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한 해의 절반이 지났다. 이례적인 시간이었다. 작년 연말 국회의 탄핵가결로 대통령이 직무정지 당한 후부터 헌법재판소의 파면결정 그리고 새 대통령의 선거와 취임까지 약 5개월의 시간이 사실상 국정공백기였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2개월이 되어간다. 새 문화부 장관이 취임했지만, 새로운 정책이 실행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니 연말쯤 가서야 비로소 가시적인 변화가 예고되지 않을까 싶다.
일명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의 여파로, 국가지원과 관련된 예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는 가운데, 2017년 상반기의 춤계 현장은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킨 듯하다. 국립무용단,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뿐만 아니라 민간단체 및 개인공연도 연초부터 꾸준하지만, 무엇보다 몇 가지 큰 연례행사들이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한국현대춤협회의 「한국 현대춤작가12인전」(4월), 한국춤협회의 「한국무용제전」(4월), 한국무용협회의 「젊은 안무자 창작공연」(5월), 한국현대무용협회의 「모다페(국제현대무용제」(5월)가 있었고, 더불어 「20회 크리틱스 초이스 댄스페스티벌」(5월, 댄스포럼 주최)과 「7회 대한민국발레축제」(6월, 대한민국발레축제조직위원회 예술의전당 공동주최) 등 비교적 규모 있는 행사들이 상반기 춤현장의 축이었다.
「대한민국발레축제」는 예술의전당(오페라극장, 토월극장, 자유소극장)에서 약 20일간 펼쳐졌는데, 여전히 초청공연인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의 레퍼토리가 조금 인기가 있을 뿐 국내 작품들은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어느덧 7년이 된 페스티벌인데, 발레계의 창작이 기대보다 활발하지 못한 인상과 더불어 점점 더 위축되고 있는 것 같다. 진정한 축제의 성격을 강화하고 질적 향상을 위해 예술감독제 도입 및 새로운 기획의 프로그래밍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발레협회의 「케이발레월드(K-ballet World)」를 비롯해 여러 방식으로 발레분야의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대한민국발레축제」는 좋은 작 품들을 선별하여 대중적인 접근이 용이한 통로의 역할도 겸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이에 대한 비전을 기대해본다.
「대한민국발레축제」를 제외한 다른 행사들은 모두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 및 소극장)에서 개최되었다. 새 정부의 공연예술계 정책에 어떤 내용이 있을지 모르나, ‘아르코예술극장을 춤 전용 내지 중심 극장으로 되돌려 놓을 것’이 하나의 바람이다. 지원문제(결정시기나 금액 등)가 있긴 하지만, 이제 춤현장이 고정된 여러 축제들을 주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의 창작지원금만으로는 개인공연이 쉽지 않아 그나마 극장대관이나 홍보마케팅을 지원받을 수 있는 축제의 프로그램으로 공연하는 것이 선호된다. 더구나 독자 공연을 해야 하는 민간단체의 경우 협회의 행사들이 먼저 일정을 잡은 후에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에 원하는 때에 공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아르코예술극장의 춤 전용화가 춤계 인프라의 핵심임을 강조해온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인데, 몇 년 사이 춤환경이 변하면서 더욱 더 절실해졌다. 정책에 따라 극장 운영이 수시로 바뀌는 까닭에 불안정한 춤현장은 늘 불안해했고, 그만큼 무용가들의 창작활동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창작을 중시하는 춤현장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수립한다면 먼저 공연장의 문제에 관심갖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 상반기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있은 여러 행사들을 보면서 더 확실해졌다.
한편, 한국문화재재단이 주최하는 「무탐(舞貪)」이라는 공연(6월27일 한국문화의집 코우스)은 ‘춤추는 평론가’라는 부제가 달렸는데, 출연자들이 무용가가 아니라 평론가라는 점을 내세워 홍보했다. 무슨 의도의 기획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엔 그저 수많은 ‘광고문구’ 중 하나에 불과해 전혀 주목하지 못했는데, 언론에 보도가 되면서 ‘무슨 대단한 일’인(?) 것처럼 된 모양이다. ‘춤추는 평론가’는 ‘노래 부르는 평론가’나 ‘그림 그리는 평론가’처럼 평범한 말이다. 또 그것은 ‘춤추는 어린이’, ‘춤추는 어르신’처럼 이상하지 않고 혹은 ‘춤추는 소설가’, ‘춤추는 음악가’처럼 이상하지 않은 것인데, 일각에서 이런 공연을 문화재청에서 지원한 데 대해 ‘왜?’라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춤을 위한 기획이 다양하게 늘어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공연도 무용전공이 아닌 이들에게 무대를 내주었고, 예전 한팩 시절에는 아르코예술극장에서도 청소년들의 공연이 기획되었으니까. 이미 문화정책의 이념이 ‘문화의 민주화’에서 ‘문화민주주의’로 이동한 후 지원의 기조가 보편화, 이른바 복지적 차원의 접근이 강조되었다. 예술지원의 범위와 방향도 확장되었고, 본래 예술가의 몫이었던 지원영역이 ‘춤은 누구나 출 수 있다’며 춤추는 사람 모두를 포함하고 있으니 평론가가 춤춘들 이상할 것이 하나 없다. 어떤 평론가가 무용수로 데뷔하든 그 자체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며, ‘춤 잘 추는 평론가’라면 더 좋을 수도 있다. 문제는 단순히 누가 춤추었다는 데 있지 않을 테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크다.
이러한 풍경은 오늘의 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즉, 문제는 그들이 추는 춤이 ‘전통춤’이라는 데서 시작한다. 문화재청은 전통을 지원하는 기구이니 이 기획공연의 문제는 전통춤 분야에서 왈가왈부할 일이다. 우려는 전통춤이 창작의 영역과 함께 묶여 다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현대예술이 발전하면서 전통춤은 창작의 영역과 분리되어 별도의 분야로 존재하고 예술지원은 기본적으로 창작지원이었다. 전통춤은 클래식발레처럼 보편적인 수요가 따르는 영역이며 상업적 측면에서 대중화가 가능한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 전통의 지원은 춤추는 행위나 공연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그 분야에서 반드시 필요하나 외면당하고 있는 부분에 하는 것이다. 오늘날 전통춤의 지원과 창작춤의 지원은 다른 범주라는 의미다.
현대예술로서 춤은 창작을 본질로 하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안무개념의 발전과 연관이 있다. 여기서 안무란 단순히 어떻게 움직일지, 그 동작순서를 가리키거나 아이돌그룹의 춤을 만드는 작업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만드는 구성이나 예술춤을 규정하는 개념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전통춤 공연에서 안무라는 개념이 다루어지기 위해서는 매우 제한적인 조건이 따를 수밖에 없다. 현대무용의 시대에 비평은 춤이 예술(작품)로서 갖춰야 할 조건에 대한 연구였고, 이는 결국 안무 개념을 정립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우리 현대무용의 역사에서도 평론은 민속춤이나 궁중춤과 같은 전통춤으로부터 ‘현대예술로서 춤’을 구분하기 위한 비평적 관점을 일컫는 것이었다.
바로 여기에 ‘춤추는 평론가’를 문제시하는 시각이 있으니, ‘아무나 평론가’라며 한숨 쉬는 무용인들의 안타까움이 반영되어 있다. 진정한 평론가라면 아마추어의 춤과 프로의 춤을 구별하여 전문영역으로서 춤을 존중할 것이며, 너도 나도 예술가인 시대에 안무가의 예술작업을 가려내는 데 열중할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 춤사회에는 아직 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 춤현장에 그 같은 비평의 날이 한없이 무뎌졌다는 것이 우려할 문제인 셈이다. 이것도 춤이고 저것도 춤이며 이것도 예술이고 저것도 예술인 시대에, ‘무엇이 춤예술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평론가들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춤이 직면한 문제가 아닐는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공연소식을 전해 들으며 든 생각은, 전통춤이 창작의 영역을 잠식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다시 춤 창작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봐야 할 때라는 것이다.
끝으로 6월의 춤현장에는 더 주목할 사건이 하나 있는데, ‘현대무용협동조합’의 출범이 그것이다. 이 조직이 추구하는 목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떻게 실현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