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김동호 안무의 『봉인된 시간』(4월1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014년 4월16일, 그날은 그날 이후로 계속 진행 중이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시간인 셈이다. 얼마 전 바닷속 깊이 가라앉았던 배는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배가 왜 침몰했고 왜 승객들은 모두 구조되지 못했는지, 진실은 여전히 바다 깊은 곳, 결코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진실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더 절실하게 요구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정권은 세월호와 함께 예술도 억압했던 것일까. 박근혜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세월호 직후 작성되었고 곧장 효력을 발휘했다. 3년의 시간 동안 세월호는 하나의 금기어였다. 그리고 마침내 해제되었다. 2017년 3월 대통령이 파면되자마자 세월호가 인양되고, 억눌렸던 감정은 폭발하였다.
여울목무용단의 대표 김동호의 안무작 『봉인된 시간』은 세월호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8명의 남녀무용수가 출연해 30분간 펼친 공연은 줄거리 없이 아픔과 고통의 순간을 재구성한다. 미디어를 통해 반복해서 접한 사실들, 그래서 익숙한 사실의 조각들을 사용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지침부터 ‘구명조끼 입었는데 발견하기 힘드냐’는 대통령의 발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에 ‘해경을 해체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은 정부의 방침까지 일련의 말, 말, 말들이 배경음악 대신 사용된다. 동시에 살려달라는 아이들의 음성과 꾸르륵거리는 소리도 섞여 있다. 익사의 순간은 생생해지고 그만큼 더 고통스럽고 아프다. 세월호가 서서히 가라앉아 바닥에 박히게 될 때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자책감과 미안함과 괴로움이 그날 이후 반복됨으로써 트라우마가 된 한국 사회의 현실이 무대화된 것이다.
공연은 무대 뒤에서 교복차림의 여학생 2명이 앞쪽으로 서서히 걸어나오며 시작된다. 무대는 어둡고 한 줄기 빛이 그들을 인도한다. 앞서 걸었던 사람은 무대 앞 끝에 이르러 무대 아래로 떨어지듯 서서히 사라진다. 뒤따르던 사람은 그를 구하기 위해 손을 내밀지만 결국 놓치고 괴로워한다.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갈림으로 시작되는 작품의 내용은 어느 정도 예상가능한 범위에서 펼쳐졌다. 끔찍한 사건의 고발이나 폭로의 전개도 아니고, 슬픔이나 아픔의 정서가 가득 찬 춤의 구성도 아니다. 무용수들이 엉키고 기대며 달리고 구르는 등, 주로 집단적 움직임으로 구성된 안무는 사건이 준 충격에 대한 추상적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면 공연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비교적 단조롭게 펼쳐진다.
작품의 메시지는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분명해진다. 비록 뚜렷한 서사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극은 아니지만, 처음의 두 학생이 다시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작품의 구조를 완성시킨다. 두 학생이 마침내 다시 만나고,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그리고 노란 종이배를 투명한 케이스에 담아 보관하는 것으로 공연이 끝난다. 그렇게 해서 ‘봉인된 시간’은 망각을 거부하고-영원히 현재가 된다.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정확한 소재들을 선택하는 안무자의 스타일은 항상 우리사회의 오늘을 드러내며 똑바로 직시해야 하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봉인된 시간』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들의 4월’에 대한 이야기다.

* 김정훈 안무의 『더 룸(The Room)』(4월 14~15일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대학 무용학과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학과를 아예 없애버리는 대학 당국의 결정이 춤계를 위협한다. 지방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현대무용(즉, 창작)이 실질적으로 대학을 근간으로 하는 우리 춤현실을 감안한다면, 지방에서 대학 무용과가 없어진다는 것은 그 지역의 춤현장이 소멸됨을 의미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학 중심의 춤활동이 과거에 비해 약해지면서 동문 무용단들의 약세도 이어지고 있다. ‘창작’을 넘어선 영역으로 춤의 지평이 확장되고 프로젝트 식으로 공연팀 운영이 늘면서 동문 무용단들의 활동이 약화된 측면도 있고, 위계적 구조나 열악한 재정, 특유의 폐쇄성 등으로 프로페셔널한 단체로서 경쟁력이 부족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직업무용단이 부재한 현실에서 나름의 기여를 하고 있기에 그 중요도나 의미는 변하지 않고 지속성도 여전하다.
중앙대 현대무용 전공생들로 구성된 무용단 ‘C2댄스’가 창단공연을 했다. 무용단 대표인 김정훈이 안무한 『더 룸(The Room)』은 안무자를 포함해 남녀무용수 8명이 출연해 약 60분 동안 펼쳐졌다. 먼저 극장의 4면에 객석을 배치함으로써 무대는 프로시니엄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보통 이런 형태는 객석과 무대의 분리를 배제할 목적으로 만들어지는데, 관객의 출연 내지 개입을 의도하기 때문이다. 객석에서 무대를 볼 때 상대편 관객들이 보이기 때문에 그들이 작품의 요소가 되지 않는다면 방해와 불편만을 안겨줄 뿐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관객의 개입은 없고 조명의 역할을 극히 미비해서 극장 내 모든 공간이 노출되어 있는 형식이다. 그런데도 객석과 무대를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마치 커다란 투명 유리상자가 관객 앞에 놓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서 춤이 이루어진다.
이 작품은 ‘공간의 변주’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여러 위치에서 바라보는 ‘한 공간’에 대한 것이다. 어떤 서사적 줄거리나 이미지로 이루어진 극이 아니라, 무용수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끊임없이 변해가는 공간이 주제인 셈이다. 여기에 ‘고정된 것’, 이른바 룸(room)에 관한 시선이 있다. 무대에는 하나의 장치만 있는데, 그것은 공연 시작 때 무대 저 안쪽에 고정되어 있다. 열고 닫을 수 있는 문들이 쭉 이어져 있어 하나의 벽을 이룬다. 가로로 되어 있던 이 벽이 공연 중간에 세로로 무대 중앙에 세워질 때 무대는 좌우로 갈리고, 반대편 공간은 관객의 시야에서 차단된다. 이제 관객은 분리된 공간의 한쪽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만 볼 수 있고, 저 반대편 관객이 보는 장면은 볼 수 없게 된다(물론 무용수들이 같은 춤을 출 것이라고 예상되지만). 그 벽은 공연 내내 공간을 분할하거나 변형하는 데 이용되고, 문을 통해 닫힌 공간이 되기도 하고 열린 공간이 되기도 한다. 누구는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앞모습을 보고 누구는 뒷모습을 본다. 누구는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누구는 달려오는 모습을 본다.
춤은 시공간 예술로서 기본적으로 공감각적 성격이 특징이기 때문에 안무의 다양성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방법과 관련된다. 이 작품에서 춤은 감정을 내포하거나 어떤 의미를 갖는 움직임으로 보이지 않고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물리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내재된 이야기 없이, 지각을 자극하는 실험과 같은 재미를 꾀하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안무자는 공간의 분할과 재배치, 움직임의 정렬과 변형 등의 구상을 무대화함으로써 감각성을 자극했다. 다만, 그러한 발상이 평범하여 큰 흥미를 이끌지는 못했다. 특히 익숙하고 비슷한 동작군으로 인해, 움직임이 새로운 공간을 생성시키는 방법에 대해 새로움을 제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