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작년에 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중국의 한 이론가이자 평론가를 만난 적이 있다. 스스로를 춤평론가라고 소개하자 그는 대뜸 “한국의 춤평론가들은 매우 전문적이고 영향력있다고 알고 있다. 중국의 경우 춤평단이 제대로 조성되어 있지 못하다. 부럽다”고 하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조동화라는 춤평론가가 세운 「춤」지가 40년 이상 발행되었기에 가능했다”고 답하면서 다시 한 번 특정 인물에 의해 예술과 평론이 얼마만큼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지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사실상 세계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개인이 발행하는 춤전문지가 결간 없이 41년 8개월 동안 통권 500호를 발행되어왔다는 것은 전무후무하다. 이러한 계량적인 의미를 넘어, 「춤」지는 내용적인 가치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춤」지는 1976년 창간 당시, 저급하고 낙후된 예술이라는 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부식시키고 춤의 사회적인 인식을 높여가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비교적 제한된 춤계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관련 예술분야나 문화계 전반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우리 사회 속에서 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여갔던 것이다.
또한 한국 춤의 역동적인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1차적 사료(史料)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실행해왔다. 찰나에 소실되어가는 공연예술로서의 춤을 기술하고 평가함으로써 동시대에는 널리 알리는 한편 다음 세대에게는 사료(史料)로서 역할하고 있는 것이다..
「춤」지가 정례적인 지면을 제공함에 따라 제대로 된 그러므로 전문화된 춤평단이 확립되어갔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전에 산발적인 춤평론 활동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심층적인 논의가 가능해지면서 춤평론가들의 전문성이 강화될 수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춤평론가의 저변 확대와 조직화가 가능해졌다. 넓어진 등단 기회와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통해 춤평단에 일련의 계보가 형성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춤평론가들의 활동영역의 심층화와 다변화는 곧 1987년 한국춤평론가회의 발족으로 이어졌다.
춤전문지라면 가장 중요한 점이 춤평론가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가인데, 「춤」지는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일단 지면을 부여하는 평론가들에게는 고유한 권한을 최대한 인정해 주었다. 말하자면 평론가의 힘과 자유로움을 마음껏 고양시키는 것이 편집상의 방향이자 정책인 것이다.
연극평론가 고승길은 “현재 춤계에 기관이나 협회가 아닌 개별적으로 발행되는 춤전문지가 4-5개 정도 되는 것으로 안다. 다른 공연예술 분야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하다. 춤계가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임을 고려하면 얼마나 대단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춤계의 평단이 지금과 같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은 조동화 선생의 「춤」지가 있었기에 가능하리라 본다”고 말한바 있다.
2014년 발행인 조동화 선생의 별세와 함께 「춤」지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변화의 시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내심 포스트 조동화 시대에 춤평단이 나아가야할 방향 제시를 「춤」지가 확고히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물론 가장 어려운 역할이지만 그 동안 「춤」지가 해왔던 본연의 ‘가장 어렵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이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1976년부터 장장 41년 8개월 동안 통권 500호를 결간 없이 이어가고 있는 「춤」지는 우리 춤과 춤평론의 역동하는 현대사를 일구어가는 소임을 다해왔으며 동시에 그 자체로 현재 진행 중인 역사이기도 하다. 「月刊 춤」 통권 500호를 축하하며 무용계와 평단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하나의 리더로서 이끌어가던 전성기의 면모를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ㅡㅡㅡㅡㅡㅡ
주) 본 원고는 「춤」 2016년 3월호에 실린 ‘월간 춤 창간 40주년을 맞이하여’를 수정·보완한 것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