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살롱

「택시운전사」(장훈 감독, 극영화, 한국, 137분, 2017년)는 실화에 근거한다. 1980년 5월 대한민국 광주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구테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가 일부러 광주를 선택해 혼란을 야기 시켰고, 폭도들의 군가전복 시도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잔인한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그 엄청난 혼란 중에 그야말로 많은 이야기들이 탄생했고 「택시운전사」도 그 중 하나다.
위르겐 한스페터(토마스 크레취만)는 독일 공영 TV 방송인 ARD의 동경 주재원이었는데 바로 이웃 나라인 한국에서 큰 변고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는 급하게 서울로 향했고 서울에서 광주까지 자신을 태워줄 교통편을 수소문한 끝에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을 국도극장(지금은 사라진) 앞에서 만난다. 부인과 사별한 후 외동딸과 단칸방에 살던 만섭에게 왕복 택시비 10만원은 하늘에서 내려준 돈이었다. 광주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페터와 생계비가 절실히 필요했던 만섭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오로지 페터의 증언에 의존한 것이라 만섭의 이야기는 가공에 머문다. 광주의 진실을 카메라에 담은 이후 페터가 만섭을 여러 차례 수소문 했지만 결국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만섭이라는 인물의 묘사에서 이야기의 충분한 개연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사람에게 대학생들의 데모란 사치에 불과했고, 가능한 한 데모가 벌어지는 위험한 상황에서 줄행랑을 치는 게 상책이다. 실제로 만섭은 저 혼자 살려 페터를 버리고 도망쳤지만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부르다 마음을 바꾼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택시기사에게는 손님을 목적지까지 태워다주어야 할 직업윤리가 있는 것이다.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만섭은 어린 딸에게 전화를 한다.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감독이 관객에게 전해주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택시운전사」는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영화 그 자체로 볼 때 편집에 실패한 작품으로 비쳐진다. 장훈 감독이 원래 액션 묘사에 능한 인물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군인들의 진압 장면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그리느라 장시간 지속되었고 막판에 벌어진 자동차 추격 장면도 영 불편했다. 아무리 영화를 길게 만드는 게 요즘 트렌드라 해도 상영시간 137분을 110분 정도로 줄이는 편이 나을 뻔했다. 흥행에 대한 강박관념이 가림 없이 표출된 느낌이었다. 러시아의 거장 에이젠슈테인(1898~1948)이 지적했던 대로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어야 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지금은 고인이 된 한스 페터를 인터뷰한 장면이 나온다. 그가 울먹이면서 한 말은 자신을 서울에서 광주, 광주에서 김포공항까지 무사히 태워준 택시운전사 김사복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노기자의 눈물에서 나는 광주의 눈물까지 볼 수 있었다. 장훈 감독은 좋은 소재를 잡아 대한민국 국민으로 하여금 진실에 눈을 뜨게 해 준 것이다. 그 하나만으로도 「택시운전사」는 제 역할을 다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