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살롱

편견! 이는 대표적으로 우리를 멍들게 만드는 낱말이다. 일상을 유지해 가다가도 어떤 이가 내게 가진 편견을 발견하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편견을 대할 땐 두 가지 자세가 가능하다. 하나는 적극적으로 상대의 편견을 바꿔주려는 노력이고, 다른 하나는 한 번 삐뚤어진 생각이 절대 바뀔 리 없으니 무 대응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고슴도치의 우아함」(Le Herisson, 모나 아샤세 감독, 드라마/코미디, 프랑스/이탈리아, 2009년, 100분)이라는 이상한 제목의 영화에서 우리는 ‘편견’과 그에 대응하는 방법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파리에 있는 초호화 아파트의 관리인인 르네(조시앙 발라스코)는 딱 봐도 무식하다. 대책 없는 뚱보에 사시사철 같은 옷을 걸치고 머리 모양도 엉망, 열린 문으로 흘러나오는 냄새라곤 싸구려 소시지 굽는 게 고작이다. 게다가 퉁명하기 그지없고 그녀가 기르는 못생긴 고양이란! 무시당하기에 딱 알맞은 캐릭터다. 르네가 관리인인 고급 아파트에는 고위직 공무원과 부자들이 몰려 살며 위선과 가식이 넘쳐난다. 그런데 만일 여기에 교양 넘치고 우아한 관리인이 있다면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훌륭한 관리인을 둔 게 행운이라며 존중하고 지적인 대화를 나누려 할까, 아니면 부담 주는 관리인이라며 당장 내쫓으려 할까? 르네가 내린 결론은 후자였고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선 최선을 다해 주민들의 ‘편견’에 맞춰주는 게 낫다. 도대체 관리인 주제에 무슨 교양이 필요한가.
다소 우울한 소재를 선택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슴도치의 우아함」가 비극은 아니다. 그 보다는 코미디로 분류해 마땅한데 인간세상의 부조리를 해학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그 대목에서 제 역할을 잘 담당한 배역은 조세 장관 집 딸인 팔로마(가랑스 르 길레르믹)다. 그녀는 진즉에 아파트 주민들의 위선을 알아차렸고 르네의 비밀 방에 엄청나게 책이 많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러니까 르네와 팔로마는 아파트 내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동지였던 것이다. 하나하나 상황이 변할 때 마다 둘은 죽이 잘 맞아떨어져 관객에게 즐거운 웃음과 해방감을 선사한다. 영화의 결론보다 진행과정에서 깨알같은 재미가 느껴진다.
어느 날 아침 노크 소리에 르네가 문을 열자 수다꾼인 주민 여자와 점잖아 보이는 동양인 카쿠로(이가와 토고)가 서 있었다. 주인이 죽어 비게 된 아파트에 이사 오는 새 입주민을 르네에게 소개하려던 것이다. 통상적인 대화가 오가던 중 르네가 “행복한 집은 모두 같은 이유로 행복해요”라고 하자 키쿠로가 “불행한 집은 모두 각각 다른 이유가 있는 법이죠”라고 답한다. 이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에 나오는 대화로, 르네의 정체가 카쿠로에게 탄로나는 순간이었다.
르네라는 인물 설정에게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만 뜨면 주변에서 발견되는 편견과 고집을 마주하면서 반성할 기회가 생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사실 남들의 눈에 내가 편견을 가진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는 문제 아닌가. 그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게 좋을 때도 있다. 이 영화는 두고두고 머리에 떠올려질 게 뻔하다. 경험상.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