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살롱

조선시대 최고의 모사꾼은 누구일까? 수양대군을 왕으로 만든 칠삭둥이 한명회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손꼽는 사람은 이이첨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의 인구는 3분의1로 줄어들었고 국토는 황폐화되었다. 이런 와중에 선조임금은 의인왕후가 죽자 나이 60에 18살 난 김재남의 딸과 재혼하여 영창대군을 낳는다. 나이 많은 선조는 막내 영창대군을 귀여워했으며 그를 두고 죽기가 겁이 난다며 영의정 유영경에게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할 것을 은근히 종용한다.
광해군을 왕위에 오르게 하고 또 그의 권력을 강화시킨 사람이 이이첨이다. 왕이 된 뒤에는 건국 후 처음으로 뇌물을 써서 명나라의 주청을 받아낸다.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인 것도 인목대비를 폐위시킨 것도 이이첨의 모략이었다. 소북파와 동인, 서인들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으면서도 광해군 앞에 버티고 선 사람이 이이첨이다. 이런 이이첨도 광해군의 뜻에 절대 따르지 못하겠다며 버틴 사건이 있다.
1616년 누루하치가 여진을 통일하고 후금을 세운 후 명나라의 무순성을 공격하면서 명나라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무순성을 빼앗긴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던 양호, 유정 등을 차출하여 후금 공략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명나라는 조선군 5만 명의 파병을 요청하는데 광해군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으로 인해 국력이 약해졌을 뿐 아니라 일본의 침입을 막아야 한다며 이를 거절한다. 하지만 명나라 덕분에 일본을 물리쳤다며 명나라를 천조국(天朝國)으로 생각하던 조선의 관리들은 광해군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며 극렬히 상소를 올린다.
결국 조선군은 일만이천 명의 군대를 파견하게 된다. 이것이 사르후 전쟁이다. 이 싸움에서 명나라군은 참패를 당한다. 파견되었던 조선군도 부차령 전투에서 김응하 장군을 비롯한 4천 명의 군사들이 장렬하게 전사하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혀간다. 싸움이 끝난 후 후금은 조선에 화친을 청하는 글을 보낸다. 광해군은 이에 응하려 한다. 하지만 명나라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던 조선의 신하들은 결사반대한다. 무능한 황제를 대신한 환관들이 다스리는 부패한 나라, 각지에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혼란스러운 나라, 사르후 전투 이후 명장들과 정예병사가 사라져 버린 명나라의 현실과 강대해진 후금의 현실을 그들은 애써 부정한 것이다. 그러자 광해군은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이이첨에게 강화에 응하는 답서를 쓰게 하지만 그는 “손가락을 베고 팔을 끊으며, 벼루를 보수고 붓을 태울지라도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라고 버티며 광해군에게 오랑캐와 화친하는 것은 하늘에 죄를 짓고 부모의 나라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며 상소를 올린다. 이에 광해군 답을 한다. “경이 한 장의 글월로 휘몰아쳐오는 병화를 이길 수 있겠는가?”
가장 신뢰하던 이이첨과 허균마저 외면한 광해군의 중립외교. 사격술에 능한 포수와 총수를 키우며 병화에 대비했던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인조반정으로 인해 끝이 난다. 그리고 조선은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인해 또다시 병화의 잿더미 속에 파묻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