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7일 인쇄
2017년 7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7년 7월호 통권 497호 |2025년 4월 8일 화요일|
 

세계의 춤기행

 

2017년 중국정부가 공식지정한 연변지역 조선족 “된장의 날”
- 중국 연변에서




이노연(한국춤·전 부산시립무용단 수석안무자)

어느새 중국 연변과는 친숙한 관계가 된 것 같다.
낯설지 않은 연길시 공항. 북, 의상 등 공연짐이 많아 인천공항에서 2017년 6월 7일 오전에 혼자서 출발해 연길공항에 내렸다. 연변대학교 최미선 교수가 맞아 주셨다. 알고 보니 우린 동갑내기였다. 곧장 맛있는 초두집에 가서 오찬하며 채희완 단장 이하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극단 「꼭두광대」, 하야로비무용단, 마산오광대보존회, 우리소리 우리가락 청 총 29명의 공연단 출연진 스태프 팀원을 기다렸다. 모두 부산 김해공항에서 오후에 단체로 출발했다.
기다리는 동안 막간을 이용해 환락궁 부대시설 극장 무대 위에서 최미선 교수 제자들에게 작품 타고의 핵심기술 북치는 기법에 대해 포인트 레슨을 해줬다. 제자들 북 소리가 “마치 중이 북치는 것 같다”던 최미선 교수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준 셈이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배우고 터득한 북 터치법을 조선족에게 아낌없이 꺼내 지도를 했다. 그들은 북치는 기법을 제법 빨리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조선족을 위한 짜투리 순간 레슨은 보람 있었다.
2013년도부터 한국무용의 저변확대를 위해 재능나눔 컬쳐디자이너로서 활동하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채희완 단장과 함께 WCO W스테이지 안국, 서소문 ‘이노연 워크숍’ 한국 안국동 현장에 깜짝 방문한 적이 있었던 최미선 교수가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활발하게 재능나눔 활동을 하고 싶다.
드디어 늦은 저녁, 민족미학연구소 주최 중국 공연팀 전원 총 30명 모두가 환락궁에 집결하여 짐을 풀었다. 환락궁의 웅장한 시설에 비해 수압이 매우 낮은 찬물 더운물 때문에 모두가 쪽머리 등을 샴푸하고 샤워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조찬 내용은 마음에 들어 아침식사에는 모두 만족했다.
2017 중국 동북3성 열일곱 번째 「한국전통민속예술순회공연」은 민간차원에서 6월8일 오전11시 훈춘시 밀강해방촌 야외무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탈춤과 풍물굿을 통해 민족정서와 예술적 흥취를 전달하고자 올해도 어김없이 중국공연은 9박 10일간 일정으로 이어졌다.
중국 동북3성은 19세기 중엽 이래 조선족이 거친 들판과 구릉지에 피와 땀으로 마을을 일군 땅이다. 일제 때는 항일무장투쟁으로 선열의 열혼이 배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온갖 역경과 추위와 비바람에도 오히려 그것들이 새 삶의 터전을 닦는 뜨거운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되기도 한 조선족의 삶터이다.
밀강 해방촌은 경상북도 집단이주 터전으로 잡은 조선족마을이라고 전한다. 20리 더 가는 마을은 진주 강씨들이 많았다. 함경도 사람은 남쪽에 자리 잡았고, 흑룡강성은 충청도, 전라남도에서 집단 이주한 사람이 많았다고 전한다.
이번 한국전통민속예술단의 공연내용은 민족적 정취가 흘러넘치는 봉산탈춤 팔목중춤, 마산오광대 영노과장, 살풀이춤, 진도북춤, 풍물굿, 대금산조, 아리랑 민요 모듬 그리고, 앵콜레파토리 소녀상 살풀이는 준비해갔지만 결국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6월9일 연길시 민들레마을(된장마을) 공연은 어느 해보다도 성대한 행사였다. 2017년 중국 정부로부터 올해 최초로 조선족 연변지역의 “된장의 날“(6월9일)로 지정받았다. 지정 후 처음 맞이하는 행사이므로 연길시장도 참석했으며 많은 내외귀빈 참석으로 주차장은 복잡해서 경찰들이 배치되어 교통정리 하느라 분주했다. 해년마다 된장마을 공연을 해왔지만 그동안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화려하고 거대한 대동한마당 조선족 마을축제 광경이었다. 거센 바람까지 불어 현수막, 깃대, 깃발들이 크게 물결치듯 펄럭였고 특설무대 옆 커다란 파라솔들이 날아갈 정도였다. 오전엔 쾌청한 날씨로 시작했는데 오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먹구름과 함께 간간히 약간의 소나기도 시원할 정도로 들락날락하였다.
“된장의 날” 기념식 오전행사 후 우리공연단은 식후 오후행사로서 특설무대에서 공연하였다. 한국 신촌 봉원사 범패보유자인 박송암 스님과 함께 20년간 봉원사 절에서 지내셨다는 한 남성분이 다가와서 “살풀이춤을 보고 감동 받았다”며 감격했다. 오랜 기간 절에서 제의를 봐왔기 때문에 살풀이춤에 담긴 그 동작의 깊은 의미를 알고 찾을 수 있었다며 “중국 조선족들은 아직 살풀이춤에 대해 이해를 못한다”고 전했다. 흥겨운 춤과 음악 신명에만 관심 있는 조선족을 꽤 아쉬워했다. ‘한과 정’, ‘액운을 떨쳐버리는 것’ 등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아는 조선족 신사와의 예술적 교류는 참으로 감사했다. 2016년도 심양시 조선족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도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 남성분이 “살풀이춤만 보면 이유없이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온다”며 특히 『살풀이춤』을 좋아해서 공연 보러 왔다며 관심 갖는 분이 있었는데 올해도 연변에서 『살풀이춤』에 매료된 조선족 남성을 만난 것이다.
공연관람 후 주민들은 가무악 축제문화를 즐기면서 된장으로 만든 된장술과 함께 네모난 모양의 종이장 같이 얇고 넓적한 특이한 두부쌈과 밭에서 방금 딴 듯한 싱싱한 햇마늘, 오이, 고추, 토마토, 상추 등을 안주 삼아 맛있게 먹으며 축제를 만끽했다.
늦은 오후, ‘된장의 날‘ 행사는 모두 끝났다. 그러자 2015년도와 똑같이 어김없이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행사장을 떠났고 우리 한국공연팀만 고스란히 남아 원형지붕의 소박한 만찬장소로 옮겨 된장술 사장이 준비해주신 된장술과 상추 삼겹살 만찬을 즐겼다. 올해는 ‘된장의 날’ 기념행사 홍보 깃발들의 휘날림에 묻혀 가려진 탓으로 아름답고 우아하게 반짝이는 수많은 된장 항아리들의 장관을 제대로 감상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6월10일 오전, 연변대학교 한·중 학술발표회를 가졌다. 주제는 ‘한민족 문화 공동연구: 생활의례와 축전’이다. 연변대 조선-한국학학원 회의실에서 발제자로는 이중수 “마창지역 세시풍속 생활의례와 마산오광대”, 김현일 “수영지역 세시풍속 생활의례와 수영농청놀이”, 허휘훈 “조선민족의 경노(敬老) 의례”, 한광운 “백두산·두만강 지역의 생태축제문화”, 리충실 “화룡(진달래문화) 관광축제 및 그 활성화에 대한 일고(一考)”였다.
6월11일은 안도현 내두마을 공연을 가졌다. 작은 마을 조선족예술극장의 조명 음향 장비는 매우 훌륭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대 바닥은 관리가 안 되어 있었다. 꺼져 들어가고 갑자기 움푹 들어가니까 봉산탈춤 등 무용수들은 조심해서 도약하며 움직여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내두산마을 공기는 너무 청정하여 마치 한국 남도지역 진도에서 근무했었던 2004년 9월 여귀산자락 아래 위치하고 있는 국립남도국악원이 개원하여 연수목적 숙박동에서 몇 개월간 묵었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피톤치드 그 이상의 향기가 느껴졌다.
저녁 하늘에는 별의 갯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표면상으로는 깔끔한 숙소지만 장작불을 피워서 방바닥 온도를 높이는 재래식 온돌방이었다. 화장실은 좌변식으로 신식 시설을 갖췄다.
공연 후 백두산 바로 아래 위치한 내두마을에서 1박 하고, 다음날 우리는 드디어 북파를 통해 백두산 천지 해발 2470미터에 올랐다. 해발 2000미터까지는 버스 타고 올라갔는데 이곳저곳 자작나무가 자생적으로 무성했다. 당뇨병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는 백산차 흰꽃이 눈에 많이 보였다.
올해는 행운이었다. 남들은 5~6번 정도 백두산 올라가야 겨우 볼 수 있다는 눈에 덮힌 천지 북파를 우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봤다. 그 다음날도 백두산 서파 천지를 계단으로 올랐다. 본인은 곧 있을 6월29일 서울 국립극장에서의 최현춤전 『부채산조』 공연 출연을 핑계 삼아 가마꾼 도움을 받아 가마 타고 정상에 올랐다. 분명 중국 땅인데 묘하게도 한 쪽은 북한 땅이다. 장군봉 앞 천지에서 우리 모두는 즉흥적으로 봉산탈춤을 추며 백발가 소리, 반마리 학춤, 마산오광대 말뚝이춤 등 제대로 한판을 멋지게 벌였다. 마치 계획된 것처럼. 주변사람들과 공안도 볼만한 가치가 있어서인지 바라만 보고 오히려 재밌게 관람했고 막지도 않았다.
그런데 1,000여 개 계단을 내려가는 게 더 문제였다. 우리의 수장 현재 82세 고령이신 채헌국 효암학원 이사장께서 걸어서 내려갈 것을 고집하셨기 때문에 다시 악가무는 시작되었다. 이번엔 흘러간 유행가였다. 합창하며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채희완 단장이 지키고 계신 우리의 캠프에 도착했다. 우린 일단 라면으로 출출한 배를 달랬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번 중국 동북3성 한국전통민속공연예술단의 9박 10일간의 공연 일정은 모두 끝났다. 2018년 조선족을 위한 중국공연을 기약하면서. ‘된장의 날’ 기념행사 참여 기념선물로 받은 된장술, 공항에서 개인당 3병을 모두 선물로 인정받아 함께 무사히 귀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