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관무기

* 파슨스무용단 『코트, 업엔드, 다니엘 등(Caught, Upend, and Daniel etc.)』(5월16~28일 조이스시어터)
워낙에 기계체조와 발레로 기본기가 탄탄했던 데이빗 파슨스(David Parsons)가 처음으로 현대춤에 입문하게 된 시기는 1970년대 초 앨빈 에일리(Alvin Ailey)에서 부터이다. 이후 1978년 폴테일러댄스컴퍼니(Paul Taylor Dance Company)의 무용수로 입단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게 되는데 폴 테일러는 데이빗을 위한 작품들을 만들고 그에게 안무의 기회도 주면서 그를 미국 현대 무용계의 스타로 만들어 준다.
데이빗은 1985년 조명디자이너 호웰 빈클리(Howell Binkley)와 함께 자신의 무용단을 창단한다. 창단 후 조명디자이너 호웰의 영향인지 작품 『코트(Caught)』와 『핸드 댄스(Hand Dance)』 등 빛의 효과를 이용한 작품들이 다수 만들어지고 호평을 받게 된다. 자신의 무용단 창단 2년 뒤 10년간 몸을 담았던 폴테일러무용단을 은퇴하는데, 은퇴 이후부터 현재까지도 데이빗은 폴 테일러가 자신의 작품에 미친 영향과 감사를 수시로 언급한다. 그리고 그가 폴 테일러로부터 많은 기회를 받았던 것과 같이 자신의 후배무용수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데 이번 레퍼토리에서도 데이빗의 작품 외에 다른 두 명 안무자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5월16부터 28일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총 12회의 공연을 조이스 극장(The Joyce Theater)에서 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올해의 신작 『헬로 월드(Hello World)』, 『업엔드(Upend)』, 『다니엘(Daniel)』과 예전에 선보였던 『핸드댄스(Hand Dance)』(2003), 『더 듀엣(The Duet)』(2015), 『코트(Caught)』(1982), 『슬립 스터디(Sleep Study)』(1987) 『스윙 쉬프트(Swing Shift)』(2003) 등을 두 개의 프로그램으로 나누어 공연했다. 몇 작품만 간단히 소개한다.

데이빗 파슨스 안무 『코트(Caught)』
현재의 데이빗 파슨스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작품이며 매 레퍼토리 공연과 해외 순회공연에 항상 빠지지 않고 공연되는 작품이다. 방한공연을 통해 한국에서도 몇 차례 선보였던 작품이기도 하다. 빛을 주기적으로 깜박이며 비추는 조명을 통해 무용수가 무대를 날아다니는 듯이 보이게 만드는 남성솔로무용인데 데이빗의 안무, 호웰의 조명디자인, 그리고 작곡가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의 괴기스러운 전자음악이 맞물려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도록 한다. 작품의 예술성을 떠나서 기존에 보지 못했던 신선한 아이디어와 볼거리 제공을 통해 현대춤의 대중화와 저변확대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에프랏 에쉬리, 데이빗 파슨스 공동안무 『업엔드(Upend)』
에프랏 에쉬리(Ephrat Asherie)와 데이빗의 공동안무 작품이다. 에프랏은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뉴욕에서 활동 중인 힙합안무자이자 교육자이다. 현대춤에 힙합을 접목한 안무의 신선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현대무용수들이 다른 장르의 춤을 그것도 객원안무가의 주문에 따라 자유자재로 동작을 소화해 내는 것이 대단하고 대견했다. 예전에는 발레 기술로 기초가 다쳐진 무용수들이 현대무용수로 탈바꿈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고, 현대무용이라는 장르에서 춤을 춰 왔던 현대무용수들에게 정교한 발레 기술을 요구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요즘의 실력 있는 무용수들은 어떠한 장르의 무용도 본인들의 전문분야처럼 춤춰내는데 그들의 향상된 기량에 경의를 표할 따름이다.

오마르 르몬 데 제수 안무 『다니엘(Daniel)』
데이빗이 자신의 무용수인 오마르 르몬 데 제수(Omar Roman De Jesus)에게 안무가로서 첫 기회를 준 작품이다. 오마르에 의하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통해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아무런 대사가 없는 무용의 특징 즉, 움직임만으로 공연시간 내내 관객들과 소통하고 작품의 의도를 전달해준 수작이였다. 특히 오마르의 농익은 솔로장면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다니엘(Daniel)이란 아이가 빙의 되어 움직이는 듯 착각을 일으키며 깊은 슬픔과 감동을 만들어냈다. 신예안무가임에도 짜임새 있는 안무 구성과 무용수들의 활용도가 돋보였다. 이제는 무용수 오마르를 넘어 안무가 오마르로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파슨스무용단의 작품은 비교적 관객이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작품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안무를 보이고 있는데 이번 공연 후에는 커튼챗(Curtain Chat1))을 통해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더욱 편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좌담의 질의응답시간에 한 관객이 파슨스무용단의 기본이 되는 예술관에 대해 묻자 데이빗은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I like variety.(저는 다양성을 좋아합니다)”라고 아주 짧게 답했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다양성을 좋아합니다. 단, 그 다양성 이전에 나의 예술철학은 확고하게 지킵니다”로 들렸다.
항상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과감히 실행하고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철학과 색깔이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 바로 이점이 그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안무가, 교육자, 제작자가 될 수 있었던 저력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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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urtain Chat - 공연 뒤 좌담. 조이스 극장에서 주로 Curtain Chat이라고 표현한다. 안무가나 제작자, 그리고 작품에 참여한 수석무용수로부터 작품에 관한 의도와 관점 등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보통 좌담의 후반에는 질의응답시간을 갖는다. 관객들에게 있어서 작품에 더욱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