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시

곡예사의 딸

송 상 욱

누명 쓴 달, 이 산모롱을 넘을 때쯤 고비샅샅 달빛이 고
릿적 이야기를 속삭이다 간 헛간 모퉁이에서 닭 울음 소리
가 들려 올적은 자처 울기 전 챈녘에 어머님 자리 흰 천으
로 덮어놓고, 어둠 안팍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선다
울 밖에는 슬픔이 없는 어둠에 숨은 꽃들이 피어, 꽃은
어머니가 광대였을 때부터 살아 숨쉴 곳은 공중뿐, 공중
에는 어머님의 자궁 속 같은 달이 뜬, 그곳까지는 건단곤
애, 싯불건 횃불 밝힌 하늘 끝에 녹밧줄 매단 줄 뻗쳐
오를 적마다 두 가랑이 너머 너머에 꽃무덤 같은 집을 짓
고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하고 두억시니 같이라도 살아
야 한다 하고, 적수단신赤手單身 저놈의 암동모 짓거리 아 이
제 그만,
그러나 감살창嵌殺窓 이래도 좋을 움막 한 채 없이 공증
을 사는, 몹쓸 년, 까리 까리년, 그렁께 누가 다랍게 능갈
친 놈들 다 재끼고 치룽구니에 검덕귀신 같은 작소鵲巢머
리 꺼벅꺼벅 고개 쳐박다 히히히 잔줏이 웃는 모양새로 놀
려대든, 그때, 그놈
아 그렁깨 그때가 징때 그 징때였어, 엿셋날이었던가 스
무하룻날이었던가 그것이 그렁께 댓거기, 아거 무수기에
밀물 휘어드는 갯펄에 빠져 날 부르던 소리, 그 소리 한번
들리다 만, 그리고는 영영 - 기역속에 사라진, 저 노을 속에
알매빛 무늬만 남기고

허공에서 욕찌거리 같은 어둠을 뱉아내는 붉은 꽃밭에
흰 꽃을 심어놓아, 흰 꽃은 다음 해에 붉은 꽃이 되었다 한다


ㅡㅡㅡㅡㅡㅡㅡ
고비샅샅 : 구석구석 샅샅이
자처 : 닭이 새벽을 재촉하여 울다
챈녘 : 안 쪽
두억시니 : 모질고 약한 귀신
암동모 : 광대 놀이에서 수동모를 상대 하는 아내노릇
감살창 : 빛만 받아들이고 열지못하는 창
까리 : 길거리를 떠돌아 다니는 사람을 속되게 부르는 말
징 때 : 저녘때(방언)
댓거기 : 무수기(밀물 썰물의 차이)를 볼 때 엿세 날이나 스무하룻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