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좌담

박명숙(朴明淑) / 대한민국예술원회원)
이정희(李丁姬) / 전 중앙대 교수)
육완순(陸完順) /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
조은경(曺恩慶) /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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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의 싹을 키우자”
조은경 _ 강원용 목사의 서거를 일컬어 그 분을 잘 아는 어떤 사람들은 한 시대를 마감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정치, 문화, 사회, 경제 등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많은 것을 가꿔 놓은 분이십니다. 우리 무용과 무용가들에게도 관심이 많으셨는데 각별히 도움을 주셨던 분들도 있고 인연과 관련이 많으셨던 분입니다. 이번 6월9일 강원용 목사 탄생 100년을 기념해서 정치 사회 문화계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춤계에서도 그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 세 분을 모셨습니다.
먼저 육완순 선생은 평생에 걸쳐서 강원용 목사와 같이 하는 행운을 누리셨죠. 함께 하시고 같이 지내신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육완순 _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강원용 목사님을 처음 만났어요. 전주중학교 1학년 때 전교생을 위한 강연을 하러 우리 학교에 오셨어요. 사실 그때는 강원용 목사님이 누군지도 몰랐는데, 말씀을 참 잘하셨어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하나도 기억은 안 나지만 목사님 인상이 그냥 강하게 각인이 됐어요.
그런데 그 당시 우리 부모님께서 전주 중앙교회의 장로와 집사셨는데, 아버지께서 강원용 목사님을 우리 집으로 초청을 하셨어요. 강원용 목사님이 전국에 순회 강연을 다니시다가 전주에 오셨을 때죠. 사실 저는 목사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는 것도 새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그 일을 기록으로 남기신 덕분에 나중에 알게 되었죠.
그 후 한국전쟁이 끝나고 당시 부산에 내려와 있었던 이화여대에 시험을 치고 들어간 이후 목사님을 다시 뵙게 되었죠. 전쟁으로 인해 경제라고 할 게 없던 시절이라 집의 도움을 못 받고 고학생활을 하던 때였죠. 그런데 강 목사님께서 중간에 사람을 놓아 저를 찾으셨는데, 사실 저를 기억하고 찾아주신 것에 정말 놀랐어요. 그때 격려도 해주시고 힘을 불어 넣어 주셔서 참 큰 힘이 됐어요.
그 이듬해에 이화여대가 다시 서울로 오면서, 부산 시절에 저를 기억하시고 찾아주시고 힘을 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 강 목사님을 찾아뵙기 시작했죠. 그 당시 강 목사님께서 장충동 경동교회에 계셨어요. 그런데 사실 대학생 때는 경동교회를 몇 번 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아요. 아마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경동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리고 목사님도 제가 무용을 하면서 많은 고생을 한다는 사실을 그때 아셨던 것 같아요. 하여튼 무용과를 졸업한 후 열심히 교회에 출석했고, 목사님의 일도 많이 도와드렸어요. 이렇게 목사님과의 인연이 깊어졌지요.
이정희 _ 제가 목사님을 처음 뵌 게 1970년도쯤이에요. 어느새 47년 전이니 반세기가 지났군요. 무척 오래된 이야긴데 오래된 거 같지가 않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조교로 있을 때였는데 육 선생님께서 경동교회에서 무용공연을 하셨어요. 저도 그 공연에 참여하게 된 거죠. 아마 성탄절 특별 무용예배가 아니었나 싶은데, 그때 목사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 당시에 교회에서 교인들 앞에서 춤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로서는 무척 새롭고 감동적이었어요. 목사님이 직접 기획 하시고 관여하셨지요.
이후에 육 선생님을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때 경동교회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예술가, 여성사회 사람들을 비롯해서 젊은이들이 목사님의 설교와 말씀을 들으러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저도 강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종교의 사회적인 역할에 대한 생각, 철학, 사상 등을 접하면서 사회의식에 조금 눈을 뜬 듯합니다.
조은경 _ 대표작이신 『살푸리』 연작이 그냥 나온 게 아니네요.
육완순 _ 이정희 선생이 경동교회에 나오게 되면서 그동안 제가 교회에서 했던 활동 가운데 많은 부분을 물려줬어요. 물론 저도 목사님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면서 많은 일을 했지요.

1975년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의 창단과 강원용 목사
박명숙 _ 제가 학생시절에 육 선생님께서 부활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가 되면 공연을 하셨어요. 이대는 기독교 대학이니까 이대강당에서 늘 공연을 하고, 또 경동교회 무용예배에 참여하면서 강목사님을 뵙게 되었지요. 강목사님의 완벽한 후원에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의 역사적인 창단 공연이 아카데미하우스 팔각정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조은경 _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의 창단이 1975년입니다. 2015년에 『아름다운 40년』 기념공연으로 활동을 마무리했고요, 엊그제 이북(e-book)이 나와서 잘 보았습니다.
육완순 _ 그렇죠. 제가 강 목사님을 찾아가서 컨템퍼러리 무용단을 창단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그 당시 무용단 창단 멤버들을 보면 다 대학원생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젊은 사람들이었고, 한 명 한 명이 다 보석 같은 존재들이었어요. 그들을 가르친 사람으로서 저들을 다 빛나게 해줄 수 없을까를 고민했어요. 그렇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좀 벅찬 일이어서, 목사님을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놓고 의논을 했어요.
그런데 목사님은 이미 전부터 무용단에 대한 생각을 갖고 계셨어요. 제가 경동교회에서 열심히 일을 할 때 이미 생각해두셨던 것 같아요. 사실 그때는 제가 젊기도 했지만 목사님께서 어떤 일을 시키시든 척척 해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믿음 생활을 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교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어느 날인가 목사님께서 지나가는 말씀으로 “육완순, 현대무용의 싹을 키우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듣고 속으로 ‘그래야지!’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제가 본격적으로 컨템퍼러리 무용단 창단을 두고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 말씀이 문득 떠오르면서 다시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때 목사님의 뜻과 제 뜻이 하나가 된 거였죠. 목사님은 그렇게 늘 저보다 앞서가셨어요.
조은경 _ 강 목사님께서 특별히 현대무용을 키우자고 하신 것은 육 선생님이 현대무용을 전공하셔서 그런 건가요?
육완순 _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목사님은 저뿐만 아니라 미술 하는 사람, 음악 하는 사람 등을 잘 챙기고 신경을 써주셨어요.
목사님께서 창작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우리 현대무용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춤을 가져다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목사님께서 뭘 하자고 제안하시면 저는 뭐든지 한다고 말씀드리고 다 해냈어요. 그때 강 목사님의 훈련을 잘 받은 거죠.
이정희 _ 전혀 빼지 않고 하셨군요.(웃음)
육완순 _ 네, 그래요. 그때 훈련을 잘 받은 덕분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해냈던 거죠.

아카데미하우스 팔각정에서 있었던 역사적인 창단공연
이정희 _ 저는 우리 컨템퍼러리 창단공연이 참 중요한 공연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일반 극장이 아닌 아카데미하우스 팔각정에서 공연을 했는데, 그 당시는 무용을 아무데서나 공연하던 때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극장이 아닌 팔각정, 원형으로 된 회의 장소에서 무용단 창단 공연을 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죠. 그 창단공연을 시작으로 춤의 공간에 대한 변화와 확장이 시작됐다고 봐요. 무용단 창단이 1975년이었는데, 그 이전에 1970년대 초부터 교회에서 공연을 하면서 이미 한국에서 포스트모던이 시작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 연장선상에서 팔각정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겁니다.
육완순 _ 제가 컨템퍼러리 무용단을 창단하겠다고 하니까 목사님께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시면서 팔각정에 가셨어요. 사실 그 전에도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우리가 공연을 많이 했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어요. 목사님께서 “나는 팔각정에서 공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육완순은 어떻게 생각해?” 그러셨어요. 저도 그때 전혀 딴 생각이 없었어요. 제 마음에도 딱 들어맞는 계획이었기 때문에 바로 동의를 했죠. 목사님께서는 사고가 열려있는 분이셨어요.
박명숙 _ 여기 모여 있는 우리가 다 창단 멤버에요. 무용단의 역사에요.
육완순 _ 네, 맞아요. 그 당시 앞서 가는 무용가들이 있었기에 우리 무용단을 만들 수가 있었어요. 무용단 창단할 때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고, 나 혼자 욕심 부려서 되는 일도 아니었지만 여기 있는 선생들이 큰 역할을 한 덕에 무용단이 창단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정희 선생이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고, 또 다른 사람들을 데려오기까지 했어요.
조은경 _ 그때 연습은 어디에서 했나요?
박명숙 _ 무용단 창단공연 때 목사님께서 셔틀 버스를 준비해주셨어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공연에 초청된 각 분야의 VIP들을 모시고 공연장까지 간 거죠. 그때 기존의 틀을 깬 새로운 현대무용 공연을 보신 분들이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목사님께서 문화예술계 무용을 사랑하는 분들께서 한국컨템포러리 무용단 창단공연의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완벽한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작품에 대해서 토론을 할 수 있는 MT 장소(아카데미하우스)를 원하는 대로 숙식을 제공해주셨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육완순 _ 1박 2일 MT는 우리 공연자들만 했어요. 그런데 목사님께서 MT 장소는 물론 리셉션 등 공연 전체를 준비해주셨어요. 참 그때 고마운 마음은 말로 다 못해요. 지금도 무용계에 그런 후원자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목사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것 같아요.
박명숙 _ 지금은 문화 예술계에 강목사님 같은 어르신이 다 떠나시고….
육완순 _ 첫 공연을 팔각정에서 하고 두 번째 해도 거기서 했어요. 그리고 목사님께서 세 번째도 거기서 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다른 극장으로 가서 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럼 그렇게 해라”라고 하면서 또 어디가 좋은지 따라와서 봐주셨어요. 그래서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공연을 했어요.
창단 멤버로 여기 두 선생하고 김복희, 김화숙, 김옥규, 이청자, 박인숙, 양정숙 이렇게 8명이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시대도 참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험난한 세월을 보냈지만 저는 그래도 그 시대에 좌절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오늘까지 문화 활동을 잘 해왔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이렇게 좋은 제자들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1963년에 이대에 무용과가 생기고, 제가 미국 유학을 다녀오니까 좋은 학생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수업을 하는데 정말 신이 났어요. 그때 학생들이 다 지금 여기 있는 이런 좋은 재원들이었던 거죠. 당시에는 무용하는 학생들이 갈 데가 별로 없어서 다 이대로 몰렸고, 그 학생들을 제가 열심히 가르쳤어요.
조은경 _ 그때 박외선 선생이 이화여대에 계셨죠?
육완순 _ 내가 체육과에 다닐 때 박외선 선생님한테 배웠고, 이후에 선생님과 제가 같이 무용과에서 가르쳤어요. 저는 너무 적극적이었고 선생님은 저보다는 조용하셔서, 선생님께서 절더러 좀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어요.(웃음) 새벽에 연습하는 것을 뭐라고 하시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나를 무척 아끼셨어요. 어쨌든 이화여대라는 백 그라운드가 있어서 참 좋았고, 무용과 재원들도 좋았고,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내용을 전달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 삼박자가 딱 맞아서 정말 급진적인 발전을 한 거죠.
이정희 _ 정말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고….(웃음)
육완순 _ 이렇게 좋은 제자들이 있어서 컨템퍼러리가 빛이 난 거예요.

틀을 깨는 춤 속에 파격적이고 강한 메시지를 담아
이정희 _ 그때가 1970년대 중반이었는데, 1970년대는 미국에서도 현대무용이 워낙 왕성했던 시대에요. 우리가 시대의 조류를 잘 탔던 것 같아요. 1976년에 「춤」지도 창간됐어요. 모든 게 시작이 되는 시기였어요. 20세기는 위대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 현대무용에도 정말 변화가 온 거지요.
저는 1회 때 『꼭두인간』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박명숙 선생도 작품을 하셨구요. 제가 했던 『꼭두인간』이라는 작품은 마리오네트 춤이었어요. 조정자에 의해서 인형이 춤을 추는 거였는데, 당시의 다른 작품들과 좀 달랐어요. 그때 조정자 역할을 연극인 최주봉 씨가 맡아주셨는데, 굉장히 강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는 잠뱅이 같은 한복을 입고 마리오네트 춤을 췄어요. 최주봉 씨와 저의 대비가 굉장히 강렬했다고 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1970년대는 우리 한국사회가 아주 암울했던 시대였는데, 강원용 목사님께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제가 그런 작품을 하게 된 듯해요.
박명숙 _ 제가 안무, 출연한 작품은 『미친혼』으로 저는 창호지로 만든 설치미술 작품 뒤에서 종이옷을 입고 춤을 추다 찢고 나오는데, 나의 이중적인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는 광기 어린 춤이었죠. 틀을 깨는 춤 속에서 파격적이고 강한 메시지에 미적감각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지요.
이정희 _ 그때 우리가 몇 살이었죠? 20대 후반이었죠.
육완순 _ 저는 진짜 마음이 너무 즐거웠어요. 젊은 제자들이 참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저렇게 못 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참 용감했어요.
팔각정 공연을 돌이켜 보면, 관람석에 의자를 놓지 않고 바닥에 깔고 앉는 것만 놓았어요. 바깥쪽에만 의자를 놓았는데, 그걸 다 목사님이 해주셨어요. 마치 감독 역할을 하신 거죠.
박인숙은 입구에서부터 막 떠들면서 뛰어 들어와서 춤을 췄어요. 작품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요. 돌발적인 공연이 많았어요. 또 이청자는 한국춤을 췄는데, 제목이 『나는 탈을 쓰고 울었습니다』였어요. 이청자가 창무회가 생기기 이전에 창작춤을 췄으니 정말 앞서간 거예요. 컨템퍼러리 무용단 회장을 하면서 춤을 췄어요. 그때는 정말 뒷전에서 병풍처럼 움직이는 춤을 추면 대우를 못 받았을 정도에요. 정말 너무 앞서가는 춤을 췄지요.
그때 내가 조금 지독하게 한 일이 있었어요. 이청자가 장염에 걸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서 공연에 참여를 못 할 상황이 됐어요. 공연이 며칠 안 남은 시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병원 입원실에 찾아갔어요. 가서 “아무래도 공연하기 힘들겠지?” 그랬더니 이청자가 “네,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팔 들 힘도 없어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머리로 작품 생각을 하고 있어. 현대무용은 그냥 와서 즉흥으로 해도 돼”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러고 나서 내가 좀 일어나보라고 해서 연습을 시켰잖아요.(웃음) 내가 생각해도 너무 한 것 같아 눈물이 나왔어요. 그래도 “네 마음이 중요한 거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청자가 공연 전날 퇴원을 하고 공연에 참가를 했어요. 참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그렇게까지 했었네요. 지도자 입장에서 공연을 안 할 수도 없고,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었는데 결국 공연을 하게 된 거죠. 이청자가 그런 일을 겪고 공연을 더 잘 했어요.
제 생각에는 컨템퍼러리 무용단이 탄생한 게 기적이에요. 그때 목사님이 후원자로서 저를 많이 안심을 시키셨어요. “하고 싶은 게 뭐야? 그냥 해.” 이렇게 이야기하시면서 걱정하지 말고 춤이나 잘 추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숙소를 준비해주시고, 음식도 마련해주시고, 다 해주셨어요. 우리가 팔각정 밑에 큰 식당에서 전국에서 온 손님들을 대접했는데 그 큰 식당이 꽉 찼어요. 꽉 차고도 자리가 모자랐어요.
조은경 _ 관객들 문화적 충격이 컸을 듯합니다.
박명숙 _ 그 당시에 기존의 형식을 깨며 파격적이고 실험성이 강한 새로운 작품이 있었다는 것을 요즘 젊은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데, 다시 보여줄 길이 없네요.
육완순 _ 그때는 왜 공연을 영상으로 찍어놓지를 못했을까? 사진도 별로 없고요. 그 당시 포스터만 한두 장 남아있는데, 포스터 찍을 때 각자 이 포즈, 저 포즈 잡고 열심히 찍었어요.

‘현대무용의 밤’과 공간사랑으로 「소극장운동」이 시작
박명숙 _ 컨템퍼러리 무용단의 공연을 계기로 소극장 운동이 공간사랑에서 시작되었지요. 1980년 1회 현대무용의 밤의 프로그램은 제가 안무 출연한 『종이꽃』, 『나물에게-환도와 리스』, 『일식』이었습니다.
육완순 _ 컨템퍼러리 무용단이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공연을 하고 나니까 ‘공간사랑’에서 강준혁 씨가 아무 주저함 없이 “교수님, 우리 공간에서 같이 하실래요?”라고 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단번에 “합시다.” 그랬어요. 저는 원래 주저하지 않고 해요. “우리에게 극장을 제공해주시는 거죠?”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제공해주시는 거죠?”라고 다시 물었더니 또 그렇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그냥 몸만 가서 춤만 춘 거예요. 얼마나 좋아요.
박명숙 _ 「공간 현대무용의 밤」을 한 거죠. 그 이후 「현대무용의 밤」 시리즈로 계속되었는데 제가 첫 공연을 했었어요. ‘종이꽃’ 등 김영태 선생의 세 개의 시 제목으로 춤을 풀어갔지요. 우리가 아카데미하우스 팔각정에서 공연을 했는데, 공간사랑의 무대를 완전히 변형하면서 아주 용감하고 파격적으로 하고 싶은 걸 다 했었어요. 무대 방향을 바꾸고 싶어서 밤을 새우면서 박스를 나르기도 했고, 무대도 다변형으로 옮길 수 있었고 조명도 재미있게 설치했지요, 지금도 그런 소극장이 없지요. 아주 작은 소극장이었지만 공간이 전혀 작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때 강준혁, 강영걸 씨와 함께 기획, 연출, 조명, 무대감독까지 1인 10역은 했을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공간사랑’ 소극장은 주머니 안에 신발을 담아서 갖고 들어갔어요.
조은경 _ 어떤 분들이 공연을 보러 오셨나요?
박명숙 _ 개성 강하셨던 분들, 괴짜들은 다 모였던 것 같아요. 공간사랑 소극장에 가면 다양한 장르의 유명 예술가들을 다 만날 수 있었어요.
이정희 _ 그 당시에는 그런 문화예술공연에 지식인 사회의 앞서가는 사람들이 꽤 모여 다녔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흩어져 있는 게 아니라요.
육완순 _ 무용 행사가 그것밖에 없었잖아요. 무용계에서는 관심 있는 사람들이 다 보러 왔어요.
이정희 _ 「현대무용의 밤」이 시작되기 전에 저는 ‘공간사랑’ 오픈 행사에 참여했어요. 백병동 선생이 음악 공연을 하시면서 춤이 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참여한 거죠. 『실내』라는 작품이었어요. 서울대 대학원 출신인 지휘자 임원정 씨가 소프라노 3명, 무용수 3명을 참여시켰어요. 그때 이미 음악과 현대무용이 작은 공간이 어우러지는 공연이 시작이 된 거죠. 새로운 문화가 태동하는 시대였어요.
육완순 _ 그래서 발레, 한국무용이 자극을 받아서 「한국무용의 밤」도 하고 「발레의 밤」도 하고 그랬죠. 우리 현대무용이 참 좋은 영향을 미친 거죠. ‘공간사랑’의 김수근 씨가 무용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많았어요. 김수근 씨가 기획안을 강준혁 씨에게 줘서 나한테 전달된 거죠.
박명숙 _ 그 공간이 없어지지 않도록 다시 살렸다는 것이 너무 기쁜 일이에요. 사라질까봐 많이 걱정스러웠어요. 우리의 추억이 담긴 소극장 춤의 역사적인 장소인데, 다시 살아났어요.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려요.
육완순 _ 교회 행사에서 공연을 할 때 제가 2층에서 내려오는 것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강원용 목사님이 2층에서 내려올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주시기도 했어요.
이화여대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슈퍼스타』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밤늦은 시간에 했어요. 그런데 그 공연에 이어서 바로 경동교회의 자정예배에서도 공연을 해야 될 일정이라서 목사님이 학교 앞에 버스를 대기시켜 놓았다가 우리 단원들을 전부 버스에 태워서 교회로 데려와서 공연을 한 적도 있었어요.
조은경 _ 아, 이화여대 공연이 끝나고 난 후에 다시 교회 공연을 하신 거예요?
박명숙 _ 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추수감사절에는 당연히 교회에서 공연하는 거였고, 늘 밤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어요.
이정희 _ 추수감사절에는 한국식으로, 가마니 깔고 마당놀이를 하셨죠. 목사님은 자신의 설교보다 이렇게 예술작품을 통해서 교인들과 같이 교감하는 것이 더 감동이 있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에는 매번 특별예배로 공연을 하셨어요.
지금 육 선생님 말씀을 듣고 생각나는데, 목사님께서 추수감사절에는 추수를 하는 형식으로 마당놀이를 하고 싶으셨나 봐요. 교회 의자를 다 들어내고 멍석을 깔고 ‘얼쑤얼쑤’ 하는 국악으로 공연을 하니까 교회가 얼마나 소란스러웠겠어요?
육완순 _ 장로님들은 싫어했어요.
이정희 _ 한 쪽에서는 그걸 비판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강 목사님이 워낙 강한 분이라서 밀고 나가셨죠. 교회옥상에서 공연하기도 했어요. 오픈 때 가서 남정호 선생이 공연하는 걸 봤어요. 지금도 하고 있죠?
조은경 _ 지금은 옥상 공연장이 천장으로 덮여서 다시 여는 걸 추진하고 있어요. 열린공간으로서 하늘과 연결되는 의미를 찾자는 거죠.
박명숙 _ 강 목사님 장례식 날이 생생하게 남아있어요. 2006년에 돌아가셨는데, 하관식 날 이정희 선생, 남정호 선생,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서 추모공연을 했어요. 오일장이 치러져서 그 사이 며칠 동안 우리가 매일 만나서 추모의 춤을 추다 울면서 안무하고, 음악, 의상도 만들고, 작품을 완성했어요. 그렇게 셋이 만나서 공연한 건 처음이었어요. 「남 몰래 흐르는 눈물」 첼로 변주곡에 의미 있는 춤을 췄어요. 뒤에 천사들 열두 명이 머리에 화관을 쓰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 나왔지요. 우리 셋은 검은 옷을 입었고요.
그곳에 계신 분들이 다 선글라스 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것이 보이더라고요. 그 뜨거운 볕 아래서 우리도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공연을 했어요.
이정희 _ 목사님께서 굉장히 뜨거운 때 돌아가셨죠.
박명숙 _ 정말 불볕 더위였어요. 남한강 공원묘원 주변 텐트 친 현장은 40도가 넘는 뜨거운 날이었죠. 2006년 8월21일 「故 姜元龍 목사 하관예배 및 추모공연」을 잊을 수 없죠.

순수하게 ‘몸의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기에 최고로 아름답다
육완순 _ 목사님은 예술을 다 좋아하셨는데, ‘연극, 영화, 무용 다 너무 아름다고 좋은 예술’이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연극이 좋지만 연극은 말도 하고 영화는 다시 볼 수 있지만, 무용은 한 번에 끝나는 1회성 공연이니까 영화처럼 기록을 할 수 없어서 아쉽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정말 순수하게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최고로 아름답다고 하시고, 그렇게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게 참 어려운 것이라고 하셨죠. 그런 생각을 하신 분이셨으니, 목사님이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추모공연을 보시면서 참 좋아하셨을 거예요.
이정희 _ 정말 그 날은 잊을 수 없어요. 그 이후로도 또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셋이 모여서 추모 공연을 했어요.
박명숙 _ 그게 2011년 6월18일이에요. 5주기에 「사이 너머에 길이 있다」는 공연을 했어요. ‘즉흥 몸으로’라는 주제를 주셔서 우리 셋이 다시 또 만나게 됐죠. 그리고 그 전에 제가 2010년 8월 경동교회에서 여해 강원용 목사 4주기에 『은하수』라는 작품으로 솔로로 추모의 춤을 추었고, 그 다음해에는 제가 안무를 하고 남녀 무용수가 이인무(Duet), 삼인무(Trio)를 공연했어요. 경동교회 입구에서부터 복도를 통해 무대 앞으로 춤을 이어나가는 이인무 공연도 했지요.

“더 깨트려라. 예수가 왜 그렇게 점잖아?”
육완순 _ 이대에서 『슈퍼스타』 공연이 1973년에 시작됐는데, 공연 초창기에 오셔서 보시고는 나를 부르셨어요. 제가 목사님께 늘 야단을 맞아서 또 걱정이 됐어요. 목사님께서는 저뿐만 아니라 아끼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야단을 많이 하셨어요.
아무튼 목사님께서 저를 부르셔서 “육완순, 잘 했어. 그런데 고작 그 정도야?” 하셨어요. 그런데 『슈퍼스타』 공연이 당시에 정말 히트였거든요. 이대 학생들의 호응이 대단했어요.
조은경 _ 그랬을 거예요. 저도 중학생 때 학교에서 단체로 가서 봤어요.
육완순 _ 그때 한국 사람이 의자를 들고 치고 그런 거는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4월21일에 공연을 했는데 5월15일에 앵콜 공연을 했어요. 전교생이 가만 안 있고 계속 요청해서 한 거죠. 그렇게 성공을 했는데도 목사님이 저를 불러서 쫙 지적을 하셨어요. 이후에도 목사님께서 매년 공연을 보시고 조언을 해주셔서 계속 고쳐나갔어요. 나중에 목사님께서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기분이 좋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도 “더 깨트려라. 예수가 왜 그렇게 점잖아? 진짜 예수는 더 처참하고 형편없잖아? 옷도 왜 그렇게 밝고 깨끗한 거지?” 하시는 거예요. 흰색 옷을 입지 말고 더 누렇고 더러운 걸 입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참 싫더라고요. 더 성스러운 옷을 입고 싶었는데, 나중에는 천도 바꾸고 옷 모양도 바꾸고 했어요.
조은경 _ 지금까지도 공연되는 저력이 거기에 있었네요.
육완순 _ 네. 목사님이 계속 저를 격려하시고 야단도 많이 치시고 수정해주셨어요. 『슈퍼스타』는 목사님이 좋은 작품으로 이끌어주신 것 맞아요.
박명숙 _ 예수 배역이 계속 바뀌었지만 저는 20년간 예수님 파트너 막달라마리아 역을 한해도 쉬지 않고 했지요.
육완순 _ 박명숙 선생은 마리아를 더 할 건데 그때 손을 다쳤어요. 그러니까 손을 내리지를 못해서 그만 했죠. 올해가 『슈퍼스타』 공연 44년이에요. 내년이 45주년이에요. 그래서 내년에는 그전에 했던 주역들 좀 불러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정희 _ 아우 늙어서….(웃음) 50년이 되면 할까요? 저는 유다 역을 했어요, 박명숙 선생이 팔이 길고 가늘어서 마리아에 딱 맞았어요.
박명숙 _ 『슈퍼스타』 공연을 20년 동안 수백 번, 한 해도 쉬지 않았던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에요. 정말 불가능한 일이죠. 학생 때부터 시작해서 결혼 후 임신을 하고도 공연을 했으니까요. 요즘의 젊은이들은 상상을 못할 거예요. 그 작품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니까 가능했겠죠.
육완순 _ 외국에서 뮤지컬은 아직도 하고 있다는 것 같아요. 앤드류 웨버의 곡 중에서 이 노래가 오래 간다고 하더라고요. 이 곡이 1970년에 작사, 작곡을 한 거라 50년이 넘었기 때문에 저작권이 싸요. 50년이 넘으면 저작권료가 내려가요. 나도 저작권료를 비싸게 냈는데 지금은 굉장히 싸졌어요. 초창기 이대에서 할 때는 우리나라에 저작권 규정이 없었어요. 그래서 막 썼는데, 저작권 규정이 생기고 나서는 외국에서 받아와야 해서 좀 힘들었어요. 그런데 어쨌든 즐겁게 하고 있어요. 10월에 블라디보스톡에 가서 공연을 해요.
박명숙 _ 북한에도 갔으면 좋겠어요.
이정희 _ 북한 잘못 갔다가는 큰일나요.

컨템퍼러리 무용단과 예술 전체를 격려
육완순 _ 목사님이 정말 더 오래 사셨다면 좋았을 거예요.
목사님께서 춤지에 ‘무용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저의 작품과 컨템퍼러리 무용단에 대한 조언도 해주시고, 예술가와 교육자로서 제가 가진 장점에 대해서도 칭찬을 하신 적이 있어요. 또 신자로서 교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기쁘게 받으셨고, 컨템퍼러리 정신이 아주 훌륭하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사실 컨템퍼러리 무용단은 목사님의 후원으로 창단할 수 있었고 나 혼자 한 게 아니에요. 컨템퍼러리 무용단은 목사님 작품이나 마찬가지에요.
또 목사님께서 저에게 창의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해주시고, 기대를 많이 하신다고 하셨어요. 무용학과에서 제자들을 많이 키워서 역사를 이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사실 제자들이 훌륭해서 제가 칭찬을 받은 거죠. 제자들이 잘 안 됐다면 제 흔적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좋은 제자들이 많이 나왔고 우리 무용계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현대무용의 역사를 만든 거라고 봐요.
목사님께서는 교인들이 교회에서 설교를 통해서도 은혜를 입지만 아름다운 공연을 통해 교인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제가 거기에 함께 한 것에 목사님께서 저를 정말 기특하게 생각하셨어요. 사실 생각해 보니 저는 목사님 말씀이라고 하면 하나도 거역하지 않았어요.
저는 목사님을 처음 만난 열세 살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을 목사님과 함께 했어요. 이번 좌담을 준비하면서 정말 저처럼 평생 목사님과 함께 한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교회 일을 정말 많이 했어요.
목사님께서 제 작품 하나하나에 다 격려해주시고, 교육적인 면에도 조언해주시고, 컨템퍼러리 무용단과 예술 전체를 격려해주신 것이 다 큰 역사라고 생각해요. 저를 기억하고 계시다가 제가 힘들었던 대학 시절에 저를 불러주신 것까지 생각하면 정말 감사해요.
조은경 _ 춤이 외따로 떨어지지 않고 그 시대 예술계의 사람들과 같이 교류하면서 커나갈 수 있었는데, 바로 강원용 목사님과 컨템퍼러리 무용단의 인연이 아주 큰 역할을 했군요. 개인적인 에피소드는 없나요?
박명숙 _ 제가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1995년 크리스챤아카데미 30주년기념축제 『돌아보고 내다보며』 공연 연습을 한창 하고 있을 때 남편이 ‘무용을 그만 하면 어떠냐’고 해서 강 목사님에게 그 이야기를 일렀어요.(웃음) 그랬더니 목사님께서 남편을 잠깐 보자고 해서 불러냈어요. “평생 60년을 산다 해도 남편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계산해보면 20년도 안 된다. 20년이 뭐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실제로 함께 하는 시간은 십몇 년 밖에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앞으로 무용을 계속 해야 되는데 만약에 그렇다면 같이 살 필요 없겠네.“ 그렇게 심한 말씀을 하셨어요. “어떻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왔는데, 잘못 생각하고 있다. 모든 것을 친구처럼 끝까지 지켜봐줘야지, 그런 고루한 생각을 하면 차라리 따로 사는 게 낫겠다. 남편이 오히려 아내에게 방해가 되는 존재가 되면 되겠냐”고 말씀하셨지요.
그 다음부터는 우리 남편이 강원용 목사님을 존경하게 됐어요. 목사님께서 전화를 하시면 일어나서 받을 정도였지요.
조은경 _ 확실한 분한테 도움을 청하셨네요.(웃음)
박명숙 _ 네, 정말 놀랐어요. 그런 말씀을 목사님이 해주신다는 게 놀라운 일이었어요.

춤, 사이 너머에 길이 있다
조은경 _ 목사님께서 주례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육완순 _ 목사님이 제 결혼식 주례를 서주시기로 하셨는데, 제가 날짜를 바꿨더니 화가 나셔서 안 해주셨어요.(웃음) 그래서 성남교회 이혜영 목사님이 해주셨어요.
이정희 _ 저도 안 해주셨어요. 목사님은 결혼보다는 사회활동 하는 것을 권하셨어요.
조은경 _ 결혼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건 또 새로운 이야기네요.
이정희 _ 그런 생각을 갖고 계셨어요.
육완순 _ 사실 제가 남편과 같이 결혼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예배를 드리러 갔다가 야단을 맞았어요. 춤을 춰야지, 무슨 결혼이냐고 야단맞고 결혼했어요.(웃음)
박명숙 _ 정말이지. 강목사님은 시대를 앞서가는 분이셨죠.
제가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 창단 멤버였던 덕분에 육완순 선생님의 은혜로 목사님과의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강원용 목사님을 목사님이라고 불렀던 적이 없고,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님이라고 불렀어요. 목사님께서는 외국에 나가셨다 공항에 내려서 짐을 맡겨놓고 공연장으로 바로 오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까지는 거의 한 번도 안 빠지시고 우리 공연에 오셨는데 한 번도 칭찬을 해주신 적이 없어요.(웃음)
젊은 시절 공연에 출연을 안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우리 육 선생님도 물론 야단을 치셨지만 강 원장님께서 “이제 스타가 된 거야? 그럼 이제 보러 올 필요 없겠네.” 그렇게 야단을 치셔서 그 다음해에 다시 출연을 했죠.
진심어린 충고도 잘 해주시고, 여러 측면에서 예리하게 평을 해주시니까 그 다음 작품 할 때 큰 도움이 되는 거예요. 또 제가 무용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육완순 스승님과 강 목사님을 만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정희 _ 예술을 사랑하셨고 예술가들도 굉장히 아끼셨어요.
조은경 _ 그 당시에 의식있는 젊은이, 예술가들이 경동교회에 많이 모여 들었습니다. 실험적인 예술을 많이 했어요.
박명숙 _ 모든 분야의 사람들을 다 키우셨죠.

우리 춤이 그렇게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시대 현대무용가들에게 많은 기회를
이정희 _ 추수감사절, 부활절 행사 때도 다른 단체를 데려다가 공연을 하시는 게 아니라 교회의 대학생, 청년부 사람들을 데리고 공연을 준비하셨어요. 교회에 인적 자원이 많아서, 연출가, 극작가 이런 분들과 교인들이 같이 오랫동안 작품을 준비해서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훨씬 더 공감대가 형성되고 감동적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춤이 그렇게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시대였어요. 춤은 그냥 우리들이 좋아서 추는 춤, 예쁘게 추는 춤, 그렇게들 인식하던 시대에 그래도 우리 현대 춤을 인정해주시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끌어올려 주신 거죠. 우리 춤을 좋아해주시고, 우리 현대 무용인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셨어요. 교회라는 공간에서도 춤을 추게 하시고, 춤을 전혀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춤을 보게 하시고, 춤이 가깝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어요. 우리 춤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밑받침이 돼주셨던 건 틀림없어요.
육완순 _ 목사님께서는 우리 컨템퍼러리 무용단을 초청해서 저녁도 많이 사주셨어요.
무용계에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강원용 목사님께서 현대 무용계, 컨템퍼러리 무용단의 든든한 후원자라는 것을 다 알기 때문에 우리의 격이 올라갔어요. 관람자도 격조 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정희 _ 1970~80년대 현대무용이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한국무용이나 발레나 자극을 받고 같이 활성화된 것이 사실이에요.
육완순 _ 정말 진정한 의미로 볼 때, 한국무용이나 발레에 우리 현대무용이 큰 영향을 미친 거잖아요?
조은경 _ 그렇습니다. 춤의 정신, 예술성, 창작이라는 측면에서 큰 영향을 줬죠. 또 거기에 강원용 목사님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서두에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말씀하셨지만, 한편으론 한 사람이 한 시대를 만들고 이끌어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 분은 춤계에 강원용 목사님이 주신 것 혹은 남겨놓으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춤은 시대의 산물이자 시대의 표현임을 자각케
이정희 _ 강 목사님의 정신세계지요. 저는 무용가로서 강 목사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떤 작품을 했을까 할 정도로 그분의 영향을 크게 받은 무용가입니다. 춤은 예쁘게 잘 추면 되는 줄 알았던 때에 춤 속에 의식을 담을 수 있었고, 그것도 시대성 사회성을 춤속에 심었어요.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 살고 있는가를 분명히 표현하고 싶었고 그야말로 사회의식에 눈뜨게 하셨어요. 그래서 나온 작품이 『살푸리 연작 1~9』까지 할 수 있었고요. 1980년대 한국사회는 어둡고 암울한 혼돈의 시기였어요. 저는 그것을 주제로 춤을 추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다른 무용가들과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춤은 춤이 아니고 시대의 산물이자 시대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의식이 강한 작품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것이 강 목사님이 제게 주신 귀한 정신이지요.
박명숙 _ 강 목사님 생각하면 평화(Peace), 대화(Dialogue), 뉴웨이브(New Wave), 엑소더스(Exodus), 포스트포더니즘(Postmodernism), 페미니즘(Feminism)… 등등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육완순 _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와 개혁 정신이었던 것 같아요. 그분 자신이 목사로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이 땅 구석구석에 전파하고자 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하나님의 창조는 똑같은 것이 없다는 점이에요. 늘 새롭죠.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모두가 다른 하나님의 창조물을 하나님은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사랑이라고 본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본 것이지요. 그래서 특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창조’의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고, 누구나 창조적인 예술 활동을 통해 사회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곳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분은 평소 ‘여성의 영성’과 ‘사회적 참여’를 무척 강조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같은 점에서 강원용 목사님은 한국현대무용계뿐만 아니라 예술계에 ‘예술가의 태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신 선구자적인 분이라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물질에 지배당하는 예술이 아니라 창조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예술이야말로 사회 개혁의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보셨고, 그런 신념 때문에 저를 적극 후원하시면서 사회적 도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분의 뜻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많았지만 제 평생의 무용 철학을 조율하시고 지도해주신 정신적 멘토로서 정말 다시 만나 뵙고 싶습니다.

한국현대무용계뿐만 아니라 예술계에 ‘예술가의 태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신 선구자
조은경 _ 이제는 세 분이 강원용 목사님에 이어 우리 무용계의 멘토가 되십니다. 춤계에 덕담과 조언, 혹은 따듯한 질책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명숙 _ 최근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서 무용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젊은 친구들을 많이 봅니다. 나는 항상 그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현실에 급급해 하면서 자기의 꿈을 포기하지 말고, 꿈을 키우기 위해 한걸음씩 다가가는 강인한 춤의 정신을 키워 나가길 바랍니다.
이정희 _ 우리 세대가 춤추던 때와 달리 지금은 춤의 환경 사회적 환경이 더 어려워졌지요. 춤을 추고 있는 후배들에게 어떻게 격려의 말을 해야 할지요? 시대는 변하고 예술 또한 변합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대처하며 춤을 이끌어 가주길 바랍니다. 지금 어떤 의식을 가지고 춤을 춰야 하는지? 관객들은 어떤 생각 속에서 춤을 바라보고 있는지 혹시 우리는 너무 춤 속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을 바라 봐야 길이 보일 듯합니다.
육완순 _ ‘예술가의 정신과 태도’에 대해 깊은 사색과 성찰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평생 강 목사님으로부터 배운 교훈이었던 것처럼 저도 오늘 그분의 평생의 유지를 따라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한국의 현대무용이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역사 속에는 ‘예술에 대한 우직한 고집’을 포기하지 않았던 정신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비무용인으로서 강원용 목사님도 최소한 예술가들이 어떤 정신으로 창작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가르치신 것처럼 오늘 우리 무용인들이 세상에 경도되어 본질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없는지 다시 자신을 성찰하며 혹 잃어버렸거나 제 자리를 떠나 있었던 사람이라면 다시 회복하는 자세가 중요하고, 중심을 잃고 본질에서 벗어나 있는 무용인들이 있다면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강원용 목사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좌담회에서 살아 생전 목사님의 육성을 떠올리며 저 자신이 더욱 신독하는 예술가의 모습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조은경 _ 춤지도 올해 10월호면 만41년 8개월, 통권 500호를 맞습니다. 경동교회 이전부터 같이 지내셨던, 본지 발행인 조동화 선생님도 그립고 강원용 목사님도 그립습니다. 두 분이 사랑하셨던 춤계가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며 지지와 사랑을 받게되도록 춤지도 노력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