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의 서울유레카

나는 영화칼럼니스트라는 직업상 연간 300편이 넘은 영화를 본다. 또 일본에 한국영화를 소개하다보니 한국영화를 주로 본다. 한국영화에 일본인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일본인의 전형은 거의 비슷하다. 서양영화에 등장하는 일본인이 신비감을 가진 동양인이라는 전형을 갖고 있다면, 한국영화에 그려진 일본인은 지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나쁜 놈이다. 사실 일본인인 나로서는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이 감수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더라도 좀 더 다양한 일본인 전형이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본영화에서 한국인은 대체로 우호적
그렇다면 일본영화는 한국인의 전형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일본영화에 한국인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45년 전부터이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영화에 그려진 한국인은 대체로 우호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남아 있는 필름 중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자네와 나(君と僕)」(1942년)라는 영화가 있었다. 군대를 무대로 하여 조선인 병사와 일본인 병사의 우정을 그린 영화인데 그 당시 일본정부가 외치던 “내선일체” 정책으로 인한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내선일체’를 외치는 의미를 생각하면 일본이 한국, 그 당시 조선을 감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뒤떨어진 민족에게 근대화가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오만함이 숨어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차별성을 없애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조선이 해방되면서 속죄 의식 때문인지 일본영화에서도 한국인을 그리는 모습이 변했다. 식민지지배와 민족차별의 잘못을 반성하는 입장을 명확하게 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코바야시 마사키(小林正樹) 감독의 「벽이 두꺼운 방(壁あつき部屋)」(1956년)은 한국인 전범을 낳게 한 황민화정책을 단죄했다. 이마이 타다시(今井正) 감독의 「저것이 항구의 불빛이다(あれが港 の燈だ)」(1961년)는 이른바 이승만 라인 안에서 조업하는 일본인 어부 속에서 일하는 재일교포의 존재를 그리면서 일본인이 한국인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 점을 규탄했다.

특히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감독은 제일교포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혹은 과격하게)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그렸다. 1958년에 실제로 일어났던 재일교포 소년에 의한 여고생 살인사건인 일명 ‘코마츠가와(小松川) 사건’을 영화화한 「교사형(絞死刑)」을 발표했다. 코마츠가와 사건은 범인인 이진우(범행 당시 18세)가 범행의 원인이 민족 차별 때문이라 자백하여 그 당시 문화인을 중심으로 ‘이진우군을 살리는 모임’이 결성되어 피해자인 여학생의 부모조차도 “교도소에서 나오면 자기 회사에서 고용하고 싶다”고 밝힐 정도로 재일교포 차별 문제가 클로즈업이 되었었다.
영화는 교사형을 집행하다가 실패하여 기억상실증이 된 소년 R에 대한 이야기이다. R은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자신이 저지른 죄를 기억하지 못한다. 일본의 헌법상 범인이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사형을 집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검찰은 R의 기억을 되찾으려고 하고 억지로 인정시켜서 형을 집행한다. 오시마 나기사는 조선민족을 떠나 소년범죄에 대한 법의 대응과 민족차별을 이 영화 속에서 고발하는 명작으로 뽑히지만 그 당시 흥행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오시마 감독의 또 다른 작품 「잊힌 황군(忘れられた皇軍)」(1963년)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재일교포들의 모습을 소개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동성애를 그린 영화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戰場のメリ─クリスマス)」(1983년)에서는 외국인 포로와 조선인 병사의 간통을 그린 장면이 등장해 조선인 병사는 간통한 죄로 참수된다.

오시마 나기사가 생전에 자기 작품에 한국인들을 등장시킨 이유 중 하나로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의식을 혐오했다는 점을 꼽기도 했다. 1994년에 일본군 병사였던 성성기, 진석일이 군인시절 장애인이 되었는데도 일본정부로부터 보상을 못 받았다고 해서 동경지방재판소에 소송을 걸었으나 기각됐다. 이 재판을 방청석에서 지켜봤던 오시마 나기사는 “일본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코멘트를 내기도 했다.
그는 교토대학 출신인데, 학생시절부터 학생운동에 빠져 학생회장까지 맡았었다. 대학교를 졸업해도 그를 고용하는 기업이 없었다. 겨우 붙은 것이 쇼치쿠영화사라 영화인에 길을 걷게 되었다. 그도 또한 차별당한 존재였던 것이다.

재일교포의 생활고가 주 소재
앞서 열거한 재일교포에 차별에 대한 고발성 영화가 있었던 반면, 미담으로 한국인을 그린 영화도 있었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은 작은 탄광촌에 사는 남매들의 삶을 그린 「둘째 오빠(にあんちゃん)」(1959년)를 발표했다. 원작은 나도 어렸을 때 읽은 적이 있는 재일교포 소녀의 수기였으며, 빈곤 속에서 사이좋게 서로 돕고 사는 남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그 남매가 재일교포였다는 사실은 내가 성인이 된 후에 알게 됐다. 어린 나는 재일교포문제를 의식하지 못했으나 막연하게 생활고에 시달린 사람들이 있다는 인식정도를 갖고 있었다.

「용선로가 있는 거리(キュ─ポラのある街)」(1962년)에는 주인공인 일본인 소녀의 친구로 재일교포 소녀가 등장한다. 친구 아버지는 ‘지상낙원이라 불리던 북한’ 귀국사업에 동참하려 했다. 일본인 어머니는 자신이 북한으로 가는 것에 불안했지만 결국 북한행을 결정한다. 일본인 소녀는 북한으로 가는 친구를 보내면서 너희 나라에 돌아갈 수 있어서 잘 됐다고 말하는 대사가 있다. 물론 북한에서는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 당시 사람들은 몰랐다. 그런데 조총련계 재일교포가 북한행을 선택한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당시 일본에서의 생활이 고달퍼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는 미담으로 각색되지만 그 속에 재일교포들의 생활고 문제가 사실 숨어 있었다.

다양해지는 한국인 모습
1980년대가 되면 일본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더 다양성을 가지게 된다. 이지츠 카즈유키(井筒和行) 감독이 찍은 「아귀제국(ガキ帝國)」(1981년)은 오사카를 무대로 한 고교생들의 청춘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에는 재일교포 고등학생들이 등장해 그들이 한국어로 대화하는 장면도 자주 등장하는데 그때는 일본어 자막이 붙었었다. 이지츠 카즈유키는 후에 재일교포 여학생과 일본인 남학생의 사랑을 그린 청춘영화 「박치기(パッチギ)」(2005년)를 찍었으며, 「황금을 안고 날아라(黃金を抱いて翔べ)」(2012년)에는 북한 공작원을 등장시켰는데 한류 아이돌 동방신기의 창민이 분했다.
오구리 코헤이(小栗康平)의 「가야코를 위하여(伽倻子のために)」(1984년)는 재일교포 작가인 이회성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1960년대의 북해도와 동경을 무대로 재일교포 2세인 청년 임상준과 한국인과 일본인 여성 사이에 입양되어 자란 일본인 양녀 가야코의 사랑과 이별을 그리고 있다. 한국인이 등장하는 일본영화에서 이렇게 지적으로 인간의 내면까지 그린 영화는 이때까지 없었다. 인간과 시대를 지켜보는 표현자로서의 시선이 잘 표현된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또한 재일교포의 원작 소설을 처음으로 영화화한 일본영화이기도 한다.

1990년도에는 북한의 핵실험 등이 문제가 되면서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언급한 평론서나 소설들이 많이 발표됐다. 그중에 1999년에 소설로 발간돼 영화화된 작품으로 「망국의 이지스(亡國のイ─ジス)」(2005년)가 있다. 이 영화는 북한 공작원과 함께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의 선장이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이다. 엔딩은 말할 것도 없지만 소위 북한 영향력이 증대된 1990년대의 국제정세를 반영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1990년대가 되면서 재일교포 감독들이 자신의 존재를 묻는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대표 주자는 일본영화감독협회의 이사장이자 한국영화 「수」를 감독한 최양일 감독이 찍은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月はどっちに出ている)」(1993년)이다. 재일교포 소설가인 양석일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며 제작은 이봉우 등 재일교포들에 의해 맡았는데 재일교포들의 실태를 그렸다. 택시 운전기사인 주인공과 필리핀인 술집 여자와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며, 북한에 있는 형제를 위해 돈을 숨겨서 소포를 포장하는 장면 등 재일교포만이 알 수 있는 소재들을 담고 있었다. 최양일은 일단 오락영화를 찍으면서 역시 양석일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피와 뼈」를 영화화해 같은 재일교포들의 세계를 그렸다. 오래 전이지만 최양일 감독이 나에게 제주도 4·3사건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아직 실현되지 못했지만 언젠가 찍을 거라고 믿는다.

최양일 감독과 함께 요즘 일본영화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재일교포 감독으로 이상일 감독이 있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분노」가 개봉되어 한국 팬들도 다수 확보한 감독이다. 그는 영화학교 졸업 작품으로 「청(靑~chong~)」을 발표하여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아 2001년에 극장 개봉을 하게 됐다. 「청」은 조선학교 야구부 소속의 소년이 주인공이며 일본사회와 일본인에 대한 불만을 안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이상일 감독 자신이 북한계 학교인 조선학교를 다녔었다. 이상일이 야구부 부원이었다는 점에서 감독 자신의 모습이 투영한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이 영화를 계기로 상업영화에 입봉 해 일본영화계를 견인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본 영화의 역할
그런데 내가 본 일본영화 중에 가장 한국인을 의식한 영화는 하라다 마사토(原田眞人) 감독의 「가미카제 택시」이다. 영화 자체는 한국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폭력조직에 새로 들어간 주인공이 자신을 “미나미 타츠오(南達男)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보스는 바로 “남달남이군”이라고 한국 이름으로 대답한다. 이 짧은 한마디에 보스는 한국계이며 조직원도 역시 한국계라는 일본인이 재일교포를 보는 시선을 그려져 있다. 옛날에는 “재일교포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파칭코 집이나 폭력조직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비하하는 대사를 확실하지 않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극단적인 대사지만 어쩌면 일본에서 재일교포 사회의 현실을 단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21세기가 되면서 일본과 한국이 문화적으로 가까워졌다. 이른바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시작한 한류가 드라마 「겨울연가」를 계기로 일본에 상륙했다. 그때부터 일본영화계도 한류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 전까지는 일본인 혹은 재일교포들이 한국인 역을 맡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아예 한국인배우가 일본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그런데 대부분이 남자배우이고 한국남자와의 낭만적인 사랑을 기대하는 멜로물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다 요즘은 한류가 시들면서 한국인 배우가 일본영화에 출연하는 일이 줄어든 것뿐만 아니라 일본영화계에서 한국을 소재로 한 영화자체의 제작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한국인 배우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는 배우는 카라의 전 멤버였던 지현이다. 그녀는 한국인 역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아예 일본인 역으로 분하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류가 아닌 한 명의 연기자로서의 도전이라 볼 수 있으며 성공한 케이스로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요즘 한국영화계에는 지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쿠니무라 준(國村準) 등 일본인 수요가 늘어나고 있으며, 일본의 많은 A급 배우가 한국영화에 출연하거나 출연을 고려중이라고 들었다. 영화에 출연하는 외국인 배우는 어떤 면에서 그 나라의 얼굴이기도 한다. 배우의 다양성은 영화의 다양성으로 이어갈 것은 분명하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생각한다면, 대중문화에 있어서 영화의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영화의 다양성의 역할은 클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