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8일 인쇄
2017년 9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7년 9월호 통권 499호 |2025년 5월 1일 목요일|
 

공연평

 

안무가는 자기만의 스타일로 춤을 말한다
- 안영준·권령은




박민경(朴玟京)(춤평론)

* 안영준 안무의 『한숨 쉬지마』(8월 18~1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안무가 안영준이 이끄는 단체의 이름이 ‘피디피시(PDPC)’인데,‘ 피지컬 디자인 퍼포먼스 컴퍼니(Physical Design Perfor-mance Company)’의 약자다. 이 단체명은 안영준의 안무 스타일을 한마디로 압축한다. 핵심은 ‘피지컬 디자인’에 있는데, 여기서 인간의 신체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도구이자 요소다. 안무란 인간의 몸과 몸의 움직임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냄으로써 춤을 예술로 규정하게 만드는 것인 만큼, 인간의 신체로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말은 당연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안영준의 작업은 ‘디자인’이라는 단어의 뜻에 훨씬 더 밀착되어 있다. 그는 말 그대로 무대라는 삼차원의 공간을 설계하는 디자이너가 된다. 그리하여 작품은 육체라는 물리적 재료로 만든 조형인 셈인데, 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육체의 속성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안무에 대한 접근법과 원리가 일관된 편이지만, 움직임은 육체적 표현의 차이성을 드러내므로 작품마다 다른 감각을 보여준다.
60분 길이의 작품 『한숨 쉬지마』(2005년 초연)는 안무자를 포함해 6명의 남녀무용수들이 출연했다. 인간의 호흡 중 하나인 ‘한숨’을 소재로 하는데, 안무자는 ‘한숨 쉬지마’라는 일상적인 용어에서 알고 있는 바의 사전적 의미보다는 ‘한 번의 호흡’으로 해석하면서 길든 짧든 ‘숨을 쉬는’ 행위와 그 순간의 의미를 주제화한다. 안무자 나름의 의도가 제목이나 작품에서 쉽게 전달되지 않지만, 내재된 의미가 기저에 깔려 있긴 하다. 가령 안무자는 한숨에 담긴 인간의 복잡한 심리적 상태나 그것을 일축해버리는 일상의 태도와 같은 관계적 의미를 시각적으로 구조화한다.
공연 내내 푸르스름한 조명과 멜로디 없는 음악이 어두운 분위기를 지속시키고, 견고하게 짜여 있는 듯한 움직임들이 비어 있는 공간마저 빈틈없이 채우고 있어 ‘숨 쉴’ 여유가 없어 보인다. 무용수들이 서로 서로 양쪽 손을 잡아 얽히고설킨 채 한 몸처럼 움직이는 장면은 유기적인 연결이긴 하나 관계의 뒤죽박죽과 감정의 혼합이 뭉쳐진 덩어리를 형상화하는 것 같고, 여기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거리나 사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안영준은 작품에서 자주 구조물 같은 장치를 이용하곤 하는데, 이는 무용수들의 육체와 움직임을 지탱해주거나 연장하거나 방해한다. 여기에 강도 높은 동작들이 더해지면서 움직임을 훨씬 더 단단한 무엇으로 변화시킨다. 또한 치밀하게 계산된 듯한 움직임은 기계적으로 보이는데, 그것들은 모두 공간을 디자인하는 데 효과적인 재료가 된다. 그의 디자인은 하나 하나 잘 쌓아 올린 듯한 건축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그만큼 무엇 하나 잘못되면 무너질 것 같은 고도의 집중과 유기적 연결이 장점인데, 이번 공연에서는 그 같은 면모가 다소 약화된 감이 있다. 집중력이 상당히 요구된 동작들은 에너지 소모가 많은 만큼, 한 시간이라는 길이가 부담으로 작용한 게 아닐까 싶다.

* 권령은 안무의 『글로리』(8월 25~27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권령은의 안무작 『글로리』는 국립현대무용단이 기획한 외부 안무가 초청공연인 「픽업 스테이지」의 프로그램으로 공연되었다. 작품의 발단이 되기도 한 ‘영광’이란 뜻의 제목은 일종의 패러디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는 노래가사처럼, 병역의무(군 입대)가 영광이라면 병역면제는 그 영광을 면제받는 것인데, 콩쿠르 입상은 군 입대의 영광을 저버리는 것인가? 콩쿠르 1등, 즉 군 면제는 영광인가 아닌가?
이 작품은 한국의 ‘무용콩쿠르’라는 제도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남성무용수들에게 콩쿠르는 전투의 장이나 다름없다. 1등을 향한 무용수의 집념은 고난도 스킬에 집착하고 그것을 연마하는 맹훈련도 감내하게 만든다. 안무자는 그 과정이 마치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군사훈련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무대에서는 전투를 위한 병사의 훈련 동작과 콩쿠르 입상을 위해 발레 기본기 훈련에 열심인 무용수의 동작이 오버랩된다. 문제의식부터 내용까지, 작품은 다분히 풍자적이다.
병역면제의 혜택이 주어지는 무용콩쿠르는 남성무용수 당사자들에게는 인생을 결정하는 몇 안 되는 계기인 만큼, 콩쿠르의 입상은 가장 절실한 것 중 하나다. 군 입대는 무용 포기를 의미한다고 말할 정도이니까. 정말 그럴까? 병역면제는 무용계의 뜨거운 감자다. 말 그대로 ‘특혜’라는 부정적인 일반여론과 남성무용가의 육성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무용계의 긍정적 의견이 대립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특혜 논란과 달리, 솔직히 무용계 내의 찬반 주장은 병역면제와 직결된 콩쿠르의 폐단에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안무자의 시각은 병역면제의 찬반론과 무관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착화된 부작용으로 지목되고 있는 그것, 안무자는 다름아닌 ‘콩쿠르를 위한 춤’에 포커스를 둔다(그러므로 결국 남성무용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30여분 길이의 작품 『글로리』는 먼저 병역면제라는 특혜와 연결된 한국의 무용콩쿠르 제도를 소재로 하고, 한 남성무용수의 개인적 경험을 스토리화해서 무대화한 아이디어가 흥미를 끈다. 4명이 출연하는 작품의 중심부분은 남성무용수인 안남근의 모놀로그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안남근의 스토리는 콩쿠르에서 1등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성무용수의 비애가 담겨 있다. 1등을 위해서는 심사위원을 사로잡는 결정적인 기술, 즉 ‘한 방’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안남근은 번번이 더 뛰어난 한 방을 날린 이들에게 밀려 2위가 된다. 그래서 더 강력한 ‘핵폭탄’으로 심혈을 기울여 마지막 도전을 준비하는데, 법이 개정되어 2등도 면제혜택이 주어지는 바람에 허무하게 끝난다. 이 과정에서 안남근은 자신이 참가했던 콩쿠르의 1위 수상자들 실명을 거론하며 그 기술들을 직접 구현해낸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는 웃픈(!) 상황이 객석의 공감을 끌어냈다. 안남근은 진중한 이야기를 위트있게 풀어냄으로써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비판적 어조로 다루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무게감이 희석되지는 않기에 작품은 한 편의 유머와 같다.
공연은 이 같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주제에 쉽게 접근하게 한다. 즉, 콩쿠르를 위한 춤이 문제다. ‘한 방’은 자신이 몸이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춤과 거리가 멀 때가 많다. 묘기와 같은 테크닉을 연마하기 위해 육체는 더 이상 춤추는 사람 고유의 것이 아니게 된다. 춤추는 사람 개인의 몸은 자주 보여주는 무언가로 왜곡되고, 그만큼 부상의 위험도 클 뿐만 아니라 결국 춤의 성격을 변질시키는 것으로 이어지기 쉽다. 콩쿠르 입상을 위한 여성무용수의 춤도 마찬가지다. 무용계에서는 익숙한 내용이어서 특별하지 않지만, 국립현대무용단이 지향하는 일반관객에게는 새롭게 들리는 주제일 수도 있겠다.
공연 형식을 보면, 내용의 이해를 위해 배경 스크린에 글이 쓰였고, 많은 부분이 말이든 행동이든 상황을 직접 설명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출연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그러고 있는지가 모두 설명되기에 그것은 일종의 연기처럼 보인다. 장면은 연출된 짧은 컷들의 연결로 구성된다. 이러한 형식의 퍼포먼스는 지난 몇 년간 자주 보게 된 것인데, 특히 안애순 전 감독의 국립현대무용단이 주력했던 기획으로 활성화되었다. 처음엔 춤에 대한 문제제기 방식으로 이해된 이러한 공연은 우리 춤무대에서 점차 틀에 박힌 형식을 구축함으로써 확장성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여전히 안무론적 질문은 유효하지만, 안무가가 기획자들의 컨셉을 실현하는 식의 도구화 때문에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한다. 이러한 형식이 안무적 발상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 작품성과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점 또한 생각할 문제가 되었다. 예술, 춤, 안무 등의 개념이 확장되고 또 변화를 겪으면서 컨셉을 잡는 자가 안무가로 불리는 현실에서, 진보하는 안무의 개념과 무관하게 안무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드러내고 그것으로써 춤을 규정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번 권령은의 작품은 자신의 문제의식으로 시작해 구체적인 스토리를 삽입해 중심을 잡음으로써, 아이디어의 남발로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구성을 완화시켜 친근함을 높였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한 점은 ‘3인무’의 방식이었다. 최근 몇몇 안무가들을 통해 안무의 기본으로 제시되고 있는 3인무 형식의 발전이 눈에 띄는데, 특히 신진 안무가들의 작업에서 두드러진다는 점이 근래의 춤현장에서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