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살롱

어릴 적에는 「어깨동무」라는 잡지도 있었는데, 분단된 나라에 사니 이제는 한 민족의 언어도 분단이 되는지 ‘동무’라는 좋은 낱말이 슬프게도 우리말로서 그리 익숙하지 않게 되어, 요즘 젊은이들은 거의 쓰는 않는 단어가 되었다. 그런데 합정동에 식탁도 5개 밖에 없는, 친근한 이름의 「동무밥상」이라는 자그마한 북한음식점이 3년 전에 생겼다. 윤종철이라는 쉐프가 TV에 나오고, 골목 구석에 있는 작은 음식점이 뭔 방송에도 나왔다는데, 경험상 이른바 풍문에 낚여서 가보면 사실 맛도 별로고 실속도 없어서, 열에 아홉 집은 혀를 끌끌 차고 툴툴거리며 나오기 십상이다. 그런데 「동무밥상」은 열의 하나에 속하는 집이었다.
일단 평양냉면으로 이름난 집이어서 냉면을 주문해봤는데, 찰지지도 푸석하지도 않은 구수한 메밀 면발에 담백한 육수는 아주 일품이었다. 금강산 옥류관에서 먹던 냉면 맛을 서울에서도 비슷하게 맛보는구나 하는 느낌이 제일 먼저 들었다. 주인장이 평양 옥류관에서 일류 조리사로 근무했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닌 거 같다. 특이한 건 식탁에 겨자와 식초가 없다는 점이다. 이 집은 그냥 해주는 대로 먹는 건가 했는데, 옆 손님이 겨자와 식초를 달라고 하니까 준다. 나도 습관대로 겨자와 식초를 넣어보니, 이 집 냉면 특유의 담백한 맛이 사라져버린다. 냉면이야 우리에게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음식이고, 서울 시내에 내로라하는 유명한 냉면전문점이 수두룩하니, 사람의 입맛에 따라 단골집이 있겠지마는, 동무밥상의 평양냉면도 그 어느 이름난 냉면전문집과 어깨를 견줄, 충분한 품격을 갖추고 있다. 진짜 냉면 마니아는 겨울에 즐긴다는데, 쌀쌀해지는 계절에 냉면의 참맛을 만끽해 보기에 손색이 없다.
동무밥상은 북한음식점답게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넣어 속이 알찬 찐만두와 찰지면서 부드럽고, 얇게 썰어 접시에 예쁘게 돌려놓은 감칠맛 나는 찹쌀순대도 냉면 못지않은 맛솜씨를 자랑한다. 오리불고기와 오리탕국밥도 특색이 있으며, 겨울에는 만둣국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동무밥상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는 명태식혜다. 가자미식혜는 속초에서부터 많이 알려져서 즐겨 먹는 이들도 있으나, 그보다 삭힌 맛이 더한 명태식혜는 먹어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김장김치 속에 넣은 생태 맛 같은 시큼하게 삭힌 독특한 식감은 개인적으로 호오(好惡)가 갈릴 수도 있지만, 경험하지 못한 음식을 한번쯤 먹어보는 걸 꺼려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입이 기꺼워할 먹거리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양배추, 배추김치도 맛깔나지만, 콩나물무침처럼 보이는 콩나물김치는 동무밥상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다.
식탁이 5개뿐이라 20명도 한꺼번에 앉을 수 없고, 예약도 받지 않아 식사 시간에 가면 줄을 서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진정 냉면 맛을 알고 북한 음식의 한 모퉁이를 맛보려면 그런 정도의 기다림은 감내해야 할 일이다. 곧 옆집을 임대해서 확장한다고 하니 기다림은 줄 수 있겠으나, 자그마한 음식 명가가 커져서 어렵사리 찾은 손님을 실망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이 동무밥상에서는 그런 사달이 결코 없기를 기대해본다. 02-332-6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