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7일 인쇄
2017년 5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7년 5월호 통권 495호 |2025년 6월 20일 금요일|
 

이달의 좌담

  새 정부 새로운 문화정책을 기대한다
   


 


김경애 (金敬愛 / 춤평론·댄스포럼 발행인 )
박민경 (朴玟京 / 춤평론)
이동우 (李東祐 / 한국춤평론가회 회장)
조은경 (曺恩慶 / 본지 주간)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춤계 세대 교체 본격화
조은경 _ 오늘 춤평론가 세 분을 모시고 춤계의 환경 변화와 전망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5월에 장미대선을 앞두고 있고, 여러 제도와 환경, 특히 제도권의 변화까지 한꺼번에 몰아치는 시기입니다. 여기 맞물려 춤계에서도 한국무용협회 등 세대 교체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때 보다 더욱 성찰과 혜안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박민경 _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이슈 때문에 다른 사회문제들이 눈에 잘 안 띄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통령선거가 큰 이슈여서…. 최근 춤계의 환경에 대해서는 지난 연말 좌담에서 좀 이야기가 되었고, 지금 시점보다는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의 정책이 나오면, 그에 따른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무용사회의 변동’이 2017년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좀 더 큰 틀에서 논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연초에 조남규 교수가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점이 뉴스인 것 같은데, 과연 새로운 인물이 이사장으로 당선될까 의심스럽기도 했고, 김복희 전 이사장의 재차 도전은 춤계 세대교체에 저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했습니다. 「댄스포럼」 4월호에 실린 조남규 신임 이사장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봤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이 임기제한에 대한 언급이었어요. 저는 이사장 임기를 3년으로 알고 있었는데, 4년이더군요. 어쨌든 연임을 한 번만 가능하도록 내규를 개정하겠다는 말로 이해했는데, 단임으로 정하는 게 더 좋다고 봅니다. 굳이 연임을 하겠다면 임기를 2년이나 3년으로 줄인 후에 하는 게 맞겠죠. 아무튼 12년 만에 새 이사장이 취임한 것이어서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 것 같은데, 인터뷰 내용만 봐서는 협회를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것인지 정확히 알기 어려워서 앞으로 두고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한국무용협회의 위상으로 볼 때 이사장 교체가 주목할 만한 사건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요, 근본적으로 변화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협회를 비롯해 다양한 연합체나 조직들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무용협회가 대표성을 갖고 우위를 점하고 있다기보다 어떻게 보면 경쟁관계에 있다고 보이거든요. 문제는 이사장이 춤계 전체의 변화 흐름을 감지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비전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한국무용협회의 변화가 의미있게 될 텐데, 단순히 사업운영을 투명하게 한다거나 어떤 방법으로 사업을 진행하겠다거나 하는 식의 변화만을 꾀한다면 그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크게 봤을 때 다른 점을 찾기 어렵게 됩니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그래도 「젊은안무자창작공연」, 「전국무용제」, 「서울무용제」, 「코리아국제무용콩쿠르」, 「대한민국무용대상」 등 협회가 주최하는 주요 사업들의 운영변화가 협회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가져다주면 결국 다른 협회들에도 영향을 미쳐 춤계 전반적인 변화를 이끌지 않겠는가 하는 측면도 있다는 거예요. 이 점은 좀 더 주의깊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투명성과 공정성의 기준을 어느 선까지 끌어올릴 것인가가 관건인데, 조 이사장이 그 점에서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실행한다면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무용계는 현 대한민국 정계의 축소판
조은경 _ 국립현대무용단, 국립무용단을 비롯해서, 무용역사기록학회, 우리춤협회, 한국현대무용협회 등 크고 작은 다른 단체들의 수장이 바뀌었어요.
이동우 _ 저는 최근의 변화를 조금 거시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요, 정치적으로나 무용계로나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시대적 조류인지 시대의 요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현상이 큰 기대나 희망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4.19 학생의거 때부터 지금까지 변화의 물결이 있었지만, 아직도 나아지지 않고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어요. 그 이유가 우리가 리더를 바꾸기는 했으나 청산은 못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바로 고치려는 저항까지는 좋았지만 논리와 합리성이 없이 감성적으로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부패를 척결하지 못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고 봅니다. 우리 무용계는 현 대한민국 정계의 축소판이에요. 기성세대가 위에서 길을 열지 않고 지금처럼 부동의 자세로 있는 한, 그리고 무용가나 평론가들이 프로필을 배경으로 정치를 하려고 하는 이상, 한국무용협회나 국립현대무용단이나 크고 작은 단체장들이 젊은 세대로 바뀐다고 해도 그 밥에 그 나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좀 있습니다. 과거 푸틴이 장기집권을 할 수가 없으니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앞세웠던 것처럼, 대다수 뜻이 있는 무용인들이 지속적으로 현 상황의 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해 뭉치지 않는 한, 지금의 국정농단의 축소판도 벌어 질 수 있는 가능성은 늘 있다고 봐요. 그걸 잘 예의주시해야 할 것 같아요.

전(前) 세대들이 가진 개척자 정신에 비견할 새로운 리더십의 비전이 있는가
김경애 _ 저는 이렇게 봅니다. 역사는 정치, 사회 변화가 한꺼번에 오면서 문화 역시 역사의 큰 흐름을 타는 것이지요. 이번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선거와 교체를 중심으로 그 전후 1년 사이에 한국현대무용협회 회장, 한국발레협회 회장,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국립무용단 단장 등 리더들이 상당수 바뀌었거든요. 그 바뀐 전 세대와 지금 새로 등극을 한 이 세대의 차이점을 보면 전 세대는 어떤 의미에서는 무용계를 일군 사람들이에요. 그것은 인정해야 됩니다. 무용계를 일구면서 말하자면 무용의 부흥을 이끌었죠. 물론 조건도 좋았던 시대여서, 그 세대는 20대에 교수가 되던 때였어요.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세대들은 윗세대에 조금 위축되어 있었어요. 자신의 꿈을 숨기며 따라간 마인드가 조금 있었어요. 펠로우십은 강한데 리더십은 부족해서, 자기 뜻은 펼쳐보지 못했어요. 그런 면에서 조금 우려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등극을 했는지를 보면, 전 세대와 싸워서 쟁취를 한 거예요. 그 힘이 굉장한 것이죠. 지금의 변화 욕구에 대해 굉장한 힘을 작용한 것이 사실이에요. 이번에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선거를 할 때 표 차이가 상당한 것은 무용계 저변에 흐르는 변화의 욕구가 도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무튼 최근에 벌어진 모든 일들을 보면 다른 물결이 오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전 세대들이 가진 개척자 정신을 얼마나 발휘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인 거죠. 지금 그 새로운 리더십을 보면서 제가 새로운 리더십의 비전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질문을 갖고 있어요. 성취할 수 있는 힘들이 과연 있는가? 왜냐하면 새로운 세대들이 선생님들을 모시고 일을 해봤지, 자기들 일을 스스로 안 해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자신들의 일을 과연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는 더 두고 봐야 되는 거죠.
이동우 _ 윗세대 분들의 개척자 정신은 높이 살 만합니다. 그렇지만 긴 시간에 걸쳐 그 분들이 무용계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일궈놓은 것을 또 자신들이 망쳐놨거든요. 그걸 복원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빈익빈부익부라고, 다시 말하지만 젊은 세대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기득권세대들이 부동의 자세로 버티고 있는 한, 이 짧은 시간 안에 확 바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아직 풍토 조성도 잘 안 됐으니까요. 그것에 대해서 저는 조금 걱정돼요.

사회학적으로 4.19세대, 6.10세대에 이어 새로운 시각을 가진 4.16세대의 등장과 부상
박민경 _ 지금 사회전반적으로 변화에 대한 욕구는 강렬합니다. 지난 광화문광장의 촛불이 그것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봐요. 물론 대선 결과에 따라 단순히 사람만 바꾸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개혁을 바라는 것이었는지가 드러나겠지만, 특히 젊은 세대의 욕구는 분명해 보입니다. 최근 1987년을 돌아보는 기획이 늘고 있는데, 지금 화두가 “다시,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그때 민주주의를 말하는 세대와 30년이 지난 지금 민주주의를 말하는 세대가 달라진 점에서 아마 세대차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고요. 무엇보다 그때의 민주주의와 지금의 민주주의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기성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고 거기서 세대갈등도 부각되고 있습니다. ‘2017년의 민주주의’, 그 내용을 다음 정권이 담는다면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는데, 우리 문화예술계도 그 방향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무용사회의 변동이 올해 이슈가 될 수도 있겠네요.
광화문광장의 촛불을 이끈 원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해 “세월호 참사”에서 답을 찾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공감한 바가 컸습니다. 물론 법적으로는 뇌물과 같은 사실적인 문제로 정권이 몰락했지만, 시민들을 움직이게 한 더 큰 힘은 세월호 참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야기예요.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이 알려지면서 그것을 계기로 억압되어 있던 힘이 폭발하게 된 것이죠. 가령 세월호 참사 이후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작성되고 국민들을 통제하는 장치를 가동시켰는데, 그러한 국가 폭력에 대해서는 저항의 힘이 커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계속해서 진실을 요구했는데도 정부가 묵살해버리니까 불만이 커져간 것이죠. 지난 국정농단 사태에서 국민들이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에요. 이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고, 특히 예술은 더 깊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춤계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저는 1997년 즈음을 하나의 전환점으로 보는데 그때 등장한 세대가 이제 변화를 주도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올해 20년이 된 「크리틱스 초이스」가 그들의 등장에 바탕이 되고 또 성장을 도왔다고 봅니다. 이 세대가 자신들의 선생이 만들어놓은 제도나 의식, 체제 등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지금 등장하는 후배 세대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느냐에 우리 무용사회의 발전이 달려있지 않나 싶습니다.
김경애 _ 그 연장선상에서 말씀드리면, 우리가 사회학자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20년 전이 바로 IMF거든요. IMF가 20년 전, 1997년에 일어났어요. 그때 일어난 사회의 큰 변화를 겪으면서 직업의 귀천이 없어졌어요. IMF로 인해서 새로운 가치관이 일어나면서 그게 20년을 끌어왔어요. 지금 세대를 “세월호 세대”라고 부른다고 해요. 우리가 “4.19 세대”라고 불렀듯이 지금은 “4.16 세대”라는 말이 사회학적으로 많이 쓰인다고 해요.
「크리스틱 초이스」는 물론이고 최근 3년의 무용 작품들도 보면, ‘바다’, ‘심연’, ‘심청’ 등 세월호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았어요. 바닷물에 빠지는 내용이 많죠. 요즘 젊은 층에게는 뼈저리게 남아있는 사건이어서 그 세대들의 창작 욕구인 것 같고, 또 굉장히 대담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그 대담함이 폭발력을 발휘해서 그게 원동력이 되어 지금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등을 바꾸며 새바람을 몰고 온 것이 아닌가 해요. 사실 한국무용협회는 굉장히 바꾸기 힘든 구조였는데 사회 변화와 맥을 같이하면서 그런 원동력이 바탕이 되어 바꿀 수 있었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현대춤협동조합 등 새로운 단체들의 등장
조은경 _ 확실히 예술계가 시대변화에 민감하고 그 영향을 다른 분야보다 정말 많이 받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수장들이 바뀌기도 했지만, 현대춤협동조합 등 새로운 단체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박민경 _ 협동조합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도하여 정책적으로 활성화시켰죠. 춤계의 협동조합들 역시 그러한 정책에 따라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동우 _ 발레협동조합(STP)이 다른 장르에도 많은 영감을 준 것 같아요. 무용가들끼리 서로 힘을 합쳐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생존 전략을 세우는 것도 반가운 일이에요. 또 그 안에서 많은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얻은 것을 STP를 통해서 봤기 때문에 바람직한 일이기도 해요. 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참 예술가들이 먹고 살고, 생존하기가 힘든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조은경 _ 맞습니다. 사실 현대춤협동조합 설립취지는 예술은 각자 알아서 하고 우리 협동조합은 정말 먹고 살기 위한 사업을 하겠다는 거예요. 이런 배경에는 지원제도의 변화도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김경애 _ 최근 무용가들의 생존이 굉장히 심각해요. 젊은 세대들에게서 변화에 대해 정말 그렇게 큰 힘이 나오는 이유가 생존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에요. 전에는 대학무용이 무용계를 지배했었어요. 대학교수들의 지휘 하에서 무용계가 구성이 됐었는데 그 힘이 이제 점점 약 화되고 있고, 춤교육자가 아닌 전문 무용인이 수적으로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직업무용단의 힘이 그전보다도 많이 커졌어요. 직업무용단의 힘이 커지면서 작품이라든지 예산이 굉장히 중요해진 거죠.
내가 「춤」지에서 일을 시작할 30여 년 전만 해도 이화여대 무용학과가 국립무용단보다 더 그 역할이 중요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학이 창작활동보다 교육면을 강조하니까 전문 무용가들이 살아날 길이 막막해진 거죠. 그러니까 협동조합이 자구책으로 나온 것이라고 봐요.
이런 자구책이 마련되는 것은 좋은데 지각변동으로 여러 그룹들이 생기고 새로운 질서를 도모하는 힘들도 있어 금년말까지는 지글지글 끓는 무용사회가 될 것으로 유추해요.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롭게 정착되는 것도 있고, 한편으로는 거스르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그때까지는 질풍노도의 시대라고 할까요? 촛불이라는 질풍노도의 끝에 와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무용계도 여러 현상들에 편승해 서로 치고 받고, 또 불미스러운 일들도 있고, 긍정적인 힘도 발휘가 되고 그렇게 가고 있다고 보입니다.

개인 단체들의 독립적인 공연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어
이동우 _ 생존 전략상에서 보면, 생존하는 단체들의 비애도 있어요. 정권의 교체 시기에 생겨나는 기회주의자들도 있으니까요. 예술 관계자 중에 딴생각을 하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이 저에게도 보여요. 예술가면 예술가답게 그 본분을 지키고 그 시간과 에너지를 제대로 된 작품에 몰두 했으면 좋겠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해외 작품과 늘 비교되지 않도록 말이죠.
김경애 _ 우리가 예술적인 면을 이야기하자면 국립무용단이나 국립현대무용단, 국립발레단 작품의 예술성 문제를 조금 눈여겨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국립발레단은 강수진 감독이 재임이 됐고,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 감독은 그동안 해온 작업들이 있으니까 그것으로 담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물론 다른 부분은 아직은 색깔이 안 나왔기 때문에 단체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를 좀 예의주시해야 되고요.
조은경 _ 국립무용단은 아직 작품이 안 나왔죠?
박민경 _ 지난 2월 국립극장에 갔는데,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해오름극장에서 국립무용단이 레퍼토리 『향연』을 공연하고, 달오름극장에서 국립발레단이 「백 투 더 퓨처」라는 기획공연을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별오름극장에서 금배섭 씨가 솔로춤 『섬』을 공연했는데, 그 묘한 대비가 국립극장의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지원금 없이 공연한 금배섭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이 들더군요. 최근 지원 추세가 국립이나 협회, 축제 같은 큰 단위별로 이루어지다 보니, 개인들의 공연이 거의 불가능한 쪽으로 가고 있는데요. 공연예술 전문 페스티벌들이나 협회의 연례 무용제 혹은 극장의 기획 프로그램에 속하지 않으면 극장 대관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있는 실정이에요. 그러는 사이 개인 단체들의 독립적인 공연은 어려워지고, 그러한 기획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 어딘지 ‘강요된’ 현실에서 과연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작업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국립 단체들의 공연을 보면 상대적으로 개인들의 공연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가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에는, 최근 국립 단체들의 작품이 기대 이하인 불만이 좀 더해진 것 같아요(웃음). 국립무용단 『향연』은 인기작으로 알려졌는데, 초연 때 보고 한마디로 팔리는 상품을 만들고자 한 목적이 노골적으로 보여서 좋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국립발레단 공연은 단원들의 안무작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었어요.
조은경 _ 새 작품은 아니고 지난 1, 2회 때 공연했던 작품을 재공연했어요.
박민경 _ 발레단의 안무가육성프로젝트인 「KNB 무브먼트 시리즈」에서 선보였던 것과 몇 년 전 신무섭 씨가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공연했던 작품 등을 묶고 강수진 감독의 해설로 펼쳐진 기획공연인데, 왜 이런 기획을 했는지 정체를 잘 모르겠어요. 작품들 수준이 국립발레단 수준과 전혀 맞지 않거든요. 약간 이벤트 같아서 국립발레단이나 국립극장 팬들을 위한 기획이거니 했어요.
국립발레단은 5월 초에 토월극장에서 신작을 준비하고 있는데, 단원인 강효형 씨가 안무한 『허난설헌』이라는 작품이에요. 국립발레단의 창작 레퍼토리를 단원에게 의뢰했다는 점이 좀 의아하긴 합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제작비 문제인가…. 그리고 국립무용단은 6월 말에 신작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김상덕 감독의 안무작 『리진』이라는 작품인데, 무용극이라고 해요. 마침 올해가 ‘송범10주기’라서, 공연 후 국립무용단의 무용극에 대한 평가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국립무용단의 전통처럼 되어 있는 ‘송범의 무용극’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비판적인 논의가 있을 테니까요.
끝으로 국정농단 사태로 문체부 상황이 어수선하던 때에 급작스럽게 안성수 교수가 국립현대무용단의 새 감독에 임명되어서 좀 놀랐다는 이야기를 지난 좌담에서 했었죠. 바로 얼마 전에 첫 공연으로 『혼합』을 선보였는데, 예전에 만들었던 작품을 다듬은 것이라고 들었어요. 그동안 무용단에서 공연소식을 알려줬었는데,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 연락을 못 받아서 그만 놓치고 말았어요. 작품이 어땠나요?
김경애 _ 거기 스태프들이 다 바뀌었어요.
박민경 _ 첫 공연을 자유소극장에서 했다고 해서 좀 의아했어요. 홍승엽 감독 때부터 국립현대무용단은 소극장 공연을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는데, 감독들은 좀 선호하는 것 같더라고요.
조은경 _ 신임 예술감독의 임명이 늦어지면서 2017년은 전임 단장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박민경 _ 그럼 안애순 전 감독이 올해 프로그램을 다 정해 놓은 건가요? 지난 좌담에서 이사진이 왜 새로 꾸려지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한 기억이 있는데, 이미 사업들이 결정된 것이어서 지장이 없나 보군요. 그런데 아직도 이사진 발표가 안 됐나요?
김경애 _ 아직도 안 됐어요. 정권이 바뀌어야지 될 것 같아요.(웃음)

운영제도 확충과 안무가 위상제고가 국립단체들의 새로운 과제로
박민경 _ 국립현대무용단이 프로젝트 단체로 출범해서 아직까지 그 정체성을 정립하지 못한 데서 문제가 좀 있다고 봅니다. 안성수 감독이 그 점에 유의하셨으면 좋겠는데, 어떤 발전이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국립 단체들의 수장은 ‘작품만 좋으면 된다’는 신념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었다고, 우리 춤계의 달라진 사정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국립무용단도 마찬가지고 국립발레단도 마찬가지인데, 국립현대무용단의 경우 신생 단체인 만큼 더욱 더 지금 상황에 적합한 운영제도를 갖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직업적인 부분이 하나 있고, 늘어난 인재들을 어떻게 이름있는 안무가로 사회적 위상을 갖게 하느냐의 문제도 이제 국립들의 과제가 되었다는 거예요. 지난 2월호 「춤」 좌담을 읽어보니까, 안성수 감독이 이것저것 무용단에 대해 하실 말씀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향후 운영방향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삼가셨더라고요. 한 가지 눈에 띈 사실은, 오디션에 한예종 출신들이 주로 지원해서 좀 아쉽다고 말한 부분입니다. 교수가 예술감독이 되면 다른 학교 출신들의 지원이 제약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던 점이라, 고민이 되실 거예요. 무용단은 오는 6월 초에 『쓰리 볼레로』라는 기획공연이 예정되어 있는데, 초청 안무가가 김보람, 김설진, 김용걸입니다. 빨리 이사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어서 초청 안무가의 폭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김경애 _ 그러니까 모든 것은, 춤예술행위도 제도와 국가 시스템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지금 문화 쪽에는 장관이 없잖아요? 그렇게 관리감독 부서가 취약하면서 통제 또는 책임지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거죠. 그렇다고 무용단장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놔두는 것도 아니거든요. 오히려 장관이 힘을 실어줘야 무엇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지, 지금은 펼칠 수도 없는 입장이에요.
국립발레단은 발레 대중화에 공적은 많지만, 대체로 외국 발레를 사와서 공연을 했어요. 그런 면에서 이번에 강수진 단장이 우리 안무가에게 기회를 준다는 발상은 좋은 것 같아요. 물론 그 안무가가 예술성을 담보할 수 있는 사람인가는 문제가 되겠지만, 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는 거는 의미있다고 봐요.

국립발레단의 창작 레퍼토리 확보 노력
박민경 _ 지속적으로 국립발레단의 창작 레퍼토리에 대한 요구가 있었습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은데, 특히 극의 형식을 취한다면 음악과 조명 등 갖춰야 할 조건이 많거든요. 작년에 「KNB 무브먼트 시리즈 2」를 보면서 단원들에 한정하지 말고 우리 춤계 전체 안무가로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안무가들은 우수한 무용수들을 구하기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하잖아요. 단원들이 안무를 할 수도 있겠지만, 안무능력으로 발레단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갑자기 안무가 쉽겠느냐는 거예요. 저는 강수진 감독이 오랫동안 외국에 있어서 우리 창작발레 현실을 잘 모를 거라고 짐작해요. 그래서 이런 공연을 하려면 3년 동안 창작발레 공연들을 많이 보면서 어느 정도 파악을 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이런 걸 보면 우리 춤계가 소통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개방해서 단원들이 여러 스타일의 안무가들과 작업하면서 자신의 재능도 발전시키고 안무적 감각도 키울 수 있는 계기로 기획되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왜 굳이 단원들을 안무가로 키워야 한다는 발상을 했는지 이해가 잘 안 돼요.
이동우 _ 아까 안성수 선생이 왜 한예종 출신 사람들만 오디션에 지원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이것과 약간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어요. 외부에서 사람이 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수직관계로 이루어지는 한국적 정서가 작용해서 그럴 수도 있고, 텃세일 수도 있겠고요. 어쨌든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미묘한 인간관계 때문은 아닐까요. 서울시무용단의 『더 토핑』 시리즈 공연이나 이전에 「솔리스트 육성 프로젝트」 시리즈 등 단원들에게 안무 경험을 마련해주는 장을 몇몇 단체에서 볼 수 있어요. 대부분 무용수들은 늘 안무가를 염두 하기 때문에 단원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떻게 보면 단원들의 미래에 대해 배려하는 인상도 있어서 나쁘지는 않지만, 잘못하면 관객들에게 습작 정도의 실망스런 수준을 보여주게 되어 이러한 형식의 공연에 대한 인상이 안 좋아 질 수도 있음을 안무가 선정 및 공연기획 단계에서 염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은경 _ 국립발레단이라는 단체의 역할은 창작을 위해서 국립발레단 단원들을 활용할 게 아니라 문을 열고 안무가를 키워나가야 한다는 거군요. 그게 국립이 할 일이지요.
박민경 _ 국립 단체들이 이름있는 외국 안무가를 초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내 안무가는 회피하려는 심리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것은 미술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예술감독의 작업과 직접적으로 비교대상이 되니까 경쟁구도가 되면 아무래도 부담스럽기는 하겠죠. 국립무용단의 경우 윤성주 예술감독 시절 레퍼토리 제작에 국립극장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잖아요. 좀 부작용은 있었죠.
정구호 씨가 연출자로 들어오면서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 정구호인가 하는 비판 같은 거요. 그런데 앞으로 그런 식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국립현대무용단의 경우는 프로젝트 형태라서 예술감독의 작품보다는 예술감독이 초청한 안무가들의 작품 수준으로 예술감독의 안목과 비전을 평가받게 될 것이라는 거죠. 그게 결국 예술감독의 성과가 될 것이고요. 안애순 전 예술감독의 성과도 결국 기획 프로그램의 실패, 즉 국립현대무용단에서 공연해서 이름있는 안무가를 내놓지 못한 데서 판가름난 게 아닌가 싶은데요. 그때 빛난 안무가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안애순 예술감독은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를 받았을 테니까요.
김경애 _ 국립현대무용단은 지난 3년 동안 국립이라는 격에 맞지 않게 조금 부족한 소소한 시스템을 많이 했잖아요? 그러니까 안성수 씨에 대해서는 기대하는 게 있어요. 그분이 좀 우직하고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3년 동안 자기 작품은 할 거예요. 좀 규모도 국립다운 거, 크고 레퍼토리로 남길 수 있는 작품을 집중해서 하지 않을까요? 그동안 너무 작은 것들, 민간단체도 할 수 있는 것들, 소극장 공연 등을 많이 했는데 그렇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있어요. 그동안의 안성수 씨의 활동으로 봐서는 자잘한 공연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국립의 격이라는 것을 세우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이것도 기대지만요. 어떻게 할지는 두고 봐야 되겠지요.
이동우 _ 아까 말씀하신 대로 국립현대무용단이 올해 소극장 대관을 작년에 이미 신청했다는 것은 안애순 선생이 자기 임기가 연장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겠죠?

젊은 안무가들의 창작이 ‘설명’에 치중되는 현상에 의문
조은경 _ 워낙 신임 예술감독 임명이 늦었기 때문에 올해는 전임이 해놓은 것을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고 봐요. 민간단체들 중에 기대되는 작품이나 활동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박민경 _ 3월부터 공연이 서서히 시작해서 4월에 본격화된 것 같아요. 현장에서는 지원금 심사가 너무 늦어져서 걱정이 컸습니다. 시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1월에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차세대 열전」 공연이 꽤 오래 진행되었는데, 못 봤어요. 저는 대학 졸업생들 공연인 줄 알았어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사업이라고 나중에 들었는데, 이런 사업을 계속 이름만 바꿔서 지속하고 있군요. 어쨌든 몇 년간 공연을 보면, 이제 데뷔하는 안무가들의 창작 경향이 ‘설명’인가 하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무대에서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를 강박적으로 설명하려고 해요. 어떻게 만들고 있고 그 과정이 어떻고 이런 것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요. 왜 나한테 저런 걸 설명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난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좀 들어보니, 요즘 지원프로그램에 ‘멘토링’이라는 과정이 포함된 게 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영향인가 싶어요.
김경애 _ 저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시리즈 작품을 다 봤는데, 작품 수준이 좋지 않았어요. 1년 동안 교육시킨다고 했는데, 작품은 별로 좋지 않았어요. 저는 요즘 공연을 보면서도 느낀 것은 ‘국립’의 영향력이 굉장히 크다는 것이예요. 지방에 가서 공연을 보면 국립무용단의 『회오리』라는 작품 조명, 삼각형으로 눈부시게 비추는 백색 조명을 쓰는 거예요. 그 다음에 『향연』, 『묵향』 등 정구호 의상 스타일의 작품이 많아요. 그리고 지방에 가서 심사를 해보면 한국무용에 낸 서류를 보면 작품의 그림이 그려져요. ‘아, 이건 묵향이구나’, ‘이건 향연이구나, 오방색을 나눠서 하겠다는 거구나’ 하고요. 『향연』이 오방색을 분해시켜서 만든 공연이잖아요?
그리고 창작도 국립현대무용단의 영향이 있죠.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춤이 말하다」 시리즈를 3년 했잖아요? 그런 스타일로 다른 작품을 소극장에서 공연을 많이 했어요. 그 작품을 보면 나는 어떻게 살았고, 내 과거는 어떻고, 누구를 만났고 다 말로 설명을 해요. 국립현대무용단에서 돈을 많이 들여서 하니까 그게 좋은 건 줄 알아요. 국립이 잘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따라 하는 거예요. 국립의 영향력이 점점 커가고 있는 건 확실해요. 아마 국립무용단이나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 제작비 규모 등이 엄청난 직업무용단이기 때문에 이를 동경하는 마음이 무용가들에게 다 있는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이화여대나 이런 대학을 굉장히 동경하는 게 있었지만 지금은 국립무용단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느껴요.
조은경 _ 오히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차세대공연은 안무가들이 자신의 공연을 한 시간씩 했어요. 단독 무대를 이끌어 갔지요. 그런데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에서는 몇 사람이 함께 하다보니 짧은 소품으로 구성되었죠.
김경애 _ 소품 공연은 좀 국립 단체 공연답지는 않죠. 국립무용단,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은 적어도 그 이름에 걸맞은 작업이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품은 대학을 갓 졸업한 재야의 젊은 안무자들도 할 수 있어요. 이들이 하는 작업을 국립이 한다는 것은 넌센스죠.
박민경 _ 민간단체로는 LDP가 며칠 전 정기공연을 했어요. LDP 공연은 매년 보지는 못하고 띄엄띄엄 보게 되는데, 올해가 17회 공연이더군요. 그러고 보니 어느덧 나이든 단체가 되었네요(웃음). 예전에는 신선하다는 것이 특징 중 하나였는데…. 창단 때부터 외국의 최신 스타일을 빠르게 도입해서 좀 다른 춤을 보여줬다는 것이 강점으로 여겨졌던 단체였어요. 자기 춤이 없고 움직임만 좋다는 비판도 받기 했지만, 어쨌든 한예종의 우수한 무용수들이 포진해 있어서 영향력이 컸는데, 최근 몇 년간 보면 점점 더 인지도가 약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목할 만한 작품이 잘 안 나오고 있어요.
조은경 _ 이번 LDP공연에는 호주의 안무가가 참여를 했습니다.
김경애 _ 무용단에 또는 무용대학에 누가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LDP무용단이 좀 허약해졌다는 세평이 있는데 결국은 모든 예술에 있어서는 사람이 중요하죠. 그래서 요즘 미나유가 LDP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미나유가 고난도 트레이닝을 비롯해서 LDP를 끌고 가면서 사람들을 만들었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최근 작품이 완성도가 약하고 발상만 있었다는 평입니다. 외국인 안무가도 영감을 주기는 못하고 작품이 진솔하지도 않았거든요.
이번 LDP 작품중 하나를 보면 전 출연진이 얼굴에 보자기를 썼어요. 그 장면의 발상을 보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아메바처럼 움직이는 국민상’이에요. 그런데 더 이상의 이야기가 없고 그걸로 끝나요. 그리고 「한국 춤작가 12인전」 작품들도 보니까, 어떤 날 하루 4작품 중 3작품에 무용수들이 보자기를 쓰고 나와요. 그런 걸 보면 역시 공연예술가들이 사회를 흡수하는 능력은 빠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회에 대해 나름대로 발언을 하고 있는 건데, 그게 구체적으로는 승화되지는 않고 뭔가 무르익지 않아 결과물은 없어요. 발상은 현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의 페이소스라는 것을 많이 느끼게 했어요. 사회에 대한 패러디를 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은 하고 있어요. 지원금을 못받은 사람들은 작업을 아예 할 수 없고 지원금을 받아도 정산을 하는 시스템이 힘들게 하기 때문에 무용 예술가들이 에너지가 많이 빠져서 실제 작품에 대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못 쓰는 것 같은 면도 있어요.

실력있는 안무가들의 참여로 국립단체 공연의 격을 높이는 모습을 보고싶어
박민경 _ 그리고 3월 말에 김남진의 댄스씨어터창이 소극장에서 하루 공연했어요. 작년에도 1회 공연을 했는데, 소극장이다 보니 관객 수가 얼마 안 돼요. 결국 본 사람이 몇 명 안 된다는 뜻인데, 아쉽죠. 극장 대관의 어려움인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본래 김남진의 작품스타일이 소극장에 잘 어울리고 스스로 그런 스타일을 추구하는 거라 뭐라 말하기가 좀 그렇지만, 앞으로 대극장 작품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실력있는 안무가들이 국립현대무용단에 초청되어서 단체의 수준을 좀 높여야 하는데, 소극장 규모나 솔로 스타일로는 제한이 될 것 같아서요.
또 개인의 단독공연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김보라 씨가 3일 동안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을 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인공낙원』이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는데,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봤어요. 다만 사변적이라고 할까, 뭔가 관념적인 주제는 아쉬웠습니다. 가공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 정도의 내용이라면 문제없이 흥미롭게 이해했을 텐데, 나중에 프로그램 책자를 보고 좀 당황했어요. 저는 춤작품이 개념적인 무언가로 흐를 때 난해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주제 자체가 추상적이거나 ‘이렇지 않을까’ 식의 물음으로 끝나는 작품은 구성 자체가 구체성을 결여할 때가 많아서 공허해지곤 하거든요.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면, 요즘 작품명이 영어일 때가 많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작품의 타이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간혹 읽기 어려운 영어를 사용할 때 곤란함을 느낍니다. 또 그런 작품은 기억하기도 어려워서….(웃음)
이동우 _ 그 시대의 트렌드 일 텐데 그걸 하라 말아라 하기는 좀 어려울 듯합니다. (웃음)

도대체 ‘예술지원의 원칙’이 있나 싶을 정도
조은경 _ 역시 창작에 있어서 지원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군요. 올해 지원제도는 선정과 관리 면에서 예년에 비해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시나요?
이동우 _ 정부가 나라의 지원을 받는 행위를 구걸행위로 간주하는 것 같아서 불쾌합니다. 기존에는 정산과정만 까다로웠지만, 지금은 하나에서 열 가지가 다 굉장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돈이 있어야 지원을 받는 적반하장인 격이 되어버렸어요. 돈이 있으면 왜 지원을 신청합니까?
우리가 “문화예술위원회 후원”이라는 문구를 넣지 못해서 아쉽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블랙리스트로 예술인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감시를 하여 국정농단에 적극 협조한 기관이 개선이라고 내놓은 시스템은 뉘우치는 기색은 커녕 오히려 지원금을 신청한 예술인 전체를 대상으로 잘 쓰고 있는지 감시하겠다는 발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요.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데, 세금은 철저하게 챙겨가면서 세금을 낭비하는 쪽이 오히려 갑질을 하려는 오만한 태도라고밖에 볼 수가 없어요. 게다가 담당직원들도 새로운 시스템 몰라서 쩔쩔매고 있어요. 관계자들도 제대로 숙지 못하는 시스템을 지원 신청자들에게 철저하게 등록하라고 하는 것도 이상할뿐더러 대통령도 선출하지 않은 시점에 왜 이렇게 서둘러 바꿨는지도 이해가 안갑니다. 도대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예술인들을 위하는 기관이 맞는지, 정부의 눈치만 보고 소신껏 일 할 수 없는 기관에 대해 우리가 그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 주자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무용인들이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지원금을 받아서 예술창작 작업을 한다는 것은 돈이 없으니까 지원을 받는 거예요. 돈을 쌓아놓고 있는 사람은 굳이 지원금을 받지 않고, 자기 사비를 들여서 작품을 만드는 거죠.
한국예술위원회는 예술인들로부터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입니다. 신뢰를 회복하기도 전에 현실감 떨어지는 안을 내놓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공분만 벌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사과문으로 얼버무릴 일이 아닙니다.
조은경 _ ‘이(e) 나라 도움’ 시스템이지요.
이동우 _ 네, 그런데 전혀 도움이 안되는 시스템이에요. 이 시스템이 한시적이라도 해도 이렇게 가서는 안 됩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이 나라도움 시스템’으로 지원 시스템을 고착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거죠.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이 역시 적지않은 세금으로 만든 시스템인데 누구의 발상인지, 왜 접근하기 힘든 시스템으로 밖에 만들 수 없었는지, 세금으로 이렇게 밖에 만들 수 없었는지, 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세금이 올바로 쓰였는지를 우리에게는 그들에게 해명을 요구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경애 _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굉장히 제도가 많이 바뀌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장미대선이라고 해서 5월에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고 나면 또 다 뒤집어져서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고 참 난감해요.
이동우 _ 말씀을 듣고 보니 차기 정부에게 미루려고 일부러 이렇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도 드네요. 의혹이 사실이더라 하더라도 그것 역시 국민들의 세금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시 말이지만 아무도 쓸 수 없는, 다시 바꾸어야 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지시한 관련자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박민경 _ 저는 지원금 신청이나 심사 경험이 없어서 현재 국가 지원시스템 절차에 대해서는 정확한 지식이 없지만, 다만 지원정책이 자꾸 바뀌고 심사 논란은 항상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은 사실은, 정책이 바뀌고 그에 따라 지원사업들이 들쑥날쑥 하니까 어떻게든 무용가들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한다는 점뿐이에요. 우리나라 문화예술지원의 역사도 좀 되었지만, 만족할만한 제도적 완성은 좀 멀어 보입니다. 정부 시책에 따라 문화정책이 정해지고 또 문화정책에 따라 예술지원이 정해지고 하는 식이 아니라, 예술분야마다 다 다른 상황이니까 각 분야에 적합하게 시스템이 구축되는 게 좋겠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가고….
지원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점검해보는 시간이 필요해 보이기는 합니다. 처음에는 창작을 지원하는, 그야말로 작품을 공연하는 데 보조하는 식으로 공적 지원이 시작되었죠. 그래서 안무비나 무용수 페이는 책정도 안 되었어요. 초창기에는 대학을 기반으로 창작활동이 이루어져서 가능하기도 했죠. 그러니까 교수가 직업이지 예술가가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교수나 예술가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작품 자체에 대한 지원을 해준 거죠. 무대장치나 극장대관이나 홍보비처럼 공연하는 데 필요한 돈을 조금 보조하는 개념이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교수가 아닌 독립안무가들이 다수가 되면서 여러 지원사업들이 하나씩 만들어졌는데, 민간 무용단들이 자립을 못하면서 모두 정착이 되지 못했어요. 그러는 사이 무용가들이 늘어나고 지원금은 부족하고, 정권에 따라 지원이 있었다 없었다 하는 등 ‘예술지원의 원칙’이 있나 싶을 정도로 중구난방의 과정을 겪었고 또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이명박정부 때 방향이 좀 바뀐 게 있는데, 문화정책의 수혜자를 예술가보다 시민에게 포커스를 두고 특히 소외계층의 문화향유를 위한 사업들에 지원이 만들어졌어요. 점점 더 복지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 같은데, 요즘은 작품은커녕 생존 자체가 위협당하는 상황이다보니 지원에 대한 요구도 작품보다 무용가에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생계와 직결된 직업적 요구가 반영되어 있어서 이제 노동의 개념도 도입되기 시작했고요. 순수 작품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무용가라는 직업에 대한 지원으로 나아간다면 앞으로 더 많이 바뀌면서 훨씬 더 혼란이 있을 거예요.

복지와 지역 참여에 밀리고 있는 순수예술 창작지원
김경애 _ 제가 보면,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그 정부가 주장하는 지원의 목표나 또는 포커스가 있어요. 문화예술 쪽의 지원을 보면, 박근혜 정부 때는 복지정책과 같이 연결해서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보다는 대중예술에 대한 지원이 더 앞서 있었어요. 그러니까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이 더 줄어든 부분이 있는 거죠.
제 생각에는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은 노무현 정부 때 잘 한 것 같아요. 그때 기초예술이라는 용어가 있었어요. 그 전에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 액수를 김대중 정부에서 확 늘였어요. 그러다가 노무현 정부 때 기초예술이라는 용어를 꺼내서 그 용어에 맞게 순수예술을 많이 지원했어요. 이명박 때는 그냥 보편적으로 균형을 잘 맞춰서 지원했어요. 그때 유인촌 장관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문화부 쪽에 소통이 좀 쉬웠어요. 하지만 예술위원회에서는 유인촌 장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나주로 보내고, 구로동으로 보내고 그랬잖아요? 아르코 극장과 예술위원회를 떼어놓고 그랬는데 무용계로서는 국립현대무용단이 그 때 생겼으니 좋았죠.
지금 이 정부 들어와서 순수예술 쪽에 포커스가 가진 않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대통령 취임식 때 국립무용단이 출연을 안 한 거는 처음이라고 하거든요. 그러고는 뮤지컬이나 대중적인 공연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더블루K, 플레이그라운드 같은 데서 그걸 했던 것 같아요.
이제 다음에 어떤 정부가 올지 모르지만 새 정부에서는 우리가 바라는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순수예술의 대중적 향유를 이야기하지만, 대중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거라면 그걸 왜 지원을 해요? 그냥 대중에게 표를 팔면 되는 거죠. 그런 면에서 순수예술 쪽에 좀 포커스를 맞춰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융복합이라고 해서 지난 4년 동안 융복합의 폐해가 많이 있었어요, 사실은. 그것도 차은택의 작품이라고 봐요. 그런데 뭔가 융합하는 것처럼 하면서 핵심이 없고, 액수만 올라갔어요. 그래서 우리 무용계로서는 순수 기초예술 쪽에 대한 지원을 해달라고 말하는 거죠. 김성한 씨도 스트리트 댄스가 상주단체라든지 현대춤을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조은경 _ 자기 관객들이 있으면 스폰서가 붙고 공연을 해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겠지요. 「예술가는 왜 가난한가」라는 책을 재미있게 보았는데, 국가적인 예술정책은 이윤을 산출해내지 못하여 가난할 수밖에 없는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이 우선적으로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박민경 _ 왜 지원제도가 나왔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고 있으니까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존재 근거가 예술의 자율성에 있는데, 이제 그 근거 자체가 없어져 버려서 해체될지 아니면 다른 기구로 전환될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문예기금도 완전 고갈 상태라고 하고…. 그간 복권기금과 관광기금 등을 받아 사업하면서 성격이 복지 쪽에 맞춰진 바람에 상대적으로 창작지원이 약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무용가들이 창작보다 시민들을 위한 춤이나 지역민을 위한 대중적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늘어났고요. 시민들의 참여나 체험을 위한 예술 행사 및 교육 프로그램도 늘고 있는데, ‘창작’을 핵심으로 보는 우리의 예술지원 개념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에요.
조은경 _ 국공립단체에 주는 압력도 점점 ‘관객을 늘려라’, ‘대중화시켜라’로 방향이 맞춰지고 있는 듯해요.
박민경 _ 예술작품에 대한 인식의 차이랄까, 좀 수준이 맞지 않은 것 같아요. 본래 예술이 대량화, 상업화에 반대하는 데 그 가치가 있는 것인데, 그것을 자꾸 대중화, 상업화하라는 말은 예술가적 마인드가 아니라 행정가 혹은 기업가적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예술은 생존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적 의무로서 지원하는 것인데, 반대로 수익을 내는 상품으로 만들겠다고 하니까 갈등이 생기죠. 상품화될 수 있는 춤들이 있기는 해요. 대중적으로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춤들, 관객이 확보될 수 있는 장르가 있잖아요. 『승무』나 『살풀이춤』 같은 전통춤이나 클래식발레처럼 고전으로 인정받는 것도 그렇고, 스트릿댄스나 스포츠댄스나 방송댄스 같은 것이 그렇죠. 기본적으로 예술지원이라 함은 창작(신작)에 한해서, 상업화되기 어려운 작품에 대해 하는 겁니다.
김경애 _ 지금 창작하려면 제작비 자체가 많이 들어가는데, 거기에 비해 지원금이 너무 적어요. 왜냐하면 그 전에는 무용수를 다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썼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자기 사람이어도 무용수에게 다 돈을 줘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시대가 달라지고 젊은 사람들의 직업의식도 달라진 거죠. 요즘은 페이 안 주면 안 움직이는 시스템이니까요. 그러니까 창작을 하려면 무용수가 연습시간에 오게 해야 하는데, 그때 시간당 페이를 지불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선 거죠. 뭔가 여건은 안 되어 있는데 시스템은 그런 직업 시스템으로 되니까 감당이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작품이 좋게 나오기가 힘들어요. 옛날에는 2달씩 연습을 했는데 지금은 몇 변 안 하는 시스템이 됐어요. 왜냐하면 연습실도 시간당으로 빌려서 쓰니까 엄청난 예산이 들어서 그런 거죠. 그러니까 지원을 많이 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지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다 감당을 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요. 예술에 대한 뜻, 자기의 예술을 하는 목적, 자기 의지, 꿈 이런 것이 있어야 하는 거죠. 거기에 몰입해야 해요. 예술이라는 게 그것 없이 지원금만 갖고 되는 것은 아니죠.

「창작산실」을 통한 예술 작품의 발굴과 레파토리화 진단
조은경 _ 예술 작품의 창작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개별 공연지원금 규모가 제일 큰 창작산실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레퍼토리 재공연과, 신작지원 두 분야가 있습니다.
박민경 _ 창작산실이 현재까지도 좀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이게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직접 감독하는 거죠?
김경애 _ 자기 사업으로 하는 거죠.
박민경 _ 그게 좀 이상하다는 거예요. 문화예술위원회는 지원기관이지 공연을 주최하거나 주관하는 기관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창작산실의 작품들을 관리한다는 게 이해가 좀…. 후원이 아니라 주최라는 것이 낯섭니다. 개인의 이름으로 작품이 나와야지 문화예술위의 사업성과를 위해 이루어지는 인상이 있어서요. 공연도 한꺼번에 하고, 그래서 경연대회처럼 보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의 기능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상주단원제가 불가능하고, 프로젝트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보면 안무가들을 지원하는 방향이 맞지 않나 싶어요. 연속으로 좋은 안무가들을 초청해서 작품을 만들게 하고 대중에게 안무가와 작품을 알리면서 현대춤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인식을 높이는 거죠. 개인 작품에 대한 지원을 서울문화재단에서 하는데, 금액이 너무 적어서 규모 있거나 완성도 있는 작품이 불가능한 실정이거든요.
김경애 _ 그래서 유인촌 전 문화부장관이 국립발레단에 「대한민국발레축제」를 만든 거예요. 국립발레단 예산으로 페스티벌을 통해 안무가와 민간단체를 지원한다는 취지로 그걸 만든 거죠. 「창작산실」은 팩토리에서 발전한 것인데 거기서 그런 걸 수용해줘야 하는 거죠. 국립현대무용단은 아무래도 프로젝트 시스템으로 운영되니까 단장이 내공을 발휘해서 활동하는 안무가 중 우수한 사람을 초청하는 게 필요해요.
박민경 _ 앞서 말했지만, 국립 단체들의 평가가 이제 예술감독의 작품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성과주의이기 때문에 예술감독들이 구성한 프로그램들로 평가받을 텐데, 그런 점에서 오히려 유능한 안무가들을 초청해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게 예술감독 자신에게 더 좋다는 말입니다. 만약 비교되는 게 부담스럽다면 국립발레단처럼 예술감독은 작품을 내놓지 않은 게 어떨까요?
김경애 _ 예술감독이 자기 작품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자기 사람만 쓰게 되는 거죠. 안애순 예술감독이 자기 사람만 써서 문제가 있었잖아요. 40~50대 사람은 한 명도 안 쓰고, 다 20대로 하고, 자기 사람 몇 사람만 데리고 했어요. 그렇게 예술감독에 의존해서 일을 하면 안 되고, 제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해요.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창작산실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이동우 _ 원래 창작산실의 취지가 좋은 작품을 발굴해서 국립현대무용단이나 국립발레단에서 공연을 올리는 단계까지가 목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조은경 _ 안무가들을 키워주는 둥지,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게 목적이었죠.
김경애 _ 그래서 단계별로 지원을 하는데, 이상적으로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이동우 _ 어느 지원 사업이든 지원을 위한 지원을 받으려고 일단 신청부터 해 보는 사람들도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김영란법과 춤 생태계의 변화
조은경 _ 시국이 어수선해서 적폐청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다보니까 상대적으로 외국과의 교류라든가 무용가 진출이 굉장히 주춤해진 것 같은데,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떤 전망이 있을까요?
이동우 _ 일단은 미국의 예술 지원제도 역시 힘들어지고 있어요.
김경애 _ 트럼프가 미국연방정부의 예술지원처인 NEA(National Endowment of Art)를 없앤다고 발표해서 뉴욕시티발레단 등 무용단체에서 성명서도 냈어요. 미국도 예술단체 수난시대가 되었어요.
지난 몇 년 동안에 우리 사회도 상식이 많이 깨진 것 같아요. 어떤 게 상식인지 모르겠어요. 지금 어떤 것이 기본 폼인지 모르겠고, 과연 우리가 기본 폼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싶어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그것이 정부 시책 탓만은 아니지만요. 지금 인터넷 시대에 스마트폰이 나와서 다른 시대가 됐고, “가짜뉴스”가 그럴듯하게 꾸며져 어떤 게 진짜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어요. 우리 시스템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 우려가 됩니다.
조은경 _ 김영란법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데, 이를테면 교수들도 공연할 때 좀 주춤하는 게 있어요. 또 우리 평론가도 공연 티켓을 받기 힘든 한심스러운 사태에 직면하고 있어요. 길게 보면 좋은 방향으로 가리라고 봅니다만.
박민경 _ ‘청탁금지법’이라는 말처럼, 그 취지나 내용이 상당히 바람직한데, 아직 시행초기 단계라 공연계에서 갈팡질팡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부터 시행을 예고했는데도, 전혀 준비를 안 하고 있다가 막상 시행되니까 그때그때 맞추느라 혼란이 있어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정착이 되겠죠. 워낙 매체도 많아지고 기자도 많고 평론가나 칼럼니스트도 많아져서 일일이 대응이 쉽지 않나 보입니다. 그건 단체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서….
조은경 _ 기자하고 평론가는 좀 다르지 않을까요?
박민경 _ 겸하는 사람도 있고, 또 기자든 평론가든 공연 보고 글 쓰면 그냥 공연평이니까 구별하지 않을 수 있겠죠. 특히 온라인 매체가 많이 늘어나고, 1인 미디어들도 많잖아요. 누구를 초대할 것인지 단체가 판단해야겠지만, 티켓을 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곤란한 상황도 생기겠죠. 그러다 보면 일괄적으로 평론가에게는 티켓을 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울 수도 있을 테고…,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네요. 매체가 늘면서 프레스 티켓은 더 제한적으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경애 _ 김영란 법은 무용계에 사실은 영향이 커요. 그동안 대학에서는 교수가 학생들을 직접 움직여서 일을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어쨌든 그렇게 보면 무용계를 많이 위축시킨 것만은 사실이에요.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고, 사실 사회의 법을 따라야 하는 거겠죠.
그런데 무용의 활동력이라고 해야 하나 활동의 근거가 되는 힘이 결국은 대학의 학생들한테서 나왔다고 보면 그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진행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정리될 것은 정리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어요. 이제는 표 많이 팔고 그러지 못하잖아요?
이것저것 다 따져보면 이제 무용 생태계가 전혀 다른 생태계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무용협회의 조남규 회장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고 주시를 하고 있어요. 과연 무용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끌고 갈 수 있을지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거죠. 앞으로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올 것 같아요.

20주년을 맞은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
이동우 _ 춤 리더십이라는 것이 무용계를 끌고 가는 리더들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각계각층, 대통령에서부터,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든 게 다 같이 이인삼각처럼 협조와 공조가 이루어져야 되는 거예요. 어느 한 부분만 노력하거나 이해가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미국도 지금 대통령 바뀌고 예술계에 큰 파장이 생겼잖아요?
조은경 _ 트럼프가 대통령 될 줄 누가 알았어요? 「크리스틱 초이스」가 올해 20주년을 맞아서 많은 변화가 있는 걸로 아는데, 기대가 큽니다.
김경애 _ 「크리틱스 초이스 댄스페스티벌(ccdf)」은 IMF가 나던 해 국가가 어려우니 젊은 무용가들은 더 어려울 것이라는 배려에서 이들을 돕기 위한 취지로 고(故) 조동화 선생의 뜻으로 당시로는 파격적인 지원금을 LG화재(후에 LIG손해보험)가 내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춤」지가 창설해 그 다음해부터 「댄스포럼」이 위임받아 16년 동안 LIG손해보험의 지속적인 뜻으로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들에게 민간지원금 수혜로 춤계 내외의 주목받는 신작을 발표해 빼어난 인재들을 발굴 성장시켰습니다.
지원회사의 매각에 의해 중단된 후 순수 댄스포럼社의 힘으로 한 해를 치렀고, 그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매년 창설의 뜻을 펼치고 있습니다. 민간 기업이 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예가 흔치는 않아 이 「크리틱스 초이스」는 전무후무한 기업의 연속지원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민간 기업이 어느 정도 일궈놓은 것이 예기치 못한 좌절을 만났을 때 기댈 곳은 국가였고 선뜻 국가가 손을 잡아준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으나 우리의 가치를 알아주는 눈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힘이 있었다는 것에 무한한 감동이 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크게 감사드립니다. 한국무용사에 길이 빛날 이 제전이 스무 살 성년이 되기까지 참가해 좋은 작품을 낸 무용가들, 선정해주신 평론가 선생님들을 비롯해 많은 분의 성원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금년 20년을 맞이해 「크리틱스 초이스」는 새롭게 출발합니다. 지난 20년간 이 무대를 통해 성장한 젊은 무용가들도 이제는 춤사회의 지도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들이 운영위원의 일원으로 참가해 평론가들과 뜻을 함께하는 더 뜻깊은 앞으로의 시간을 약속드립니다.
시작한 첫해 1998년 무용가들에게 500만 원씩을 지원했어요. 그때 500만 원이라고 하면 굉장히 큰돈이에요. 당시 「서울무용제」에서 주는 지원금이 700만 원이었어요. 그렇게 보면 우리가 젊은 무용가들에게 주는 돈이 엄청 큰돈이었던 거죠.
「크리스틱 초이스」를 통해서 성장한 무용가들이 지금 50대가 됐거든요. 사회적으로 시니어 그룹에 들어가고, 아까 말씀드린 무용계 새로운 리더십의 연배가 된 거죠. 그들이 이제는 리더십을 발휘할 경륜이 됐기 때문에, 제가 과감하게 운영위원회를 발족해서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게 의미 있는 일이죠. 위원회에서 평론가 선생들과 운영위원들이 같이 무용가를 선정하고, 작업을 해나가기로 했어요.
저는 그런 믿음이 있어요. 우리가 잘 하면 국가도 그걸 알고 지원해 줄 거라고요. 민간 기업이 지원해 성과를 낸 것을 국가가 안 받아줄 리가 있겠어요? 그게 국가의 힘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고맙게 생각을 하지만, 또 문화예술위원회는 그런 것을 맡아줄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춤계 내외의 주목받는 신작을 발표해 인재들을 발굴 성장시켜 온 20년
조은경 _ 조동화 선생님이 「춤」지를 창간하고 나서 「춤」지 이전, 이후를 나눠서 이야기하듯이 「크리스틱 초이스」도 춤계내 많은 변화를 일구었습니다. 「크리스틱 초이스」가 당대 최고의 젊은 무용가들을 발탁해서 그 사람들이 현재의 위치에 오기까지 키워낸 공로는 우리 무용계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또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주년 축하드리고, 더욱 발전이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춤계 덕담 혹은 하시고 싶으신 말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동우 _ 이 자리를 빌어 「크리틱스 초이스」 20주년을 축하할 뿐만 아니라, 이를 기점으로 내실을 다지는 계기가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안팎으로 변화가 많은 2017년 5월의 좌담이라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예술가나 평론가나, 누구든 자기자리에서 자기 본분에만 충실하면 회복할 여지는 많다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경애 _ 금년 1월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선거 이후 춤계의 지각변동이 진행되고 있고, 리더십도 젊은 세대로 바뀌고 있어요 그러면서 무용계의 불협화음도 있고요. 그 과정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용계나 문화계에 부끄럽게 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지도자들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데 손잡고 나선 모습이거든요. 거의 같은 인물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같은 이상한 성명서가 작년부터 금년 초까지 사실은 세 번째였어요. 어른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나쁜 짓 한다”는 인상이 강한데, 선배들이 부끄럽지 않은 무용계를 위해 자중하길 바랍니다.
박민경 _ 오늘 좌담 시작할 때 협회장들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셨는데, 저는 협회들이 자체 사업이나 회원들을 위한 행사에만 너무 몰두하지 말고 전체 춤계를 위해 발전적 대화를 좀 많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뜻을 모을 것은 모아서 전체 이익이 되는 방향을 모색하는 활동도 있어야지, 지원을 받고 안 받고 혹은 액수가 적고 많고가 중심 관심사가 되다 보니 춤예술은 없고 단순 이익집단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음을, 협회장들이 아셨으면 합니다. 춤을 추기 위해 지원금이 필요한 것이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춤을 추는 것이 아니듯이, 협회를 위해 무용가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용가들을 위해 협회가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한다면,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에 무용인들이 힘을 합칠 것이라고 믿어요. 곧 새 정부가 탄생할 텐데, 그러면 예술을 위해 그리고 무용가들을 위해 춤계에서 정부에 요구사항이 많아질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거기서 한국무용협회가 무슨 역할을 하면서 변화를 일으킬지 기대해봅니다.
조은경 _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