가 개입할 수 있고 책(텍스트)의 특성이 보존될 것이다. 서양의 오디오북에서는 대부분 이 원칙을 고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