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국립무용단 김상덕 안무 『리진』(6월28일~7월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오랜만에 만나는 국립무용단의 신작, 무용극이라 소개하는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커서일까 시종 어색한 ‘리진’의 무대와 춤은 작품 속에 빠져들기 쉽지 않다. 예술감독 김상덕은 여인의 사랑을 작품의 중심에 가져가는 것에 시대적 숙고가 있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중심소재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극성, 이것이 충족될 때 작품은 설득력을 확보한다.
막이 열리고 드라마의 서사와 함께 주요 배역의 캐릭터가 소개된다. 서로의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상태. 이때 군무진은 주요 캐릭터를 어필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넓은 무대에 겹을 이룬 무용수들의 배열 또한 어색하다. 이 어색함은 빈약한 드라마의 재현성 때문이라 생각된다. 극의 흐름이 계속될수록 상호관계의 설득력이 약해진다. 텍스트로 예고하고 있는 각 단계가 정확하게 맺어지지 않아 종점을 향하는 극에 힘이 더해지지 않는다. 안무자는 추상과 설명의 사이를 오가며 리진이라는 여인의 비극이 어떤 것인지 관객에게 안내해야한다. 리진과 각 캐릭터의 입장에서 다가가려 해도 이들의 사랑과 비극이 동기화 되지 않는다.
작곡가 김성국의 음악은 탄탄한 드라마로 작품을 지배한다. 송범 시대의 작곡가 박범훈보다 힘이 있다. 작품 속의 음악은 상황의 전개를 정확하게 표현하지만 춤이 음악을 타고 놀지 못한다. 음악으로 만들어 놓은 정황을 춤이 쫓아가는 인상. 춤 자체가 빈약한 것이 아니다. 춤이 이루는 구조가 그렇다. 무대미술은 중앙에 걸어놓은 커다란 반원 형태의 스크린. 높낮이를 조절하며 다양한 색상으로 변화를 만든다. 세련된 무대 공간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춤의 정서와 매칭이 되지 않는 시종 밝은 톤이 작품의 몰입을 방해한다.
다시 한 번 리진의 마음에 이입해서 작품에 빠져보고 싶었다. 격변의 시대, 미지의 세계에서 온 사랑, 그와 함께 떠나는 사랑의 용기, 그리고 그리움과 죽음. 텍스트의 이해를 넘어 작품 안으로 흡입되는 모티브가 형성되질 않는다. 유일하게 인상적인 것은 리진 역의 이의영과 플랑시 역의 황용천 두 사람이 만드는 사랑의 춤이 반짝인다.
‘리진’ 속에 가득한 어색함. 이 어색함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유는 한가지다. 빈약한 드라마와 춤의 구조가 고도로 훈련된 춤과 맞지 않는 것. 무용극은 춤이 극의 형식을 빌린 것이 아니라 극으로는 담지 못하는 춤이기에 가능한 극적 아름다움의 발현을 목표로 해야 한다.

* 국립현대무용단 김보람, 김설진, 김용걸 안무 『쓰리 볼레로』(6월2~4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반복된 멜로디가 최종점을 향하면서 고조되는 피날레를 가진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는 조르주 돈(Jorge Donn)의 춤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 강렬한 인상이 오랜 시간 뇌리에 남아있는데 최근 자료를 다시 찾아보니 생각속의 것처럼 그리 크지 않았다. 어릴 적 골목길이 작아 보이는 것처럼 머릿속 상상의 볼레로가 훨씬 큰 것이었다. 볼레로 음악을 사용한 춤을 최근 자주 접한다. 지난 4월 국립무용단의 『시간의 나이』, 5월 크리틱스초이스에서 이동하의 『골콩드』에 볼레로가 사용되었다. 무용가에게 도전하고 싶은 욕망의 음악이며 언제나 열정의 춤이 기대되는 무곡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쓰리볼레로는 세 사람의 안무자 김보람, 김설진, 김용걸의 작품이다. 볼레로의 본질적인 매력에 빠져보자 한 듯 각각의 춤에 특별한 메시지나 서설을 거두고 춤에 집중한다. 김설진이 작품설명에 밝힌 것처럼 삶에 배어있는 문제의식, 일상의 인식은 이미 충분히 느끼며 살고 있으니 그저 춤의 본질을 즐기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쓰리 볼레로’란 타이틀의 춤을 즐기는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볼레로 음악의 재해석, 둘째 볼레로 음악과 춤의 구성, 셋째 볼레로의 폭발적인 피날레. 이 세 가지 부분에 대해 기록한다.

김보람의 『철저하게 처절하게』는 실내악 규모로 음악을 구성했다. 관악기와 현악기, 타악기 등이 산발적으로 볼레로의 중심 선율을 연주 한다. 춤의 공간에 볼레로의 리듬을 예고하는 듯하다. 이 전조가 볼레로의 선율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김보람 특유의 움직임, 돌발적이면서 불규칙한 에너지가 잘 어울린다. 다만 음악이 고조되면서 종점을 향할 때는 음량이 다소 빈약하다. 김보람은 무대중심에 떡하니 버티고 선다. 그가 만드는 보스의 춤은 여전했다. 김보람표 춤의 기본이랄까, 무대에서 만들어내는 파워풀한 에너지는 여전했지만 볼레로의 확장을 성과로 이끌지는 못했다. 작품의 최종점에 부족한 음량처럼 춤의 에너지를 발하지 못했는데, 김보람의 춤에 가진 기대 이상에 미치지 못했단 말이다.

김설진의 『볼레로 만들기』는 볼레로의 중심 멜로디와 음악의 일부를 파편처럼 툭툭 늘어놓고 입으로 멜로디의 부분을 읊조린다. 단편적인 움직임과 때론 유기적으로 흐르는 음악을 완전히 재편집해서 멜로디가 아닌 음과 분절된 소리의 파편을 흩어 놓았다. 김설진의 춤은 즐거운 상상이다. 그림 같은 움직임에 끊어진 듯 연속된 동작들. 특별한 구조를 가진 움직임이 아닌 움직임 자체의 가치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뜯어내듯 춤을 이어간다. 이 움직임들이 볼레로에서 해체시킨 음악적 소스와 적절히 버무려지면서 잔잔한 고조를 만든다. 지성으로 풀어가는 퍼즐을 연결하는 느낌. 작지만 밀도 있는 움직임으로 가득했다.

김용걸의 『볼레로』는 풀오케스트라를 무대 후면에 배치하고 볼레로에서 필요한 분량을 재구성하여 풍부한 음을 무대에 채운다. 웅장하고 꽉 찬 음악적 에너지와 훈련된 38명의 움직임이 파워풀하다. 춤이 종점으로 향할수록 그 압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최근 우리 춤계에 이처럼 공간을 가득 채운 춤이 있었나 생각되었다. 양적, 질적 두 가지 면에서 꽉 찬 무대였다. 김용걸의 볼레로는 예리한 선들을 뿜어내는 빼어난 무용수들, 이들의 일사불란함 움직임, 선글라스로 표정을 가리고 만들어낸 일체감이 인상적이다. 이런 무대를 연출 할 기회를 가진 것이 안무자에게 행운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