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살롱

이번 호로 무용 전문 월간지 「춤」이 통권 500호를 발행한다. 1976년 창간 이래 41년 8개월만의 ‘춤을 춰야 할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잡지 역사를 보면 말 그대로 ‘명멸(明滅)’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잡지가 창간되고 사라진다. 현재도 국내에서만 수천 종의 잡지가 발행된다. 현존하는 국내 잡지로는 1906년에 창간되어 쉬지 않고 달려온 「경향잡지」가 최고령이다. 「보감」이란 이름으로 시작해 1911년에 개칭했는데, 가톨릭 재단에서 발행하는 만큼 종교적인 뒷심이 탄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계 잡지로는 1955년 창간된 국내 최고령 문예지 「현대문학」이 1996년에 500호, 2013년에 700호 돌파를 거쳐 건재하다. 이 잡지는 교과서, 인쇄, 에너지 사업으로 재정 기반이 든든한 미래엔(옛 대한교과서) 그룹이 펴낸다.
이처럼 든든한 배경을 가진 잡지들은 정기구독자가 줄든 광고량이 줄든 끄떡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잡지의 경우 창간 정신을 이어가며 버틸 재간이 없다. 그래서 이따금씩 언론에 보도되는 낯익은 잡지들의 폐간, 휴간 소식은 안타깝다. 2017년 봄호를 끝으로 휴간한 「작가세계」는 1989년부터 이어오던 명맥이 끊겨 문학 독자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올해 9월호로 500호를 발행한 「출판저널」은 현대 한국 출판의 황금기이던 1987년에 출판계의 총의를 모아 창간되어 격주간지로 발행했지만, 2002년부터는 발행처가 바뀌어 월간지로, 2008년부터는 개인이 발행하며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500호 발행을 기해 격월간지로 발행 주기가 오히려 늘어났으니 한 걸음 더 후퇴하는 셈이다. 처음에는 자금줄이 든든하던 한국출판금고(현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에서 발행하다가 다음에는 출판협회가 발행했고, 그 다음은 개인이 맡으면서 발행 주체가 왜소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기획회의」 「학교도서관저널」 같은 출판이나 학교도서관 관련 전문지들이 있지만, 전체 발행부수나 독자층의 제한으로 어렵게 살림을 꾸려가는 실정이다.
반면 선진국 사정은 다르다. 독일서적상협회가 주간지 「뵈르젠블라트」를 183년째 발행 중이고, 영국의 출판 비즈니스 매거진 「더 북셀러」는 통권 5,770호를 펴냈다. 경이롭기조차 한 숫자들이다.
또한 미국에서 발행하는 「퍼블리셔스 위클리」(1872년 창간)는 현재 세계 최대의 출판 정보 플랫폼 역할을 한다. 종이 잡지 발행 부수는 7만 부 정도이지만 연간 홈페이지 방문자는 2,700만 명, 소셜 미디어 팔로워가 100만 명을 헤아린다. 팟캐스트 이용자도 12만 명이나 된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걸맞게 꾸준히 진화한 모습이 뚜렷하다. 이런 잡지문화의 격차는 출판 분야만이 아닐 것이다.
잡지는 시사성과 전문성이 결합된 최고의 콘텐츠 매체다. 해당 분야를 대변하고 안팎의 소통을 촉진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보루다. 하지만 그 중요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춤」의 독자, 관련 기업, 후원자들의 뒷받침이 커질 때 「춤」이 다루는 춤계 역시 확장되고 진화될 것이다. 춤 문화의 온축을 만들어온 「춤」 500호 발간을 축하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