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7일 인쇄
2017년 10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7년 10월호 통권 500호 |2025년 5월 5일 월요일|
 

논단

 

「춤」지 500호, 감성의 춤을 지성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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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애(金敬愛)
(춤평론·월간 「댄스포럼」 발행인)

월간 전문지가 500호를 맞이한다는 것이 우리 현대사에서 경이로운 일임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자를 주체로 하는 문학에서도 「현대문학」 정도이니, 「춤」지의 500호는 쌓아올린 역사, 즉 축적된 문화사료를 대신하는 말이 된다. 춤공연, 춤문화도 이젠 어디 내놓아도 끄덕없이 단단함을 표상하는 말이다.
다름 아닌 미천한 것으로 취급되던 춤계를 지성(知性)의 세계로 만들었다는 것이 「춤」지의 핵심적인 업적이다. 그럼으로써 춤도 한국사회와 대화할 수 있고 다른 분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그 위상을 제고, 정립했다.
각 분야 석학이나 당대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인물들을 춤계에 끌어들이면서 춤애호가로 만든 것은 「춤」지 이면의 조동화선생의 확고한 의지로서 가능한 것이었다. 선생님은 우리 문화 예술계를 일군 1세대라 할 만한 인적(人的) 배경(정치가들까지 포함해서)을 춤계에 내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베풂이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비디오아트 창시자로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백남준과의 춤무대를 만들어내기까지 감내해야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조선생님의 덕목 중의 하나는 춤을 위해서는 뭐든 너그럽게 수용하고 거기에 맞는 방법론은 찾아내는 명철한 판단력을 발휘하신다는 점이다. 「춤」지을 통해 춤계를 다른 세계로 이끄셨다.
「춤」지의 업적은 우선 평론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아니 불모의 춤계에 ‘춤평론’이라는 것을 인식시켰다는 표현이 옳겠다. 기록예술이 아닌 춤을 평론가의 펜으로 기록화했고, 이는 문화축적의 한 축으로 편재된다. 그러면서 춤도 지적(知的)인 예술임을 알리게 되는데, 현대무용의 부흥, 정착에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더불어 창작한국무용의 계몽으로 안무가를 ‘춤작가’로 인식시키게 된다.
「춤」지 편집장으로 13년을 일한 나로서는 다른 업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묻히는 ‘해외정보’ 부분을 크게 생각한다. 지금은 손바닥안의 스마트폰에 의해 외국 춤정보가 홍수처럼 넘치고 있으니 10년, 20년, 더 내려가 40년 전의 우리 상황을 요즘 젊은 무용가들은 상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니진스키, 이사도라, 누레예프, 마고트 폰테인, 마사 그레이엄, 볼쇼이발레 등등 서구의 역사적인 인물들을 무용가들은 「춤」지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된다. 아방가르드. 포스트모던 댄스 등 시대를 앞서가는 춤예술을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한 매체도 「춤」지이다.
조동화 선생님은 이 해외정보에 심혈을 쏟으셨다. 해외서적 구입, 뉴욕타임스 찾아보기, 주한외국문화원과의 협조 등 노력은 단한사람이 읽더라도 가치가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사실이 10여년쯤 인터넷 시대에 들어오면서 사회적인 급변에 의해 잊혀가는 것이 아쉽다.
출판과 건축은 내용적으로 문화이지만 ‘문명’이라고 한다. 정신적인 것이지만 물성(物性) 측면이 절대적이라는 것이 그러하다. 「춤」지 500권은 책 그자체로서의 예술이라고 본다. ‘가장 문학적인 잡지’에게 주는 상으로 선정되었듯이 많은 문학인과 예술인들이 이를 인정하고 있다. 작은 책자에 활판인쇄, 동판과 활자를 배치해 마치 한 면 한 면을 판화처럼 찍어냈다. 지면 하나하나가 판화예술로서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점점 사라지는 활판인쇄소를 찾아다니며 마지막까지 힘든 과정을 해냈던 일들이 생각난다. 활판에 세로쓰기 책이 발간되면 선생님은 지면의 오목볼록한 활자 흔적을 손으로 만지시며 감촉의 기쁨을 감추지 않으셨다. 후에는 활판 인쇄소를 찾지 못해 컴퓨터 편집으로 바꾸었지만 오랫동안 세로쓰기를 고집하셨었다. 6?25 전쟁 중에 김남조 시인의 첫 시집 「목숨」의 장정을 하셨던 조 선생님은 미술가로서의 특이한 감각이 있으셨고 그것이 고스란히 「춤」에 담겼다. 내용과 외장 면에서 유니크한 「춤」지 그 자체를 작품처럼 소장하고 있는 분들도 여럿 보았다.
춤의 지적(知的) 가치 획득은 조동화 선생님의 「춤」지와 그 계몽시대를 함께한 일선 무용가들의 의식 자각이 동반된 활동력의 소산임을 다시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