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살롱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은 특검의 엄중한 조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가결을 거쳐 법원이 대통령을 구속하면서 절정에 이른 듯하다. 앞으로 세 번의 사법적 판결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옳고 그름이 가려질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가결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예기치 않은 상황을 야기했다. 진보계열의 대통령 후보들은 하나같이 대통령 탄핵사유의 하나였던 블랙리스트 작성사건을 계기로 하여 예술인과 연극인들 모두의 지원세력이 되기를 자청했다. 그들 중에는 직접 대학로의 한 극장에 와서 연극인들에게 블랙리스트 작성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이로 인해 손해를 본 연극인의 정신적, 재정적 지원에 솔선하겠다는 약속을 한 사람도 있다.
물론 보수 정치인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진보정권 아래서도 예술적 간섭과 편파적 지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니 만큼 박근혜 정권이 이의 시정을 위해 진력했다고 해서 무엇이 잘못이냐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잘못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이것을 은밀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바깥으로 유출되는 어리석음을 노출했다는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실제로 연극인들이 개인적으로 이러한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의 어느 쪽에 호응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검열과 블랙리스트 작성이 위법적이고 비문화적인 행위라는 것이 확실한 이상 연극인들의 항의와 이를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 연극적 실천에 대해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이 광화문 광장에 시민들과 함께 블랙텐트 극장을 설치하고 민주주의와 예술의 존엄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연극공연을 무한정 지속하는 것을 나무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광화문 광장의 블랙텐트 극장에서 공연한 「빨간 시」(극단 고래), 「그와 그녀의 옷장」(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극단 드림플레이), 「씻금」(연희단거리패) 등은 구작이냐 신작이냐를 떠나 민주주의와 예술의 위기를 고발하는 역사적 현장에서 시민의 절대적 공감을 얻어내면서 공연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연극예술 고유의 소임을 다했다고 높이 평가할만하다.
앞으로도 블랙텐트 극장에서의 공연은 계속된다. 여기에서 연극인들의 자세와 목표를 다시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첫째는 블랙텐트 극장이 아무리 위안부와 세월호참사의 억울함을 표현한다고 해도 그것은 단순한 한풀이가 아니라 감정적 절제와 품위 있는 표현이어야 한다. 둘째는 어떤 이념과 정치적 패권에 예속되거나 추종하는 것이 아닌 공명정대한 주장과 표현이어야 한다. 셋째는 일시적 상황에 대한 시정이나 미봉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예술의 가치가 영구적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국민, 정부, 연극인 모두의 자성을 촉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분명히 밝혀야 할 일은 이번의 검열과 블랙리스트 작성의 불법적 행위는 정부의 고위직과 공무원만 아니라 이들을 방치한 국민들을 포함하여 연극인들의 책임도 작다고 할 수 없다. 부역자를 자처한 연극인들의 철저한 반성 없이는 그 밥의 그 나물이라는 식의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는 가운데 의식 있는 국민과 연극인을 절망에 몰아넣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