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의 서울유레카

고사에 당대 제일을 의미하는 국사무쌍(國士無雙)이 있다. 현재 일본에서 국사무쌍이라면 자민당과 자민당 총대이자 내각 총리대신인 아베 신조(安部晉三)일 것이다.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야당과 적지 않는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헌법 개정과 제국주의 시절의 치안유지법과 비슷한 ‘공모죄’를 성립시키는 등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고 있다.
아베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첫 번째 원인은 일본경제가 긴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고, 그 공이 자신의 치세에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인 것이다. 하지만 그 막강하던 아베정권의 지지율이 요즘 들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민당 국회의원의 불륜, 폭력, 망언 등의 스캔들로 인한 것이지만, 그것보다 아베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하고 있는 것은 모리모토학원(森友學園)과 카케학원(加計學園) 문제다. 이 두 학원은 사립학교인데 운영상에 촌탁이 있었느냐가 문제의 초점이다. ‘촌탁(忖度)’이라는 단어는 일본인에게도 낯선 말이지만 일본인의 성향을 언급할 때 피할 수 없다.
‘촌탁’은 한국인에게도 역시 낯선 단어지만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의도를 간파하다,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의미이다. 헤아리다는 뜻의 촌(忖)과 도(度)를 붙여 쓰면 ‘헤아릴 탁’으로 읽힌다. 힘이 있는 사람의 안색을 살펴 일을 처리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서비스업의 측면에서 봤을 때 손님의 생각을 읽어내는 데 일종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촌탁이 아베가 연루된 위 두 학원에 대해 문제가 되는 것은 세금이 사적인 영역에 쓰였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우선 모리토모학원부터 검증하자. 모리토모학원은 오사카에서 유치원 등을 운영하는 사립학교다. 문제의 발단은 2018년에 미즈호노쿠니 소학교(瑞穗の國小學校) 개교 인가 문제와 학교 부지 매입에 대한 특혜 여부다. 국유지였던 당 토지에 대해 재무성은 본디 쓰레기매립장이었다는 이유로 쓰레기 제거비용을 감안해 시중의 부동산 평가액보다 대폭 할인된 금액으로 매각했다.
학교의 명예회장은 아베 아키에(安部昭惠) 씨 즉, 아베 수상의 부인이다. 때문에 촌탁을 의심받고 있다. 야당 의원은 국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베 아키에 씨가 명예회장으로 취임한 소학교 인가를 내주지 않아 개교가 늦어진다면 ‘왜 아키에 부인에게 수모를 줬느냐, 아베 수상이 수모를 당하게 했느냐’며 재무성과 해당 재무국 관료가 당연히 촌탁했겠죠!”

촌탁이 발생하는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 자체에 문제가 있고, 학교인가와 부지판매 자체에 불투명한 수속이 있었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에 대해 아베 수상은

“명예회장에 아베 아키에 이름이 있다고 해서 바로 촌탁될 일은 없습니다. 촌탁한 사실이 없는데 마치 사실이었다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인상조작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촌탁은 ‘남의 생각을 읽어내고 헤아리는 일, 남의 마음을 추측 추정하는 일’이다. 때문에 이 스캔들의 경우 관할 재무국과 재무성 담당자가 아베 아키에 씨의 마음을 촌탁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아베 수상에게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무리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베 수상은 “촌탁은 절대로 없다. 만일 있었다면 나는 (수상을) 그만 두겠다”고 말해버렸다. 아베의 과신이었을까, 이 말을 들은 야당은 아베 수상을 사임시키기 위해 많은 수단을 동원했고, 국회 기능이 마비될 정도의 큰 스캔들로 일이 커졌다.
일본 정치와 관가에 촌탁이 100% 없을까? 일반적으로 관료들은 출세 지향적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정치가나 상사로부터 칭찬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촌탁의 요인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례가 없는 일에 촌탁이 실현되는 것은 어렵다. 관료들은 전례가 없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례가 없으면 어떻게 하면 될까? 억지로라도 이치가 닿도록 하는 것이 출세하는 관료의 능력이라고 인정받는 관행도 있다.
이런 이유로 아베 수상과 재무성 관계자의 촌탁이 발동됐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부인인 아베 아키에 씨가 학교의 명예회장인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수상 부인인 아키에 씨의 영향력은 그야 말로 촌탁하기 딱 좋을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베 아키에 씨의 행동은 자유분방하다. 가족들이 반대하는데도 동경 도내에 아베 수상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에서 공수한 고기, 생선, 야채 등의 식재료로 메뉴를 구성한 이자카야를 열었다. 아키에 씨가 직접 접객하는 날도 있으며 장사도 잘 되는 편이다. 뿐만 아니다. 많은 단체에 관여해 관계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 이유는 “총리 부인이라 저와 만나서 반갑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 조금이라도 힘이 돼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라고.
물론 이번 모리토모학원의 경우도 그런 마음으로 명예회장을 맡았을 것이다. 그러나 좀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있다. 모리토모학원의 교육이념은 교육칙어(敎育勅語)다. 이것은 1890년에 반포돼 국민의 도덕과 교육에 관한 칙어로 일왕을 찬양하는 이념이 포함돼 있어 1948년에 폐지됐다. 모리토모학원이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이 교육칙어를 암기시키는 교육을 하고 있어 문제가 되기도 했고, 모리토모학원이 개교를 준비한 학교 명칭인 미즈호노쿠니의 미즈호는 ‘싱싱한 벼이삭’이라는 뜻이며, 쿠니는 ‘나라’를 의미한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미즈호노쿠니’는 고대 농경국가인 일본을 미칭(美稱)하는 말이다. 즉, 모리토모학원이 우익교육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베 아키에 씨는 한류팬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즐겨 본다. 나도 드라마 「대물」(고현정 주연)이 일본에서 방송될 때 만난 적이 있는데, 한국어도 잘 하는 편이며 상냥하신 분이었다. 우익사상인 모리토모학원의 이념과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아베 아키에 씨를 직접 만난 내 인상은 좋은 뜻으로 그녀라면 그럴 수 있다는 것. 흑심을 갖고 접근하는 자들도 받아들이는 박애정신이 이번 스캔들에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수상 부인이라는 입장을 넘어서서 하는 행동 때문에 이번 스캔들에 말려들었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아무튼 모리토모학원에 대한 촌탁을 문제 삼은 야당은 지난 3월 10일 모리토모학원 이사장인 카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씨를 국회에 소환해 청문회를 실시했다. 청문회에서 카고이케 씨는 “아베 아키에 씨가 유치원을 방문했을 때 100만 엔이 들어 있는 봉투를 기부금으로 받았다”고 발언해 아베 수상의 관여를 지적했다. 정부는 카고이케 씨의 일련의 발언에 대해 위증이라고 부정하며 맞섰다. 모리토모학원은 소학교 인가 취소, 유치원 교사 부족을 개선할 의지가 없다는 명목으로 면허 취소가 돼 카고이케 씨는 이사장을 딸에게 물려주고 빚만 남았다.
모리토모학원 문제가 어느 정도 진정된 지난 2017년 5월17일, 아사히신문은 이마바리시(今治市)에서 수의학과 단과대학 개교가 결정됐는데, 내각부에 대한 촌탁 문서의 존재를 보도했다. 내각부라면 아베 수상을 의미한다. 일본에선 지난 52년 동안 수의학과 신설이 없었다. 그간 수의사의 기득권을 보호받고 싶어 하는 일본 수의학계는 정치헌금을 보내면서 수의학과의 신설을 인가하지 못하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 사건 또한 아베에 대한 촌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고 있으며, 아베의 정치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사전 중 하나가 됐다.
모리토모학원과 카케학원 촌탁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이며, 아베 정권의 미래가 반드시 밝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촌탁에 관한 두 스캔들을 살펴보았는데, 외신들은 촌탁에 관해서 어떻게 보도했을까? 뉴욕타임스는 카고이케 씨가 국회 청문회 후 동경외신클럽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Thursday afternoon, Mr. Kagoike said he did not believe Mr. Abe had “direct influence” on the discounted land deal. He hinted at “powers at work behind the scenes” and said that unidentified officials in the Ministry of Finance had helped facilitate the deal. 목요일 오후 카고이케 씨는 국유지 가격 인하에 대해 아베 수상의 “직접적인 지시”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대 뒤의 힘”을 암시하면서 재무관료 중 누군가 토지 매매의 신속화를 도와줬다고 말했다.

촌탁을 “power at work behind the scene”라고 번역했는데 설명적이다. ‘촌탁’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없어서다. 내포돼 있는 의미가 너무 많아서 번역할 수도 없다. 현장 통역사도 촌탁을 통역하는 데 고심하고 있었을 때 옆에 앉았던 카고이케 씨의 변호사가 영어로 “conjecture(추측), surmise(추측하다), reading between the lines(행간을 읽는다), reading what someone is implying(누군가가 암시하는 일을 읽는다)가 해당된다”고 설명했다고.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촌탁을 규제하는 법으로 2016년 10월부터 시행된 ‘김영란법’이 유명하다. 이른바 청탁금지법이다. 원래 공무원에 대한 물품 수수와 접대를 규제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학교 교직원, 언론매체 기자까지 적용된다. 그 탓에 영화제를 참석할 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ID배지에 교수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유료화돼 내 주변에도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이 많다.
아무튼 촌탁은 좋거나 (대부분이) 나쁘거나 한자권인 동아시아만의 특징이다.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리는 것은 좋지만 촌탁으로 인해 우리의 세금이 쓰이는 것이 문제다. 정치는 촌탁 투성이지만 촌탁 때문에 나라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또한 부정할 수 없어 씁쓸하다. 촌탁이 없는 청렴한 사회, 언제까지 기다려야 될지 모르겠다.
글을 마치며 일본에선 촌탁(忖度)으로 쓰지만 한국에서 청탁이란 말이 더 익숙할 듯. 촌탁이 됐든 청탁이 됐든 일본도 ‘김영란법’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