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춤」 - 對談

박용구 (朴容九 / 평론)
조동화 (趙東華 / 본지 발행인)

■ 때 : 1984년 11월7일 오전11시
■ 곳 : 본지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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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부 공문이 몰고 올 무용계의 황폐화 현상
조동화 _ 원래 우리들 대담은 두 달에 한 번씩 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만 갑자기 대학 무용교수에 대한 문교부 공한(公翰)이 날아들었고, 「대한민국무용제」 이야기도 다음 달이면 김이 빠질 것 같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박용구 _ 꼭 달을 정할 필요는 없겠죠. 시기적절하게 해야 할 때는 언제든지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조동화 _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문교부가 무용교수들에게 공문을 보냈습니다. 요지는 무용교수들 발표회에 출연하는 학생들에게 의상비를 부담시키면 안 된다는 것을 주제로 해서 해외공연규제, 비정상적으로 운용되던 교수연습실 폐쇄 등에 관한 것입니다. 얼핏 듣기엔 이 공문이 타당성이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이 몰고 올 무용계의 황폐화 현상을 예상하면 문교부란 정말 정세도 어둡고―사태파악을 못하고 경륜도 없는 한갓 권위주의적 부처에 지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떡방망이로 내려쳐서 꼽추등만 펴면 된다는 식이지 사람 죽는 건 개의치 않는 그런 식이란 말입니다.
우선 대학교수가 매년 발표회를 갖지 않을 수 없는 원인부터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 무용대학의 교수는 의무적으로 매년 한 편의 논문을 제출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발표회로 논문을 대신할 수도 있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실기(實技) 중심의 무용교수들이니까 논문보다는 발표회 쪽을 택하는 것이 당연하고―그래서 매년 하게 되는데 교수 혼자서는 발표회가 될 수 없는 것이니까 학생이 동원될 수밖에 없고―출연하려면 당연히 의상이 필요하니까 최소한의 의상비는 학생들이 부담하는 것―이것은 당연합니다. 또 무용은 대학생 때부터 공연경험을 쌓는 것이 절대 필요하고요― 때문에 대다수 무용과 학생들은 공연형식의 발표회를 원하죠. 그런데 공교롭게 중앙대 무용과생들이 요즘 유행인 교내 데모에 힘입어 이런 문제까지를 들고 나왔다는 데서 문교부는 데모 요인 제거라는 차원에서만 생각, 그에 따른 결과는 생각지 않고 공문을 내려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대학 당국은 해당교수에게 제재조치를 강구하려고 든다는 이야긴데 그렇게 되면 무용교수는 수난당하게 될 것이고, 결국은 모처럼의 한국 무용 중흥은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박용구 _ 신문을 보고 한 마디로 문교정책의 무위무책이 그냥 드러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지만 하면 된다는, 그러니까 전체문제는 어떻게 되든 그저 불똥이 떨어지면 금지로 그냥 목을 졸라버리면 된다, 는 발상밖에 못하는 문교부라는 데 문제가 있고 대학자체도 졸렬해요.
우리나라는 공연 즉 퍼포먼스(performance)와 발표회(recital)의 구분이 안 돼 있는 나라잖아요? 조 선생이 말씀했지만 그런 발표회의 의상비란 가령 미술의 경우 학생들이 캠퍼스와 물감을 사는 것과 같거든요. 당연히 이것은 학생들이 돈을 내고 사야 되는 거죠. 발표회를 함으로 기량들이 올라가는 것인데 어떻든 웃기는 얘기고. 허나 무용을 공연예술로 길러가기 위해서는 무용연구소를 활성화시켜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외국처럼 연구소에서 실기레슨을 받으면 대학이 그 실기학점을 인정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그래서 정말 이제부턴 작품이나 퍼포먼스를 가지고 자기의 삶을 불태우겠다는 사람들이 나와서 살 수 있는 길, 이 사람들이 모여서 바로 연구소를 만들고 전문가를 기르고 하면서 말하자면 발표회 형식이 아니고 공연활동을 시작하는 이런 시기가 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스튜디오 시스템을 양성화시키는 그런 정책이 있어야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퍼포먼스(공연)와 리사이틀(발표회)의 성격이 다른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널리즘에서도 발표회에는 관심을 안 갖는 것이 옳고.

교수들의 변칙 연구실 운영은 규제돼야
조동화 _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대학무용과 경영이랄까 제도 같은 것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이름이 대학무용과지 실제는 ‘김매자 이화여대 출장소’ 아니면 ‘이대 전속 육완순 현대무용연구소’ 아니면 ‘홍정희 이대 발레도장’―결국 이런 형식밖에 안 된 것 아닙니까.(웃음) 이화대학만을 예를 들어 안 됐습니다만 우리나라 대학무용이란 모두가 한 사람 중심 경영―입학에서 졸업 때까지 거의 그 한 선생한테서 배우게 돼 있단 말입니다. 이건 다양한 학문을 접해서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이 아니고 “나를 닮아라, 나를 닮아라.”로 강요당하는 도제(徒弟) 수련장 같은 인상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교수들은 자기 이외의 다른 연구소나 선생한테서 배웠다고 하면 기분 나빠지고, 그래 두고 보자―하는 식이 될 수밖에 없어요.
선생님께서 스튜디오 시스템을 말씀하셨지만 지금 당장 문교부 공문지시에는 맞출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현상파악 안 된 공문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 아닙니까. 학교가 의상비를 모두 대주는 발표회, 시내연구소에서 자유롭게 학점을 딸 수 있는 대학제도―아직은 그런 시기가 아닌데 문제가 있는 거죠.(웃음)
사실 대학에 무용학과가 생기면서 유능하고 이름 있다는 무용가들은 거의 교수로 채용됐습니다. 거꾸로 말해서 그러니까 대학에 뽑히지 못한 무용가는 교수들 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 성립되죠.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의 연구소에서 얻은 학점을 대학에 인정시키기란 힘들게 된단 말입니다.
박용구 _ 앞에서도 말했지만 문교부란 곳은 말썽이 생겼다고 하면 근본원인을 캐지 않고 무조건 그 부분만 자르면 된다는 식이니까…. 문교부 얘기는 더 할 필요가 없어요. 그걸 뭐라고 할 말 없잖아요. 제대로 되려면 퍼포먼스를 지향하는 연구소가 활성화돼야 하는데…, 이젠 빠르던 늦던 그런 시기가 왔다고 생각되는 것이 각 대학의 무용과가 매년 많은 졸업생을 내는데 그들이 갈 곳은 연구소밖에 없어요.
조동화 _ 그렇지만 무용연구소가 안 되는 이유도 대학입시제도에 원인이 있습니다. 인지상정으로 입시생들은 지망대학 무용교수나 그와 연결되는 조교들한테서 레슨 받아야 입학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실이니까 그렇지 않은 연구소에서는 충족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또 대학생은 대학생대로 도제식 교육이니까 터놓고 연구소에 갈 수도 없고―여기에 공급이 딸리는 교수들은 다른 사람의 연구소를 빌리든지 아니면 공개되지 않은 연구실을 차리고 변칙적 행위를 합니다. 다만 교수들의 이런 변칙행위에 대한 금지만 이중직이란 차원에서 규제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문교부의 공문을 환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대학교수들이 누리는 특권 같은, 횡포 같은 그런 것을 아니꼽게 생각해온 연구소 경영자들이죠.
큰 한국무용계 발전이란 명분에서 보면 이건 질투의 감정이 아니냐고 할 수 있으나 사실은 그들의 생존문제와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문교부 공문은 지금까지 잠재적으로 있던 대립을 노골화시킨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제 생각으로는 일단 문교부는 그 공문은 재고해야 하고 대학과 연결되는 무용연구소의 활성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어떤 수준의 연구소면 대학과 연결될 수 있을까. 그러니까 규모, 시설, 교수들까지를 포함한 출강진 자격 기준 같은 것―뭔가 현재 다른 나라에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특유한 교육제도 속에서 색다른 회의, 연구 같은 것이 바람직합니다. 문교부 안(案)대로 밀고나간다면 오늘의 한국의 무용은 20년은 후퇴됩니다.
박용구 _ 동감입니다. 이번 문교부 지시 중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없지 않아요. 그것은 외국 나갈 때에 학생들에게 돈 받아서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이것도 문교부가 무턱대고 안 된다는 것으로는 안 돼요. 왜냐하면 요즘 방학 때면 미술대학은 미술대로, 불문과는 불문과대로, 해외연수를 권장하고 실제로 그렇게들 떠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무용도 그런 것과의 균형도 생각하는 방법론이 제시돼야죠. 지금까지는 무용의 기량보다 돈을 낼 수 있는 학생들만을 모아서 외국공연을 한다는데 외국에 가면 마치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단처럼 돼버리거든요. 미국이나 불란서라든가 교류가 많은 나라 같으면 상관없겠지만 우리처럼 알려지지 않는 나라의 경우는 그 공연이 바로 한국의 무용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지적은 잘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동화 _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 그 많은 무용협회들이 숨을 죽이고 아직까지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권익옹호를 위해 존재하는 협의체라는 곳이 어떻든 굉장한 사건인데 좋든 나쁘든 한 마디 없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됩니다.
박용구 _ 한 마디로 부끄러운 일이고 창피한 일이죠. 특히 나라에서 원조를 받고 있는 무용협회가 아무소리 안 한다는 것은 직무유기가 아닙니까.
조동화 _ 글쎄 말입니다. 완전히 숨통이 막힌 모양이죠.(웃음)
박용구 _ 우리 무용계는 너무도 약해요.
조동화 _ 그렇습니다. 단결된 힘이 아쉽습니다.

‘무용제’에 대해 모두 침묵이군요
조동화 _ 매년 「대한민국무용제」가 끝나면 심사결과에 대해 말이 많았었는데 올해는 의외로 그런 말이 없어서 오히려 불안한 감이 듭니다. 노벨상도 마찬가지지만 영광이 따르고 상금이 따르는 상에는 으레 그와 정비례되는 뒷소문이 있는 법이고 그렇게 돼야 그만치 관심의 표정이기도 한데 이번 무용제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표정들이 없으니 오히려 불안한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하기야 무용제가 6년째 접어드니까 이제는 우리 무용제도 성숙해져서 그런 것이라면 몰라도 어딘가 체념의 분위기에서 오는 인상이어서 하는 말입니다. 이번 무용제 심사위원장으로서의 박 선생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박용구 _ 사실 저도 이번에는 뒷소문이 많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조용한 것은 이상하군요. 작년에도 심사를 맡았었는데―작년에는 심사가 한 시간으로 끝났어요. 아니 한 시간도 못될 정도로 스마트하게 끝났어요. 그런데 올해는 저녁 6시에 시작해서 9시까지 세 시간이 걸렸어요. 그러고도 저 자신 개인으로선 그 심사결과에 불만이 많고요. 그러나 결정된 것이니까 그대로 승복하는 것이 당연하고요. 그렇지만 뒷얘기가 없다는 건 참 뜻밖의 일이네요.
어떻든 이번에 느낀 것은 이제는 경연식의 무용제로는 한계가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연형식으로 할 때 제일 막강한 파워를 가지는 것은 결국 심사위원이 아니겠어요. 처음에 작품과 출연자를 선정할 때도 작품은 보지도 않고 참가자 신청을 낸 무용단과 작품명과 약간의 해설만 보고 결정하니까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지요. 이렇게 선정한 것을 갖고, 다시 그 심사위원들이 심사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심사위원의 경우도 평가기준이 다 자기 나름대로 주관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결코 통일된 기준이 없는 거지요. 사실 이렇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자기가 택한 길을 최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껏 자기 식으로 해왔고, 그것이 그의 평가기준으로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무용제에 출품하는 작가들 중에는 창작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왜냐면 높아졌기 때문에 각자 모두 개성을 가져서 이 개성이 심사위원에 의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세계가 동떨어지면 표를 얻을 수 없는 것이 되죠. 그러니까 이젠 작가들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도 되고. 그래서 이렇게 성장하고 보면 이제는 경연형식으로 가는 것이 난센스다―그것은 기성 무용가들의 평가기준에 의해 새로운 개성이 말살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경연형식은 벌써 한계가 온 것이다―이렇게 생각합니다.
외국의 경우도 그렇지만 콩쿠르란 신인들이 나와서 역량을 겨루는 것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심사결과에 대해서 아무 말이 없었다는 것은 오히려 이런 경연형식에 대해서 이제는 관심이 없어진 것이 아닌가, 그렇게도 생각되는군요. 그러니까 이제 옳다, 그르다하는 뒷공론이 없어서 조용한 것이 아니고 관심을 잃고 있다는 네거티브한 면에서 봐야 되지 않나 생각되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마지막 날의 『나의 자서전』과 같은 작품과 『살푸리-다섯』을 본 관객이라면 내가 한 말의 뜻을 충분히 이해할 거예요.

이제는 축제형식으로 가야 해요
조동화 _ 그런데 이제까지는 무용제를 경영방식으로 해야 할 이유가 있었고 그래서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연제이기는 했었으나 사실은 절충 안배식이 아니었습니까. 잘해도 이미 상을 받은 팀은 다시 주지 않는다는 묵시적 원칙이 있었으니까요. 만일 페스티벌 형식이었다면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모두가 제멋대로 돼서 무용제의 격이나 수준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고―그러나 경연식이었으니까 잘하는 팀은 계속적으로 참가시켜서 무용제의 수준을 유지시키면서 아닌 것은 배제할 수 있었지 않았나―그러니까 결국은 초청형식이 되고 페스티벌 형식이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번 지방에서 심사위원을 많이 등용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물론 상을 지방에서 모두 휩쓸었다는 대목에서 모두들 침묵이 되고 말기는 했습니다만 어떻든 엄격한 경연이 될 수 없는바에 심사위원이라는 것도 어떤 의미에선 형식일 수 있으니까 그런 영광스런 자리도 골고루 분배시켜 모두에게 주인의식을 갖게 할 필요가 있거든요. 이번 서울 출연자들 중에는 노골적으로 지방 심사위원들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를 터뜨리기도 했어요. 그러나 별 탈 없이 치른 것은 그런대로 우리 무용제는 그런 거라고 인식됐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제는 페스티벌 형식으로 검토해볼만한 시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연극제’도 페스티벌 형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 장점과 단점에 대해 그쪽에서 신중히 대처하는 인상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음악제’나 ‘국악제’는 완전 축제형식인데요. 만일 우리 무용제가 음악제처럼 축제형식이 되어 외국서 활약하는 팀 한두 개 정도 불러들일 수만 있다면 확실히 발전된 형체가 될 수 있겠는데요. 우리끼리만의 경합은 이젠 사실 도토리 키재기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보다 많은 무용가 이름을 알려야
박용구 _ 지방 심사위원에 대한 건데 지방세가 상을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는 것, 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웃음) 그러나 아까도 잠깐 언급됐듯이 그런데 침묵현상이 났다면 이것은 지방세를 부추겨준 효과보다는 무용제를 무력화하고, 관심없게 하는 결과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는 이것저것 다해 보았으니 좀 더 발전된 형식이 바람직하지 않겠나 하는 거지요. 그것이 축제형식이다 그 말입니다.
조동화 _ 알겠어요. 그런데 무용제 초청하는 방법에 대한 건데요.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예컨대 단체이름은 억제하고 개인이름을 뽑는다는 원칙, 물론 우리의 실정으로는 개인이나 단체나 결국 같은 내용일 수 있으나 그렇더라도 개인이름을 내세운다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은 생각이란 말입니다. ‘가림다’니 ‘창무회’니 ‘발레블랑’이니 ‘애지회’니 하는 이런 단체는 우선 성격이 짐작되지 않고 기록의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특히 보다 많은 무용가를 소개하고 탄생시켜야 할 좋은 기회에 이런 단체 이름 때문에 개인이 가려진다는 것은 낭비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말하자면 ‘국수호’니 ‘이정희’니 하는 식으로 많이 알려야 하고 그것이 바로 무용제 때가 가장 좋은 기회다 하는 말입니다. 어떻든 생각만 잘 하면 사회 속에 우리 무용가를 더 많이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런 생각을 해왔습니다. 예컨대 베를린필하모니 보다는 카라얀이 훨씬 의미가 있고 매력적일 수 있어요. 또 누레예프나 마고트 폰테인이 비엔나 발레단보다 관객을 더 많이 끌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도 효과적으로 무용가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잘 이용해 어떻든 사회적인 위치향상도 됩니다.
박용구 _ 그 말을 들으니 그렇게 생각되는군요. 말하자면 작품세계에 대해 한 사람이 책임을 지라는 얘기도 되고….

무용제 운영을 민간단체로의 이행
조동화 _ 이건 좀 다른 얘깁니다만 문예진흥원에서는 몇 년 전부터 무용제를 민간단체에 이양하겠다는 말을 하는데 연극제의 경우는 연극협회가 맡아서 하겠다는 태도를 굳힌 것 같았습니다.
박용구 _ 좋은 생각이나 그럼 무용제를 무용협회에 맡긴다는 건가요. 그곳은 신무용하는 사람이 주동된 곳이 아닙니까? 연극협회 경우는 모든 연극단체가 그 속에 통합돼 있으니까 별문제 없을 테지만 무용협회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지 않아요.
조동화 _ 그러나 그곳은 정부가 공인하는 예총산하의 무용협회라는 의미가 있죠. 하지만 발레협회, 현대무용협회, 한국무용연구회 등 실제 무용협회 산하 회원보다 공연실적도 회원수도 많이 있는 협의체들이 따로 존재하고 모두들 1대1의 입장이라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박용구 _ 무용펜클럽도 있어요. 앞에서도 말이 나왔지만 이번 문교부 공문사태에 대해서 의당 무용협회는 공식적으로 뭐하고 해야 할 의무가 있었는데 말 한 마디 없는 그런 곳에 이런 특권을 맡긴다면 말이 안 되죠. 무용협회가 이 사건에 침묵하고 있었다는 것은 권리포기라고 봅니다.
조동화 _ 무협이 신무용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연구소 경영자들이 주동됐다는 표현이 옳을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교수들의 입장과는 견해가 다를 수도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박용구 _ 어떻든 견해는 견해고 명분은 명분이니까요. 무용제 운영은 모든 협의체가 연합된 형체의 그런 기구에 맡긴다면 몰라도 무용협회만으로는 도저히 안 되죠. 그렇게 한다면 명실공이 「대한민국무용제」는 형성되기 힘들 것으로 믿어요.
조동화 _ 문예진흥원이 무용계의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경솔하게는 않을 거예요. 그런데 무용제를 치르면서 보니까 문예진흥원 같은 곳은 형평의 원칙이란 것이 있더군요. 물론 공무원적인 공평성, 그것은 너무 기준이 낮고 무기력하게 보여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무용제 같이 모두를 참여시키는 큰 잔치를 치른다 할 때에는 그 방식밖에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만일 무용제를 어느 한쪽의 예술가집단으로만 옮긴다 할 때 정말 공평을 기할 수 있을지 문제가 없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용제 기간 중 다른 공연
조동화 _ 이번 무용제 기간 동안 ‘오은희(吳恩姬)의 춤’이 있었습니다. 이 공연은 춤추는 사람은 전문적으로 춤만 추고 안무하는 사람은 안무만 하는 식으로 전문성을 독립시킨다는 주장으로 공연했는데 안무는 배정혜(裵丁慧)가 하고, 춤은 오은희였습니다.
박용구 _ 『대화(對話)』라는 작품이었어요. 오은희는 별로 이름도 모르던 무용가인데 ‘끼’기 있더군요. 아주 괜찮았어요. 상상 이상으로 표현력이 있었고 춤이 좋더군요. 배정혜는 그전에 『타다 남은 재』 때 안무력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 인정된 것인데요, 이번에 한 작품에서 다시 그것을 확인했어요. 그런데 너무 길게 끌거간 것은 자기 과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어요. 하여튼 흰옷만 가지고 땅과 하늘과…하는 아주 크게 잡은 추상적인 테마로 그만한 무용언어를 구사했다는 것은 역시 역량 있는 무용작가라고 인정하지만 한 시간 넘어 끌고 가기에는 문제가 있었어요. 모두가 지쳐버렸으니까요. 전 그렇게 봤어요.
조동화 _ 배정혜의 ‘과신’이란 말씀에 저도 동감입니다만 그만치 힘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관객에게 “이래두냐”, 하는 식으로 끝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 것은 대단한 힘이 아니고서 안 되니까요. 오은희의 ‘끼’라는 말씀, 뭐랄까요. 오은희의 춤에 드라마가 있있어요. 국수호의 춤을 그래서 저는 괜찮게 봅니다만 이들의 춤에는 낭비라는 것이 별로 없거든요. 춤은 연기력까지를 포함해서 말하는 것입니다만 잘 추는 춤에는 연기라는 것이 확실히 별개의 또 다른 광채로 나타나거든요. 말하자면 최면성 같은 것, 끼를 그렇게 표현하면 어떨까요.
박용구 _ 1950년대에 동경에서 모스크바예술좌의 공연을 보던 기억이 나는군요. 체호프의 「세 자매」였는데, 그 이름이 당장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이리나’였을 거예요. 얼마동안은 자나 깨나 그 영상에 홀렸었어요.(웃음)
조동화 _ 아마 박 선생이 돈 있는 귀족이었다면 헌신적인 후원자가 되지 않았을까요.
박용구 _ 그래서 스타와 파트론의 관계가 무대예술을 키워주기도 하고요.(웃음)
조동화 _ 바쁘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전: 본지 1984년 12월호(통권 106권) 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