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관무기

조양희는 이화대학교 무용학부에서 석사 논문 “비디오댄스의 안무적 특성에 관한 연구”로 1997년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이어서 “디지털매체 시대의 무용작품 분석을 통한 안무방법 확장에 관한 연구”로 201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현재 이대 무용과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6년, 한국무용과학회지에 “대학 교양무용교수자의 지도유형이 학생들의 도움요청 및 수업노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주형철 연세대 교수와 공동발표해서 학계의 이목을 끌었다.
현대무용단-탐에서 행한 초기 주요 공연은 『비보호 좌회전』(2001, 안무, 출연)이었다. “구조조정이라는 사회적 현실과 인간의 내적 갈등을 해양 생태계의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2003년 현대무용단-탐의 솔로공연 『매스 메스(mass, mess)』, 『보헤미안 해커』(안무, 출연)에 이어 2005년 발표한 『빙점』(안무 및 출연)은 “9·11 테러, 이라크 전쟁, 끊이지 않는 위기일발의 전쟁”을 고발한 작품이다. 탐 30주년 솔로공연(2010)에서 조양희는 이색적인 작품 『마이 퍼니 발렌타인(My Funny Valentine)』(안무 및 출연)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사람이든, 영성이든, 물건이든, 예술품이든, 도시가 됐던 극진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발렌타인’을 베이커(Chet Baker)의 음악에 담아 모노드라마처럼 표현한 작품”이다. 『모종심기』(2012)는 “식물의 성장을 관찰하며 자연의 이치를 통해 자연의 지혜를 안무와 무대구성과 춤의 어휘”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안무와 출연을 겸한 “조양희의 춤 보고서”였다. 「댄스포럼」(2012.5월)에서 김경애는 이 작품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생태의 과정, 노력과 아픔, 그리고 환희를 현대춤으로 그렸다. 적절한 추상무용이다. 구체적인 진행에 드라마와 움직임의 다양한 그림이 있고, 그 표현은 현대춤의 추상성을 잘 살려 고급한 정서로 일관했다. 조양희의 안무가로서의 능력을 확인하게 된다.” 2014년 현대무용단-탐 12회 솔로공연에서 조양희는 “불안 심리의 자극에서 오는 생성과 소멸”의 상황을 『블랙아웃(Blackout)』(안무 및 출연)에서 성공적으로 형상화했다.
현대무용단-탐은 34회 정기공연(2014)에서 조양희가 안무하고, 출연한 작품 『행길, 다시 떠나기』를 삼성홀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은 「댄스포럼」 4월호에서 커버스토리로 다루어졌다. “자전적인 추상무용이다. 영상을 무대바닥에 다채롭게, 드라마틱하게 사용했다. 작품은 후반부로 갈수록 영상의 다채로움과 함께 역동적으로 변한다. 빛이 담긴 긴 장대를 든 조양희의 등장은 절정이다. 군무의 움직임도 유연하고 역동적이다.”(김경애)
탐 35주년 솔로공연(2015)에서 발표한 『열하일기』(안무 및 출연)는 ”자신을 둘러싼 관계가 점차 애증관계로 바뀌어가면서 받아들일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심리적 상태와 상황을 여름을 대하는 일기로 그려낸 수작이다. 『상영시간』(2016, 36회 정기공연, 조양희 안무 및 출연)은 인생이라는 시간의 영화는 재촬영도 편집도 불가능하다는 주제를 영화적 감성과 기법을 도입해서 표현한 작품이다. 6회 탐 “젊은 무용수 젊은 안무가” 공연에서 발표한 『핸드레일(Handrail)』(안무 및 출연)은 영상 이미지를 몸의 표현에 접근시킨 작품이다. 이외에도, 조양희는 『조율』, 『삼한사온』, 『편두통』, 『중얼거리는 사막』, 『허락된 밀실』, 『패널티 킥』, 『앤트로피』, 『중얼거리는 사막 II』(2013,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 출연작) 등 다수의 우수작품을 발표했다.
2013년, 국제현대춤축제(MODAFE)는 조양희 작품 『백색소음(White Noise)』을 국내초청작으로 무대에 올렸다. 자기중심적 사고가 만연(蔓延)된 사회적 갈등과 충돌을 소리와 몸의 관계를 통해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조양희는 “자유자재로 조율이 되는 유연하고 완벽한 테크닉, 섬세한 감성과 폭발적인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하는 무용수”로 평가되었다. 특히 치밀한 구성과 다채로운 춤을 만들어낸 안무의 역량에 대해서 각별한 찬사를 받았다.

조양희의 다채로운 무용은 그의 학술적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1997년에 발표한 석사논문은 그의 안무가 어떤 기반에 설정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비디오댄스는 공간의 다양한 활용, 무용장면의 복합적 구성과 신속한 변화, 극적 표현의 극대화, 동작과 움직임의 창의적 개발에 활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안무형식에 반영되어 공간구성의 방향, 초점의 이동, 장면의 배치 등에서도 다양한 변화를 조성할 수 있다”고 조양희는 강조했다.
특히, 이 논문에서 “다매체의 적용과 여러 장르간의 상호 교류가 가능했던” 트와일라 타프(Twyla Tharp)의 무용을 인용한 것은 놀라웠다. 마사 그레이엄과 머스 커닝햄 이후, 그 울타리를 벗어난 안무가 에릭 호킨스 등과 1960년대의 “저드슨 실험가들”(Judson Experimentalists) 그룹인 스티브 팩스톤, 루신다 차일즈, 트리샤 브라운, 데이비드 고든의 활동은 당대 무용의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주류는 뉴욕의 폴테일러무용단(1963~1965)이었다.
트와일라 타프는 그 무용단에서 활동하다가 무용단을 나와 독자적으로 자신의 무용을 개발했다. 트와일라 타프는 고전에 기반을 두면서도 광범위한 대중음악 ─ 프랑크 시나트라, 비치 보이스, 재즈 음악 ─ 을 사용했고, 특이하고 빠른 템포의 무용동작과 섬세하고도 유동적인 장면 구성 때문에 관객의 찬사를 받으면서 명성을 떨쳤다. 트와일라는 부르짖었다. “춤이란 무엇입니까? 춤이 어디 있습니까? 춤을 찾으세요! 사방 곳곳에서! 5년 동안 나는 이 문제에 골몰(汨沒)한 후 작품 『둔주곡(The Fugue)』을 만들어냈습니다.” 무용을 시작하는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트와일라는 대답했다. “몸의 신체성에 대한 과학적 탐구다. 동작공학(the engineering of the movement), 시간성(timing), 협동성(coordinations), 리듬, 몸이 할 수 있는 구성력 등이다. 정서의 원천인 움직임의 동기(motivation)에 대해서 나는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무용에서 중요한 것은 놀라움(surprises)이다.” 나는 조양희 춤에서 트와일라의 이런 기본원리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양희는 디지털매체 시대의 안무 방법을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설에는 매체와 무용의 관련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디지털매체의 특성인 기술성, 가상성, 상호작용성 등이 무용작품과 어떤 방식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관해 파블로 벤튜라의 로봇 테크놀로지를 언급한 것은 인공지능 시대의 무용을 생각할 때 다분히 미래지향적인 탁견(卓見)이었다. 그의 논문에서 소개한 파블로의 작품 『존(Zone)』(2001)은 “무용과 로봇 테크놀로지의 융합을 시도한 작품으로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안무와 함께 무대 위에 로봇을 등장시켜 무용수와의 상호작용적인 움직임을 스크린에 투영하는 기발한 확장을 창출했다”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무용과 디지털기술의 접합에 로봇을 도입하는 새로운 무용을 창출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조양희는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연구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의 작품에 이런 첨단적인 기법이 도입된 일은 별로 없는 듯하다. 테크놀로지 분야는 예산, 기술, 인원, 시설이 확보되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실행이 어렵기 때문인데, 나는 이 일이 그가 지향하는 앞으로의 일이 아닐까 기대하고 있다.

조양희가 안무하고 출연한 『코션(Caution)』은 현대무용단-탐의 어수정, 최윤영, 허은금, 남지연, 장근영 등 수려(秀麗)한 춤의 명수(名手)들이 등장해서 성과를 올렸다. 예술감독 조은미, 조명감독 이승호, 무대감독 박민철이 참여했다. 안무자의 지론대로 상호작용성이 두드러진 이번 공연은 색채, 조명, 오브제, 음악이 춤과 교묘하게 조율되어 상호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 결과 창연(蒼然)하고 눈부신 그림 같은 무대가 완성되었다. 특히 조명으로 조성된 선(線)과 공간은 빛의 변화와 색(色)의 조화로 춤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었다. 신속하고, 다양한 장면 변화는 적절한 타이밍과 창의적인 무용으로 신선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몬드리안(Mondrian)의 기하학적 추상을 연상케 하는 조양희의 춤 무대를 나는 조형주의(造形主義) 무용이라 정의해 본다. 현대 추상화 속에서 횡선, 수직선, 원, 삼각형, 사각형의 도형(圖形)으로 구성된 그림을 기하학적 추상화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원형(圓形)은 우주와 신, 그리고 인간의 완전성을 의미했다. 삼각형은 삼위일체요, 신의 강림(降臨)을 말했다. 정사각형도 신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았다. 미국의 시인 휘트먼은 “신성한 정방형(正方形)”이라는 언어를 사용하고,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종교적인 불안감을 나타내는 뜻으로 “붉고 하얀 정방형”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이런 도형을 사용하는 이유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어떤 상상의 세계, 정신적인 이념의 공간에 집착하고, 그런 무한(無限)의 영역을 몽상(夢想)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부조리하고, 비참해서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현실에 절망한 대다수 인간은 가혹한 시대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면서 영원한 구원을 소망하게 된다. 기하학적 도형 속에는 종교적이며, 신비로운 정서가 담겨있어서 그 속에 접하려는 무의식이 이때 무섭게 작동된다. 무용 속에 진입하는 기하학적 도형(圖形)도 이런 맥락에서 유추(類推)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조양희 무대에 투사되는 도형이 무용과 결합되는 절묘(絶妙)한 순간에 접하면서 나는 조형주의 무용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되었다.
『코션』 그 무용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막이 열리면 어둠속에서 무용수들이 서서히 움직이고, 몸체는 어둠에 가려진 가운데 두 손이 갖가지 형상으로 움직이다가 다리와 발이 바닥에서 펼쳐지고, 비틀리고, 접고 펴는 형상이 ‘클로즈 업’된다. 이윽고 무대가 서서히 밝아지면서 에르젯 카르도소(Elizete Cardoso)의 콧노래 리듬(Manha de Carnavia)을 따라 느리고 조심스러운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런 움직임이 계속되는 가운데 바닥에 삼각(三角) 영상이 투사된다. 그 안에 무용수들이 모여서 춤을 추고, 선 위로 걷다가 삼각 안에 모이면 조양희는 최윤영의 머리칼을 만지고 몸을 쓰다듬는 우애(友愛)의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나서 조양희는 선(線) 위로 걸어간다. 삼각 형상이 사라지면, 긴 횡선(橫線)의 길이 열린다. 그 길 양옆에 횡으로 세 개의 네모난 박스그림이 형성되면, 선 위로 공간 속으로 무용수들이 걷고, 뛰고, 눕고 왕복하는 행위가 펼쳐진다. 커닝햄은 말했다. “내가 하는 행위가 비표현적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의도하는 바와는 상관없이 동작 그 자체가 표현인 것을 나는 항상 느낍니다.” 바로 이것이었다. 누르고 풀어내는 갖가지 율동으로 꽉 찬 군무는 그 자체가 논리요 조화의 액정(液晶)이었다.
이윽고, 무대 바닥에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리고, 그 길은 다시 네모진 박스로 투사된다, 2인과 3인으로 분화되면서 5인의 군무가 진행되고 암전으로 끝난다. 무대가 다시 밝아지면, 새롭게 무대 뒤 횡으로 5인의 무용수들이 등을 보이면서 한 줄로 선 채로 동작을 시작한다. 그것은 조각된 동상(銅像)이었다. 이윽고 횡과 종으로 난 길에서 5인의 무용수들이 군무를 펼치는데, 춤은 세련되고, 청순하고, 숭고한 몸의 향연이었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조양희는 조심스럽게 이들을 향해 가면서 긴 팔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다이내믹한 솔로 춤을 시작한다. 그 춤은 압권(壓卷)이었다. 공연은 이 순간부터 서두를 지나 본론으로 접어들며 고조되고 상승된다.
최윤영이 황색 구명대를 엮은 커다란 오브제를 짊어지고 등장한다. 구명대를 수없이 엮어서 길게 연결한 오브제의 형상도 충격이거니와 황색은 너무 강렬해서 눈부시고 무대를 압도한다. 안무자는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경계와 벽이 있어서 항상 불안하고 불확실 하다.” 무대 바닥에 끊임없이 투사되는 수많은 선과 도형은 그것을 말하고 있다. 노란색의 구명대는 안전지대의 상징이다. ‘조심’해야 한다고 춤의 제목을 “코션”이라 했다. 이윽고 시작되는 최윤영과 조양희는 긴장과 이완의 동작으로 엉키고 풀리면서 무한한 생명의 순환을 느끼게 하는 2인무를 펼치고, 그것이 끝나는 순간 색색가지 타이츠로 변장(變裝)한 5인의 무용수가 새롭게 등장해서 구명대 줄을 끌고, 잡고, 기대고 돌다가 구명대에서 멀어지면 푸른색 둥근 공간 속으로 유입되는 급전(急轉)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것은 드라마틱한 경악(驚愕)이었다. 군무로 넘치는 그 공간이 삼각 형상으로 변하면서 구명대 줄이 무대를 횡(橫)으로 길게 늘어뜨린다. 그 중간에서 수직으로 무대 전면으로 뻗은 길을 따라 최윤영이 제단 앞으로 제사장처럼 경건한 몸짓으로 독무(獨舞)를 하고나면 그 뒤를 이어 바다 속 푸른 공간에서 춤을 추는 군상들이 구명대로 접근해서 그 위에 자리를 잡는다. 이들의 의상은 다시 검은 타이츠로 바뀌었다. 이 장면에서 에필로그가 시작되었다. 어수정의 유연한 움직임 따라 모두들 구명대에 자리를 잡으면 군무 중 한 무용수에 접근한 최윤영은 그의 겉옷을 벗겨서 깃발처럼 들고 구명대 무용수 앞을 보란 듯이 펼치고 지나간다. 종점에 도달한 최윤영은 들고 온 겉옷을 접고 몸을 한 바퀴 돌린다. 그 순간 구원의 손짓처럼 안개구름이 하늘로 피여 오르고, 최윤영은 서서히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지금까지 무용의 진행 과정을 서술했는데, 이런 설명만으로는 이 공연의 진가를 판단할 수 없겠지만, 공연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주제의 전달은 적절했는지 생각해보는 여러 단서는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의미전달이 안무가의 뜻대로 잘 되었는지, 주제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도 약간의 도움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탐’의 특징 그대로 지극히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로 인해 관객은 다양한 연상이 유발되는 체험을 갖게 되고, 거의 음악적인 상태에 함몰되는 정화(淨化)의 경지에 도달한다. 사실 아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이것만으로도 무용은 가능하고, 관람은 성취될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펼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견해도 제기된다. 예술의 모든 작품에는 무드, 목적, 정서,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마련이고, 행동의 동기가 뒷받침 되어 있어서, 그 내면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사람의 몸은 완전히 추상(抽象)으로 존재할 수 없다. 서 있거나, 눕거나, 기거나, 달리거나, 걷거나, 뛰어오르거나 하는 모든 동작은 무용가의 내면적 충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조양희 공연은 동작이며, 선, 형체와 공간이 순수 무용의 범주에 들어있어서 관객들의 절묘한 미적 체험과 다양한 연상 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노란색에서 난파당한 배를 연상케 하고, 푸른 원이 번지는 공간을 바다로 느끼며, 구명대를 구제의 손길이라 상상케 한다. 또한, 최윤영이 벗겨낸 겉옷을 삶의 허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현대무용단-탐 조은미 류(流) 무용의 장점과 특징은 이 같은 선과 색의 교합이요, 수직과 수평의 동작선이요, 춤과 음악과 오브제로 감염(感染)되는 철학적 상상이요 추상의 개념이었다. 무대 바닥에 투사되는 삼각형, 사각형, 원형, 횡선, 수직선에서 전진하고 후퇴하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바깥으로 나오는 등 축소와 확대, 접근과 후퇴 등의 율동적 변화는 몸 운동의 자율성이요, 무용의 순수성이었다. 조은미의 『뜰』을 위시해서 그의 모든 작품에서 이런 특징은 일반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무용단-탐 37년 째, 30여분 계속된 37회 조양희 공연 『코션』을 보고난 후, 나는 수많은 관객들을 비집고 그들의 종알거림을 들으면서 어두운 이화대학 구내를 걸어 나오면서 조양희 무용을 여러모로 다시 생각해보았다. 1902년 이사도라 던컨은 「미래의 무용가」라는 글에서 “순수하고 강렬한 춤을 보면 영혼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무용은 영원의 리듬이요, 기도이다”라고 말했다. 무용이 마술적 효과를 성취하는 순간의 발언이다. 우리는 이것이 현대춤 출발의 횃불인 것을 알고 있다. 이후 마사 그레이엄이 등장하고, 머스 커닝햄, 이본느 라이너, 사회적 의식을 강조한 메레디스 몽크, 폴 테일러, 스티브 팩스톤, 시각과 언어의 ‘콜라쥬’(collage)로 무의식의 흐름을 스토리에 접목시킨 데이비드 고든, 그리고 트와일러 타프 등이 줄을 이었다. 타프는 대학 캠퍼스를 돌면서 전위적인 실험적 무용으로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복합적인 구조, 고전과 대중을 넘나드는 다양한 음악, 고전 텍스트의 탄탄한 기반, 서정적인 분위기 등 새로운 감성과 상상력은 타프 무용 성공의 원천이었다.
조양희는 무용과 ‘복합미디어(multiple-media)의 결합을 새로운 무용의 과제로 삼고 있다. 이런 방법적 모색은 전자시대 영상화 문화에 대처하는 불가피한 경우라 할 수 있고, 미래지향적인 발상이어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방법론과 함께 우리는 시대가 주는 중압감, 인간관계의 단절, 분노와 갈등의 위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술의 힘으로 그 엉킨 매듭을 풀어 질서와 평화에 기여하는 문제는 금세기 모든 나라의 예술가들이 심혈을 기울이는 주제가 되고 있다. “형식은 내면의 일을 외부로 표현 한다”라고 말한 추상화의 거두 칸딘스키의 주장이나, “정서에서 형식이 생긴다”라는 그래함의 말은 신촌을 거닐면서 나의 뇌리(腦裏)서 떠나지 않았다. 조양희의 춤 동작은 분명 내부적 정서의 표현인데, 그것은 『코션』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위기 상황을 넘어 안전지대로 가려는 충동의 산물이었다. 조은미 교수에게 충실했던 조양희는 지금 울타리를 넘는 날갯짓을 하고 있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나는 그 향방이 ‘네러티브’(narrative)요, 사회의식이 살아있는 역사성이 아닌가 예측해본다. 2001년, 그의 출발이었던 『비보호 좌회전』, 그리고 2005년의 『빙점』 등은 훗날 갈 길을 예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