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배정혜 안무 국립무용단 『춘상』(9월21~2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춤극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안무가 배정혜의 신선한 파격이 기대되는 신작. 최근 몇 차례의 춤과의 협업을 호평으로 이끌었던 정구호의 연출. 봄날 설레는 사랑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춘향’의 아주 깔끔한 구조적 변형. 무용극 퇴보의 시대, 퇴출을 고민할 시기에 만든 국립무용단의 새로운 춤극. 작품 『춘상』의 다양한 감상 포인트는 춤의 시작부터 탐미의 호기심을 갖게 하였다. 감상의 결론부터 일설하면 『춘상』은 춤과 극에 빠져들 요소가 충분하다는 것.
먼저 인상적인 것은 배정혜가 펼친 춤의 공간. 작품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춤으로 가득 했다. 안무가의 기존 스타일로부터 어떤 차이점을 찾기보다는 사랑의 감성을 넘침과 부족함 없이 춤으로 채운 것이 유쾌하다. 이것은 지난 몇 년간 국립무용단의 빈약한 무엇이 결국 춤으로부터 정체성과 원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춘상』은 춤의 기호나 패턴이 두드러지진 않는다. 빠른 춤의 전개와 움직임 속에 우리 춤의 호흡을 정확하게 담고자 노력한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주역무용수와 무대 위의 모든 무용수들이 만드는 사랑의 앙상블을 세심하게 채운 것도 인상적이다.
정구호의 연출은 춤의 아마추어리즘으로 접근 할 때 가능한 신선함이 선명하게 무대에 보여 진다. 미니멀리즘과 모던함을 바탕으로 춤의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심플한 춤의 공간을 만들었다. 무대 후면에 커다란 흰색 구조물은 상황을 표현하는 중심 오브제로 쓰인다. 무대를 회전시킬 때 이 구조물의 다양한 입면은 작품의 상황을 전개하는데 활용되었고, 조명의 변화와 함께 작품의 분할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쉴 틈 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이 커다란 구조물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값은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볼륨 덩어리일 뿐이다. 형태의 변화를 통해 세심하게 장면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한국적인 것에 세련된 미니멀리즘이 스며있고 그것을 춤으로 구현하는 것에 정확한 인지를 가진 안무자와 연출자에게 공간미의 세련됨이 부족했다.
춤 속의 극은 봄날 적성의 아침을 노래하는 몽룡의 마음처럼 축제의 장에서 연인이 서로를 발견, 사랑의 기쁨,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의 이별, 아픔과 절망 뒤에 재회, 다시 사랑을 약속하며 끝을 맺는다. 단순하면서 명확한 이야기 구조는 작품에 몰입해서 춤에 빠져드는 것을 도와준다. 장면의 분할도 깔끔하다. 물론 춤의 강약조절도 적당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음악의 선택이 탁월하다. 이미 대중들에게 발표된 곡을 극에 필요한 뉘앙스에 맞춰 편곡하였으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정확한 과녁을 조준한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맘마미아」처럼 이문세나 신승훈의 곡으로 작품 전체의 스토리라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춤과 극의 만남은 아직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국립무용단의 원점은 역시나 춤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에 의미가 있다.

* 조형준 안무 『데카당스시스템』(9월21~23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음악과 영상을 담당하는 디자이너가 무대 양 측면에 서서 춤의 공간, 메시지의 공간을 형성하며 작품은 시작한다. 무대에 하나 둘씩 퍼포머가 등장하며 바닥에 비추어진 그리드에 맞춰 준비한 영역을 펼친다. 똑같은 크기의 연속된 사각의 모양과 규칙적인 도트는 생활과 형식, 규범들로 만들어진 질서를 뜻한다. 이런 암묵적인 규칙들을 어기고 그 속에 배인 인식을 거부한다는 뜻의 ‘데카당스’를 이 작품에서는 규범, 질서, 일상적인 것이라고 정의한다. 퍼포머는 조화롭지 못한 움직임을 비규칙적으로 계속해서 무대 위에 쏟아낸다. 이때 시계추의 울림 같은 또는 목탁소리와도 같은 정박의 자극적인 소리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무대 위에 벌어지는 무표정한 움직임들 속에는 자연히 꿈틀거리는 감각, 감정이라는 것이 숨어있기 마련인데 안무자는 이를 온순하며 바른 것으로 정의한다. 결국 우리의 삶은 어떤 질서에 의해 조합되고, 그것이 시스템이란 체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환기해보자는 것이다. 비약적인 상황의 설정, 에너지 없는 단순한 움직임뿐이었지만 선명한 메시지의 조합은 수준급 영상의 도움을 받아 설득력을 확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