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살롱

자전거가 여름 스포츠라 해도 덥고 습하고 장마까지 겹치는 우리나라에선 가을만큼 자전거 타기 좋은 철이 없다. 이 무렵이면 꼭 한국을 찾는 미국 잔거꾼이 있다. 시애틀에서 인터내셔널 바이서클 펀드(International Bicycle Fund; IBF www.ibike.org)라는 자전거 타기 운동을 하는 데이빗 모저(David Mozer)라는 친구다. 인터넷에서 자전거 타기 운동을 하는 친구라니까 인터넷도 잘 하고, 힘도 넘치는 젊은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일흔이 넘은 노인네다. 한국은 추석 앞뒤로가 가장 지내기 좋다며 한국 자전거 여행 희망자를 모아 한 보름동안 여기저기를 자전거로 돌아다닌다. 해마다 한국을 찾다보니 한국 생활에도 익숙해 김밥천국에서 김밥과 순두부로 배를 채워가며, 때로는 찜질방에서 싸게 하루를 자기도 하고 또 때로는 월정사나 직지사에서 템플 스테이도 하면서 한국 구석구석을 누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면 지나는 길섶에 있는 보잘 것 없는 유적에도 눈이 가기 마련이고 이 관심이 가는 유적에 대한 설명을 못 들으면 내게 물어서라도 확인을 할 만큼 한국 역사나 문화에 대한 사랑이 넘친다. 그러다 보니 고구려 백제 신라의 경계가 어딘지, 문경새재와 탄금대가 어떻게 역사에 그려지는지 웬만한 한국 사람들보다 한국사를 더 잘 안다. 한국사와 문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지식을 보름동안 같이 자전거를 타는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또 같이 배우기도 한다. 멋지지 않은가.
일흔을 넘긴 할아버지가 어떻게 보름동안이나 자전거를 타고 남의 나라인 한국을, 그것도 외국인들 가이드까지 해가며 여행 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데이빗을 직접 보면 그 궁금증이 풀린다. 178쯤 되는 작지 않은 키에 딱 벌어진 어깨, 군살 하나 없는 날씬한 배와 허리를 보면 평생을 자전거와 함께 지내온 그의 아우라를 읽을 수 있다. 얼굴만 나이들어 보이지 뒷 모습을 보면 사오십대 장년으로 보아야 한다. 자전거와 친구가 되면 누구나 이런 아우라를 나눠 가질 수 있다.
올해도 데이빗이 몇몇 자전거 꾼을 모아 한국에 온다. 혹 지나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서양인들을 보면 데이빗 아니냐고 물어 보라. 맞다면 박수 한번 쳐주고 손도 흔들어 주면 더욱 좋겠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도 한국을 잊지않고 찾아 주는 멋진 자전거 친구다. 지금 독자분들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때 데이빗과 그 친구들은 하루에 오십이나 육십 킬로씩 자전거로 한국을 느끼고 있을 거다. 다들 위에 적어 둔 데이빗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그의 한국 자전거 여행기 한 번 읽어 보면 어쩜 한국인도 못 본 한국을 이리 자세히도 보았을까 놀랄 것이다. 사진도 많이 있으니 우리의 무엇이 이 푸른 눈의 자전거 꾼에게 그렇게 사랑스레 보이는지 둘러보고 응원의 말도 몇 마디 남겨 주면 감사하겠다.
이 친구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면 이 친구의 IBF에 기부금을 낼 수도 있다. 연말정산용 영수증도 발급해 준다. 꼭 자전거를 많이 타야만 자전거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쉴 때 이렇게 자전거 관련 글도 읽고 다른 자전거 꾼들의 이야기도 듣고 하는 것도 자전거 사랑의 또 한 길이다. 자전거에 얽힌 글만 읽어도 몸이 근질거리는게 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