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료

1·4후퇴 전후
6·25전쟁 후 행방이 묘연하게 된 「舞踊評論家(무용평론가) 文哲民(문철민)」이라는 人物(인물), 그는 당시 내 눈에 비친 아주 인상적인 文化人(문화인)이다.
그래서 ─ 그렇다는 확실한 이유를 지금 댈 수는 없으나, 필경 「舞踊評論(무용평론)」이란 새롭게 들리는 그것에 내가 접근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겠나 생각된다.
1946年 明洞(명동)에 있었던 朝鮮敎育舞踊硏究所(조선교육무용연구소)에서 나는 그 문철민 氏(씨)로부터 무용略史(약사)같은 것을 처음 들었고, 「이사도라 덩컨」이나 「現代舞踊(현대무용)」에 대한 그의 독특한 見解(견해)같은 것에 아주 魅了(매료)되어 있었었다. 그러니까 그는 나에게 「무용」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한 사람 ─ 이라고 하면 좀 과장된 표현이 되지만 적어도 그것을 부추긴 사람인 것만은 사실이다.

1946년인가, 그때 신문에 「대학 무용연구생 모집」이라는 광고가 나왔다. 약대생이었을 땐데 나에게 굉장히 쇼크였다. 옛날에 우리 대학하고 무용하고 무슨 연관된다? 아무도 생각한 일 없고 대학하고 무용은 전혀 별개였는데… 이건 마치 뭐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연구소를 찾아 갔고 「함귀봉 무용연구소」 그쪽에 가니까 대학생들이 와 있는 거였다. 그곳에서 김경옥, 최창봉, 차범석 송범 등 그런 친구들을 거기서 만났다. 고려대 극회친구들이었다. 그때부터 그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배우는 시켜주지 않고 무대만들기, 포스터 만들어 붙이기 등만 시켰지만 나는 좋기만 했다. 결국 서울약대 재재추가 시험도 못보고 낙제하여 유급하게 되었지만….
또 舞踊硏究所(무용연구소)에서 高大生(고대생) 崔彰鳳(최창봉)과 같은 또래들과 어울리게 된 것도 내가 무용과 깊게 연결되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들 수 있다.
어떻든 이런 연유로 해서 6·25~1·4후퇴와 이어졌을 때 서울의 젊은 舞踊徒(무용도)들은 自救策(자구책)으로 「韓國舞踊團(한국무용단)」을 만들어 集團避難(집단피난)을 하게 된 것이 결국 舞踊評文(무용평문)을 쓰게 되고 마침내 오늘 「춤」誌(지) 發刊(발간)에 까지 이르는 일련의 연관관계가 된다. 그러니까 처음 나의 하찮은 役割(역할)이 舞踊社會(무용사회)에 큰 힘을 작용하였다는 그런 自負心(자부심)과 自信感(자신감) 같은 것이 오늘에까지 拘束力(구속력)으로 작용되었다고 하여도 過言(과언)이 아닐 것 같다.
사실 그때 中共軍參戰(중공군참전)으로 6·25전쟁은 逆轉(역전), 政府(정부)가 「1·4後退作戰(후퇴작전)」 일환으로 서울에 있는 交響樂團(교향악단)이나 文人(문인), 演劇人(연극인)들 集團避難(집단피난)시키는 계획을 세우면서 舞踊(무용)은 제외시켰다. 이것은 아마 「6·25」 때 이름있는 舞踊家(무용가)들이 모두 越北(월북)한 탓으로 실제 피난시킬 사람이 무용계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게다. 바로 이런 政府(정부)의 생각에 大學生(대학생)인 金京鈺(김경옥)과 나는 「國軍·UN軍 歡迎市民慰安舞踊公演(국군·유엔군 환영시민위안무용공연」(1950년 11월25일 명동 市公館(시공관))을 「韓國舞踊協會(한국무용협회)」라는 이름으로 꾸몄고 “그렇지 않아도 貧弱(빈약)하던 우리 舞踊(무용)에 今般(금반) 赤魔侵犯(적마침범)에서 받은 出血(출혈)은 자못 큰바 있다…” 云云(운운)하는 인사말을 내가 써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춤」誌 4호 「이 한 장의 프로그램 全文揭載(전문게재)」)

지금 읽어도 당시 우리들의 건방질 정도의 自負心(자부심), 舞踊界(무용계)는 이미 世代交替 (세대교체)되었다는 宣言(선언)을 하고 있었다.
어떻든 이런 우리의 「實情(실정)」이 「集團後退(집단후퇴)」에서 무용이 빠진 것은 안 되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했을 것이다. 나는 避難業務窓口(피난업무창구)가 軍政訓局(군정훈국)임을 알아냈다. 당시 政訓局(정훈국)은 明洞(명동)에 있는 證券去來所(증권거래소) 正門(정문) 건너편에 있는 建物(건물)을 임시로 占有(점유)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우연하게도 그곳에서 尹河璿(윤하선) 政訓大尉(정훈대위)를 만난다. 그 大尉(대위)가 바로 이 藝術人避難作戰(예술인피난작전)에 관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幸運(행운) 그는 나의 同鄕人(동향인)이며 普通學校(보통학교)와 서울대학교 ─ 모두 同窓(동창)이며, 先輩(선배)이니까.
나는 그때의 요행감을 아직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설명을 듣자
「이봐, 藥學徒(약학도)가 무슨 딴따라야, 그리고 이미 그 編成(편성)이 끝난 지가 열흘도 넘었어. 타고갈 車(차)가 없단 말이야….」
나는 그때 그 「車(차)」라는 것이 中央線(중앙선) 列車(열차)라는 것을 알았다. 汽車(기차)하면 화물차일테니까 지붕 위에라도 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尹 先輩(윤선배)의 배짱이면 보내주느냐 안주느냐가 문제지 마감날짜가 어떻고 列車(열차)가 어떻고 하는 말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뻗치고 앉아 있었다. 尹 大尉(대위)는 곁에 있는 사무보는 將校(장교)에게 상의조로 말하였다.
「마지막 편대에서 인원 좀 줄여 볼 수 없나?」
「이미 편대가 끝나 힘듭니다.」
그러니까 尹(윤)은 명령조로, 「힘들 게 뭐있나. 열 명을 줄여봐….」
그는 우리 무용집단을 10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형, 우리는 20명이 넘을 텐데요.」 나는 체면 무릅쓰고 그 말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니까 장교는,
「그럼 차라리 뒤에 온 전체 20명 모두 빼면 어떨까요?」
尹 大尉는 이 말이 나오자 당장 「그러지 그것을 빼버려」 하는 것이었다.
이 일은 단 1~2분의 대화가 오고가는 것으로 끝난 것이다.
나는 요즘도 그때 우리 때문에 빠져버린 그 집단이 대체 누굴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어떻든 나는 성공했다. 그리고 政訓局(정훈국)을 나오는 길로 金京鈺(김경옥)과 宋范(송범)을 만나 避難(피난)길에 오를 舞踊團(무용단) 멤버를 짜기 시작했다. 團名(단명)은 「韓國舞踊團(한국무용단)」, 資格(자격)은 朝鮮敎育舞踊硏究所(조선교육무용연구소) 出身(출신)과 宋范(송범)무용그룹. 定員(정원)은 20명 한도.
그런데 20명 집단이면 숙식을 맡아해줄 사람도 따로 있어야 하고, 나의 경우는 중학교 5학년의 동생도 대동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정원은 초과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병역문제 때문에 藝術人(예술인)으로 해서 신분보장을 받지 않으면 피난이 힘들었었다. 그래서 피아니스트란 명목으로 동생을 단원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서울철수 날짜가 미리 정해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그때 軍作戰命令(군작전명령)에 따라 신속히 움직여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따라서 團員(단원)은 모두 떠나는 시간까지 合宿(합숙)으로 대기해야만 하였다. 그때가 눈이 내리는 12월20일 께. 그런데 막상 20여 명이 같이 묵어야 할 방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럴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보통학교 동창인 韓奎植(한규식) 군이다. 韓君(한군)은 東京(동경)에서 중학을 다닐 때부터도 그랬다지만, 서울에서도 별 벌이가 없었는데도 늘 멋진 양복을 차려입고 돈 잘 쓰고 … 茶房(다방)출입으로 소일하는 수단좋은 그런 친구였으니까. 그만 있으면 뭔가 우리 一行(일행)들이 고생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韓君(한군)에게 우리 舞踊團(무용단) 얘기를 했더니, 쾌히 응해주었다. 과연 나의 이런 생각이 적중되어 韓君(한군)은 그날로 乙支路入口(을지로입구) 부근 茶洞(다동)에서 피난을 떠나 비어있는 큰집 한 채와 그 집의 김장·된장 모두 확보, 거기에 쌀 한 가마니도 장만한 것이 아닌가. 우리 처녀 총각 20여 명의 무용단원은 그 집에서 크리스마스 밤까지 지내고, 그 다음날인가 그 다음다음 날인가 大邱(대구)로 가는 좁은 피난차를 탄다. 오르막길에서 차가 힘겨워 멈추면 차에서 내려 걷기도 하며 大邱(대구)까지 만 이틀반이 걸렸다.
이른 새벽 大邱(대구)에 도착하자 韓君(한군)은 무용단에 배속돼 있던 兵士(병사)를 대동하고 民家(민가)에 들어가 공갈로써 단원이 묵을 큰 방을 얻는 공을 세웠다.
아무튼 이렇게 어렵게 大邱(대구)까지 安全(안전)히 避難(피난)한 우리 韓國舞踊團(한국무용단)은 二週日(이주일)만 같이 산 후 解散(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단 軍(군)이 원하는 一 戰慰問(전위문) 공연에 적합한 춤을 출 수 있는 6~7명만 軍藝家(군예가)로 남고, 이 軍藝隊(군예대)는 宋范(송범) 씨가 주재하였는데, 宋范(송범)은 틈틈이 大邱文化(대구문화)극장에서 「韓國舞踊團(한국무용단)」이란 이름으로 공연을 가졌고, 二年後(이년후) 서울로 復歸(복귀)해서도 그 이름으로 한두 번 공연했으나 결국 무용단은 消滅(소멸)되고 만다.
나는 戰爭(전쟁)과 避難舞踊團(피난무용단)이란 이런 奇異(기이)한 形態(형태)의 예술집단이 韓國(한국)말고 또 다른 나라에도 있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볼 때가 있다.

舞踊評入門(무용평입문)
還都(환도) 당시인 50年代初(년대초) 舞踊評論家(무용평론가)란 新聞辭令(신문사령)을 얻기란 무척이나 힘들었다. 4面紙面(4면지면). 一週日(일주일)에 한두 번 밖에 없는 文化欄(문화란)에, 舞踊評(무용평)이란 것이 비집고 들어가 앉기에는 여간 노력이 없이는 안 되었다.
우선 新聞社(신문사)에 「舞踊(무용)」이란 것에 이해하는 記者(기자)를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거기에 수준있는 무용공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 그러니까 評(평)을 쓴다는 것도 무리였다. 설사 글쓸 기회가 있다고 해도 원고용지 4~5매 분량. 물론 원고료는 없고, 그것도 정작 신문에 실린 것을 보면 記者(기자)가 제 멋대로 削除(삭제), 加筆(가필)하여 도대체 내가 이런 글을 썼던가 할 정도 내용이 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그래도 내 이름을 알리는 機會(기회)를 얻은 것만으로 감사할 뿐 그것에 대해 항의 한 번 하지 못했다.
더욱이 신문사가 봐줘야 하는 무용가에 한해서만 評(평) 지면을 할애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의 공연에 대해 글을 써서는 실리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의 경우 이런 事例(사례)는 1960년대 초까지도 계속되었다.
나의 첫 舞踊評(무용평)은 1953년 11월, 聯合新聞(연합신문)에 였다.
大邱(대구)에서 上京(상경)한 宋范(송범)의 서울서의 데뷔 공연을 보고 쓴 것이었다. 그와 나는 정말 이상한 인연이다. 나의 무용 첫걸음을 宋范(송범), 그에게서 배웠고 전쟁의 고비를 그와 같이 넘겼고, 나의 첫 舞踊評(무용평)이 그의 公演(공연)이고, 耳順(이순)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계속 對立(대립)하고, 提携(제휴)하는 그런 同伴者(동반자).
아무튼 그때 어떤 연유로 해서 내가 聯合新聞(연합신문)과 연결되었던 건지 확실치 않으나 明洞(명동)의 東邦(동방)싸롱이란 文化人(문화인)들이 많이 모이는 찻집, 거기서 알게 된 詩人(시인) 高遠(고원) 때문인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高遠(고원)은 釜山日報(부산일보) 서울支社(지사) 駐在記者(주재기자). 그는 文學靑年(문학청년). 나는 그가 만드는 詩誌(시지) 「詩作(시작)」의 表紙畵(표지화)를 그려주는 그런 사이. 어떻든 高遠(고원)은 聯合新聞(연합신문)과 연관이 있었다. 내가 무용평을 쓰고 싶다고 했을 테니까 그는 그 신문에 나를 소개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내 評(평)이 日刊新聞(일간신문)에 실려지려면 뭔가 인정되는 舞踊(무용)경력이 내게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前 韓國舞踊團代表(전 한국무용단 대표)」라는 호칭이었다. 사실 이 經歷(경력)처럼 증명이 확실하고 신빙성 있는 呼稱(호칭)이 따로 있겠는가. 계속 나는 이 「前(전)」字가 붙은 「代表(대표)」이름으로 글을 썼으며, 그것이 나의 評文(평문)을 쓸 자격처럼 인정되었다.
그 후 月刊(월간) 「새벽」 잡지의 時評(시평)을 쓰게 됐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나의 紹介(소개)를 「舞踊評家(무용평가)」라고 「評(평)」字(자)를 붙여주었다. 그때까지도 「舞踊評論家(무용평론가)」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은 時期(시기), 그리고 朝鮮日報(조선일보) 文化部長(문화부장) 尹鼓鍾(윤고종) 씨가 나의 中學校先輩(중학교 선배)여서 처음으로 나한테 정식으로 무용평을 청해주었고, 필자 소개를 「舞踊評論家(무용평론가)」라고 해주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나의 業種(업종)이 「무용평론가」로 확정됐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新聞·雜誌(신문잡지)에서 評(평)청탁이 오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매스콤에 興味(흥미)를 끄는 무용이 없었다. 때문에 언제나 내 쪽에서 文化部長(문화부장)한테 먼저 전화하여 이번 舞踊作品(무용작품)은 이러이러한 것이니까 評(평)이 필요하다는 式(식)으로 미리 양해를 얻어서 글을 쓰는 힘겨운 작업이 뒤따르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면 의례 저쪽에서,
「조 선생, 아직도 그 사람에 대해 쓸 것이 있습니까, 너무 낡은 것 같던데요. 이번은 그만두죠.」
「그래도 안 쓰면 어떻게 해요, 너무 오랫동안 舞踊記事(무용기사)가 없었는데 뭔가 舞踊(무용)이 살아있는 것은 알려야죠.」
이때만 해도 나는 新聞(신문)에 글쓰고 싶어서 응석을 부렸고, 다행히 나의 이런 응석이 어느 신문 잡지나 통하게 되는 때기도 했다.

─ 「무용저널」 (「舞踊評論家會(무용평론가회)」 刊, 1987年 제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