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산책

751년 불국사와 함께 창건된 석굴암은 미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절묘한 수학적 비율이 반영된 건축방식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천 년 이상의 세월을 지내오면서 자연적 손상을 입지 않고 원형을 거의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만큼 지식과 지혜가 어우러진 문화재이다. 그렇지만 1913년 일제에 의해 보수공사라는 미명 아래 석굴암의 구조가 완전히 해체된 바 있었으며 부실시공으로 인해 결로현상과 이끼가 생기고 손상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자연석 위에 콘크리트를 발랐고, 해방 후에는 그 위에 또 하나의 돔을 덧씌우는 등 불행히도 신라시대의 기술력을 현대의 과학기술이 온전히 밝혀내지 못한 채 지금도 석굴 내를 유리벽을 설치하고 제습기를 동원하는 등 임시방편으로 석굴암을 관리하고 있는 중이다.
서구문물을 열심히 받아들여 강대국이 되겠다는 당시 일본의 욕심은 석굴암 같은 수준의 문화유산이 없는 문화를 가진 정복자의 입장에서 문화적 우위를 선점해 보기 위해 한 나라의 세계적 문화재를 콘크리트를 이용해 풀어보겠다는 어리석은 시도를 저지르게 하였다.

사설로, 외국에 처음 갔다가 거기서 만난 비슷한 나이의 일본학생이 갖고 있던 수학 교과서를 본 적이 있었다. 불법 해적판이 아닌가 싶게 당시의 한국 수학교과서와 책의 규격과 내용이 흡사해서 놀란 적이 있었다. 한국이 일본의 교육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아마 일본은 그들이 미치도록 열광하는 영국이나 미국의 교과서를 그대로 답습했을 것이다. ‘차라리 미국이나 영국의 서구 교과서를 직수입해오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생각은 좀 더 발전해서 ‘왜 전 세계는 똑같은 방식의 교육을 받는가’, 그리고 ‘왜 대한민국의 교육은 서양식 교육 그대로를 답습하는가’에까지 이르게 됐다.

근대에 들어서도 이른바 강대국들 간의 식민지 정복 경쟁으로 인해 각 나라마다의 고유성은 말살되고 그 가치는 왜곡되었으며 특정문화로 편중된 기형적인 문화발전은 글로벌화된 것 같지만 주도권을 가진 나라의 사고방식을 여과 없이 수용하고 배우려다 지식의 평준화(?)가 돼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자국의 고유의 교육방식과 내용을 살리며 계승발전 했더라면 어떻게 세상이 변했을까.
소위 ‘세계적 불가사의’라고 부르는 고대 건축물들만 보더라도 100층 넘게 올리는 기술력을 보유한 첨단기술이 전기 하나 없던 그 시대의 방식을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데 이 하나의 사실만 봐도 고대의 문명의 기술 수준을 현대의 과학기술이 과소평가할 일도, 또 절대평가로 매길 것도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인류 고대의 건축물들을 보자면 기술력만으로 지어진 것이 없다. 거기에는 수학은 물론, 미술, 철학, 종교, 천문학 그리고 스토리텔링까지 곁들여져 인류의 정신적 산물에 대한 모든 것이 총집결 돼 있다. 다시 말해 고대에서는 흔히 물리, 화학으로 대표되는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예술, 철학, 역사, 고전 등과 같은 인문과학, 그리고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심리학, 법학, 경영학, 고고학 등과 같은 사회과학이 구분 없이 서로 융합되어있었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허나 글로벌화된 지구촌 시대의 교육방식은 서구의 지식 위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자국 문화유산의 신비마저도 스스로 못 풀고 있다는 아이러니는 교육의 패러다임이 이같이 획일적 보편화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침략하는 쪽은 대부분 야만적인데 힘이 센 쪽이고, 침략당하는 쪽은 정신적, 문화적 산물이 풍부한 쪽이 대부분이다. 정복자는 뺏은 것에 대한 정당성 그리고 지배자로서의 우월성을 알리기 위해 피정복자의 문화를 앞 뒤 가리지 않고 폄하시키고 몰살시켜버리는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현대 문명은 어쩌면 더욱 발전할 수 있었음에도계승 발전되지 못한 비극이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우리는 현재의 기술이 최첨단이라 여기고 있지 않은가. 만약 고대의 기술문명이 사라지지 않고 계승발전 되었다면 지금은 어떤 생활환경에서 어떤 모양의 건물 속에서 살고 있을까.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자연을 해치지 않고 조화로움을 이루며 미스터리라 불리우는 인류의 수수께끼들을 당연시 여기며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에 있어서 “과학적”이란 말은 합리적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숫자를 수반하여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어서 모든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는 권위적인 단어로 다가온다. 그러나 과학 역시 불완전한 분야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구절처럼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완전히 걷히지 않은 인간의 무지함에서 오는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 과학이다. 종교는 과학적이지가 않다고 생각하지만 유명한 과학자일수록 종교를 갖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우리가 문명사회를 살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진리를 알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문명사회에서 일정위치를 유지하며 살기 위해서는 진리에 대한 식견이 필요하다1)”라고. 디지털시대에 인류의 기술력 자체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지만 진리를 갈구하려는 과학의 본연의 마음자세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정작 사용자들이 접하는 ‘기술’만 늘어나는 것만 같다. 과학이 풀어내지 못하는 분야는 중세시대처럼 두려움의 대상으로 아예 ‘돌팔이’로 치부하고 모른 채 덮어둘 것인가, 아니면 우리 생활의 일부분으로 알고 수용하며 살아가며 풀어낼 것인가.
과학적 증명이야말로 옳음의 가치기준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우리 한 사람의 삶이 미스터리 자체 아닌가.
과학이 예술의 조화, 균형 등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기준을 찾아내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그 큰 예술 세계에 대해 극히 일부를 지적할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미스터리 그 자체인 ‘인생’이 펼쳐내고 이어가는 알 수 없는 거대 세계 그 무언가가 예술이며, 그 예술을 우리가 가지고 알고 배우며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미스터리를 사랑할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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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경범 수필집 <진리는 생각보다 아날로그하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