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논단

1. 왜 「춤」지를 읽지 않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요즘에는 「춤」 잡지를 잘 읽지 않는다. 사실은, 무용 잡지뿐만 아니라 문학, 영화, 연극, 음악, 미술 등등 다른 분야의 잡지도 잘 안 읽는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나도 모르게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러고 보니 아마 그때도 그랬던 것 같다. 무척이나 심심했던 모양인지,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게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재미있는 책이 있으면 추천 좀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책이라 함은 보통 소설을 가리키는데…. 하여튼 그때 나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내가 요즘 자주, 아니 매일 읽는 것은 말이지, 바로 댓글이야. 친구는 기가 막힌 듯했다. 댓글을 읽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주저하지도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나의 태도가 황당했던 것이다. 뻔뻔하게도, 아무것도 읽지 않는다는 말을 어쩌면 그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느냐는 뜻이다. 나는 반문했고, 우리는 한동안 글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설전 아닌 잡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왜 나는 「춤」지를 안 읽는가? 이는 분명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간혹 주위사람들에게 “이번 달 「춤」지 읽어보셨어요?”라고 물으면, 읽었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히려 되묻는다. “왜요, 무슨 일 있나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 시대와 비교하면, 2017년의 우리 무용사회는 「춤」지와 멀어져 있다. 그러므로 통권 500호를 맞아, 「춤」지는 새삼스럽게 물어야만 한다. 우리 무용계는 왜 한국의 춤을 대표하는 전문지 「춤」을 읽지 않는가 혹은 「춤」지를 왜 읽는가? 지금 무용계에 그보다 더 절실한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달라진 사회 환경, 매체의 변화, 문화정책의 방향, 상업주의의 지배, 대중문화의 확장 등, 그 까닭을 끝없이 열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목록이 늘어날수록 점점 더 비관적이 될지도 모른다. 그 끝은 잡지의 위기니 종말이니 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게 답일까? 그 위기는 10년, 20년,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말했던 것이 아닌가? 그러니 점점 더 뚜렷해지는 사실은 무용 ‘외적’ 상황이 「춤」 잡지를 읽지 않게 만든 게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잡지가 위기고, 많은 잡지가 재정난을 이유로 폐간한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잡지들이 또 창간한다. 이런 시대에 창간되는 잡지들을 보면 잡지의 종말이 무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지금의 물음에 대한 답은 무용 외적 환경이 아니라 내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오늘 「춤」지를 새로 읽으며, 우리의 춤계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2. 「춤」지 통권 100호 기념 특별 대담과 좌담을 읽으며
월간 무용전문지 「춤」 통권 500호를 맞아, 새로운 기분으로 잡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찾은 책자는 100호! 통권 100호를 기념하여 발행인이었던 조동화 선생은 ‘권두언’으로 자축했다. “힘든 한 달 한 달이 언젠가 벌써”라는 제목으로 쓰인 글은 “백 권째 책을 낸다”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매달 무용전문지를 발간하는 힘겨움뿐만 아니라 뿌듯함을 전해준다. 또 박두진 시인의 시 「해의 나라 춤」과 김용환 화백의 글과 그림 「내 춤 청하는 데 사양할리 있는가」가 100호를 축하한다.
1976년 3월 창간된 「춤」지 100호는 1984년 6월 발간되었는데, 햇수로 약 8년이다. 한국의 현대무용이 싹을 피우고 자라기 시작하던 시기에 월간 「춤」은 토양과 같은 역할을 했으니, 우리 예술춤이 급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춤」 잡지가 있었다. 통권100호 특별대담과 특별좌담은 대략 1980년대 초 우리 춤의 현황을 진단하는데, 여기서 우리의 현대무용이 당면한 과제랄까 당시의 고민이 읽힌다.
먼저 무용평론가 박용구와 강이문, 두 선생의 대담은 ‘한국무용계의 어제와 오늘을 말함’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는 바, 특히 1960년대 이후 우리 춤의 발전을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 장르별로 간략히 훑는다. 언급한 내용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 발레 : 작품보다 기반조성이 먼저
* 1950년 한동인의 ‘서울발레단’ 공연이 해방 후 우리나라 발레로서 주목할만한 최초의 것이다. 하지만 6·25전쟁으로 4회 공연을 못했고, 이후 1950년대는 일본을 통해 간접 수입된 발레가 이식되는 과정이었다. 이 중심에 임성남이 있다.
* 1967년 동아일보사 주최로 열린 「아시아 발레 제전」에서 공연한 『백조의 호수』가 성년기 우리 발레의 기폭제이자 스타트일 수 있다. 일본인 고마끼 마사히데(小牧正英)를 초청해 안무 연출을 맡기고, 일본인 발레리나와 중국인 여성무용가가 출연했는데, 임성남이 지그프리트 왕자로 출연했다. 한중일 삼국의 참여는 문화교류적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 그 후 ‘국립발레단’이 창단된다. ‘국립’으로서 위상은 아직 미흡하다. 진정으로 프로페셔널한 수준이 아니다. ‘국립’에 맞는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발레는 전문기술 교육이 중요하므로 발레학교를 설립한다든지 해서 외국에서 유능한 교사를 초빙해 기초를 다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립이 그저 나라의 장식 정도의 기능에 그쳐서는 안 되고 그 나라의 발레예술을 대변한다는 의식에서 발레가 우리 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 더불어 국립과 경쟁할 수 있는 민간 발레단이 생기기를 희망한다. 발레는 관객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 장르이므로 기업체에서 적극적으로 관심가져주길 바란다.
* 결론적으로, 발레는 작품을 논하기 전에 먼저 기반부터 조성해야 한다.

■ 현대무용 : 마사 그레이엄에서 벗어나
* 우리 현대무용이 성장기를 지나 전기를 마련한 것은 1963년 육완순의 ‘오케시스’ 공연으로 볼 수 있다. 그 후 현대무용의 성장을 볼 때, 육완순으로 소급되기 때문이다.
* 하지만 스승 박외선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현대무용의 산실인 이화여대 무용과의 설립에 박외선이 있다. 한국 현대무용의 역사를 육완순에서 시작해서는 안 된다.
* 오늘, 즉 1980년대 현대무용의 문제 중 하나는 마사 그레이엄의 존재다. 육완순의 오케시스는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을 직수입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할 때가 왔다. 그래함에 기반을 둔 현대무용의 발전이 어떤 한계에 직면한 것 같다. 현대무용을 미국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 20세기에 와서 무용이 어떤 의미에서는 스스로의 방법론을 가짐으로써 독립된 예술로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무용예술의 시작점에는 라반과 뷔그만이 있다. 이 영향으로부터 미국의 모던댄스도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래함을 넘어서 넓은 시야로 현대무용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가령 뷔그만의 표현주의적인 무용언어를 만들어 쓰는 김기인, 영국에서 라반계열을 받아들여 활동하는 최청자, 프랑스 현대무용을 받아들인 남정호 등을 주목한다.
* 결론적으로 최근 우리 현대무용은 마사 그레이엄을 벗어나 확장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현대무용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 한국무용 : 전통춤의 비판적 수용을
* 한국무용은 지난 10년에서 국립무용단이 가지고 있는 신무용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그 시작은 1975년 문일지가 서울시립무용단을 이끌면서 『작법』을 만든 것이다. 국립무용단이 보존해온 신무용이 한국무용의 형식미에 몰두했던 데 반해, 문일지가 처음으로 한국무용의 방법론 자체에 관심을 갖고 접근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것을 기점으로 신무용에 대한 도전이 한국무용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 전통은 재현이 아니라 오늘의 무용언어로 재창출한다는 자의식이 생겨난 것 같다. 신무용의 쇠퇴는 한국춤의 수용이 잘못된 데서 비롯되었다. 가령 신무용은 기방무를 그대로 들여오는 데서 형태적 측면만을 발전시킨 것이 문제다. 기방무는 기본적으로 자기의 표현이 아니라 남을 위해 제공하는 춤이다 보니 그 선상에서 받아들인다면 형식미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오락적 성격이 심화될 수 있다. ‘한국무용연구회’나 ‘창무회’ 등 오늘의 젊은 세대가 전통춤의 핵심을 정확히 짚고 이 시대의 감각으로 재창출한다면 한국무용의 존립에 반가운 일일 것이다.
* 한국무용에서 중요한 점은 전통에 내재된 춤의 근본을 인식하는 것이다. 춤사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속의 것, 즉 민중성 같은 의미를 찾아내는 게 핵심이다. 가령 무속춤에서 샤머니즘을 찾을 게 아니라 민중적인 것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우리의 연희계가 기본적으로 놀이에서 출발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그것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시대성을 가져야 한다. 과거의 것을 수용할 때는 동시대적 입장에서 주체적이고 비판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 결론적으로 한국의 전통춤이 ‘민중’에 뿌리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원천으로부터 오늘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작업이 바람직하다.

■ 기타 : 지난 10년 간 생긴 일 중 짚고 넘어갈 것들
* 문예진흥원이 생겨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다만 방법론에 있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더 많이 수렴할 필요가 있다.
* 한국무용협회는 유명무실화되었다. 시대적 요청으로 전문화되어 발레협회, 현대무용협회, 한국무용연구회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다만 원래 예술은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 원칙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집단화는 부정적 기능이 있는 만큼, 개인의 예술작업에 자극을 주어 성장시키는 선한 기능에 유념해야 한다.
* 무용전문지 월간 「춤」이 창간되어 전문지로서의 품격과 나침반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무용계에 기여한 바가 크다. 가령 「춤」지의 수준 덕분에 무용가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고, 무용가들이 공연할 때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춤」지를 통해 지방에서도 국제적 흐름을 알게 되었다. 「춤」지가 자매예술을 끌어들임으로써 그 분야 사람들이 춤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 춤의 수준과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월간 무용전문지를 갖고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데, 「춤」지가 있음으로써 우리의 무용은 놀랄만한 위치가 되었다. 다만 앞으로 무용비평의 튼튼한 기반을 위해 외국 정보보다 국내의 알찬 평론을 더 발굴해줬으면 한다. 무용저널이 아닌 크리틱의 기능이 중요하다.
* 대학에서 무용교육의 체계화와 이론 정립이 아직 미숙하다. 물론 지역사회에서 대학의 무용과가 가지는 역할이 큰 편이지만, 앞으로 학문적인 연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 무용에서 남성과 여성을 생각한다.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우리는 오랫동안 여성과 남성이 각각 따로 춤을 추어왔고, 함께 춤추는 역사가 짧은 편이다. 여성적인 춤이 보편화되는 것은 우려할 일이다. 여성일변도의 무용관념에서 탈피하는 일이 시급하다.
* 무용창작의 향토적 개성을 생각해야 한다. 서울 집중에서 벗어나 지방의 무용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시설 등을 확충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지방대학의 무용과가 제기능을 할 수 있다.
* 현재 무용의 국제교류는 진정한 의미에서 교류가 아니라 일방통행이다. 국제교류는 앞으로 점점 더 활발해질 텐데, 지금과 같이 일방통행식 교류는 곤란하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국제적 무용행사들이 일방적으로 수입하는 데 그치고 우리가 진출한다는 보장이 없다. 국제무용행사들이 우리 무용의 진출 통로로서의 역할도 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특별대담의 제목(‘언젠가는 모든 춤이 일원화돼야’)이 가리키는 바는 한국무용-발레-현대무용 등 삼분화된 장르가 결국 ‘춤’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일원화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때의 춤이란 창작무용, 즉 예술춤을 의미한다. 오늘의 현장에서 젊은 세대들이 장르불문하고 자신의 작업을 ‘컨템포러리댄스’로 지칭하는 데서 그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확립된 기법들은 결국 동시대 춤의 방법론으로 정립될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기법이 달라서 다른 장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통춤들을 한국무용과 동일시해서 안 되고 고전발레를 발레와 동일시해서 장르화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삼분법이 동시대 예술로서 춤의 발전에 어떤 제약으로 작용한다면 이는 우려할만한 일인 것이다. 컨템포러리댄스 하에서는 기존의 한국무용-발레-현대무용으로 나뉘지 않을 것이므로 앞으로 한국무용사 정리에서는 이 같은 삼분법을 적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대예술은 근본적으로 창작이므로 창작무용과 같은 용어도 불필요한 것이다. 창작무용이라는 용어는 한때 우리 현대무용의 발전에서 과도기적 상황을 보여준 흔적인 셈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창작무용이라는 용어가 시사하는 바는, 우리 무용계가 얼마나 치열하게 예술로서 춤이 무엇인지 정립하고자 했는가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예술의 장르 해체 현상에 관한 이야기인 특별좌담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오늘의 공연예술현황을 생각한다’는 제목의 좌담은 채희완(무용평론), 이종구(작곡), 김석만(연출) 등 세 명의 소장학자가 각각 무용, 음악, 연극 세 분야의 전문가로서 참석했는데, 무용, 연극, 음악 등의 분야가 퍼포밍 아트, 즉 공연예술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통합된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현대공연예술의 추세를 조감하고 우리나라의 공연예술 현장을 점검하여 그 나아갈 방향, 즉 미래적 전망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알다시피 미국과 유럽에서는 1960년대 이후 각종 예술적 실험들이 펼쳐졌다. 새로운 예술을 만들기 위한 실험의 과정이 ‘진행 중’이었고 아직 정립되지 못한 형태들이었기 때문에 장르를 불문하고 임시적으로 ‘퍼포먼스’라고 불렀다. 그러한 실험의 중심에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퍼포먼스들은 기존의 관점에서 볼 때 춤도 연극도 음악도 아닌 그저 실험적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그러한 실험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적 경향이 되어 포스트모던의 예술사조를 형성하기도 했다. 육체와 움직임의 예술이었던 무용뿐만 아니라 희곡(즉, 언어) 기반의 연극도 신체성을 새롭게 발견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공연’이라는 것의 특성이 주목되었다. 즉, 행위를 한다는 연행성이 핵심인 공연예술로서 춤과 음악, 연극 등을 새롭게 보는 것이다. 공연의 특성을 강조함으로써 무엇보다 무대공간이라는 장소가 문제시되었다. 전통적으로 ‘극장의 무대’에서 이루어지던 극장예술로서 춤, 연극, 음악이 그 장소를 벗어나는 것이다. 무대는 극장이라는 공간에 한정되지 않는다며, 이제 극장예술이 아닌 공연예술로서 범주를 전환시켰는데, 이는 세계대전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20세기 전반기의 아방가르드예술운동을 연상시킨다.
「춤」지의 좌담은 1980년대 들어 그 같은 실험들이 정리되는 분위기라고 전한다. 그동안 일어났던 각종 실험들을 성찰하며, 해체와 그것이 남긴 것들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좌담은 외국의 공연예술 흐름을 살펴보며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내용이 주가 된다. 지면관계상 내용 정리는 생략하지만, 그때부터 시작된 논의가 지금까지 지속됨을, 그래서 공연현장 한가운데서 현재도 계속되는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가 많은 내용의 좌담이다. 30여년의 시간, 우리의 춤은 얼마나 발전했으며 또 어떻게 발전했을까? 「춤」지 통권 500호의 좌담은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을 테니, 통권 1호와 100호를 함께 읽고 더불어 100호와 500호를 함께 읽는다면, 춤예술 발전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3. 오늘날의 춤과 평론의 기능을 생각하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본다. 지금 우리는 왜 「춤」지를 안 읽는가? 우리가 살면서 곧잘 잊어버리는 것은 뭔가 대단하고 훌륭한 것이 아니라, 사소하고 간단한 것, 특히 일상적인 것이다. 탄산음료가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지만 곧잘 잊어버리고 매일 마신다거나, 하루 30분 걷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항상 잊어버리고 실천하지 못한다. 당연한 것일수록 자연스럽게 잊고 산다. 그러므로 우리의 답은 아주 간단한 것, 당연한 것이 될 것이다. 이제, 누구나 다 아는, 그토록 뻔한 답을 말해야 할 차례다. 우리 무용사회가 지금 「춤」 잡지를 읽지 않는 까닭은, 「춤」지가 ‘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말은 지금의 무용사회가 예술로서 춤에 대해 별다른 고민도, 어떠한 성찰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춤이 예술로서 당연한 것이 된 시대에 그런 고민은 불필요하게 된 것이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춤은 예술의 지위를 보장받기 때문에 동시대의 춤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리하여 무용사회는 더 이상 예술로서 춤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춤」지는 초창기 예술적인 춤과 그렇지 않은 춤을 구분하려는 의식으로부터 무용사회의 발전을 견인해왔지만, 지금은 애초부터 예술적인 춤과 그렇지 않은 춤의 구분 같은 건 없을지 모른다는 회의가 크다. 이것은 결국 비평의 문제로 되돌아간다.
과거의 춤과 평론은 어땠을까? 가령 우리는 20세기 후반 위대한 안무가로 꼽히는 지리 킬리언과 윌리엄 포사이드를 기억한다. 두 사람 모두 각자 고유한 춤스타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그 영향력은 컸다. 예술에서 개성이 중요한 기준이라면 그 두 사람의 우열은 가리기 어렵다고 할지 모른다. 킬리언과 포사이드, 둘 중 누가 더 우수한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그냥 취향의 문제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킬리언의 어떤 작품과 포사이드의 어떤 작품을 놓고 평가하라면 좀 더 판단이 쉬울 것이다. 어쨌든 예술성에 대한 가치 평가는 결국 작품을 두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저런 기준들을 통틀어 판단컨대 무용사에서 포사이드가 킬리언보다 더 우수한 안무가라고 결론내릴 것이다. 왜 그런가? 또 포사이드와 피나 바우쉬의 경우 안무론적 측면에서 누가 더 진보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가? 외국 무용가의 예를 들었지만, 이름을 바꾸어 보면 얼마든지 우리 춤의 문제가 된다. 가령 국립현대무용단의 세 예술감독인 홍승엽, 안애순, 안성수 중 누가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가? 1등 2등 순위를 매기자는 뜻이 아니다. 종종 혼동되기 쉽지만 예술에서 순위는 누가 누가 더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님을 상기한다면, 이 질문은 예술로서 춤에 대한 물음이다. 각각 개성이 다르고 그 나름의 의미가 있어서 판단이 어려울 때, 그 고민이 생길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술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홍승엽의 안무는 어떻고 안성수의 안무는 어떻고 그래서 이것저것 분석이 끝나고 난 다음, 그래서 누가 더 진보적인가라고 물었을 때 답을 내놓게 될 것이다. 핵심은 ‘왜 그런지’, 즉 근거다. 바로 그 근거를 만드는 작업이 곧 예술로서 춤에 대한 반성이다. 오랫동안 무용계에서 그것은 평론가의 몫이었다. 초창기 「춤」지와 「한국춤평론가회」는 모든 외적 관련을 제외하면 바로 그 하나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은 「춤」 100호가 발간되었던 1980년대도 아니고, 그래서 오늘의 춤은 초창기 현대무용의 평론가 및 무용가가 가졌던 문제의식을 똑같이 되풀이할 수 없다. 하지만 왠지 그것이 여전히 숙제처럼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다. 오늘의 춤은 1970~80년대와 비교하면 꽤 큰 변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춤이 예술인가 혹은 누구의 춤이 왜 안무적 측면에서 더 진보적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은 춤 그 자체가 의문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무엇이 춤인가’를 묻고 있다. 오늘날 춤은 그 영역이 꽤 확장되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예술춤의 영토인지 모를 정도로 광범위해졌다. 여기에는 상업화와 교묘하게 섞여 있는 춤도 포함이 된다. 과거 한때 예술이었던 춤작품이 이제 낡은 것이 되고, 그래서 가치가 하락되어도 사라지지 않고 ‘전통’으로서 남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양적 축적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점점 더 과거의 유산에 안주하여 문화상품화되고 있는 춤이 지배적이게 되었을 때, 춤의 예술성을 일깨우며 주의를 환기시키고 각성을 요구한 것은 프랑스를 위시한 소위 ‘서유럽 컨템포러리댄스’였다. 상품화된 춤에 반대하는 노력은 춤의 고전적 형식들을 폐기하는 작업으로 행해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문화예술 사조의 맥락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던 이 경향은, 고전적 작품의 관념을 해체함으로써 움직임에 대해 새로운 물음을 제기하였다. 작품이라는 형태가 상품으로 변질되기 쉽기 때문에 작품으로 환원되는 춤의 개념을 문제시한 것이다. 그 결과 수행성을 강조한 퍼포먼스들이 춤의 새로운 개념을 정의하게 된다. ‘무엇이 춤인가’라는 물음은, 팔리는 상품을 만들라는 공연시장과 문화자본에 저항하는 예술가들의 사회비판적 의식이었다. 작품의 해체는 전통적으로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던 평론의 해체도 의미했다. 작품이 상품이라면, 평론은 어떤 작품이 시장에서 잘 팔릴 상품인가를 감별하는 것, 때론 팔기 위한 선전도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서유럽 컨템포러리댄스의 시작은 춤이 스스로 이론이자 비평으로 등장한 데 있다. 그것은 후기산업자본주의사회에서 예술이 직면한 당대 사회문화에 대한 비판적 실천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이론이 정립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그 이론을 수입하여 그 이론에 맞는 춤작업을 하면서 컨템포러리댄스니 개념무용 하는 식이 되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국가의 춤지원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춤현장을 보면 단순히 공적 지원의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지원의 문제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예술 자체의 성질은 잊고 지낸 듯하다. 양측이 함께 가야 하는 것인데도 한 쪽의 발전에 비해 다른 한 쪽은 몇십 년 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것이 오늘날 「춤」지를 읽지 않는 이유다. ‘왜 「춤」지를 읽지 않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무용가들은 ‘왜 (평론가들은) 춤을 보지 않는가’라는 물음으로 대답한다. 현장에 평론가가 없다. 평론가들이 춤을 보지 않으면서 「춤」지에서 춤은 사라지고 말았다. 한국 무용계에서 평론가라는 지위는 스스로 노력해서 획득한 것이지 처음부터 누군가 마땅히 받아야 할 자리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끊임없이 춤예술과 대면하고 치열하게 춤과 대결하면서 얻은 것이고, 그 배경에 「춤」지의 기여가 있었다. 지금은 면허증처럼 누가 누구에게 부여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갖는 이름표가 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오늘의 평론은 어디에 있는가?
앞서 정리한 대담뿐만 아니라 좌담을 읽다 보면, 오늘날 같으면 누구든 분명 댓글을 달고 싶은 발언들도 있을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댓글쓰기는, 국정원 댓글 조작사건이나 마녀사냥 식의 부작용도 도외시할 수 없지만, 뉴스의 댓글들은 동시대의 사회적 소통의 중요한 지점이다. 정식 ‘글’로 보기에 미흡한 점도 있지만, 그 하나 하나의 문장들이 모여 하나의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은 분명하다. 누구의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들이 모여 우리 시대의 의식과 인식을 파악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고, 나아가 파편들의 모음이 기존의 통념을 넘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준다는 기능이 중요하다. 그러니 ‘댓글 많은 뉴스’일수록 이슈가 무엇인지, 또 사건의 본질과 왜곡 등 문제적 사안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온라인상에서는 누구나 정치평론가, 사회평론가라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닌 것 같다. 무용계도 댓글 행위가 활발해진다면 누구나 무용평론가가 될까? 그래서 우리 춤이 사회에서 동시대 예술로서 기능을 하게 된다면 환영할 일이다.
무엇이 춤인지, 길을 잃고 헤맬 때 역사는 좋은 지침이 된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과거와 대화를 통해 미래의 길을 찾는다. 역사를 되짚는 것은 무엇이 문제였는지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함이다. 여기서 핵심인 ‘동시대성’은 비판적 정신과 태도에서 나온다. 지난날은 훌륭했다, 우리는 매우 힘든 시간을 잘 견뎠고 이만큼 성장했다, 내가 한 일들이 자랑스럽다는 차원에 머문다면 결국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엉망이다, 비전이 없다 하는 식의 신세한탄으로 끝날 것이다. 작품에게 가장 나쁜 비평은 칭찬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춤평론도 오랜 시간 무디어진 감각을 갱신할 때가 아닐까? 그렇게 되면 무용계는 「춤」지를 다시 읽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