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지난 4월 25일. 19대 대선에 나선 각 후보들의 문화정책을 소개하는 자리가 “다시 문화다-차기 정부의 문화정책”이란 타이틀을 달고 마련됐다. 정의당을 제외한(아쉽게도) 4개 정당의 문화정책 입안자들이 저마다 공을 들여 준비한 정책들을 공개한 것이다. 사실 이런 자리가 아니면 후보들의 문화공약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각 당이 전면에 공개하는 10대 공약 등에는 대개 문화정책이 빠지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홈페이지 등에 공개한 자료들도 대부분 간단한 키워드 위주로 나열되어 있어서 웬만한 내공을 지닌 전문가가 아니면 그걸 모두 꿰뚫어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문화정책이 중요한 정책공약에서 빠지거나, 집어넣는다 해도 맨 끝 줄 정도나 차지하는 것은 예나 이제나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문화와 예술이 아직도 정치나 경제, 사회와 교육, 복지 분야에 견주어 우선순위에서 밀려야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렇지 않다면 문화와 예술에 대한 후보들의 무지 때문일까? 이날 등장한 각 당의 정책 입안자 중에는 그런 점을 의식했는지 이제는 문화가 다른 분야에 밀려서는 안 되며, 나아가 그 모든 것들을 이끄는 시대가 되었다는 전제를 던지는 이도 있었다.

각 후보 진영이 들고 나온 정책 청사진에는 기초예술에서 문화산업까지, 문화유산에서 현대의 생활예술까지, 심지어 체육에서 관광까지 다양한 분야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크게는 문화정책의 철학과 원리는 물론 아주 디테일한 지역정책까지 고르게 담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보였다. 여기에 각 당의 정책들을 사전에 꼼꼼히 뜯어보고 비교해본 토론자들도 입추의 여지없이(정말로!) 들어 찬 청중들의 이해를 돕는 데 한몫을 하였다. 크고도 심연한 경지에서부터 아주 실무적인 영역에까지 그들의 내공이 발휘되는 장면은 경청의 재미를 더해주기도 했다.
문화정책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함께 한쪽에서 공약발표를 지켜 본 필자는 그중에서 체육과 관광, 문화산업의 영역은 제외하고 각 당의 공약을 비교 정리를 해본 후에 그간 얻어 들은 얇은 지식으로나마 나대로의 짧은 소견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각 당의 정책들을 우선 표로 키워드식 정리를 해봤다.
토론자들의 의견도 간단하게 요약해보기로 한다. 토론자들은 각 당별로 정책의 장단점을 제시했는데, 더불어민주당에는 기존 정책의 실패를 고치는 단기적 수선 모토를 넘어서는 10년 대계로 읽기에는 미흡하며, 문화생태계를 이루는 유권자 골고루가 수혜를 입을 수 있도록 설계된 반면 중앙정부가 개입하여 지대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재정적 뒷받침이 수반되어야 하고, 탑다운(top down) 방식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에는 (박근혜 정부 정책의) 지속, 계속사업 정도에 가까워 보인다는 지적과 함께 청년 문화인의 창업유도는 합목적적 측면이 있다 해도 되려 희망고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으며 더욱이 문화적기업 실현을 위해서는 관련 법률의 개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므로 세수감소라는 문제가 있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있다는 의견을 표시했다. 국민의당에는 문화다양성의 국제교류선도까지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한편 대통령과 (다른 부처) 장관은 독임제인데 문화부문만 자치, 자강성격의 위원회를 고수할 경우 정책동력은 상실하고 책임경영을 할 수 없게 하는 방임과 무질서도 우려된다는 걱정을, 바른정당에는 독서르네상스 같은 창의적 사고를 부추기는 정책은 반갑지만 후보의 사드배치 찬성 등 안보정책 기조 때문에 한류 등이 국제무대에서 외면 받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적시했다. 지역문화재단이 확대되고 있는 국면에서 이에 대한 지원 육성 방안이 미흡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공감이 가는 지적들이다.
필자는 10년 대계 같은 거대 담론1)보다는 문화정책의 4대 기본목표 즉, ①문화와 예술의 진흥 ②국민들의 문화향유와 문화복지 극대화 ③가치관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문화예술교육 ④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 등이 제대로 담겨 있는지, 또 그것들이 디테일한 하위정책으로도 드러나 있는지를 유심히 보았다. ①과 관련된 씨줄과 날줄 정책으로는 창작지원에 필요한 재정확대와 함께 표현의 자유나 창작환경의 개선, 창작예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한 공정한 환경조성, 지원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 등이 중요할 것이다. ②와 관련된 것들은 예술인복지, 생활문화, 지역균형발전 같은 정책들일 것이고 ③은 대부분 생활문화 영역으로 넣어 놨지만 학교와 사회기관을 통한 교육으로 시행이 될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④는 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 가치재생산과 활용 같은 하위 사업들을 포괄한다. 이렇게 볼 때, 일부 정당들은 이들을 골고루 정책에 반영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정당들은 이런 고려를 덜한 듯하다. 특히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문화유산 분야를 정책안에는 반영하지 않았다. 바른정당은 문화기관의 독립성이나 협치 같은 부분도 다루지 않았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기초설계단계 정도인 때문으로 이해를 할 수도 있겠다.

필자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화려한 수사로 분장한 미래 정책도 중요하겠지만(그런 것들은 잘 믿지도 않거니와 보다 장기적인 논의와 법률적 뒷받침이 필요한 것들이다), 현재 환경에서 그간 소홀히 했던 것들을 먼저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 사상누각이 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필자가 ‘공연예술생태계는 건강한가’에서 다루었던 생태계의 사각지대를 꼼꼼히 살펴 이를 정상화하는 정책을 먼저 권하고 싶은 것이다. 이를테면 진흥과 향유, 복지와 교육 모두에 중요한 지역문예회관을 비롯한 문화시설 운영의 정상화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이 완성도가 높아 보인다.
각 당이 발표한 정책들이 모두 실현이 된다 해도 정말로 행복한 문화국가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점진적인 진화는 될 것이다. 그러니 하나하나 빛을 발하도록 챙겨야할 곳에서는 확실하게 챙겨주기 바란다. 거기에다가 어떤 토론자도 말했듯이 어느 당이 정권을 잡건 다른 당의 좋은 정책도 주저하지 말고 수용하기를 바란다는 하나마나한 당부를 끝으로 덧붙여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