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지난 3월부터 서울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가까운 서초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 전시 운영을 총괄해오며 서초문화예술회관이 결혼과 이혼사이에 ‘끼어있다’는 사실을 최근 문득 깨달았다. 공연장이 왜 결혼과 이혼사이에 끼어있느냐고 의아해 할 독자를 위해 간단히 사연을 설명하면 사정은 이렇다.
양재역 9번 출구를 나서면 바로 큰 건물이 나서는데 꽤 유명한 E결혼식장이다. 남쪽으로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초문화예술회관이 있고 회관 바로 옆 담장 하나로 가정법원이 붙어 있다. 서초문화예술회관을 큰 길 건너 맞은편에서 바라보면 오른쪽에는 결혼식장이 왼쪽에는 가정법원이 있는 모습이다. 가정법원에서는 여러 재판이 이뤄지지만 이혼재판이 많은 탓에 서초문화예술회관은 마치 결혼과 이혼사이에 끼어있는 형국인 것이다. 지하철 개표구를 나와 지하 통로를 이용해 E결혼식장 방향으로 가다보면 10여 개의 이혼전문 변호사 광고가 눈에 들어와 결혼식장 가는 길이 정신적으로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이제 100일 좀 넘게 결혼식장과 이혼재판법원 사이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행복한 결혼 후 불행한 이혼으로 가지 않게 막는 역할을 끼어있는 서초문화예술회관이 감당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혼을 하기까지에는 배우자의 성격을 비롯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예술경영을 전공한 입장에서 보면, 여가시간을 보내는 부부의 방법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저녁 여가시간을 보내는 부부의 방법 중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음주 습관 유무이다. 2015년 통계청이 조사한 음주 통계에 따르면 ‘마신다’고 응답한 남성은 71%로 이 중 7.3%는 거의 매일, 주3~4회는 14.4%, 주1~2회는 36.2%로 조사됐다. 여성은 48.1%가 음주를 한다고 응답한 가운데 거의 매일은 1.1%, 주3~4회는 4.8%, 주1~2회는 20.8%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이 배우자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 정확한 비교는 어렵다. 그러나 주3~4회와 거의 매일 마신다는 응답자의 남녀 합계 비율을 보면 21.7%와 5.9%로 남자의 심한 음주 비율이 3.6배 이상 높다. 이런 심한 음주 남성의 배우자가 술 마신 남편의 행태를 싫어한다면 그런 가정이 평온할 가능성은 아주 낮을 수밖에 없다.
음주 통계를 장황스럽게 나열한 이유는 음주가 대부분 저녁에 이뤄져 역시 저녁에 있는 공연예술과 제로섬(zero-sum) 게임을 하기 때문이다. 한 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을 더하면 제로(0)가 되는 이 게임에서 공연 예술이 이겨야 한 가정의 저녁문화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술을 안 마시는 대신에 스포츠 관람이나 다른 여가활동을 할 수도 있어 공연 예술과 음주가 꼭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음주는 그 저녁에 배우자와 함께 무용을 비롯해 예술 관람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봉쇄하기 때문에 예술경영 입장에서는 ‘적’이 아닐 수 없다.
미국 클리브랜드 재단이 조사한 것을 마케팅 전문가 조앤 셰프 번스타인 교수(노스웨스턴대)가 자신의 저서에 소개한 것을 보면 어렸을 때 부모와 공연을 본 경험이 있고 학생 때 예술교육을 받은 사람이 공연장에 함께 갈 배우자가 있을 경우, 이 사람이 현재 공연 관객일 가능성은 48%나 되었다. 그러나 함께 갈 파트너가 없을 경우, 그 가능성은 8%에 불과했다. 한국의 경우, 배우자가 주 3~4회 이상 음주한다면 맘 편히 공연 관람을 할 남편이나 아내는 거의 없을 것 같다.
남성들의 잦은 음주문화는 물론 본인 책임이 가장 크지만 학생시절 저녁 문화를 예술로 즐길 수 있도록 예술 감상을 취미로 길러주지 못한 음악, 미술 교사와 사회교육 관련 예술기관들의 잘못이 크다. 크게 반성할 일이다. 소질도 없는 학생에게 억지로 실기를 시키기 보다는 감상하는 방법을 가르쳐 관객으로라도 만들었어야 하지 않을까. 연극이나 무용은 배움의 기회조차 없었던 데다 성적따기용으로 음악, 미술 수업시간을 보낸 탓에 대부분의 학생은 예술에 대한 기초교양이나 감상능력도 결여된 채 대학에 가거나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이들이 퇴근 후 여가 시간을 보낸다면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술집 밖에 더 있을까 싶다.
부부가 음악이나 춤 공연관람을 취미로 한다면 당연히 배우자는 동반자가 될 수 있고 금슬도 좋아질 텐데. 음주로부터 건강도 지키고…. 이를 위해 무용계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춤추기 또는 춤 관람 즐기기 캠페인을 벌였으면 한다. 특별히 청소년을 위한 교습이나 공연이라면 개런티나 레슨비에 관계없이 춤추기와 감상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들 청소년이 성장해 관객이 되어주고 음주 대신 무용을 즐긴 다면 건강은 덤이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 자연스레 결혼과 이혼사이에서 춤은 장벽의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
행복한 예식이 이뤄지는 결혼식장과 이혼재판이 이뤄지는 가정법원 사이에 있는 공연장에 종사하면서 예술의 역할을 새삼 무겁게 느끼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