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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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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이야기
- 국립무용단·파다프 2017·최현춤전 2017·부산국제무용제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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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골은 터지지 않았다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리진』(6월28일~7월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오페라 라보엠을 보러가는 팬들의 기대는 1막에 나오는 미미와 로돌포의 솔로와 이중창에 집중되어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1막 끝나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팬들은 부지기수. 미미가 “저 햇빛은 나의 것”이라고 노래할 때 이미 라보엠은 완성된 거고 오히려 끝까지 보고 있으면 그 감동이 무뎌지기도 하는 것이다. 카르멘이 “사랑은 손바닥 위의 지저귀는 새 같아”라고 노래 할 때도 마찬가지. 오페라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노래의 영감을 얻기 위해 이야기가 필요했던 거고 노래 수십 곡을 한무대에 올리기 위해 드라마라는 전개가 필요할 뿐. 오페라의 드라마만 떼 놓고 보면 그 얼개는 얼마나 조악한가. 즉 오페라는 이야기를 들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들으러 간다.
슈트트가르트 발레가 『카멜리아 레이디』를 하면 그 이야기를 보러 가는가. 아니다. 그 이야기는 이야기랄 게 없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야기 들으러 가는가. 아니다. 관객은 춤을 보러 간다.
국립극장에 『리진』을 보러가는 관객은 리진의 기구한 이야기를 들으러 가는가. 아니다. 그 이야기도 이야기랄 게 없다. 무대가 열렸다. 작품은 구구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팸플릿에서 본 복잡한 이야기 구조가 떠오르는데, 설마 저 이야기들을 춤추며 설명하고 관객들은 그 맥락을 따라오라는 것인가. 무리다. 극의 전개나 춤사위, 조명, 음악 등등 말하자면 끝도 없다. 그러나 독무 이인무 삼인무에서 확실한 한 장면만 보여준다면 모든 것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제발 확실한 이인무를 보여달라! 끝까지 기다려보지만 지루한 축구경기 같다. 공은 후방에서 빙빙 돌았고 좋은 찬스는 있었으나 골은 터지지 않았다.
② 상상력은 어떤 이론 지식보다 중요하다!
「융·복합 공연예술축제 2017 PADAF」(6월20~25일 상명아트센터)
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다. 면적은 대략 10m×10m. 100제곱미터 약 30평. 문제는 분명 공간은 무대와 관객석의 구분이 없고, 따라서 공연자와 관객의 구분이 필요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작품들이 출발할 줄 알았으나 사정은 반대. 두번 째 날, 첫째 작품은 공간의 중앙에 사각으로 공간을 구획짓고 4명의 연기자가 출연하는 작품. 이 작품은 공간의 특성상 연기자들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설치미술처럼 보였고, 하면 연극이었다. 춤이나 미술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연극에서 출발해서 움직임과 미술, 소리가 강조된 실험연극. 나머지 작품들은 춤에서 출발해서 연극적인 요소 미술적인 요소가 강조된 작품이었는데, 문제는 그 빵 터진 공간에서 공간을 한 쪽만 사용함으로 관객들을 한 쪽으로 몰아넣었고, 즉 무대 없는 곳에서 무대와 객석을 만들어냈고, 출연자와 관객도 분명히 분리해냈다는 점. 그래서 그럴 거면 뭐 하러 불편하게 이런 공간에서 하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 관객은 약 80여 명, 네 번째 공연 할 때는 40여 명이었다(두 번씩 세어 보았다). 공간의 특성과 관객 숫자와 질을 고려할 때 출연자와 관객 모두 획기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공연이 가능하지 않을까. 새로운 상상력을 기대한다. 상상력은 어떤 이론 지식 보다 중요하다!(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
③ ‘현 어벤저스’ 세상을 구하다!
「최현춤전 2017」(6월28~30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0여 년 전 최현 선생을 만난 일이 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당시 한국춤에 전혀 관심없던 내가 그를 기억하는 건 이름 때문이었다. ‘현’이란 이름은 세련돼 보이기도 하고 촌스럽기도 한 것인데, 그는 내가 좋아하던 두 명의 ‘-현’에 이어서 세 번째 등장하는 ‘현’이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문학평론가 김현. 그의 글을 이해하려 머리를 쥐어짰었고, 지금도 가끔 뒤적거리는 그의 책은 이젠 클래식. 두 번째는 옛날 클럽 디제이 박현. 그의 선곡과 믹싱은 뛰어나서 한참(?) 때는 클럽마다 전화해서 출연 여부 확인까지 했었으니, 이 화려한 두 명의 ‘현’에 이은 춤추는 최현의 등장이란! 그러나 실물로 만난 춤추는 ‘현’은 그냥 보통체격의 평범한 노인으로 보여 살짝 실망했고, 그것이 그를 기억하는 이유. 그 이후 새로운 ‘현’은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번 국립극장에서 「최현춤전」을 보면서 그때 만난 그분이 내 인생 세 번째 ‘현’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미 - 글(김현) 음악(박현) 춤(최현) - 삼위일체는 완성되어 있었고 이들이 세상을 구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들은 내 마음 속 ‘현 어벤저스’. 어둡고 탁한 사이비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영웅!
최현 선생의 15주기 기념공연이다. 6월28일, 29일, 30일 삼일간 공연하고 매일 7작품 총 21개 작품을 20여 명의 출연자가 추었다. 나는 1일차, 2일차 무대를 보았다. 첫째 날은 시나위 즉흥으로 시작해서 여울, 고풍, 한, 남천, 연정, 비상으로 이어졌고 둘째 날은 화선무, 여울, 호수근처, 부채산조, 시나위즉흥, 연가, 비상이 공연되었다. 최현 선생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비상』을 첫날은 원필녀 선생이 둘째 날은 윤성주 선생이 추었는데, 같은 춤 다른 느낌!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시나위 즉흥』. 첫날은 첫 번째 순서의 부담 때문이었는지 긴장한 기색이 보였고 뻣뻣해 보이기도 했으나 둘째날 공연에서는 4명 모두 부드럽고 아름답게 움직였고 들어가고 나가는 부분들이 매끄럽게 이어져서 매우 즐거웠다. 그들은 자신의 춤을 즐기며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건 분명 4명이 무척 연습한 결과일터. 좋은 무대였다. 독무로는 이미미 선생의 『연정』, 이노연 선생의 『부채산조』가 보기 좋았다. 옛날 모습 그대로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한 분위기. 전반적으로 산조춤이 좋았다.
그런데 등장하는 무용수들은 모두 화려한 성장에 공주같아 보여서 만약 돈키호테가 공연장에 나타났다면 아가씨들의 고통을 구경하는 관객들은 편력기사의 칼에 심판을 받아 마땅할 터인데, 문제는 그 칼을 막아줄 흑기사가 없다는 점. 그래서 왜 남자는 등장하지 않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남성의 춤이 분명한 것도 왜 여성이 추는지. 제자나 후배에 남성은 없는 건지. 강호의 의리는 여성들의 소유란 말인가.
어쨌든 오늘도 이렇게 최현 선생은 제자들의 춤으로 또다시 세상을 구원했다. 그들의 아름다운 춤은 세상의 탁기를 씻어 냈다. 글로 음악으로 춤으로 곳곳에서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하는 분들 덕분에 세상이 망하지 않는 것이겠지. 분명 「최현춤전」에 참여한 모든 분들은 최현의 춤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최현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리라.
④ 저거, 우짜노
「부산국제무용제 2017」(6월2~6일 해운대해변특설무대·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해운대는 백사장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서 해마다 수백톤의 모래를 실어 나르고 콘크리트 시설물을 만들어 막아보지만 속수무책이다. 옛날 솔숲에서 바다까지 숨이 막히게 뛰어야 닿을 수 있었던걸 생각하면 기가 막힐 일. 해운대는 욕심을 부렸다. 해변을 중심으로 호텔, 아파트, 백화점, 쇼핑몰, 영화관, 수족관 등등 모든 걸 갖추고 싶었겠지만, 정작 어렵게 그 모든 걸 불러들이고 지어대고 나니, 가장 중요한 해변(Beach)이 ‘기브업(Give up)’을 선언한 것이다. 해안선이 무너지고 ‘모래’들이 이곳은 이제 ‘살 곳’이 아니라며 떠나는 것이다. 분명 수십년 내에 백사장은 사라지고 이곳은 콘크리트 인공해변이 될 것이다.
무용제가 열리는 해운대에 가기에 앞서 부산역에서 남포동으로 걸어본다. 전철역으론 두 정거장. 하지만 그렇게 가지 않는다. 부산역에서 초량 중앙동 광복동 남포동으로 이어지는 소라계단 사십계단을 지나는 뒷골목은 나름 정취가 있어 걷기 좋다. 남포동에서 할매회국수 한그릇을 먹고 자갈치시장 전망데크에서 거리악사의 노래를 듣는다. 젊었던 시절 록 스피릿(rock spirit)의 세례를 받았음이 분명한 중년가수는 로버트 플랜트 스타일의 샤우팅 창법을 구사하며 미국팝을 부르고는 종료시간 임박을 선언하고 ‘영일만친구’ ‘부산갈매기’를 이 세상 마지막 노래라도 되는 듯이 열창을 하는 것이었는데, 어느 지점에서 필(feel)을 받은 것인지 동네친구팀, 등산복팀, 관광객팀이 무대로 난입해서 나무데크 한 켠이 댄스장으로 용도변경. 분위기 달아오르고 이젠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수십 명이 떼춤을 추는 난장이었는데, 너무 장관이어서 이게 혹시 부산국제무용제의 공식프로그램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드론이 떴나, 카메라가 있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런 것을 프로그램에 넣어서 플래시몹을 만들면 재미있을 거란 상상을 하며! 이 난장 떼춤은 나에게 부산무용제의 개막작이었다.
그러나 해운대로 가는 길에 부산국제무용제를 알리는 홍보물은 보이지 않았다. 부산역은 물론이고 시내 그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해운대 전철역에 내려서도 마찬가지였다. 역에서 해변으로 가는 메인도로에도 없었고 해변에 도착해도 없었다. ‘내가 시간 장소를 잘못 알고있는가’ ‘해변에 무대 설치하고 무료공연하는 거면 이렇게 홍보를 안 해도 되는 것인가’ … 이런 의구심이 들 무렵 조선호텔 방향 가로등에서 드디어 현수막을 발견했다.
해운대 해변무대는 6월2일, 3일, 4일. 5일, 6일은 인근 하늘연극장. 나는 해변 무대 4일 일요일 공연을 봤다. 이날 1부는 열린춤무대였는데, 장르별로 확연히 차이가 보였다. 기량을 떠나서 발레와 현대춤은 야외무대에서 연출해내기가 버거워 보였다. 현대춤은 온몸으로 바닥을 많이 사용하는데 야외무대의 치명적 단점은 무대가 더럽다는 점. 이날 현대춤팀 의상은 흰티에 흰바지. 바닥 두어번 구르고 나니 민망할 정도로 시커매져서 옆자리 할머니는 ‘저거, 우짜노’를 연발했던 것이다.
반면, 원래 야외가 체질인 훌라댄스는 보기 좋았다. 일본 여배우 아오이 유우가 영화에서 보여준 훌라춤이 젊은 여성들의 활기찬 훌라였다면 이날 훌라는 중년 여성들의 원숙한 훌라였는데, 왠지 이게 오리지널에 더 충실해 보였다면 이상할까. 원래 하와이 훌라도 중년여성들이 여유있게 출렁출렁 추는 춤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는 무대였다.
『동래한량춤』은 글자그대로 양반 남정네들이 술한잔 마시고 풀적풀쩍 뛰며 거들먹 거리는 춤이었는데 야외에서 흰 모시적삼이 허공을 휙휙 가르는 모습은 시원하고 보기 좋았다. 이날 2부는 라트비아 인도 헝가리 인도네시아 한국 등의 팀이 출연한 민속무용 공연. 어느 나라나 민속무용은 무대에서 발전한 춤이 아닌 야외용이니 야외무대에 어울린다. 이들의 민속춤은 구애의 춤. 당신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이렇게도 요렇게도 한다는 건데 그 순수한 열정에 기겁 할 지경. 그러나 민속춤이란 탈을 썼지만 그건 의상과 음악에 국한된 듯. 현대적으로 변화가 많은 듯 보이지만 그것이 얼마만큼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정신혜무용단의 『달하 높이곰 도다샤』! 초여름밤 바닷바람에 한복으로 성장(盛裝)한 여인네의 옷고름이 날리는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좋았고, 공연이 끝날 무렵 하늘로 띄워 보낸 종이달이 둥실 떠올라 이제 막 자리잡은 저녁달과 함께 나란히 달이 두 개 떠있는 광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게다가 문득 소설 「1Q84」의 두 개의 달이 떠있는 장면이 생각나기도 해서 묘한 감흥을 일으켰다.
해운대 해변무대에서 내가 본 것은 단 하루 공연. 그러나 팸플릿에서 전체 5일 프로그램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혹시 ‘해운대스럽다’라는 표현이 있지 않을까. 전체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5일동안 국내외에서 초청된 약 40여 개의 단체가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민속춤 등 모든 장르의 춤을 식전공연, 공식초청공연, 열린춤무대, 국제안무가육성공연, 폐막축하공연이란 이름으로 공연한다. 게다가 국제안무가육성공연시상식도 있고, 부산대학교와 부산여자대학교에서는 현대무용 발레 인도춤 워크숍도 진행한다.
이렇게 많은 메뉴판을 들고보니 백사장에 모래 빠지는 건 생각않고 뺑둘러 건물올린 해운대의 건축사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별별 메뉴 다 있지만 정작 맛은 없는 종합 분식점을 보는 것 같기도 한 데 쓸데없는 걱정일까. 이 많은 게 5일간 퀄리티있게 가능한 건지, 무용팬들은 몇 작품이나 과연 볼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것이다. 두세 개의 별도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발전시키면 무용팬들의 기대에도 부응하고 일반 시민들의 박수도 받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축제의 존속은 좋은 춤을 제공하는 것과 시민들의 지지에 달렸으니 말이다. 내년에도 즐거운 축제로 만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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