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장유경무용단 『시인의 강』(9월8~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춤은 종종 추상화와 시(詩)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춤만으로도 얼마든지 시적 영감을 제공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춤인 『승무』를 재해석한 장유경 안무 『시인의 강』은 장삼 자락이 뿌려지면서 생기는 실루엣에 중점을 두어 그 유려함을 ‘강’에 비유하여 표현한, 춤과 시의 만남이라 할 수 있겠다. 『승무』는 한국춤의 교과서 격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전통춤이다.
그러나 『시인의 강』이라 명명한 것처럼, 장유경은 『승무』를 전통춤으로서, 혹은 종교적으로서의 재해석에서 비껴나 각 장에 따라 강에 따라 달라지는 흐름을 군무에서부터 독무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하거나 고깔을 쓴 여인(장유경)에서는 모성의 이미지를 자아내며 관객의 시선을 ‘강‘의 이미지로 고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무용수들이 연출하는 선뿐만 아니라 소품의 질감의 효과도 중요한 관건이었는데, 무용수들이 들고 있는 천의 질감에 따라 바람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저마다 다른 나부낌의 실루엣을 강조했다.
전반적으로는 큰 임팩트가 없지만, 작품의 의도대로 유유히 흐르거나 검정 천을 사용하는 장면에서는 같은 강도의 움직임이라도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것과 같은, 색의 착시효과도 느끼게 했다.
조안무로는 장유경무용단과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춘 바 있는 현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김용철이 직접 출연까지 맡아, 유려한 장면전환으로 자칫 임팩트를 놓칠 수 있는 시각적 효과를 배가시켰다.

* 현대무용협동조합 『가을운동회』(9월13~14일 강동아트센터 소극장드림)
한국의 내로라하는 국내 현대무용단 10개 단체(EDx2무용단, 댄스컴퍼니더바디, 고블린파티, 오!마이라이프무브먼트씨어터, 파사무용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STL아트프로젝트, 로댄스프로젝트, 트러스트무용단, 세컨드네이처댄스컴퍼니)가 연합한 현대무용협동조합(COOP_CODA, 이사장 김성한)이 지난 7월16일 강동아트센터에서 창단식을 가졌다. 그 후 근 2개월여 시간이 흘러 본격적인 활동을 알리는 창단 공연이 9월13~14일 양일간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드림에서 춤계 인사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성대히 열렸다.
무용인들의 단합이 아쉬운 현실에서 경쟁과 화합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운동회가 갖는 의미를 볼 때, 이번 창단공연의 제목인 『가을운동회』는 현대무용협동조합 창단 취지와 바람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낸 의미심장한 제목이라 할 수 있다. 국내 무용계 협동조합의 시조인 발레협동조합SPT가 주요장면을 발췌해서 한 무대에 올리는 갈라 형식과는 달리, 이번 현대무용협동조합공연은 각 현대무용단이 담당한 장면을 모아 총괄 연출(이인수)을 통해 한 작품으로 조합한 협동공연 형식으로 작품형식 면으로도 협동조합의 성격을 잘 나타냈다. 달리기를 인생에 비유한 노래처럼, 실제 운동회에서 보여주는 희비 그리고 결속력은 현대무용협동조합이 나아가며 겪어야 하는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공연장 안에는 초등학교 운동회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동요가 울려 퍼지고 있었음에도 로비의 관객입장에서부터 중 고등학교에서도 볼 수 없는 각목을 든 위협적인 학생주임 캐릭터(이선태)의 줄 세우기나 불량학생 단속은 어울리지 않는 위화감을 불러왔다.
국민의례와 교장선생님(황미숙)의 훈화에 이은 각 무용단의 대표 및 단원들이 한데 어우러진 국민체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가을운동회’가 시작됐다. 국민체조음악으로 대표되는 획일적인 동작에서 시나브로 점차 개성대로의 춤으로 변화하며 큰 틀 안에 각각의 무용단이 장면들을 이어나가는 형식이었다. 각 무용단들은, 운동회 주제에 맞도록 꾸몄지만 운동회와는 무관하게 꾸민 장면도 더러 보였다. 특히 이번 ‘운동회’ 중간에는 (트러스트무용단 소속) 장애인 단원들도 함께 출연해 이인삼각경기를 춤으로 표현했다. 여간해서는 주위의 도움이 없이는 홀로서기 힘든 신체조건에 대해 춤, 그리고 예술이라는 의미로서, 동시에 커뮤니티 댄스를 아우르는 의미에서 장애인 무용수들을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주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현대무용협동조합의 모토인 코다이즘(CODAISM), 즉 컨템포러리 댄스와 커뮤니티 댄스의 융합의 표현이라 해석된다.
많은 야심과 준비를 통해 이제 한발자국을 내디딘 현대무용협동조합. 현대춤의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어떻게 잡을지에 대해서 구태의연한 표현이겠지만, 이들의 앞으로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는 표현보다 더 알맞은 표현은 아직까지 없는 듯하다.

* 『오은희의 전통춤 風(풍)』(9월15일 한국문화의집KOUS)
오페라 음반을 듣다보면 성악가마다 기획의 취지마다 답답할 정도로 악보에 충실한 앨범이 있는가하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성악가의 캐릭터나 기교를 강조하는 앨범도 있는 등 그 개성이 다양해서 결국 고민하다가 모두 구매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이 새로운 클래식 음반을 꾸준히 발매하게 되는 이유인 것 같다. 전통춤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동작, 똑같은 음악 그리고 의상을 가지고 많은 무용가들이 일 년에도 똑같은 작품을 무대에서 선보일 수 있는 것은 관객들은 무용가에 따라 달라지는 작품의 태(態) 그리고 그 해석을 감상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은희의 전통춤 공연을 처음 보게 된 것은 2016년 6월,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공연한 『승무』를 통해서였으니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은희는 리을춤연구원 이사장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그의 전통춤 무대가 처음에는 낯설었다. 그러나 오은희의 춤은 마치 캐릭터 배우처럼 무심한 듯하지만 속정을 느끼게 한다. 이번 공연에는 이매방류 『승무』, 배정혜류의 『산조』와 『아리랑』 등 세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의 무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리랑』으로, 오은희의 캐릭터를 잘 대변해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오은희의 춤 사이사이에는 찬조출연을 한 리을무용단 단원들로 꾸며진, 오세연의 『소고춤』, 검정색 빌로도 저고리가 인상적인 이희자의 『장구춤』, 홍은주·이희자·김정민·곽시내의 『진도북춤』 등 「배정혜의 신전통」 공연에서 선보였던 레퍼토리도 다수 선보였다. 단원들이 「배정혜의 신전통」 시리즈 때 보다 한결 편안하게 공연에 임하는 모습은 원작자이자 스승인 배정혜의 앞에서 춤을 춘다는 부담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했다. 또한 김지은, 홍은주, 이주영, 곽시내, 김정민, 김지민에 의해 배명균 원작 『각설이』를 선보였는데, 『각설이』는 『탈춤』의 변주라 싶을 만큼 어깨춤과 외손사위와 발사위의 동작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역시 군무형식의 『진도북춤』과 함께 군무가 주는 다양한 동작보다는 똑같은 동작으로 처리한 점이 아쉬웠다.
『오은희의 전통춤 風(풍)』은 전통춤 무대와 차별화시키는 요소가 있음은 분명하다. 오늘날의 전통춤은 기방이나 야유(夜柔) 등에서 추어지던 춤이 서구식 극장이 들어오면서 공연예술 형식을 갖게 된 것인데 신무용 100년을 넘긴 오늘날, 이제 현대춤 기교가 가미된 신무용 계통의 한국춤도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전통으로 승화되어가고 있는 중임을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