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살롱

출판사 창비에서 ‘시요일’이라는 시 전문 앱을 선보였다. 220여 명의 시인이 쓴 시 3만여 편을 탑재한 애플리케이션이다. 유명한 원로 시인은 물론이고 중진 시인, 근래 등단한 젊은 시인들까지 망라했다. 김소월, 윤동주, 한용운, 김수영 등 우리 문학사를 빛낸 시인들도 망라됐다.
이와 같이 “디지털 시대의 시 플랫폼”을 표방하는 앱이 선보인 데는 나름의 배경과 이유가 있다. 우선 매체 환경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 등 언제 어디서나 이용자와 함께하는 밀착형 디지털 기기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종이책 시집만으로 시를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시의 디지털화와 데이터베이스화에 의해 변화하는 매체 환경에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종이책 시집은 대부분이 수천 부의 초판 발행만으로 끝나 많은 독자와 만나는 데 여러 한계가 있다. 하지만 시가 디지털의 옷을 입는 순간 엄청난 확장성을 갖게 된다. 디지털화된 시가 모바일 및 SNS에 최적화된 단문 콘텐츠라는 점도 큰 장점이다. 인터넷상에서 원문이 훼손된 잘못된 시구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바로잡아 ‘정전’을 확립하는 계기가 된 것도 중요하다. 시의 원문을 찾아볼 수 있는 창구가 생긴 셈이다.
‘시요일’이 앱의 최신 기능들을 활용한 만큼 다양한 활용법이 있다. 먼저 매일처럼 시 한 편씩을 원하는 시간에 받아볼 수 있는 ‘오늘의 시’를 배달받아 읽을 수 있다. 젊은 시인들이 선정한 큐레이션 시이다. 추천 글과 추천 시도 별도로 있다. 일부 시는 시인의 육성으로 녹음한 것을 듣는 낭송 시이다. 이런 점은 종이책에서는 맛볼 수 없는 멀티미디어의 장점이다. 또한 폰트(활자 모양), 글자의 크기, 행간이나 여백, 밝기 등을 독자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 시를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골라 SNS로 친한 사람들과 공유할 수도 있다. 독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시만을 모아두거나, 이 시들을 모아 주문형 출판(POD) 방식으로 종이책을 만들어 읽을 수도 있다.
‘시요일’ 앱의 가장 큰 특성은 그 자체가 데이터베이스라는 점이다. 그래서 제목이나 본문의 키워드 검색뿐만 아니라 미리 설정해둔 다양한 분류법에 따라 주제, 감정, 소재, 시간(절기나 기념일) 등에 따른 주제어 검색이 가능하다. 이렇게 검색한 결과는 정확도, 조회수, 가나다순, 출간일순 등의 조건으로 정렬해서 볼 수 있다. 출판사는 자사의 시집뿐 아니라 다른 출판사들에서 발행된 시집도 모두 앱에 수록함으로써 시집을 펴내는 곳과 시인들 모두가 상생하는 진정한 시의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오픈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앱을 이용하려면 3,900원의 월정액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수만 편(앞으로는 수십만 편)의 시를 언제나 가까이 할 수 있는 비용치고는 저렴하다. 이미 많은 문학 애호가들이 가입하고 있다고 한다. 학술 논문, 잡지, 만화, 어린이책 분야 등에서는 월정액을 지불하면 해당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는 방식의 플랫폼 비즈니스가 정착되고 있다. 시의 플랫폼이 등장함으로써 시 읽기가 생활화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