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살롱

사진집 「강운구/ 네모 그림자」를 열어 차례를 보고 다음 장을 넘긴 순간, 가슴이 쿵했다. ‘내려가며’라 쓰여 있었다. 머리말 또는 ‘들어가며’란 표현 대신 사진작가 강운구(76) 선생은 ‘내려가며’라 했다. 지난 달 16일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개막한 「강운구/ 네모 그림자」(11월 25일까지)는 그가 같은 곳에서 열었던 「저녁에」 이후 9년 만의 개인전이다. 소회이면서 다짐이기도 한 ‘내려가며’는 담담하면서도 때로 비장하다.
“지금껏 나는 나에게 엄격하였다. 이윽고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마침내 나는 나를 믿기 시작했다. (…) 올라온 것도 없는데 내려간다. 바위 같던 나의 확신은 설핏한 햇살이 비춘 그림자처럼 아련해진다. (…) ‘이런들…저런들’에는 허무의 냄새가 자욱하다. 나는 그런 늪을 멀리 돌아서, 정신 가다듬고 다시 신발 끈 조여 매고 싶다. 내려가며 올라가는 길도 있을 터이다. 내려가면서도 여전히 주워 담는다. 그게 ‘노년의 과오’가 될지라도.”
「네모 그림자」는 ‘사진이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에 대한 질문이자 대답이다. 필름 카메라로 흑백 사진만 찍으며 ‘막장(암실 인화 작업)’을 고집했던 강 선생은 모든 사진가가 디지털 기술 쪽으로 가버린 것을 알아챘다. 후배들은 뒤돌아보며 강 선생이 “아날로그(사진술)의 순교자가 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듯” 했으나 어느 날 문득 그는 고백했다. “큰일 났다, 폰카에 빠졌다.”
그러곤 깨달았다. 이제껏 디지털 사진이 ‘경박’해 보인 것은 사람들이(작가들이) 경박하게 해서 그런 거였다고. 그 뒤부터 강운구 선생 사진의 6~7할은 폰카로 이 세상에 경배한 것이 되었다. 그는 “이제 나에겐 필카나, 디카 또는 폰카의 역할 구분은 의미가 없다. 다만 그것들로 한 ‘무엇’이 중요할 뿐”이라 선언했다.
전시장에 나온 140여 점 사진은 여전히 작다. 그가 ‘디지털 뻥튀기’라 부른 터무니없이 커진 사진은 없다. 시간을 따라 달라지다 순간 사라져버리는 덧없는 그림자를, 네모난 틀에 담으려고 자신의 그림자를 끌며 분투해 얻은, ‘강운구 표 사진’이 오롯하다.
“전통건물의 벽에는 굵은 나무틀(액자)이 많다. 그것들은 거의 다가 비어있다. 그 텅 빈 틀이 이윽고 알맞게 채워질 때까지 마치 그림자인 듯이 숨죽이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그것을 내 틀로 들어오게 한다.”
세상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알 수 없는 묘한 틀 앞에서 생각에 잠겨 기다리는 사람이 그다. ‘무엇’인가 그의 가슴을 치는 순간, 그의 손가락이 움직여 그림자를 거둬 담는다. 틀이 있고, 거기 담긴 그림자가 있고, 다시 강 선생의 그림자가 있다. 세 바탕 겹침으로 ‘우연 또는 필연’은 하나가 되었다. ‘오래된 풍경’은 그렇게 우리 가슴에 ‘모든 앙금’으로 가라앉는다.